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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97화 (197/473)

197화. 멈춰!

호다닥.

눈앞에 보이는 균열의 틈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푸화아…!

빨리 나가야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찔한 소리와 함께 뜨신 게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쏘옥.

균열을 빠져나와 얼마나 달렸을까.

화아아아아아악--!

등 뒤에서 뜨끈한 바람이 느껴졌다.

뜨끈이라고 표현하기엔 저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구워졌겠지만, 어쨌든.

뒤통수에 맺히는 땀을 뒤로 하고 열심히 앞을 보며 달렸다.

가야 돼!

면도칼을 들고 신이 났을 때완 달리.

균열 안까지 통구이 화로로 만들고 나니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

인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터널이 끊긴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해야 할 일 만큼은 전부 수행할 생각이었다.

악귀참도를 찾는 건 물론이고 척준경에게 수련을 받는 것.

또 검을 알려준 척준경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일을 다 끝내고 나자 욕심이 생겼다.

이왕이면 수월하게 나가는 게 베스트니깐.

터널이 닫히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모험도 재밌긴 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시원한 물에 좀 씻고 몸에 맛있는 음식을 보충해주고 싶었다.

찝찝해 죽겠어!

안 찝찝하다면 그건 사람의 경지를, 정확히는 경지라기 보단 인간이 갖춰야 할 무언가를 많이 내려놓은 존재일 터였다.

끈적.

안 그래도 꿉꿉한 바람과 모래 먼지가 가득한 공간인데 데몬들을 학살하며 피까지 뒤집어 썼더니 찝찝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면도칼이 쿨타임이라니.

조금 전 알게 된 사실이었다.

냅다 달리기 위해 면도칼을 꺼내려는 순간.

면도칼에 쿨타임이 걸려있단 걸 알게 되었다.

무기를 모으며 쿨타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었던 면도칼이었다.

이유가 짐작가긴 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게 없었다.

새로 발현된 블라드의 사용.

기존 동기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힘이었다.

받아들인 광기는 둘째 치고 말도 안 되는 재생력과 전투 능력.

블라드 당시엔 정신이 광기에 맡겨져 몰랐으나 기억은 하나도 빠짐없이 남아 있었다.

몸이 꿰뚫려도 순식간에 데몬의 피로 회복을 했고 양손의 선혈 면도칼도 무한히 생겨났었다.

그야말로 주변의 피만 충분하다면 모두 소진하는 그 순간까지는 무적과 마찬가지였다.

블라드가 잭이 바랐던 이상향이려나.

블라드로 변한 이후 머리에 남았던 감각은 세 가지 정도였다.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자유로움.

이런 자유로움 때문이었을까.

블라드가 된 이후 내 공격에선 형식이란 게 사라졌었다.

양손의 칼로는 난도질을 하며 손이 모자를 땐 이빨로 물어뜯기까지 했다.

음.

한 번 더 해보면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 같아.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시전한 피의 폭발.

이걸 봤을 때 블라드 상태라면 피를 이용한 기술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예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만 아니라면 다 가능할 듯한 느낌.

거기다 최종이라.

나중에 무기고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면도칼에선 더 이상의 게이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블라드를 마지막으로 개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개방한 것 같았다.

쿨타임이 없던 무기도 최종 형태의 사용 이후엔 쿨타임이 걸린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인지하며.

그건 그렇고.

슥.

정면을 응시했다.

일단 달리자!!

호다다다닥!

* * *

[빛의 구원]

두두두두두두두두!

절벽 길로 접어듦과 동시에 전방으로 리볼버를 갈겼다.

끈질긴 놈들이었다.

징한 새끼들!

내가 절벽 길을 빠져나갔을 때 그대로 날 기다리고 있던 길목의 데몬들.

녀석들 입장에선 얼마 안 된 기다림의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내 입장에선 절로 징하다는 말이 나오는 그런 기다림이었다.

결국 너네가 받는 건 총알뿐이거늘!

오래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총알뿐인 불쌍한 데몬들을 쓸어내며.

길의 형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틀리면 끝장이다.

민쿠가 건네줬던 절벽 길의 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잃어버릴 일 없는 길이었지만.

한 번 잘못 들어 방향 감각을 상실하는 순간 바로 미궁행이었다.

타임리밋이 임박한 지금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고된 수련이 빛을 발하는구나!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되게 향상됐다는 것이다.

처음 이 길로 들어섰을 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 꾸어어어어!

척준경과의 수련은 말 그대로 극한이었다.

보통 수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되기 마련인데.

적응이 되기 무섭게 척준경이 강도를 높여나갔기 때문이다.

척준경의 표현에 따르면 항상 몸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최상의 효율을 노리는 무신 수련법이라고 했다.

무신 수련법이라.

이름은 멋있어.

열매는 달콤하지만 힘들었던 그 날을 잠시 떠올리며.

“크라…!?”

쩌어억!

앞에서 달려오던 데몬의 뺨을 후려갈겼다.

찰지구나!

그대로 볼이 터지며 옆쪽의 벽으로 처박히는 데몬.

단순한 뺨 한 방이었지만 다시는 못 일어날 터였다.

반짝.

…!

그렇게 길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데몬들을 쳐내길 잠시.

저 멀리로 터널의 입구가 보였다.

파지지지… 지… 지.

뭐… 뭐가 저리 히마리가 없어.

한눈에 봐도 몹시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

지지지지--!

!!

제발 닫히지 마! 라고 기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쪼그라들기 시작한 터널의 문.

직선상에 놓인 만큼 이제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비젼 수리검]

“크라라라!”

앞으로 달려드는 덩치 데몬의 어깨를 밟고 하늘 높이로 도약했다.

도약하며 몸을 회전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휘릭.

충분한 회전력이 생겼을 때쯤.

“문 닫힘.”

후웅!!

손에 들고 있던 수리검을 터널 입구로 내던졌다.

“멈춰어어어!!”

* * *

파지지… 지.

금정산의 터널 앞.

민쿠가 닫히려는 문을 바라봤다.

‘시간이 없어.’

율의 검은 여전히 길을 그리고 있었지만.

두 세계를 잇는 힘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아직 돌아오지 않은 백운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지만 민쿠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민쿠가 알고 있는 건 검을 통해 길을 여는 것뿐.

애초에 어떤 힘으로 세계가 이어진지도 몰랐기에 그저 제시간에 돌아오길 기도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려야 했어.’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민쿠에게 검을 뺏었던 로튼과 칸을 백운이 처치했었기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길을 여는 방법과 길잡이 검을 만들 수 있는 척사율의 집을 알려줬었다.

지직… 직.

질끈.

거의 다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며 민쿠가 두 눈을 감았다.

아마 말도 안 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데몬이 득실거리는 세계로 넘어가는 미친 짓을 말리지 않은 건 말이다.

‘대체 뭘 바란 거냐, 민쿠…!’

겁쟁이인 자신 때문에 꼬일대로 꼬이고 모든 게 망쳐진 과거.

백운이 말하는 공명이란 능력과 힘이 진짜라면, 척준경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렇게 망쳐버린 과거에 대한 사과를 전하며 조금이나마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기적이구나.’

꾸욱.

입술을 깨문 민쿠의 얼굴로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혐오로 인한 후회의 눈물이었다.

‘난 존재만으로도 해가 되는 놈이야.’

끝도 없이 깊어지는 후회와 자책으로 토끼 귀는 이미 뺨까지 축 처진 상태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귀여운 토끼 귀가 뚝 떨어질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

쿠드득!

민쿠가 자책하며 모든 이에게 사과를 건네는 순간이었다.

“!?”

손가락 하나 정도의 크기로 닫혔던 작은 터널의 문틈.

누군가의 검날이 좁은 틈을 비집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떻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를 잇는 거대한 터널의 힘.

그런 힘이 완전히 닫히는 걸 검날 하나가 막아내고 있었다.

드득.

잠시 후.

힘을 주는 건지 미세하게 떨렸던 검날이.

“좀.”

스가아악!

“열라아아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길게 베어 올려졌다.

풍덩!

잠시 베어진 문 사이로 빠르게 몸을 밀어 넣은 백운.

백운이 들어옴과 동시에 검에 의해 억지로 넓혀졌던 문이 빠르게 소멸 되었다.

“….”

“후우우우우!!”

터널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백운이 담아뒀던 숨을 내뱉었다.

한참을 죽어라 달려서인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백운.

“응?”

한숨 돌린 백운이 그제야 앞에 서 있는 민쿠를 발견했다.

* * *

“미… 민쿠 님?”

조심스럽게 민쿠를 불렀다.

귀신이라도 본 건가.

어두운 터널 안.

하마터면 터널로 들어옴과 동시에 심장마비가 올 뻔했다.

눈을 크게 뜬 상태로 입마저 쩌억 벌리고 있는 민쿠.

마치 못 볼 걸 제대로 봐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오죽했으면 잔뜩 풀 죽어있던 토끼 귀마저 쫑긋 세워졌을까.

역시 토끼 귀는 쫑긋해야 제맛이지!

알 수 없는 지론에 만족하며.

손에 들려 있는 악귀참도를 바라봤다.

이거 아니었으면 세계 미아 될 뻔했네.

닫혀 가는 문을 향해 수리검을 내던졌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비젼으로 이동은 했으나 이미 손바닥 크기 수준으로 줄어 들어버린 터널의 문.

억지로 손을 넣었다간 세계 미아에 더불어 손마저 사라질 것 같았다.

- 악귀참도.

순간 절벽에서 균열을 찢었던 악귀참도를 떠올렸다.

닿을 수 있는 걸 제외하고 모든 걸 벨 수 있는 검.

악귀참도라면 세계를 잇는 힘도 어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쿠드득!

무언가 더 고민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기에 곧장 악귀참도를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 드드드드…!

절벽의 균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힘이었다.

방해꾼인 악귀참도를 밀어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힘으로 검날을 밀어냈던 터널의 문.

힘을 증폭해주는 수리검까지 들고 있었음에도 한 번 휘두르는 것조차 버거운 힘이었다.

- 세계 미아….

조금씩 밀려 나가는 힘에 이를 악물었었다.

- 드드드드!!

- 사절이라고오!!

그렇게 간신히 휘두른 악귀참도.

휘두르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터널의 문이 그토록 악귀참도가 휘둘러지는 걸 막은 이유를 말이다.

- 쫘악!

악귀참도가 휘둘러진 결대로 갈라지며 내가 지나갈 수 있는 틈이 만들어진 문.

그렇게 세계를 잇는 힘은 악귀참도에 굴복하고 내게 길을 내주었다.

스르륵.

서서히 성해포에 감싸져 사라지는 악귀참도를 마지막으로.

무릎까지 차올라 있는 맑은 샘물을 바라봤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샘물의 온도.

이건 못 참지.

스으… 풍덩!!

그대로 뒤로 몸을 눕혔다.

전신을 감싸오는 시원한 물에 정신마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괘… 괜찮아!?”

갑자기 시뻘건 인간이 문을 비집고 들어오더니 이젠 뒤로 쓰러지기까지.

정신을 차린 민쿠가 호다닥 달려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샤워하는 거예요, 샤워.”

샘물한텐 몹시 미안한 짓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 꼬라지로 물을 만났는데 안 달려드는 건 불가능했다.

스으으.

샘물이 굳어진 피를 풀어내며.

조금씩 몸에 있던 피를 씻어 내려갔다.

하아.

유일하게 물 밖으로 빼꼼 나와있는 얼굴.

눈을 천천히 감으며 서서히 식혀지고 있는 열기의 감각을 즐겼다.

마지막까지 쫄리긴 했지만, 어쨌든.

싱긋.

입가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전부.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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