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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00화 (200/473)

200화. 이번엔

옆에 서 있는 척유라를 바라봤다.

“정신 똑바로 차려.”

비장한 눈과 목소리로 척유라에게 말을 건네었다.

“눈 깜빡이면 코 베이는 곳이니까!”

서울에 처음 와봤을 산골 소녀 척유라.

그런 척유라를 위해 나름 걱정하며 건넨 말이었는데.

척유라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

시원치 않은 걸 넘어서 뭐랄까.

약간의 혐오와 경멸이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나 서울 많이 와봤어.”

응?

척유라의 간단한 대답에 이번엔 내 쪽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겨울엔 내려오는 것조차 일인 험한 산골.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당연히 서울 근처에도 안 와봤을 거라 생각했었다.

왠지 태연하더라.

밤을 기다렸다 칼데아로 날아와도 됐겠지만.

처음 상경하는 척유라가 신문물에 놀라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문화를 주입해 적응할 수 있도록.

강원도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었다.

괜히 귀찮게 왔네.

빨리 말하지.

이미 서울에 와본 줄 알았으면 편히 날개로 왔을 텐데 말이다.

“여기에 있으면 차로 데리러 온다고 했어.”

슥.

!!

“약속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네.”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사용하는 척유라에 서울에 도착한 후 실행하려던 계획 하나를 삭제했다.

만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길잡이 검을 만들어 준 것과 동상 직전이던 날 건져준 고마운 아이였다.

현대 생활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을 하나 사주고 사용법까지 친절히 알려 줄 생각이었는데.

토독토독 거리며 자판을 두들기는 폼을 보니 하루 이틀 써본 게 아니었다.

“크흠.”

가만히 있자.

중간이라도 가게.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판이었다.

배이슬과 유연경이 쓰는 법을 어느 정도 알려주긴 했지만 여전히 초심자였기 때문이다.

“밥 먹으러 가자. 근처에 맛집 있어.”

무심한 얼굴로 말한 척유라가 몸을 휙 돌렸다.

머… 멋있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척유라가 멋있게 느껴졌다.

살아오던 터전을 떠나왔음에도 칭얼거리긴커녕 거침없이 나아가는 척유라.

“같이 가.”

이미 서울 적응을 마친 척유라를 따라 호다닥 걸음을 옮겼다.

* * *

치이익!

츄릅.

구워지는 갈비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회귀 전의 나로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급 소갈비.

1인분에 무려 오만 원이 넘어가는 생갈비였다.

한국은 1인분에 대한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어.

150g 따위에 1인분이라니.

이걸 누구 입에 붙여야 1인분이 되는지 몹시 의문이었다.

자글자글.

어느 정도 익어 기름이 올라오는 소고기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너무 익으면 맛이 없으니 얼른 먹으라고 하려는 참이었다.

“오빠 얼른 먹어. 소고기는 너무 익히면 맛없어.”

건네려던 말 리스트에서 한 줄을 삭제했다.

그래도 이제 아저씨는 아니네.

아저씨에서 오빠로 변경된 칭호에 흡족해하며.

얌전히 앞에 놓인 고기를 집었다.

쏙.

약간의 소금을 찍어 입에 집어넣었다.

홀리 파덜.

조금 전까지만 1인분당 가격이 미쳤다고 욕을 했으나.

가격에 상응하는 엄청난 맛이었다.

입안으로 퍼지는 육향과 기름의 고소함까지.

이래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유라야 서울은 언제 와본 거야?”

빠르게 고기쌈을 흡입하던 유라가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할머니의 무기 제작법을 배우러 여러 곳에서 왔었어. 종종 서울로 와서 교육을 하기도 했는데 나도 그때 따라왔어.”

다양한 능력이 개방된 시대였다.

이런 시대임에도 교육을 할 정도의 제작 실력이었다니.

척사율의 대장 기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았다.

“이번에 내 학교 입학을 지원해주는 곳도 그때 교육을 받았던 회사 중 하나야.”

“척사율 님 대단하시네.”

“응, 할머니의 대장 기술은 대단해. 따로 능력을 개방한 것도 아닌데 천부적이야.”

척유라가 척사율의 이야기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무뚝뚝한듯하지만 척사율에게 만큼은 여느 손녀와 다름없는 척유라였다.

유라는 무슨 능력을 개방했으려나.

육즙 터지는 고기를 씹던 와중.

오는 길에 능력을 개방했다던 척유라의 말이 떠올랐다.

궁금한데.

능력에 대해 묻는 것에 몹시 예민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물어볼까 말까 갈등하며 와구와구 흡입 중인 척유라를 바라봤다.

“무기와 대화를 하는 것. 내가 개방한 능력이야.”

“!?”

“사람과 대화하는 만큼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은 아니야. 모든 무기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와 상관없이 척씨 성을 가진 사람들에겐 독심술이라도 있는 걸까 의심이 되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을 해버리는 척유라.

무기와의 대화라.

나름 무기왕의 길을 걷고 있어서일까.

무기와 대화할 수 있다는 척유라의 말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고기 먹는 걸 멈춘 척유라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오빠는 누구야?”

“응?”

약간 당황스러웠다.

갑자스러운 질문이기도 했지만 누구냐니.

차라리 능력을 묻는 거였다면 대답이 명확했을 텐데 애매한 질문이었다.

잠시 뭐라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날 빤히 바라보던 척유라.

척유라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한 명이 아니야.”

내 무기들을 말하는 걸까 싶어 대답을 하려는 순간.

“어어어어!!”

옆에서 누군가의 탄성이 들려왔다.

“백운 님이다!!”

* * *

“와 고기 진짜 맛있네요.”

어째서인진 모르겠다.

어느새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한 명 늘어나 버렸다.

웬 찹쌀떡이 고기를 먹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굽는 전수희.

자신의 고기를 챙기면서도 나와 척유라에게 적절한 분배까지 해주는 능수능란함이었다.

많이 구워본 솜씨야.

최리아 밑에서 강하게 자란 탓일까.

이미 고기 마스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솜씨였다.

“유라를 지원해준다는 기업이 대산이었군요.”

“네! 척사율 님은 대산한테 많은 걸 알려 주신 감사한 분이거든요. 유라도 척사율 님의 뒤를 잇는 슈퍼 인재고요!”

“별말씀을요. 과찬이세요.”

뭐지.

존댓말 할 줄 알았던 건가.

산골 소녀라 예의나 존댓말 같은 걸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건 뭐란 말인가.

존댓말뿐만이 아니었다.

전수희에게 겸손함을 겸비한 적절한 아부까지 날리는 척유라.

그런 낯선 모습에 잠시 벙쪄있자 척유라가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우린 엄청 친하잖아.”

“그… 그렇지.”

친하다니 좋은 거 같은데 어째선지 떨떠름한 맛이 느껴졌다.

“부럽네요, 백운 님! 유라랑 그렇게 친하다니.”

여전히 싱글벙글한 전수희.

지난번 술을 들이켜던 때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이었다.

“잘 됐나 보네요.”

“아!”

내 말에 이제야 기억이 난 걸까.

전수희가 깜짝 놀라는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백운 님이 해주신 말씀 덕에 지금도 실장님 밑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독사 밑에서 계속 일하게 된 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본인이 행복해하니 됐지.

그렇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던 전수희가 날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정말 같이 안 가실 거예요? 백운 님은 유라의 보호자를 떠나서라도 대산의 은인이세요. 정말 편하게 오셔도 돼요!”

조금 전 전수희는 척유라와 함께 대산으로 가자고 말했었다.

척유라를 환영하는 겸 팀원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다는 것.

“백운 님이 오시면 아마 회장님을 포함한 모두가 좋아하실 거예요! 같이 가요! 네!?”

눈을 반짝이며 다시 한번 가자고 말하는 전수희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수희 님. 다음에 꼭 갈게요. 오늘은 제가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전수희가 정말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이나 거절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대신 다음에 꼭 오셔야 돼요!”

“네 꼭 갈게요.”

꼭 간다는 말에 흡족스럽게 웃는 전수희.

“아 맞다!”

웃던 전수희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척유라를 바라봤다.

“유라야! 내가 너 묵을 숙소에….”

구워지는 고기를 집어 먹으며.

전수희와 재잘대는 척유라를 바라봤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다.

겨울 산에서 척유라를 서울까지 데려오는 것.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가기 전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었다.

이제.

몸을 의자에 기대며 작은 호흡을 내뱉었다.

가야 한다.

* * *

질질질.

거대한 꾸러미를 끌고 인적이 드문 공터로 향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후우.”

한숨을 내쉬며 끌고 온 꾸러미를 바라봤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짐을 잔뜩 싼 척유라에게 피난 가냐고 물었었는데.

지금 내가 가져온 꾸러미는 척유라의 것보다 두세 배는 더 커 보였다.

식량은 필수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두 사람과 헤어진 다음 내가 찾은 곳은 거대한 상가였다.

철물점부터 식료품점까지 없는 가게가 없는 상가 구역.

상가를 돌며 생각해뒀던 물건들을 빠르게 구비했다.

라이터랑 성냥 다 챙겼고.

음식을 해먹을 때 불은 필수였다.

라의 불꽃이 있지만 이건 음식을 데우긴커녕 모든 식량을 태워버릴지도 몰랐다.

캠핑용품도 오케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망자의 세계는 황폐 그 자체였다.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세계.

모래 바닥에 그냥 드러누워 잘 순 없는 노릇이었기에 큰돈을 들여 고급 텐트를 구매했다.

안 본 사이에 돈이 꽤 쌓여있어서 다행이네.

집 구매에 대부분의 돈을 쏟아부은 뒤.

한동안 잔액을 확인할 새도 없이 바쁘게 다녔었다.

다행히 오늘 확인해보니 충분한 잔액이 있었고, 덕분에 비싼 장비들도 포기 없이 빠짐없이 다 사왔다.

바스락.

꾸러미가 풀어지지 않게끔 단단히 동여맨 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밤이 되어 하늘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스윽.

손을 올려 아테네의 목걸이를 붙잡았다.

“돌아오자.”

소리 내어 말한 후 눈을 감았다.

돌아올 수단은 준비해두지 않았다.

하지만.

가야 했다.

“돌아온다.”

다시 한번 되뇌인 후.

우우웅…!

목걸이를 발동시켰다.

* * *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땅.

절그럭.

절그럭.

땅에 박힌 사슬과 함께 거대한 가마가 망자들에 의해 들려 가고 있었다.

가마의 주변으로 모여 있는 많은 수의 망자들.

족히 백은 넘어 보이는 숫자였다.

휘이이.

망자의 땅으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슬 끌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 그 자체인 땅.

그런 땅으로.

쿠웅!!

고요를 깨뜨리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으으…?”

모여있던 망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그들이 끌고 가던 가마 위였다.

고오오--!

아직 잦아들지 않은 먼지 속에서.

“또 만나네.”

망자들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스릉.

무언가 꺼내는 소리와 함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받은 무언가로부터 시린 빛이 번뜩였다.

“이번엔.”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목소리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베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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