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92화 (192/473)

192화. 나의 검

내가 내 눈을 볼 순 없지만.

분명 몹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침 때문에 체할 뻔했어.

넘어가던 침이 다시 입으로 넘어올 정도로.

조금 전 척준경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검을 줄 생각이 없다니!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지금까지는 공명으로 들어온 이후 별 무리 없이 무기를 건네받았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주지 않으면 방법은 없어.

누가 말해 준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무기고로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무기를 얻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무기와 함께 무기의 주인이었던 이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무기가 무기고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었다.

강제도 불가능.

무기만이었다면 강제로 넣을 수도 있겠지만, 영혼은 아니었다.

나와 함께 해도 좋다는 영혼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

조금 전 척준경의 말은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전 악귀참도가 꼭 필요합니다.”

진정이 불가능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힌 후.

척준경에게 말을 건넸다.

농담 같았다면 아 왜요! 빨리 주세요! 했을 테지만.

척준경이 농담으로 저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해.”

척준경이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검을 모르기 때문에.”

“….”

예리한데.

티가 나는 건가.

무신이자 검성이어서일까.

척준경의 눈은 예리했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검을 배우지 않았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리다니.

“검을 배운 적은?”

“없습니다.”

“휘둘러 본 적은?”

잠시 잭 더 리퍼의 면도칼과 코지로의 스이카를 떠올렸다.

둘 다 척준경의 휘둘러봤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당당하게 대답하기엔 조금 애매했다.

면도칼은 선을 보는 잭의 살인 본능과 미친 듯한 유연성 및 반사 신경에 기댔던 것이었다.

스이카도 더 하면 더 했지 면도칼보다 덜하진 않아.

땅을 딛고 휘두르면 상관없었지만, 움직이면서 휘두르는 순간 팔의 인대가 끊어지는 스이카의 발도.

휘두를 때마다 내 팔이 아작났던 걸 휘둘러봤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없습니다.”

“대답은 시원해서 좋네.”

예상대로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척준경.

그런 척준경을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제발요! 라는 빛의 촐망이는 눈동자로 말이다.

“검을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 악귀참도를 줄 순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검을 알려주십시오!”

척준경이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데몬의 세계에서 악귀참도로 공명하기 전.

내가 기대에 차 있던 건 단순히 악귀참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 적당한 사람을 못 찾았어.

2년 전 돌산에서의 수련.

검을 배우고 싶다는 말에 기태랑과 비광은 백방으로 사람을 알아 봐줬었다.

결국에는 못 찾아서 보류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런 타이밍에 말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원래는 악귀참도를 받으며 무릎을 꿇을 생각이었다.

염치없지만 검을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악귀참도를 꺼내면 척준경의 검술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이 정도가 아니었다.

악귀참도를 꺼내더라도 쌓인 경험치와 발현된 정도가 부족하면 척준경의 검술을 온전히 따라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움직이며 휘두를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팔이 박살나는 스이카처럼 말이다.

무기의 힘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사용자인 나 스스로도 강해지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무기에만 기댔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후지산에서의 사로카 덕분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최상 중에서도 극최상이야.

“….”

약간은 놀란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척준경.

무신이자 검성으로 불렸던 척준경에게 검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는 없을 게 분명했다.

무기고에 영혼이 있어서 새로운 능력이 발현될 때마다 만날 수 있긴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능력 개방 전까지 한 번도 못 만났던 영혼들도 있었다.

그것만 믿고서 지금 당장 공명으로 선명하게 마주하고 있는 척준경과 헤어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거야.”

“상관없습니다.”

정확히 공명이 얼마나 유지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공명 동안 밖의 시간이 멈춰있는 건 확실하기에.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밖의 시간이 흘렀어도 배우고 갔겠지만.

설령 시간이 그대로 흘러 세계를 잇는 터널이 닫힌다 할지라도.

척준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싱긋.

눈에서 굳은 결의가 뿜어진 탓일까.

척준경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문제가 있다면 내가 누굴 가르쳐 본 적이 없다는 정돈데… 뭐 상관없어.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탓.

가볍게 도약한 척준경이 내 바로 앞으로 착지했다.

스윽.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웃고 있는 척준경.

척준경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해보자고.”

내민 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전투를 하며 스이카를 사용할 때마다 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검을 알게 된다면 스이카나 면도칼도 전보다 훨씬 잘 다룰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꿀꺽.

그리고 간절했던 그 바람이, 그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손이.

바로 그 손이 내 앞에 있었다.

스윽.

팔을 뻗어 내밀어져 있는 척준경의 손을.

나는 또 한 번.

위로 올라간다.

붙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척준경의 수련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좀 의외의 방법이었다.

쾅! 쾅! 쾅!

눈앞으로 휘둘러지는 적의 창과 검을 응시했다.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쳐 지나가는 창과 사각에서 날아드는 화살들.

어떻게든 날 죽이기 위해 내질러지는 수많은 칼날까지.

내가 마치 그 자리에서 적들과 싸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척준경에게 빙의해 거쳐왔던 수많은 전투를 대리 경험 중이었지만 말이다.

이건 할 때마다 신기하네.

공명 속의 공명.

정확히는 공명 속의 빙의.

척준경이 소개한 두 가지의 방법 중 한 가지였다.

- 여기 앉아.

수련을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척준경은 날 폭포수 아래로 안내했었다.

처음엔 이게 웬 신선 수련법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가부좌를 튼 채 폭포 아래서 물살을 이겨내는 건 흔한 수련법 중 하나였으니까.

- 눈을 감고 집중해.

하지만.

날 폭포 아래 앉힌 건 물살을 이겨내라는 게 아니었다.

앉힘과 동시에 손을 내밀어 내 머리에 가져다 댄 척준경.

손이 닿기 무섭게 무언가 일렁이기 시작했고.

- 화아악--!

공명으로 들어오듯 내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 이제부터 내가 거쳐온 싸움들을 경험시켜 줄 거야. 내가 검을 쥐는 순간부터 적을 가르며 목적지에 닿는 순간까지. 모든 감각을 반복해서 되새겨.

서걱!

검이 적의 몸을 반으로 가르는 순간과 공격을 느끼고 피하는 순간까지.

척준경의 말대로 모든 감각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검성이 겪어온 모든 전투를.

호흡을 통해 새어 나오는 뜨거운 숨.

정확히는 척준경의 숨과 호흡을 느끼며.

전부 내 것으로 만든다.

몸으로 퍼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 * *

“검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야. 몸의 일부라고 생각해.”

빙의 수련이 끝난 후엔 척준경의 1:1 강습이 이어졌다.

부들부들.

“검에도 호흡이 있어. 너의 호흡이 검의 호흡이며, 동시에 검의 호흡이 너의 호흡이야.”

바들바들바들…!

“어떤 순간에도 너의 호흡을, 검의 호흡을 놓쳐선 안 돼.”

“네… 넵!!”

어떤 순간에도.

짧은 문장이었지만 지키기엔 몹시 힘든 문장임이 분명했다.

온몸에 쌓이고 묶여 있는 거대한 바위들.

조금 과장하자면 거의 산 하나를 묶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호흡을 느끼면서 천천히 휘둘러.”

척준경의 말에 따라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둘러나갔다.

온몸을 억죄고 있는 엄청난 무게를 이겨내며 휘둘러야만 하는 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나도 그렇게 하진 않았어.

내게 돌을 달며 척준경은 말했었다.

내 몸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지, 자신은 이 정도로까지는 안 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 하지만 넌 해야 해. 그래야만 힘의 마지막 경계에서도 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무식하게 튼튼한 몸이니 무식할 정도로 부담을 줘야 한다는 간단한 설명이었다.

힘들다.

오랜만에 떠오른 단어였다.

돌산에서의 수련 이후 비약적으로 신체 능력이 증가했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미 사람의 체력과 힘의 범주를 뛰어넘었던 상태.

그런 몸을 가지게 된 이후로 뭘 하든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었는데, 지금은 힘들다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의 수련과 빙의를 통한 경험의 흡수. 이게 최단 루트야.”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최단 루트란 말에 힘이 났다.

그리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성 척준경의 검술을 얻는 것.

처음엔 과한 욕심이라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다.

“남은 힘을 모두 검에 담아 뿌려내듯이 휘둘러.”

“옛….”

드드드득…!

“썰!!”

쿠아아아--!

악에 바친 검날이 허공으로 휘둘러졌다.

* * *

“흐음.”

자리에 앉아 정면의 폭포를 응시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수련이 무척 고되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날짜 새는 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찌 됐든 간에 많은 시간이 흐른 것만큼은 분명했다.

슥.

옆에 놓여 있던 검집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검의 호흡을 느끼며.

“스으으.”

내 호흡을 정돈한 후.

손에 들린 검의 감각을 느꼈다.

- 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 호흡과 흐름.

막 휘두르는 게 아니야.

손끝에서 검날의 끝까지 물이 흐르듯이.

철컥.

휘두른다.

스릉--!

검이 목표했던 곳까지 도달했음을 확인한 후.

“후우…!”

휘둘렀던 검을 천천히 되돌려 검집으로 가져왔다.

뽑기 전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스르르… 철컥.

검이 미끄러지듯 검집으로 들어간 직후.

콰아아아아---!

눈앞에 있던 폭포수가 검이 휘둘러진 결대로 크게 갈라졌다.

좋았어.

“배우는 게 빠른 것도 문제구만.”

스스로의 휘두름에 잠시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사이.

폭포 밖에서 척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밧!

호다닥 폭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자.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척준경이 서 있었다.

공명으로 들어오며 봤었던 악귀참도와 함께였다.

“이렇게 금세 알려 줄 게 없어져서야.”

떠날 시간이구만.

얼마 전부터 척준경은 운을 띄웠었다.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말이다.

저벅.

살가운 미소를 그리며 척준경이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는 순간.

똑바로 서 다가오는 척준경을 기다렸다.

척.

바로 앞까지 다가온 척준경이 장난기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슥.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척준경이 성해포에 싸인 악귀참도를 내밀었다.

“가져가.”

“….”

척준경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의 검이다.”

내밀어진 악귀참도를 잠시 바라본 후.

두 손을 내밀어 검을 받아 들었다.

“무신의 악귀참도.”

슥.

약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들어 척준경의 눈을 응시했다.

“확실히 받았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