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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89화 (189/473)

189화. 설산에서 터널로

이른 아침.

카앙! 카앙!

귓가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에 눈을 떴다.

!!

호다닥.

뜨듯한 방바닥이 내 몸을 붙잡았지만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첫날부터 계속되는 망치 소리에 마음이 몹시 무거워진 상태.

이건 지옥행 확정이야.

검을 만들어주겠다 말한 뒤 척사율은 집 뒤편에 있는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었다.

그 날 밤부터 시작된 망치 소리.

의도치 않게 나이가 지긋이 든 분에게 일을 시켜버린 것이었다.

벌컥!

잠이 덜 깼지만 빠르게 문을 연 뒤 밖으로 뛰쳐나갔다.

옆에 있어 봐야 방해만 될 게 뻔했기에 어제부터 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멧돼지쉨!

척사율과 유라가 먹을 식량과 불을 지필 장작을 구하는 것.

힘만 남아도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었다.

어디에 있어! 도야지쉨!

한창 겨울잠을 자고 있을 멧돼지들.

어제도 산 구석구석을 뒤지며 자고 있던 멧돼지와 멧돼지과 데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들였다.

- 아저씨.

한참 마당에서 멧돼지 고기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척사율을 돕다 나온 유라가 내게 다가왔었다.

친손녀는 아니지만 설산에 버려졌던 아이를 데려왔던 척사율.

척사율은 아이에게 척유라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 부탁 하나만 들어줘.

아저씨는 아니었지만 부탁이란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설산에 동태가 될 뻔한 걸 구해준 척유라였으니.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수 있었다.

- 나중에 할머니 친구, 데려와 줄 수 있어?

의외의 부탁이었다.

산속에 있으니 무언가 구해달라는 부탁일 줄 알았는데.

유라의 부탁은 민쿠를 데려와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알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민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는 유라.

유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민쿠에 대한 척사율의 그리움을 많이 느꼈다고 설명했다.

-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 아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거야.

너무 담담해서 듣던 내가 놀랄 정도였다.

유라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인 척사율.

그런 척사율이 살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도 유라는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었다.

이미 바로 앞까지 다가온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동안에 자신이 척사율에게 해줄 수 있는 걸 해주려는 모습이었다.

- 할머니는 평생 친구를 그리워했어. 그래서 만나게 해주고 싶어.

마음 같아선 직접 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떠난 사이 척사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어 가지 못했다는 유라.

기특한 녀석이야.

민쿠를 데려와달라는 유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었다.

부산에서 이곳으로 다시 올 땐 꼭 민쿠를 데려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둘은 만나야 돼.

유라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도.

악귀참도를 구한 후 어떻게든 민쿠를 척사율과 만나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둘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 조금이라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앙---!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울려 퍼지는 척사율의 망치 소리를 들으며.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수리검을 던졌다.

* * *

“홀홀… 힘 하나는 장사구먼.”

잔뜩 나무를 해온 날 바라보며.

툇마루에 앉은 척사율이 미소를 지었다.

“이리 와보게나.”

날 부르는 척사율의 손짓에.

꼴깍.

마른침을 한 번 넘긴 뒤 걸음을 옮겼다.

기다란 천에 돌돌 말려 척사율의 손에 들있는 것.

끌러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약속했던 검이네.”

내가 다가오기 무섭게 척사율이 검을 건넸다.

“검집은 없으니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검을 받아든 후.

천을 풀어 검을 꺼내었다.

사아아…!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검날에 반사된 햇빛이 내 눈을 비추었다.

“내 마지막 검이지만 최고의 검이라 부를 순 없겠구먼. 힘이 모자라 길잡이의 능력을 불어넣는데 기력을 다 써버렸다네.”

홀홀 인자한 웃음을 터뜨린 척사율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척사율 입장에서 난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일 터.

그럼에도 따듯한 방과 음식을 내어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엔 내게 꼭 필요한 검까지 만들어주었다.

검을 안 만들어준다 했어도 이상할 건 없었는데.

다짜고짜 한밤중에 들이닥쳐 검을 만들어 달라고 한 나였다.

그럼에도 내가 누구인지, 척준경의 악귀참도를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무엇 하나 묻지 않은 채 척사율은 내게 검을 건네줬다.

“의아해할 필요 없다네.”

“…!?”

검을 받아 든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척사율이 홀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한눈에 알 수 있다네.”

고개를 든 척사율이 내 얼굴을 응시했다.

“앞에 있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말이야.”

숙였던 고개를 들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척사율이 마지막 말을 건넸다.

“자네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네.”

* * *

타다다다… 탓!

잭 더 리퍼의 면도칼을 손에 든 채.

눈 덮인 설산을 빠르게 뛰어 내려갔다.

밝은 대낮이라 수리검을 던지면서 갈까도 했지만.

워낙 급격한 경사의 내리막이라 달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슥.

달리는 와중에 소중하게 품고 있는 검을 내려다봤다.

척사율이 자신의 마지막 검이라며 건네준 검.

이전의 검과 다른 게 있었다.

# 척사율.

칸이 가지고 있던 검의 손잡이엔 척사윤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와 달리 이번에 건네받은 손잡이에 적혀 있는 선명한 이름 세 글자, 척사율.

어떤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검만큼은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새겨 넣었다.

“키아아아!”

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있을 때.

눈앞으로 곰을 닮은 데몬이 튀어나왔다.

“자러 가라.”

쾅!

속도가 죽지 않게끔 그런 데몬을 단숨에 차낸 뒤.

계속해서 아래로 달려갔다.

계속 달리면 서울까진 갈 수 있으려나.

원래라면 칼데아를 사용할 수 있는 밤에 출발했을 것이었다.

이틀 동안 머무르며 칼데아의 연기도 충분히 채워진 상태.

날개를 이용해 하늘길로 가는 게 어떤 이동수단보다 빨랐을 테니 말이다.

빨리 가야 돼.

그럼에도 검을 받아 들기 무섭게 출발한 이유는 간단했다.

망자의 길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도윤도 있었지만.

- 할머니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어요.

늦기 전에 민쿠를 데려와 달라는 척유라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어.

순식간에 스쳐가는 설산의 풍경을 뒤로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내디뎠다.

무엇 하나 늦지 않도록.

탓!

서둘러야 한다.

* * *

쿠웅!

“후우!”

강물로 착지하며 눈앞의 터널을 응시했다.

열심히 달리긴 했지만 강원도에서 부산은 먼 거리였기에.

밤이 되어 칼데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후에야 도착한 것이었다.

“왔어?”

한밤중이 돼서야 도착한 터널.

터널 앞엔 망토를 뒤집어쓴 민쿠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석이…!”

터널 입구를 막고 있던 비석이 사라져 있었다.

토족과 민쿠가 막아놨던 봉인석이었다.

“…!”

사라진 비석에 놀라고 있는 사이.

민쿠는 내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보며 눈이 커지고 있었다.

어째서 놀랐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살아 계셨어요.”

민쿠의 입가로 안도의 미소가 어렸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에 서 있던 민쿠.

민쿠가 터널로부터 천천히 비켜섰다.

무언가 복잡한 얼굴을 한 민쿠였다.

“터널의 힘이 많이 약해져 있어.”

민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건넸다.

아마 척사율이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일 터였다.

“괜찮아요.”

걱정말라는 미소를 지으며 터널로 다가갔다.

“꼭 돌아오길 바라.”

“고맙습니다.”

날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민쿠를 향해 한차례 고개를 숙인 후.

터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널의 어둠이 천천히 내 시야를 채워왔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서인지 눅눅한 공기가 가득한 공간.

“후우우.”

작은 호흡을 내뱉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정면을 응시했다.

척사율과 민쿠의 말에 따르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이었다.

흠.

솔직히 말하면 무모한 행동이었다.

다시는 이쪽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냅다 건너간다니.

누군가 들으면 정신 차리라고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다른 길은 없어.

그럼에도 내가 망설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이 길이 아니라면 당장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어떻게든 돌아온다.

그렇다고 못 돌아오면 그만이지란 무책임한 생각도 아니었다.

최대한 빠르게 해치운 뒤 돌아온다.

간단하지만 무조건 수행할 내 계획이었다.

만약 터널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다른 길을 찾는다.

아직까진 고려하지 않아도 될 루트였고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불가능한 루트는 아니었다.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로튼을 포함한 데몬들이 인간 세계로 넘어오는 문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말이다.

스윽.

검날의 기억에서 본 대로.

손에 들려 있는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웅…!

검이 푸른빛을 뿜어내고.

잠시 후 터널을 따라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길을 그렸다.

동시에 저 끝으로 보이기 시작한 다른 세계의 시작점.

“후웁!”

한차례 호흡을 들이킨 뒤.

기다려라.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악귀참도.

* * *

“….”

설산 속 작은 집의 툇마루.

마루에 앉은 척사율과 척유라가 백운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홀홀… 무기를 모으는 사람이라.’

백운이 찾아온 첫날 밤.

척사율은 백운에게 누구인지 묻지 않았었다.

이틀이 지나고 검을 건넨 뒤에야 이름을 물었었다.

- 전 무기를 모으는 자, 백운입니다.

세상 겸손한 자기소개라고 생각했다.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척사율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백운이 두르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기운을 말이다.

‘무신을 뛰어넘는 기운이라…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홀홀.’

척사율이 한밤중에 방문한 손님을 떠올리는 사이.

척유라가 걱정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할머니, 그 아저씨 괜찮을까?”

함께 지낸 지는 이틀밖에 안 되었지만.

척유라는 내심 백운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괜찮고말고.”

척사율이 걱정말라는 듯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척유라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왕이거든.”

“응…? 왕이라니.”

의아해하는 척유라를 향해.

척사율이 입을 열었다.

“왕이 돌아오고자 한다면.”

백운을 떠올린 척사율이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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