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83화 (183/473)

183화. 목표는 부산

메시지를 받은 날 밤.

“….”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눈앞의 사람을 바라봤다.

자신이 그 장소를 본 적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온 songsong이란 닉네임의 구독자.

스트림을 하고 얼마 안되어 왔던 첫 메시지였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내가 튼 스트림을 수많은 사람이 봤을 터였고 도착하는 메시지가 전부 정확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송송…님?”

그럼에도 별 고민 없이 약속 장소에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왕의 영상 댓글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송송.

날 까는 댓글이 달리면 투견처럼 달려 들어 싸워준 사람이었다.

그 덕에 송송은 무기왕 갤러리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싸움닭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거짓 제보를 했더라도 팬 서비스 차원에서 용서해 줄 생각으로 온 것.

“또 뵙네요, 무기왕 님!”

송송에 대해 음모론에 가까운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송송 닉네임을 쓰는 구독자가 송유빈이 아니냐는 가능성.

공중파에서 대놓고 무기왕을 찬양하는 송유빈과 인터넷에서 여포 수준인 송송을 연결 지은 것이었다.

- 송유빈이 바보냐?

- 머리 달렸으면 생각 좀 합시다. 연예인이 무슨 자기 성으로 닉네임으로 짓습니까.

나도 머리 달렸으면 안 그러겠지 했었는데.

“네 하하…!”

약속 장소에 나타난 송송은 이틀 전 밤에 만났던 찐 송유빈이었다.

슥.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송유빈이 두 장의 그림을 건넸다.

한 장은 내가 스트림에서 뿌렸던 것.

다른 한 장은 송유빈이 새로 그린 그림이었다.

“왼쪽이 제가 기억하는 곳이에요. 터널의 입구 대신 커다란 비석이 있지만요.”

대충 보면 두 그림은 다른 장소였다.

하지만 송유빈의 말대로 비석에 구멍이 뚫렸다 생각하고 다시 보면.

오?

차오른 강물과 주변 덩쿨을 제외하곤 뒤의 풍경이나 분위기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곳을 본 건 맞지만 정확한 위치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도착한 송송의 메시지에도 적혀 있었다.

절대 기억력으로 저 장소를 본 건 틀림없지만.

산 입구부터 장소까지 가는 모든 길을 본 건 아니기에 기억이 드문드문 잘려 있단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힘들어도 고개 좀 들고 갈 걸 그랬어요.”

송유빈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본 걸 절대 잊지 않음에도 경로가 온전치 않은 이유였다.

너무 힘이 들어 땅바닥만 보며 산을 올랐다는 것.

“하지만 그곳까지 가며 거친 중간 포인트들은 확실히 봤었으니! 걱정마세요!”

송유빈이 의욕 넘치는 얼굴로 활짝 웃어보였다.

나 역시 그 웃음에 화답하기 위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괜찮을까.

걱정말라며 웃어보이는 송유빈이었지만.

걱정이 없을 수가 없었다.

캠핑 장비를 이것저것 잔뜩 챙겨 옥상에 모습을 드러낸 송유빈.

정확한 위치를 찝어 줄 수 없기에 꼭 동행해야 한다고 송유빈은 메시지에서 강조했었다.

흠.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자 지금도 가면을 쓰고 있는 상황.

얼마나 동행해야 할지 모르는 일정에 가면을 쓴 채 정체를 숨기며 함께 해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미 알 사람은 아는 정체였기에 여차하면 오픈해버리지 뭐! 하는 생각으로 왔지만.

나타난 게 송유빈이라는 걸 안 순간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유빈 님이 내 정체를 알게 됐다고 해서 방송에 뿌리거나 하진 않겠지… 만.

정체를 일반인 한 명에게 알리는 것과 국민 리포터라 불리는 송유빈에게 알리는 건 와닿는 무게가 달랐기에.

숨겨보자.

마침 가면도 편한 걸 쓰고 있겠다 열심히 감춰볼 생각이었다.

송유빈에게 있어 백운이 아닌 무기왕으로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가볼까요?”

“네!”

고개를 끄덕인 송유빈이 핸드폰에 찍힌 지도를 건넸다.

지도는 부산에 위치한 금정산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산이라.

위치를 확인한 후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뜻밖의 부산행.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출발.

* * *

두근두근.

순식간에 날아 도착한 금정산.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국민 리포터 송유빈과 단 둘이 밤 등산이라니.

서태혁의 저택에서 만나긴 했었지만 아주 잠시 뿐이었다.

유명인을 만났다는 걸 체감하기도 전에 헤어져버렸던 것.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로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는 송유빈.

등산이 금지된 산이어서인지 주변은 고요 그 자체였다.

그런 고요 속에 있다 보니 단 둘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고 있었다.

“키라아--!”

후웅! 콰직!

물론 종종 고요를 깨려는 놈들이 나타나긴 했다.

기척이 느껴지거나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수리검을 냅다 던져버려 삭제 해버렸지만 말이다.

감히 유빈 님과의 고요한 동행을 망치려 들다니.

괘씸한 놈들.

그렇게 괘씸한 놈들을 처단하면서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의 백운이 보면 거품 물겠구만.

당연히 회귀 전에도 송유빈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10년이 넘게 흐른 뒤에도 송유빈은 인기 넘치는 리포터로 활동 했었으니까.

그냥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멀다는 느낌을 넘어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기는커녕 말 한 마디 섞어볼 수조차 없는 존재.

그런 현실이 골방에 쳐박혀 살던 내겐 몹시 잔인하고 절망적이게 느껴졌었다.

부스럭.

잠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을 때.

옆으로 초코바 하나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드세요.”

언제부터 먹고 있었는지 송유빈은 이미 초코바 하나를 입 안에서 오물거리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초코바를 받아 들며 뒤따라 오고 있는 송유빈을 살폈다.

“힘들면 말씀하세요.”

오래 전에 폐쇄된 산이었던 만큼 애초에 길이 고르지 못했다.

울퉁불퉁한 흙길의 연속이라 일반적인 체력이라면 충분히 힘들어할 수도 있었다.

“힘들면 업어주시게요?”

“….”

부축 혹은 업어주려 했던 건 맞지만.

막상 저렇게 대놓고 물으니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곧바로 네 라고 했다간 없던 흑심마저 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싱긋.

잠시 날 응시하던 송유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농담이에요! 체력 아직 충분합니다. 옛날에 왔을 땐 리포터 신입 시절이었거든요. 지금은 리포터 잔뼈가 굵으면서 체력도 엄청 좋아졌어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하긴.

당장 개미굴 때만 봐도 송유빈의 체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나가 떨어졌음에도 최후의 최후까지 날 바짝 쫓아왔던 송유빈.

그것만으로도 체력 부문에선 리포터 상위 1%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휴게소 하나가 나올 거예요. 거기까진 고개 잘 들고 갔었거든요.”

“그럼 거기서 날 밝을 때까지 좀 쉬다 가죠.”

둘 다 체력이 충분한데도 쉬는 건 다른 흑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전적으로 송유빈의 과거에 보았던 장면에 의존해서 가야 하는 상황.

칼데아로 오기 위해 밤에 출발하긴 했지만, 송유빈이 길을 찾으려면 뭐라도 보여야 했다.

“아! 저기에 있네요.”

걸음을 멈추며 손을 드는 송유빈.

송유빈의 손을 따라가니 낡다 못해 무너지려는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꼴깍.

귀신이 나올 듯한 산장에 마른침을 한 번 삼킨 후.

애써 태연한 척 걸음을 옮겼다.

“가… 가시죠.”

* * *

타닥… 타닥.

산장 중앙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무기왕도 라이터를 쓰는군요.”

모닥불에 불을 지피기 위해 가져왔던 터보 라이터.

라이터를 본 송유빈이 오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왕이라면 뭐랄까… 손을 펼치면 불이 펑! 하고 나올 줄 알았거든요.”

“하하… 그런 능력은 없어요.”

불을 피우는 능력이 있긴 있었다.

라의 문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

문제가 있다면 모닥불의 크기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산 하나는 홀라당 태워먹겠지.

답은 라이터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쏘옥.

송유빈이 펼쳐놨던 침낭으로 몸을 파묻었다.

좋아 보이는데.

딱 봐도 몹시 두툼해 보이는 침낭이었다.

못해도 백 만원은 훌쩍 넘을 듯한 고급 침낭.

잘은 몰라도 푹신함의 정도를 보니 분명 구스다운이었다.

“따듯해 보이죠? 큰 마음 먹고 구매했거든요.”

부러워하는 노골적인 내 시선을 느껴서일까.

송유빈이 누운 채로 침낭을 팡팡 치며 푹신함을 과시했다.

“무기왕 님은 진짜 가면만 챙겨오셨군요. 아, 라이터도.”

“음 아닐걸요.”

“네?”

턱을 살짝 들어 의아해하는 송유빈을 가리켰다.

“오는 길에 송송 님도 챙겨왔으니 다 챙겨왔다 봐야죠.”

“풉.”

굳이 웃기려 한 건 아니었지만 살짝 웃음을 터뜨리는 송유빈.

작은 한숨을 내쉰 송유빈이 입을 열었다.

“정말 다르네요.”

“뭐가요?”

“상상했던 무기왕 님 성격이랑요.”

앗.

조금 더 진중한 컨셉을 유지했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를 하며.

“이제 제 영상 댓글창에 등장 안 하시는 거 아닌가요? 팬심 하락으로.”

넌지시 탈주하는 거 아닌지 질문을 건넸다.

“….”

아무 말 없이 날 잠시 응시하는 송유빈.

송유빈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닐걸요.”

“…?”

스윽.

나의 되묻는 표정에 송유빈이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곧이어 들려오는 아주 작은 목소리.

집중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 소리였다.

“반대니까요.”

* * *

날이 밝기 무섭게 산장을 빠져나왔다.

송유빈이 잘 찾아주겠거니 믿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걸릴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으니 최대한 일찍 나온 것이었다.

“….”

그리고.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의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사아아…!

시원한 산바람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와우.”

자기가 찾아놓고도 놀란 건지 송유빈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엄청난데.

고개를 돌려 놀라고 있는 송유빈을 바라봤다.

날이 밝아 시야가 트이자 드문드문 끊긴 기억과 기억을 연결해 나가며 길을 안내했던 송유빈.

아무리 절대 기억력이 있다 해도 끊어진 기억을 이 정도 속도로 찾아 맞춰 나갈 줄은 몰랐었다.

능력자구만 능력자야.

슥.

어느 세월에 찾나 막막했던 그림의 장소를 둘러봤다.

검날의 기억에서 봤던 구조물과 그 구조물을 감싸고 있는 덩쿨들.

터널의 입구가 있어야 하는 장소엔 송유빈이 그렸던 그림처럼 거대한 비석이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심상치 않은 기운이 짙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비석.

강물은 기억에서 봤을 때보다 많이 불어나 비석의 중간까지 차올라 있었다.

터널도 반 정도는 잠겼겠는데.

첨벙.

먼저 강물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발끝을 타고 강물의 시원함이 머리끝까지 느껴졌다.

조금 더 들어가자 가슴 부근까지 차오르는 강물.

뭘까 이 느낌은.

아무리 봐도 강물 역시 일반적이지 않았다.

비석의 영향인지 비슷한 기운이 강물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첨벙.

그렇게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찰나.

“멈춰라.”

!!!

내 걸음을 멈추게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목소리 만큼은 아니었다.

바로 어제 들었던 것처럼 무척이나 낯익은 목소리.

“더 이상 다가가지 말고 강에서 나오거라.”

어떻게 보면 위협적으로까지 들리는 엄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 입가엔 목소리 주인공의 의도와는 달리 미소가 그려졌다.

살아있었구나.

묘한 반가움을 느끼며.

스윽.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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