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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86화 (186/473)

186화. 거짓말

민쿠가 눈앞에 놓인 터널을 바라봤다.

인간 세계와 데몬 세계를 잇는 길목.

척사율에게 받아온 검들을 금문에게 넘겼던 장소이기도 했다.

- 미안하구나 민쿠.

몸이 쇠약해진 금문은 민쿠에게 큰 죄를 짓게 됐다며 고개를 숙였었다.

척준경과의 신의와 공통된 목표를 위해 세계를 오갔었던 금문.

그런 금문이었기에 저편의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아니에요! 이제부턴 저한테 맡기세요

민쿠가 해맑게 대답한 후 떠났지만.

금문은 민쿠가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터널을 떠나지 못했었다.

혹시나 처음 떠난 민쿠가 길을 헤매진 않을까 걱정한 탓이었다.

‘금문 아저씨의 길로 가면 안전하니까.’

민쿠가 손에 들려 있는 지도를 바라봤다.

금문이 직접 수많은 배달을 오가며 작성한 지도였다.

데몬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경로.

지금까지 금문을 대신하여 이 길로 몇 번의 배달을 다녀온 민쿠였지만, 단 한 번도 데몬을 만난 적은 없었다.

‘만나도 상관없어. 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으니까.’

인간의 신체보다 훨씬 발달한 토족이었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으며 멧돼지도 한 방에 잡을만한 힘이 있었기에.

민쿠는 혹여나 데몬을 만나더라도 도망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후웁!”

첨벙.

한 차례의 심호흡을 한 민쿠가 강으로 발을 내디뎠다.

강 안에 있는 터널.

평소엔 끝이 막혀 있는 터널이었지만, 척사율이 만든 검을 사용하면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신기한 터널이었다.

- !!!

터널을 향해 발을 뻗으며.

민쿠가 처음 데몬의 땅에서 자신을 본 척준경의 표정을 떠올렸다.

귀신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던 척준경.

고려의 무신이라 불린 척준경의 그런 표정을 본 건 자신이 유일할 것이라고 민쿠는 생각했다.

- 안된다! 위험한 땅이니라, 다시는 와선 안된다.

딸과 함께 있어 주는 둘도 없는 친구.

척준경에게 있어서 민쿠란 존재는 딸의 친구였다.

그런 민쿠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만이 가득한 땅으로 배달을 왔으니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 내가 방법을 찾아보마.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척준경은 데몬의 세계를 떠나지 못했다.

이곳에 발이 묶여 있는 척준경이 배달할 사람을 새로 구해보겠다니.

더군다나 인간 세계와는 완벽하게 동떨어져 있는 위험한 장소까지 말이다.

- 내가 편지를 써보마.

일반 사람과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척준경이었다.

이미 금문을 포함해 척준경과 함께했던 대부분의 전우들은 세상을 떠난 직후.

편지 몇 통을 보내 척준경의 부탁을 들어줄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 제가 하고 싶습니다.

- 안된다.

- 제가 하지 않으면 율이가 오려고 할 겁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안된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척준경이.

손을 들어 민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나에겐 검의 배달보다 너와 율이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 율이에게 이 일은 알리지 말고, 너 역시 더 이상 오지 말거라.

척준경의 뜻은 완고했다.

소중한 딸과 딸의 친구.

둘 중 누구에게도 위험을 부담하고 싶지 않았다.

- ….

척준경이 뜻을 꺾지 않을 것 알았기에.

민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물론 말을 들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첨벙.

민쿠가 다시 한 발자국 내디디며 척준경을 떠올렸다.

‘내 생명의 은인.’

민쿠에게 있어 척준경은 단순히 친구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친구의 아버지이기 전에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 잡아라! 영주님께 드릴 선물이다!

민쿠가 더 어렸던 시절.

어른들 몰래 공간을 빠져나온 뒤 인간 군사들에게 둘러싸였던 적이 있었다.

영주에게 진귀한 제물을 바치기 위해 사냥을 나선 백제의 군사들이었다.

당시엔 너무 어려 토족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민쿠였고.

잠시 후엔 인간들에게 잡혀 평생을 우리 안 구경거리로 살아가게 될 상황이었다.

- 멈춰보게나.

그때 말을 타고 홀로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고려의 무신이라 불렸던, 전쟁을 위해 백제 땅에 와있던 척준경이었다.

- 아직 어린아이인데 선물이라니.

- 척준경이다! 죽여라!

민쿠에게 쏠려있던 백제군의 시선이 척준경에게로 쏠렸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전쟁에서 무참히 백제군을 썰어버리고 있던 고려의 무신임을 알았기에.

토끼 인간 따위보단 홀로 등장한 무신을 잡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 푸화악!

물론 그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척준경은 몇 번의 검 휘두름만으로 백제군 수십을 베어버렸다.

- 척.

아무렇지도 않게 적을 쓸어버린 뒤 말에서 내린 척준경.

바로 앞까지 다가온 척준경이 피 묻은 손을 옷에 슥슥 닦은 뒤 민쿠에게 내밀었다.

- 나와 함께 가자꾸나, 네가 사는 곳까지 데려다주마.

‘척준경 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난 존재하지 않았다.’

은인이 살려준 목숨을 은인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던 민쿠이기에.

척준경의 호통에도 계속해서 데몬의 땅으로 배달을 갔었다.

- … 항상 조심해야 한다.

몇 번이나 갔을까.

달래도 보고 혼내기도 하며 민쿠를 말렸던 척준경이었지만.

뜻을 꺾을 것 같지 않은 민쿠에 마침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오지 말라는 대답 대신 조심하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 것.

첨벙.

척준경에 의해 두 번째 생을 얻게 된 순간을 떠올리며.

민쿠가 깜깜해진 터널 끝에 멈춰 섰다.

철컥.

척사율에게 받았던 검을 뽑았다.

‘나의 은인을 위하여.’

우우웅…!

검에서 푸른빛이 어두운 터널로 뻗어져 나갔다.

* * *

망토를 입까지 끌어올린 민쿠가 정면을 바라봤다.

여전히 삭막하고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땅이었다.

‘오늘도 순탄하네.’

솔직히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무서웠었다.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던 것과 달리 귀를 한껏 쭈그린 채 지도로 그려진 길을 걸어갔었다.

하지만 몇 번의 배달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 조심은 하되 무서워하진 않게 되었다.

‘금문 아저씨는 정말 대단해. 이런 길을 어떻게 알아내신 거지.’

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를 이끌고 평소처럼 뒷길을 따라가던 민쿠.

“역시 검을 운반하는 자가 있었군요.”

“!!”

그런 민쿠의 귓가로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척준경 외에는 어떤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는 땅이었다.

‘사람…?’

얼핏 보면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생김새였다.

이질적인 황금색 머리와 눈동자,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금빛 기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람이 아니다.’

“크르르!”

금발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울음소리를 흘리는 존재.

당장에라도 민쿠에게 달려들 것 같은 자도 함께였다.

“당신이겠죠, 절벽의 괴물에게 검을 운반하고 있었던 자가.”

‘도망쳐야 돼.’

절벽의 괴물이니 뭐니 하나도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당장 저들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스윽.

민쿠가 조심스럽게 발아래로 힘을 모았다.

모은 힘을 한 번에 터뜨려 마차와 함께 내달릴 생각이었다.

드드드…!

발아래로 모이는 토족의 힘.

‘지금.’

민쿠가 충분히 모인 힘을 터뜨리려고 한순간.

우웅!

민쿠의 주변으로 황금색 장막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장막이 펼쳐짐과 동시에 민쿠의 발아래로 모이던 힘이 사라져버렸다.

저벅.

어느새 힘이 사라져 당황 중인 민쿠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로튼과 칸.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덜덜.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씩 가까워져 오는 두 데몬을 보며.

민쿠는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미친듯이 떨어대고 있었다.

‘주… 죽는다.’

가까워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저 두 존재는 자기가 뭘 하든 이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예의를 갖추세요.”

털썩!

로튼의 말이 들리기 무섭게.

민쿠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야 하는데.’

척준경에게 검을 배달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는 존재.

그런 존재 앞에서 민쿠가 할 수 있는 건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흐음 인간은 아니군요.”

스윽.

몸을 굽힌 로튼이 민쿠의 머리로 손을 얹었다.

‘…!!’

몹시 차가운 손이었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머리를 으깨버릴 것 같은 시린 손.

‘주… 죽고 싶지 않아.’

은인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생각 이전에 본능적인 공포가 민쿠의 몸을 집어삼켰다.

덜덜덜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1시간 같은 1초를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쿠를 향해.

“잘 들으세요.”

로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과 달리 자비로움과 따듯함이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전 그대를 살려 보내줄 생각입니다. 망설이지 않고 저에 대한 예를 표했으니까요. 대신.”

사악.

차가운 로튼의 손이 민쿠의 얼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아름다운 황금색 눈동자였지만 순식간에 몸이 얼어버릴 정도로 차가웠다.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들이지 마십시오. 두 번은 없습니다.”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민쿠는 그저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눈물만 흘렸다.

슥.

로튼이 몸을 일으키고.

“크르!”

철컥.

옆에 있던 칸이 민쿠가 가지고 있던 검을 가로챘지만.

민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어나서 떠나세요.”

‘…!’

떠나라는 로튼의 말에.

‘척준경 님께 가야 하는데.’

민쿠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날 기다리고 계실 텐데.’

원래 가려던 길에서 덜덜 떨며 몸을 돌렸다.

‘검을 드려야 하는데.’

저벅… 저벅… 풀썩!

공포로 풀린 다리에 넘어져 버리는 민쿠.

넘어진 민쿠가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죄송합니다.’

아득한 공포를 가진 로튼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죄송합니다.’

민쿠가 터널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 * *

“어?”

밖에 나와 바람을 쐬던 척사율.

이쪽으로 오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척사율의 얼굴에 반가움이 피어올랐다.

“민쿠!”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민쿠를 향해 척사율이 손을 흔들었다.

땀으로 온몸을 적신 채 어딘가 안 좋아 보이는 민쿠.

“민쿠! 어디 아파?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야. 열이 조금 나는 것 같아.”

스윽.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이마로 다가오는 척사율의 손.

본능적인 거부감에 민쿠가 몸을 뒤로 뺐다.

“민쿠…?”

“난 괜찮아!”

저벅.

뒷걸음질을 치며 민쿠가 당황하고 있는 척사율을 바라봤다.

‘말하면 안 돼.’

진실을 말하는 순간 척사율이 무모한 행동을 할지도 몰랐기에.

민쿠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검… 검은 잘… 잘 전달 드렸어. 오늘은 이만 가볼게!”

의아해하는 척사율에게 거짓을 전한 후.

민쿠가 몸을 돌렸다.

* * *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던 민쿠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난 생명의 은인에게 검도 전달하지 못한 채,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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