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톡
정원 구석으로 처박힌 가짜를 바라봤다.
너무 안 알아보고 뺨을 갈겼나 싶긴 했지만.
정황상으로 봤을 때 송유빈 앞에 서 있는 저놈이 가짜가 분명했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최대한 힘을 조절한다고 하고 쳤는데.
순간의 괘씸함에 너무 대충 해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뺨을 때리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앉은 채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는 송유빈.
국민 리포터 무사하시고.
나도 모르게 싸인 해달라고 달려갈 뻔했지만.
지금 상황에 그러면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아 인내하기로 했다.
액션 캠도 돌아가고 있으니 참아야지.
송유빈의 집으로 급히 향하는 와중에도 챙긴 게 있었으니.
가짜놈을 참교육해주기 위한 액션 캠이었다.
원래는 돌발사태를 대비해 라이브 스트림은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저택을 발견하기 무섭게 스트림을 틀었다.
그나저나.
“와….”
아까부터 굳어버린 것마냥 입을 벌린 채 날 바라보고 송유빈에.
쉽사리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는 멋지게 등장해서 괜찮으십니까 라고 물으려고 했는데.
저런 얼굴에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 넣어두기로 했다.
우루루!
조금 전 서 있던 부하가 뛰어들어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택 안에서 많은 수의 인원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
정원 구석에 처박혔던 짭퉁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뭐 하는 곳이냐 여긴.
아직 적들이 도착하려면 약간의 여유가 남아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한 저택 여러 개를 붙여놓은 듯한 넓이에 그곳을 빠짐없이 채우고 있는 엄청난 양의 무기까지.
이 새끼 무기왕이 아니라 판매왕이었나.
한 추적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브로커를 통한 불법 무기의 수출입이 많아졌다는 내용.
세계에서 활동하는 거물 무기상이 한국에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끝으로 방송은 끝이 났었다.
어쩌면 유명인의 집으로 쳐들어온 걸지도 모르겠구만.
이거 또 나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일에 휘말렸단 생각을 하며.
저벅.
여전히 멍해있는 송유빈에게 걸어갔다.
“지… 진짜 무기왕이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 사이로 송유빈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상상 속의 무언가를 목격한 듯한 눈빛이었다.
개미굴에서 쫓아오던 이후로 처음이구만.
정확히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개미굴을 리볼버로 쓸어버리며 나온 뒤.
혹여나 카메라에 모습이 담길까 혼신을 다해 튀던 날 잠깐 멈춰보라며 끝까지 쫓아왔던 송유빈이었다.
“일단 자리 좀 피할까요?”
잠시 후면 난장판이 될 저택이었기에.
송유빈을 먼저 빼내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와락!
!?
놀라지 않게 손부터 잡으려고 한 건데 지체없이 날아드는 송유빈.
순식간에 목을 감싸버린 송유빈에 오히려 내가 놀라버렸다.
“가… 갑니다.”
당황스러웠지만 피하긴 피해야 하니.
송유빈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은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스르르.
저택에서 꽤 떨어진 위치.
순식간에 날아온 뒤 땅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
지상으로 내려왔음에도 여전히 찰싹 달라붙어 있는 송유빈을 바라봤다.
날아오른 순간부터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송유빈.
얼굴이래봤자 가면이 쓰여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송유빈은 잠시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
“아!”
후다닥.
그제야 정신을 차린 건지 송유빈이 팔을 풀며 조금 거리를 벌렸다.
“아… 안녕하세요, 무기왕님.”
평소 세간에 비춰지는 모습과 달리 송유빈이 수줍은 인사를 건넸다.
스트림 잠시 멈춰놓길 잘했네.
애초에 가짜 참교육을 위해 튼 캠이었기에.
송유빈을 안고 하늘로 오른 순간부터는 잠시 멈춰놓았었다.
“안녕하세요.”
나도 어색한 인사를 건네자 송유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기까진 어떻게…?”
“진유석이란 후배분이 연락을 해와서요. 유빈 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요.”
송유빈의 얼굴로 놀라움이 번져갔다.
자신을 위한 후배의 헌신에 대한 감동인 것 같았다.
“그럼 절 구하러 오신 거예요?”
감동은 감동인데 내가 생각하던 방향은 아닌 거 같기도 했다.
“하하… 네, 당연히 구하러 와야죠.”
내 찐팬인데.
그렇고말고.
“우와…!”
다시 한번 놀라는 송유빈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이제 가봐야 할 거 같네요.”
갈 시간이었다.
싸움이 일어날 장소에서 송유빈을 멀리 떨어뜨려 놨으니.
이제부턴 가짜한테 참교육을 해줄 시간이었다.
“곧 여기로 후배분이랑 경찰이 올 거예요.”
사아아…!
일렁이고 있는 칼데아로 연기를 집중시켰다.
“나중에 또 봐요.”
“아…!”
송유빈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연기를 터뜨리며 조금 전 떠나온 저택으로 방향을 틀었다.
* * *
“….”
송유빈이 어리벙벙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중에 또 보자는 말을 하기 무섭게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무기왕.
꽈악.
볼따구를 꼬집은 송유빈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현실이란 말이지.”
방송국에서 일하며 유명한 연예인들은 질리도록 봤었다.
그렇기에 누굴 보든 감동하거나 떨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 사락.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말 잘하기로는 CBC 방송국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송유빈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
무기왕에게 매달려 이곳까지 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저택에서 멀어져 버린 무기왕과 송유빈.
목을 감싼 팔로 무기왕의 체온을 느끼면서도 송유빈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덕분에 땅에 내려서까지 별말을 건네지 못했고 말이다.
‘진유석 이 자식…!’
싱긋.
어떻게 한지는 모르겠지만 무기왕에게 연락할 생각을 다한 후배 진유석.
후배 하나는 잘 뒀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 당연히 구하러 와야죠.
‘목소리 완전 좋아.’
조금 전 들었던 음색을 떠올리며 송유빈이 흡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는 거에 더해 목소리까지 좋다니.
완전 사기 캐릭터였다.
띠링!
“응?”
마음속으로 무기왕에 대한 찬양을 남발하고 있을 때.
송유빈의 핸드폰으로 알림이 울렸다.
슥.
“…!”
핸드폰을 꺼내 확인한 송유빈의 눈이 커졌다.
# 오늘 기존의 무기왕은 몰락합니다!
뮤튜브에서 켜진 서태혁의 스트림 방송이었다.
* * *
쿠웅!!
송유빈을 내려준 뒤 다시 도착한 가짜의 저택.
살벌하구만.
날 향해 겨눠져 있는 수많은 총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째서인지 하늘에서 땅으로 착지하는 동안에도 날 쏘지 않고 있는 녀석들.
“오늘 기존의 무기왕은 몰락합니다!”
응?
지 혼자 소리를 지르는 가짜놈.
위잉.
허…?
가짜놈의 등 뒤에서 무언가 돌아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나 쓸 것 같은 거대한 카메라였다.
이 미친놈 봐라.
“무기왕의 몰락을 두 눈으로 지켜보십시오!”
어이가 없었다.
송유빈을 데려다주느라 잠시 사라진 사이.
가짜 녀석도 스트림을 시작한 것이었다.
나라고 속이는 건 글른 걸 안 건지 따라하는 것 대신 교체를 선언하는 모습.
재밌네.
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어이가 없긴 했지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으로 내려오며 나의 스트림 역시 다시 시작된 상황.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있는 상황이었다.
“야 가짜, 이름이 뭐냐?”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을 테지만.
존댓말을 할 생각 따윈 없었다.
“서태혁입니다.”
이미 내 스트림을 통해 얼굴이 드러나서인지 거침없이 이름을 밝히는 서태혁.
대답한 뒤 날 바라보던 서태혁도 입을 열었다.
“당신은요?”
“무기왕이다, 이 새끼야.”
순간이지만 미간을 찌푸렸던 서태혁.
무언가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을 자기 딴에는 무기왕의 세대교체라는 웅장한 판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군요.”
“너 같은 따라쟁이 새끼한테 해줄 건 욕밖에 없거든.”
피식.
웃음을 터뜨린 서태혁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철컥.
곧이어 꺼내지는 두 자루의 리볼버.
저건가.
외관 만큼은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를 완벽히 재연해낸 서태혁의 리볼버.
“스스로의 기술에 잡아먹힐 텐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서태혁이 말을 건넸다.
그런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저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내기할래?”
“…?”
의아해하는 서태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네놈 리볼버가 쏘아지는 동안에 내가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가짜 네가 이긴 걸로 해주지.”
“뭐라구요…?”
“대신 내가 이기면 딱 한 대만 맞자.”
“풉.”
입으로 손을 올린 서태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다 간신히 진정하는 서태혁.
“정말 오만하군요. 이 상황에서까지 센 척이라니… 좋습니다.”
철컥.
서태혁의 리볼버가 나를 향해 겨눠졌다.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의 성능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죽일 생각까진 없었는데… 죽음을 자초하시는군요.”
끼릭.
“그럼.”
방아쇠로 손가락이 얹어진 후.
두두두두두두두---!!
발사되는 탄을 바라보며.
[유탈라스 - 동기화]
[전신 의태 - 갑주]
비늘로 온몸을 둘러나갔다.
카가가가가가가가!
갑주로 부딪히는 엄청난 수의 탄환들.
자동으로 개조한 건지 연사력 하나만큼은 내 리볼버보다 한 수 위였다.
웃기지도 않네.
위력은 비교할 수조차 없이 조악했지만 말이다.
겉모습은 잘 따라했네.
덕분에 내 리볼버에 당하던 적들의 시야를 경험해보고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조차 힘든 빛의 쏟아짐.
탄환은 비늘에 기스조차 내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있었지만 몹시 색다른 경험이었다.
두두… 두…!
탄환이 바닥난 건지 서태혁의 리볼버가 멈추어갔다.
“…!!”
탄환으로 인한 연기가 사라지며 눈이 커다랗게 변한 서태혁의 얼굴이 드러났다.
비늘로 감싸진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정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탄을 다 받아냈다는 사실에 경악한 얼굴이었다.
“너 따라하기 전에 뭘 본 거냐.”
탄을 받고 나니 더 어이가 없었다.
분명 따라하기 전에는 한튜브에 올라온 내 영상을 분석했을 터.
고작 이따위 화력으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 리볼버가 이따위였으면 난 이미 개미굴에서 죽었을 거다.”
“이… 건방 떨지 마라!!”
스트림이 켜져 있어서일까.
순식간에 냉정을 잃은 서태혁이 오른손을 치켜 올렸다.
스르륵.
서서히 올려진 오른손을 감싸는 푸른색의 비늘들.
“조악하구만 조악해.”
푸른색이긴 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인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이걸 받아 보고나 그런 소리를 해라!!”
탓!!
마치 내 1단계 의태처럼 오른팔을 비늘로 감싼 서태혁.
달려온 서태혁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엄청난 기세로 휘둘러지는 서태혁의 주먹.
스윽.
느리다 못해 하품이 나오는 주먹을 바라보며.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내밀었다.
쿠아아아아--!
엄청난 기세로 내질러져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서태혁의 주먹이.
나의 중지에 와닿았다.
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