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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84화 (184/473)

184화. 뜻밖의 이야기

고개를 돌린 곳엔 검날의 기억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의 민쿠가 서 있었다.

다크써클이 깊게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촐망한 눈과 앳된 얼굴이었다.

망토를 뒤집어써 특유의 쫑긋 귀는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세상이 참 알 수가 없구만.

민쿠 손자의 손자의 손자 이런 건 아니겠지.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진 않았다.

개방의 날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이들이었다.

터널이었던 장소의 변화만 봐도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민쿠는 나이를 전혀 먹지 않은 듯 보였다.

애초에 수명의 법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었단 건가.

물론 이런 케이스를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내게 힘을 넘겨주었던 카이안 역시 로튼의 장막에서 본 기억과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으니까.

음… 카이안 님은 예외긴 하지.

내 안에서 카이안은 이미 신을 뛰어넘는 신앙적인 존재였기에.

어떤 상황에서든 예외로 분류되었다.

뭐 소피아 님도 있네.

생각해보니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소피아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외관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게 병에 의한 건지 정말 무언가 법칙을 벗어난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안 들리는 건가? 나오라고 말했다.”

나오라는 말을 듣고도 움직이긴커녕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민쿠가 얼굴만큼이나 앳된 목소리로 다시 한번 경고의 말을 건넸다.

그런 민쿠를 향해.

“혹시 민쿠 님?”

괜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도, 서로를 경계하는 이 상황을 길게 끌고 갈 필요도 없었기에.

곧장 기억에서 들었던 이름을 불렀다.

민쿠 본인이든 민쿠의 자식이든 손자이든 어쨌든 반응할 테니까.

“!?”

역시나 깜짝 놀라는 민쿠.

예상을 너무 안 벗어나는데.

훌렁.

오.

내 예상보다 더 놀랐던 걸까.

숨겨놨던 귀가 쫑긋 세워지며 민쿠가 뒤집어쓰고 있던 망토가 흘러내렸다.

“우와… 토끼다.”

어린아이의 모습에 토끼귀가 달려있자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송유빈도 탄성을 터뜨렸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토끼귀가 달린 사람은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였을 테니 말이다.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역시 나이를 안 먹는 거였나.

팟.

당장 대답을 듣고 싶어서일까.

질문을 마치기 무섭게 민쿠가 몸을 날렸다.

토끼라 그런지 날래구먼.

첨벙!

날다람쥐 같은 느낌으로 강에 착지한 민쿠.

민쿠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름을 불려서인지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경계가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눈이 많이 가셨네.

촐망과 퀭함이 뒤섞여 있는 민쿠의 눈.

볼까지 내려온 다크써클로 보아 무언가 고생을 심하게 한 모양이었다.

스윽.

다가오는 민쿠를 바라보며.

처음부터 기억에서 봤다고 하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지.

칸의 검이 담겨있는 상자를 앞으로 꺼내 들었다.

“…?”

다가오던 민쿠가 의아한 눈으로 상자를 바라봤다.

철컥.

그런 민쿠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상자에서 칸의 검을 꺼냈다.

정확히는 척사윤이 만든 검을 꺼냈다.

“…!”

뜬금없이 이름이 불렸던 놀라움을 해소하기도 전.

다시 한번 등장한 물건에 민쿠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 자리에 굳어 내가 들고 있는 검에 시선을 빼앗긴 민쿠.

슥.

검을 건네주자 민쿠가 아무런 거부 없이 검을 받아 들었다.

잠시 검을 바라보던 민쿠가 고개를 들어 날 응시했다.

“당신… 대체 누구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의 민쿠를 향해 옅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전 무기를 모으는 사람입니다.”

저벅.

다소 누그러진 민쿠에게 한 발자국 다가섰다.

“척준경 님의 악귀참도를 찾고 있습니다.”

* * *

악귀참도를 찾고 있다고 말하자 따라오라고 손짓했던 민쿠.

송유빈을 데리고 한 시간 정도를 따라가자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생긴 동굴이지만 오랜 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산 건가.

나름 사는데 필요한 물품들이 잘 갖추어진 동굴이었다.

추위를 막기 위한 문과 난로까지도 말이다.

“차 먹을래?”

토끼귀를 가진 사람이 타주는 차.

고민할 새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송유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부탁드릴게요.”

외관만 봤을 땐 나보다 한참 어린 민쿠였지만.

적어도 백 살은 더 많을 것이기에 깍듯이 존댓말을 했다.

사람을 외관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니까.

스스로의 지조 있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민쿠가 안내해준 자리에 몸을 앉혔다.

추운 밖 날씨와는 달리 훈훈한 온기가 감도는 동굴이었다.

쿵쿵… 콱콱.

잠시 요란한 소리가 들린 후.

동굴 안쪽에 있던 민쿠가 세 잔의 차를 내왔다.

“마셔, 몸이 따듯해질 거야.”

“잘 먹겠습니다.”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송유빈과는 달리.

난 약간의 의심을 가진 채 차를 받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받아든 차의 비쥬얼이 뭐랄까.

먹어도 되는 걸까.

딱 죽기 좋게 생겼는데.

오묘한 색깔이었다.

보라색과 초록색을 마구잡이로 반죽해낸 듯한 빛깔.

쉽사리 넘길 수 없는 생김새에 잠시 망설이고 있자.

후릅.

민쿠가 시범을 보이듯 차를 홀짝였다.

홀짝.

“와! 너무 맛있는데요.”

뒤이어 차를 들이켠 송유빈도 감탄을 터뜨렸다.

유빈 님을 시험대에 올릴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둘 다 멀쩡한 걸 확인하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

겉보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몸으로 퍼져나가는 열기.

단순히 뜨거운 차를 마셔서가 아니었다.

“씁쓸한 맛을 내지 않는 약초만 모아 만든 차야. 추운 날씨에도 몸의 온도를 지켜줘.”

“오호.”

몸에 좋다는 말에 연신 차를 들이켜는 동안.

정면에서 민쿠의 눈길이 느껴졌다.

“아까 보니 나를 반기는 거 같던데. 묻고 싶은 게 있겠지?”

민쿠는 어째서 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를 따져 묻지 않았다.

오히려 동굴로 오기 전 악귀참도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내가 원하는 걸 묻고 있었다.

음.

첫 질문을 고르다 가장 궁금했던 걸 물었다.

“척준경 님의 악귀참도는… 실존하나요?”

꼴깍.

물으면서도 긴장 때문에 침이 삼켜졌다.

솔직히 악귀참도를 찾기 시작하며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다.

생각이 부정적인 길로 빠질까 고민하는 것 자체를 자제하긴 했지만.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도 알 수 없으며 심지어 대기업 대산마저 포기했던 무기였으니까 말이다.

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벌어지는 민쿠의 입을 바라봤다.

저기서 없다라는 대답이 나와도 찾는 걸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기왕이면 실존한다는 확답이 들렸으면 했다.

“척준경 님의 악귀참도는 실존해.”

예쓰!

갑작스럽게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 자세를 취해서일까.

“…?”

옆에 있던 송유빈이 떨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봤다.

그간에 내가 겪은 내적갈등을 모르는 상태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실존하지만, 손에 넣을 순 없을 거야.”

“!?”

“인간이 가지러 갈 수 없는 곳에 검이 있거든.”

단호하게 말하는 민쿠였지만.

난 그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터널 저편인가요?”

“… 맞아.”

민쿠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체 뭐 하는 놈이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는 순간 죽임당할 거야. 그곳은 지금 인간들이 데몬이라 부르는, 먼 태고 시절부터 존재했던 악마들의 세계거든.”

말을 하는 민쿠의 얼굴로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간 세계에도 종종 나타나는 노네임드 데몬. 그런 녀석들이 드글대는 곳이야.”

스윽.

민쿠가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실존하지만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한 검이야. 찾으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포기하고 돌아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 민쿠를 향해 대답하기 전.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의미에서 미소를 먼저 머금었다.

“제가 많이 죽여봤어요, 그 노네임드라는 거.”

“응?”

순간이지만 축 처져 있던 토끼귀가 움찔거렸다.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이었다.

“인간 세계에서 제 직업이 데몬 사냥꾼이거든요. 노네임드도 많이 잡았어요.”

슥.

손을 들어 칸이 가지고 있었던 척사윤의 검을 가리켰다.

“저 검도 노네임드 중 하나를 잡고 얻은 거고요.”

“!!”

쨍!!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들고 있던 찻잔을 떨군 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커다랗게 변한 민쿠.

이젠 손마저 떨고 있는 민쿠가 옆에 놓여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데몬의 생김새…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

* * *

아무 말도 없는 민쿠를 바라봤다.

칸과 로튼,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의 데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민쿠는 눈을 질끈 감으며 검에 이마를 맞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언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잊은 채 살고자 했던 기억을 말이다.

“이 검은 내 친구… 율이가 만든 검이야. 정확히는 율이가 만든 수많은 검 중 하나지.”

처음에 검을 보자 놀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는 놈이 친한 친구의 검을 가지고 있으니.

반가운 마음에서든 신기한 마음에서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로튼 패거리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아직 민쿠가 어디서 온 종족인지, 인간과는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왜 척준경에게 검을 배달하고 있었는지 등 아는 게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녀석들이 죽었다고?”

마침내 검에서 머리를 떼고 입을 연 민쿠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히 죽었습니다. 다섯 명 모두요.”

“그렇구나.”

작은 한숨을 내쉬며 민쿠가 눈을 감았다.

과거의 기억과 로튼 패거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감정을 추스르는 듯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나도 네가 만났던 노네임드들을 만났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조차도 점점 따라가기 힘들어지는 이야기.

옆에 송유빈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쿠에게 로튼과 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직전.

- 저는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있을게요.

터널을 찾아주기 위해 동행했지만, 내 과거에 관련된 일들을 다 듣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송유빈은 일부러 나와 민쿠가 대화하기 편하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놈들을 만나 뺏겨선 안 되는 걸 뺏겼고, 그 덕에 난 모든 걸 잃어버렸어.”

순간 검날의 기억에서 척준경이 떠나려는 민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요새 정체를 알 수 없는 데몬 5인조가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다 하더구나.

5인조의 데몬.

로튼의 패거리가 딱 5명이었다.

생각해보자.

민쿠가 인간 세계를 넘어 데몬 세계로 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절벽의 틈을 막아내며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 간 척준경.

그런 척준경의 검이 부족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공급해주는 것이었다.

율이란 사람이 검을 만들면 민쿠가 데몬의 세계에 묶여 있는 척준경에게 배달한다.

그런데 배달하던 검을 데몬 세계에서 로튼 패거리에게 빼앗겼고, 패거리 중 한 명인 칸이 사용하게 되었다?

으.

점점 연결되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처음 칸의 검을 봤을 때만 해도 뭐 하는 새끼지? 어디서 주웠지?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 크게 개의치는 않았었다.

어디서 주워다 썼든 알 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악귀참도과 무척이나 밀접하게 엮여있는 듯한 검과 민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야 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민쿠가 원치 않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하다면 알고 싶었다.

여전히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민쿠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민쿠 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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