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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01화 (201/473)

201화. 끊어지는 사슬

그어어--!

귓가로 소름 끼치는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날 발견하기 무섭게 소리를 질러대며 몸을 돌린 망자들.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이는 망자가 일순간 가마 위를 올려다보는 광경이란, 뭐랄까.

찌릿.

이유 모를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

괴성을 지르고 약간의 정적이 찾아왔다.

가마 위에 뜬금없는 인간이 나타나서인지 망자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못 본 척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쿠아아아--!!!

날 바라보던 모든 망자가 가마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멀리 있던 녀석들도 서로의 머리를 밟아가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저놈은 내 먹이란 느낌으로 말이다.

“후우.”

가장 가까운 망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전에 베지 못했던 놈들이 날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

일단 후퇴한 다음 어디 구석에 숨어 한 마리씩 처치해보는 게 현명했겠지만 어쩌겠는가.

목걸이가 바인딩 되어 떨어진 곳이 가마 위인데.

그어!

드디어 검의 범위에 들어온 망자 한 마리.

스릉.

제일 먼저 범위에 들어온 녀석에게 검을 휘둘렀다.

아마 찰나의 순간일 터였다.

악귀참도가 검집을 떠나 녀석에게 도달하는 순간은 말이다.

하지만.

스르르…!

내 눈엔 어째서인지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검성의 수련을 받게 되어서라던가 이제부턴 내가 제 2의 검성이라던가 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이 한 번의 휘두름에 많은 게 걸려있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검집을 떠나 천천히 망자의 목을 향해 날아가는 악귀참도.

그리고 그런 악귀참도를 따라가며 흩날리는 칠흑의 성해포까지.

벨 수 있다.

악귀참도라면 벨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망자의 세계로 들어왔다.

처음의 확신은 검을 휘두르는 이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베여라.

악귀참도의 검날과 망자의 거리는 손 한 뼘도 채 되지 않았다.

굳이 도착 시간을 따진다면 0.1초 정도 되는 시간.

“베여라아!!”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외침과 함께.

악귀참도의 검날이 망자에게 날아 들었다.

* * *

망자의 세계 어딘가.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땅 위로 거대한 건축물들이 구성되어 있다.

무언가 모여 사는 장소 같지만 마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압도적인 규모였다.

….

한 나라의 수도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넓은 면적을 가진 공간.

공간에 존재하는 건 정적과 어둠 뿐이었다.

무언가 살고 있다고는 보기 힘든 완벽한 적막.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수도는 과거에 쓰이다 버려졌다 생각이 들 법한 장소였다.

드득.

그런 장소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약간이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드득… 드드.

드드드… 드드득!

조금씩 커지나 싶던 소리가 공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것들이 깨어나는 듯한 소리였다.

드드드… 득.

잠시 후 소리가 멈추고.

그어어어어어!!!!

멈춘 소리 대신 귀를 찢는 외침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살아있는 이가 들으면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온기나 생명따윈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

우우우웅--!

목소리와 함께 어둠만이 가득했던 공간으로 푸른빛이 번져나갔다.

공간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무언가가 깨어났음을 알리는 빛.

수만을 넘어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에 이르는 이들의 안광이었다.

“….”

이제 막 깨어나 괴성을 질러대는 망자들 사이로 한 명의 망자가 서 있었다.

여기저기 몸이 상해 있는 다른 망자들과는 달리 온전하면서도 굵은 뼈를 가진 망자였다.

크기 역시 압도적이었으며 손에는 책을, 머리엔 빛이 바랠 대로 바랜 회색의 왕관을 쓰고 있는 고대의 존재.

최초의 망자이자 망자들의 왕인 카사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규율이.”

스윽.

아직까진 뻣뻣한 목을 돌려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 카사락.

“깨졌다.”

* * *

멈춰 있는 망자를 바라봤다.

조금 전 달려들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망자는 엉거주춤 몇 걸음을 물러서고 있었다.

조금 전에 쫄았나?

라고 누군가 물어봤다면.

솔직히 백퍼센트 아니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확신은 가지고 있었으나 사람인 이상 검을 휘두르는 순간 긴장을 안 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싱긋.

지금은 아니었다.

망자를 베며 손끝으로 느껴진 감각.

이전의 방문 때와는 명백하게 달라졌다.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 아니다.

확실히.

베었다.

손끝의 감각이 또렷해짐과 동시에.

스아아악!!

뒤로 물러나던 망자의 목에서, 정확히는 악귀참도가 지나친 곳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죽어서 피는 안 나오는 건가.

망자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조금 전과 다른 게 있다면 비어있는 초점이 내가 아닌 자신의 몸을 향하고 있다는 것.

망자는 신기한 듯 푸른빛과 함께 흩어지는 몸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아아.

잠시 후.

멈춰 있던 망자가 푸른빛과 함께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죽인 자를 또 죽인다라.

묘한 감각이었다.

지금까지 베어 오던 것과도 달랐다.

수분기 없는 푸석푸석한 모래를 베어내는 느낌이었다.

“그아아아아!!”

흐음.

나도 모르게 긴장한 탓인지 검을 휘두르며 낮게 낮춰졌던 몸.

몸을 반듯이 펴며 목을 좌우로 돌려 풀어줬다.

한 마리를 베긴 했지만 여전히 사방에선 많은 수의 망자가 달려들고 있었다.

뚜둑.

여유가 스며든다.

몸이 조금씩 풀리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백 여마리 중 벤 건 고작 한 마리지만.

한 마리를 베기 전과 벤 후의 여유는 비교할 수 없었다.

베지 못할 수도 있지만 베어야 하던 것에서.

벨 수 있는 것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었다.

얘네들 봐라.

동족의 죽음을 봐서인지 미친 듯이 달려들어 이젠 코앞까지 와버린 망자들.

마치 한 마리뿐인 먹이를 향해 앞다투어 달려드는, 그런 굶주린 승냥이 떼 같은 망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상황 파악 못 하시네 이분들.”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냥하는 건.”

[잭 더 리퍼]

남아있던 왼손으로 면도칼의 감촉이 느껴졌다.

“난데 말이야.”

면도칼로 향상된 신체의 감각을 즐기며.

학살을.

밀려드는 망자 무리를 향해.

시작한다.

발을 내디뎠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철컥.

악귀참도를 검집으로 집어넣은 후.

스윽.

몸을 돌려 뒤를 돌아봤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망자들이 둘러싸고 있던 주변.

사아아…!

지금은 비호감형으로 생긴 망자 대신 푸른 기운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두운 주변을 밝히며 하늘로 올라가는 푸른 기운.

비록 망자가 사라지며 나온 기운이긴 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예쁘네.

장관이었다.

어둡고 황폐한 땅.

그런 땅에서 난 백 여개의 푸른 빛 줄기 속에 서 있었다.

[해제]

풀러져 있던 성해포가 검집을 감싸나갔다.

빈 곳 없이 성해포가 둘러지고 나서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악귀참도.

- 서걱! 스각!

악귀참도로 쉴새 없이 망자들을 베어나갔었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채 쓸려나갔던 망자 무리.

-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다.

쏟아지는 공격을 피해내면서도 척준경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정확히는 몸이 잊지 않고 있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땐 온 신경을 다 쏟아도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신경을 쏟지 않아도 몸이 자연스럽게 검의 호흡을 따라갔다.

신경을 쏟으면 쏟을수록 검의 예리함이 더 살아나는거 같긴 하지만.

지금 망자를 베는데 그 정도까진 필요하지 않으니까.

스르.

동시에 왼손에 들려있던 면도칼도 제 역할을 다 한 뒤 사라졌다.

지난 번 데몬의 세계에서 최종 레벨에 이르렀던 잭 더 리퍼의 면도칼.

최종장에 이른 것 답게 면도칼을 꺼내기만 해도 향상되는 신체의 능력이 엄청났다.

처음엔 호흡 놓칠 뻔 했지.

면도칼로 인해 순식간에 올라간 속도와 움직임.

이미 몸에 익은 호흡이었지만 최종 레벨에 이른 후 처음 꺼내보는 면도칼에.

잠시지만 호흡을 놓칠 뻔 했었다.

면도칼과 수리검 정도인가.

망자의 땅에서 악귀참도와 함께 듀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이 두 개 뿐이었다.

언제 어디서 망자가 나올지 모르는 세계.

유일하게 망자를 죽일 수 있는 악귀참도는 항상 꺼낼 수 있어야 했다.

악귀참도는 쿨타임이 없지만.

듀얼로 사용했을 땐 둘 중 하나의 쿨타임을 같이 적용받기에.

악귀참도를 쿨타임이 있는 무기와 함께 사용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애초에 망자를 죽일 수도 없고.

듀얼로 사용한다고 다른 무기가 악귀참도처럼 망자를 벨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각자 다른 능력의 무기를 내가 알아서 가능한 조합을 떠올려 사용하는 것이었다.

악귀참도와 함께 꺼낸다 한들 다른 무기로 망자를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흠.

단순히 두 개를 꺼내는 게 아니라 다른 무기의 특성까지 온전히 적용되면 좋을 텐데.

이게 가능했다면 많은 게 가능해졌을 터였다.

라의 불꽃에 악귀참도의 능력을 담아 터뜨린다던가.

리볼버에 악귀참도의 능력을 담아 난사한다던가 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망자쉨들 운 좋은 줄 알아라.

이런 게 가능했어도 쿨타임 때문에 사용하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한 번에 대량 학살이 가능한 무기는 꺼내더라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니 망자들 입장에선 몹시 다행이었다.

저벅.

무기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마친 후 발을 뻗었다.

자신을 이끌던 망자들을 모두 잃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봉인의 가마.

땅과 이어져 있던 사슬들 역시 악귀참도로 빠짐 없이 끊어놓았다.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비늘을 오른손에 두른 후.

덥썩.

가마의 문을 움켜쥐었다.

지난번엔 망자를 죽일 수 없어 놓을 수밖에 없었던 문.

꽈악.

문을 잡은 양손에 손아귀에 힘을 주어.

콰앙---!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 * *

사방이 백색으로 둘러싸인 공간.

이미 수백 년 동안 한자리에 앉아있던 도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절그럭… 절그럭.

오랜 시간 몸을 억죄고 있던 사슬들.

꽁꽁 묶어 도윤을 걷지조차 못하게 만들었던 사슬이 풀어지고 있었다.

‘….’

지난번 백운이 다녀간 후.

공허했던 도윤의 마음속엔 희망의 불씨가 생겨났었다.

아무런 기약도 없던 허무에서 기다려야 할 것이 생겨났고, 덕분에 도윤은 여유를 되찾으며 허무에 집어 삼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

‘벌써 오다니.’

백운을 믿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었다.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 있는 망자의 세계.

아무리 백운이라 해도 방법을 찾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드드드…!

하지만.

이미 찾은 모양이었다.

‘대체 뭐하는 녀석이냐.’

드드드…!!!

수백 년간 도윤을 가둬놨던 봉인의 문.

콰앙!!

문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열어 젖혀졌다.

잠깐 열렸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콰직!

열리다 못해 완전히 뜯겨 나가버린 문.

사라져버린 문 사이로.

“제가 왔습니다 하하하!!”

뭐 하는 녀석인지 모르겠는, 백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

멍한 표정으로 사라진 문과 나타난 백운을 바라보는 도윤.

그런 도윤의 입가로.

싱긋.

무척이나 반가운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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