177화. 일어나
‘서태혁… 서태혁이라.’
서태혁의 이름을 되뇌이며 송유빈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바로 떠오르진 않지만 기억의 저편에서 한 번쯤은 새겨진 적 있는 이름.
‘아.’
무언가를 떠올린 송유빈이 고개를 들어 서태혁의 얼굴을 바라봤다.
“천재 개발자 중학생 서태혁.”
서태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영광이네요. 송유빈 님이 10년도 더 전에 불렸던 제 호칭을 다 기억해주시고.”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서태혁이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하긴, 뭐든지 다 기억하실 수 있죠? 송유빈 님은.”
“….”
‘가짜 놈이 모르는 게 없네.’
송유빈이 개방한 능력은 절대 기억력.
눈으로 한 번 본 장면은 절대 잊지 않고 사진처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애써 숨기고 살진 않았으나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서태혁은 그마저도 다 알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절대 기억력을 가진 송유빈조차 서태혁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서태혁의 모습.
단순히 시간이 지나며 외관이 변한 수준이 아니었다.
꿈 많고 눈이 빛나던 중학생은 온데간데없이, 볼까지 내려온 짙은 다크써클과 빛 따위는 옛날 옛적에 사라져버린 듯한 눈을 가진 서태혁.
정말 동일 인물이 맞나 의심될 정도였다.
‘약이라도 하는 건가.’
생김새를 넘어 분위기마저 완벽히 달라진 서태혁에 송유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달라졌나요? 당신이 기억하던 천재 중학생과는요.”
“달라진 수준이 아니라 완전 피폐해졌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거침없는 송유빈의 감상평에 서태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면서 말이다.
“하아.”
간신히 웃음을 그치며 작은 한숨을 내쉬는 서태혁.
서태혁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송유빈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입니다. 그 마지막 인터뷰 이후에 전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거든요.”
“마지막 인터뷰…?”
“그 이후로는 아무도 절 찾지 않았거든요.”
서태혁의 말을 곱씹으며 기사를 봤던 시기를 떠올렸다.
분명 개방의 날 직전의 날짜였었다.
‘개방하지 못한 건가.’
정말 극소수지만 존재했었다.
자신의 개방 조건을 찾지 못해 죽을 때까지 능력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개방은 했습니다.”
송유빈의 생각을 읽은 듯 서태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했지만, 안 하는 게 나을 뻔했죠.”
* * *
과거 개방의 날이 찾아오고 몇 년이 흐른 시점.
스륵.
커다란 저택의 침대에서 서태혁이 눈을 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서태혁.
침대에서 일어난 서태혁이 앞에 놓인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피식.
본인 스스로가 봐도 웃음이 나오는 꼬라지였다.
밖으로 안 나간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이 거대한 저택에 스스로를 가두고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개방의 날이 찾아오기 몇 년 전.
그때까지만 해도 서태혁은 빛났었다.
또래 중에서 압도적인 두뇌를 뽐냈던 서태혁.
현직 과학자들마저 압도하는 아이디어와 개발력에 다른 나라의 과학계조차 서태혁을 보러 올 정도였다.
말 그대로 나라의 보물이며 세계의 기대주였던 것.
- 서태혁 학생 스케줄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집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쏟아졌었다.
매일 반복되어 귀찮을 법도 한 전화였지만.
서태혁의 부모님은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과학자 출신이자 발명품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던 서태혁의 부모님.
이들 역시 아들의 뛰어남과 쌓여 가는 명성에 몹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넌 나를 뛰어넘을 과학자가 될 게다! 모든 지원을 해줄 테니 꿈을 펼쳐보거라!
말 그대로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시절이었다.
뛰어난 두뇌는 시도때도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냈고, 잠을 줄여가며 익혀온 기술 덕에 쏟아지는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도 노벨상은 물론이고 세기의 과학자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서태혁 본인 역시 의심치 않았었다.
‘….’
물론 서태혁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 미확인 생명체가 나타났습니다!
-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이런 뉴스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정부는 오늘을 개방의 날이라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개방의 날.
인류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날이었다.
인류에 속해 있었던 서태혁의 인생에도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 ….
서태혁이 우연히 능력을 개방한 날.
곁에 있던 부모님과 저택의 도우미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 반짝.
서태혁의 손에선 초록색 야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야광을 뿜어내는 것.
천재라고 불리던 서태혁이 개방한 능력의 전부였다.
꾸득.
거울을 바라보며 서태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자신을 둘러싸고 실망에 집어 삼켜졌던 사람들.
몹시 실망했지만 눈앞의 아들이, 도련님이 상처받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사람들.
‘나보다 훨씬 무능했던 것들이…!!’
그랬던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하고 있었다.
씻을 수 없는 치욕이자 굴욕이었다.
‘….’
물론 서태혁의 굴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작에 불과했다.
- 천재 과학자 서태혁 군은 무슨 능력을 개방했나요!?
서태혁을 알았던 모든 이가 궁금해했다.
일반인 중에도 로또에 맞은 듯 엄청난 능력을 뿜어내는 이가 있는데.
과연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던 서태혁은 어떤 엄청난 능력을 개방했을지 모두의 관심사가 된 것이었다.
- … 야광요?
서태혁이 개방한 능력이 알려지며.
천재라는 게 알려졌을 때부터 들끓었던 사람들의 발길은 거짓말처럼 끊어졌다.
개방이 찾아와 온갖 능력이 넘치는 세상.
손을 야광화 시키는 능력 따위에 눈을 돌릴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 다녀오마.
발길이 끊긴 건 외부인뿐만이 아니었다.
아들의 낙오 이후 과학계를 위해 뛰어난 능력자를 찾아 집을 떠났던 부모님까지.
그렇게 서태혁은 거대한 저택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불공평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생각이었다.
# 세계의 과학 유망주로 떠오른 김유영 학생을 만나보겠습니다.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부족했던 놈이었다.
그런 놈이 운 좋게 뛰어난 능력을 얻어 훨씬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니.
너무 분해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
개방과 동시에 찾아온 영생.
사람들은 축복이라 여겼지만 서태혁에겐 지옥이었다.
세계의 중심에 속해 있다가 완벽한 들러리가 된 채로 평생 살아야 한다니.
어쩜 이리 끔찍할 수 있단 말인가.
“으아아아아!!”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함에 서태혁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약해졌던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리기 직전.
책상 위에 놓인 여러 장의 지폐가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이 해외로 나가며 두고 간 돈이었다.
‘….’
방으로 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돈.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남아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서태혁의 부모님이 쌓아 올린 막대한 부.
부자가 모여 산다는 동네에서도 나름 큰 저택에 사는 서태혁이었다.
# 개발계 능력을 개방 후 불법 무기를 만들어 판매한 범죄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마침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죽어가던 서태혁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저런 능력을 가졌어도 애초에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들이었기에.
돈을 벌기 위해 불법적인 일에 능력을 사용하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저들에게 필요하지만 없는 걸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필요하지만 없는 걸 저들이 가지고 있다.’
두근.
새삼스레 깨닫게 된 사실에 서태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굳이 내가 뛰어날 필요는 없다.’
뛰어난 이를 내 것으로 만들어 부려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번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지도 몰랐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서태혁의 부모님 역시 뛰어난 능력을 개방하진 못했다.
단지 뛰어난 능력을 개방한 이들을 데려와 지원해주며 자신의 업적을 쌓아나갈 뿐이었다.
‘이제 방해되는 건.’
슥.
고개를 돌린 서태혁이 액자를 바라봤다.
몇 년 전 부모님과 찍었던 사진이었다.
조금 전 떠올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연히 돈이었고.
지금 저 돈의 주인은 서태혁이 아니었다.
‘….’
띠링.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리는 서태혁의 핸드폰.
핸드폰 화면으로 아버지 이름이 표시되었다.
# 이번에 데려온 아이들과 함께 오늘 저녁에 도착한다.
‘….’
무심한 얼굴로 메시지를 내려다보던 서태혁.
서태혁의 얼굴로 소름 끼치는 미소가 그려졌다.
* * *
“완전… 미쳤구나.”
서태혁의 이야기에 송유빈이 인상을 찡그렸다.
믿기지 않는 과거 이야기였다.
처음엔 그럴 수 있겠거니 했지만,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었다.
“아마 하늘에서 아버지도 기뻐하실 겁니다. 제 덕분에 집도 이렇게 더 큰 곳으로 옮길 수 있었으니까요.”
개발계 범죄자들을 영입해 무기를 찍어낸 서태혁.
서태혁은 만들어낸 무기를 세계 곳곳으로 팔아 이전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부를 벌어들였다.
덕분에 뒷세계에서는 최고 고래 무기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말이다.
우웅.
서태혁의 손에서 빛나는 야광.
“제가 가진 능력은 이것뿐이지만.”
철컥.
특수 제작된 장갑과 장갑에 들려있는 수리검.
서태혁이 수리검을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전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자들을 데리고 이런 게 가능해졌죠.”
철컥.
수리검에 이어 서태혁의 등 뒤에서 푸른 비늘이 쏟아져 나왔다.
여전히 인위적이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기왕의 비늘이라 착각할만한 생김새였다.
“제 아래에 있는 박사들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거든요. 이 비늘은 빛을 재현해내느라 위력과 실용성은 좀 떨어지지만요.”
만족스러운지 한참동안 들고 있는 수리검과 비늘을 바라보던 서태혁.
슥.
송유빈에게 고개를 돌린 서태혁이 입을 열었다.
“조만간 저번 영상에서 나온 무기왕의 플라잉 믹서기를 만들어낼 겁니다. 그럼 사람들은 완벽하게 믿겠죠, 새로운 무기왕의 재림을.”
“….”
한껏 자아도취 되어 있는 서태혁을 송유빈이 딱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움찔.
쓰라린 과거가 생각나서일까.
송유빈의 눈에 반응한 서태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 뭐죠? 그 눈은.”
“참 딱하네. 부모님을 죽여가면서 얻으려고 한 게 고작 그거야?”
“뭐…?”
송유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다고 네가 무기왕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사람들이 뭐 때문에 무기왕을 좋아하고 열광하는지 전혀 모르는구나, 가짜야.”
여유 넘치던 조금 전과 달리 서태혁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거침 없으신 건 알지만 말은 좀 조심하시죠.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날이 선 경고에도 송유빈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돈으로 능력자들을 사와 무기를 만들어 팔든, 무기왕의 기술을 따라해 잠시 사람들의 눈을 속이든. 그렇게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너꺼가 아니야.”
슥.
서태혁 쪽으로 몸을 기울인 송유빈이 조소를 머금었다.
눈엔 불쌍하다는 동정의 빛이 잔뜩 서린 채였다.
“잠깐 만들어진 허상에 대한 스포트라이트일 뿐이지. 그걸 거둬내면 넌 결국 손에서 야광이나 내는 싸이코 정신병자에 불과하단다. 이 가짜야.”
으드득.
“이…!!”
이젠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의 서태혁이 송유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도련님!”
부하 중 한 명이 테블릿을 들고 서태혁에게 달려왔다.
“뭐야!!”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급한 일인지 부하가 테블릿을 건넸다.
“…?”
테블릿에서 재생되고 있는 건 누군가의 영상이었다.
정확히는 실시간으로 촬영되고 있는 스트림 방송.
한튜브에서 스트림되고 있는 무기왕의 방송이었다.
“이건 뭐…!?”
서태혁이 뭐냐고 되물으려는 순간.
방송으로 익숙한 집과, 익숙한 누군가의 뒤통수가 나타났다.
‘하늘…!!’
휙!
영상에 자신의 뒤통수가 보임과 동시에 고개를 올린 서태혁.
서태혁이 하늘에 뭐가 있는지 인지하기도 전, 눈앞으로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쩌억!!
쿠당탕!
손바닥의 주인을 확인할 새도 없이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서태혁.
“도… 도련님!! 전부 나와!!”
부하가 증원을 요청하기 위해 저택 안으로 달려가고.
그러든 말든 날아간 서태혁을 응시하고 있는 침입자.
침입자의 주변에선 검은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설마 한 방에 죽은 건 아니지?”
침입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죽었으면 얼른 일어나라.”
씨익.
침입자의 입가로 그려지는 반갑다는 듯한 미소.
“격의 차이를 보여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