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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03화 (203/473)

203화. 남자의 기억

허어어억!!

얼마 만이었을까.

이렇게 심장이 떨어질 뻔한 적이 말이다.

두… 큰.

농담이 아니라 심장박동이 느려진 느낌이었다.

하도 심하게 놀라 심장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뭐… 뭐야!”

누구냐는 물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뭐냐는 말로 질문을 대신했다.

후후 불어가며 신나게 면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여기서 뒤로 안 넘어가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깜짝 놀랐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귀신… 아직 귀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연령대와 짧은 백발 더벅머리, 그리고 순수한 초록색 눈을 가진 남자였다.

남자는 눈에 어울리는 맑은 웃음을 지으며 발라당 넘어가 있는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하고 앉아 있냐는 말투였다.

“내가 더 놀랐구만 뭘 놀래!”

밀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날 넘어뜨린 남자를 향해.

왜 그렇게 놀라서 날 놀래키냐며 적반하장을 보이는 남자에게 강한 반론을 펼쳤다.

“이건 뭐야.”

내가 그러든 말든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내 라면을 응시했다.

마치 처음 보는 신기한 걸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이었다.

앗.

그제야 꼬들꼬들에서 불어터짐으로 가고 있을 내 라면이 떠올랐다.

“라면… 몰라?”

놀란 가슴이 진정되며 천천히 남자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 세계에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약간 옛날 옷이긴 하지만 분명 지구의 옷이었다.

근현대사 수업시간에 많이 본 차림새인데.

혹은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해주는 셔프라이즈 방송에 자주 나오던 복장이었다.

하얀 셔츠와 멜빵바지, 그리고 겉에 걸친 낡은 자켓까지.

오래전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의 차림새가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라면을 모르냔 질문에 대답 대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남자.

남자가 옆에 놓인 새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응?

설마?

후루룹!

!?

사람의 등장까지야 그냥 놀랄 일이었지만.

남이 먹던 라면에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이밀다니.

이젠 앞에 있는 남자가 뭐 하는 놈인지 심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와우! 엄청 맛있네?”

후루룹!

저… 저…!

이대로 두면 다 먹어버릴 기세였기에.

호다닥 몸을 일으켜 떨어진 젓가락을 집어 든 뒤 냄비 옆으로 다가갔다.

후루룹!!

* * *

“….”

“….”

판타지 소설 작가가 무얼 상상하며 글을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런 그림은 아닐 터였다.

소설에 나오던 동료와의 식사 장면은 말이다.

터엉.

숟가락으로 긁어먹어서인지 바닥까지 맨질해진 양은냄비.

조금만 더 긁었으면 구멍이 뚫릴 판이었다.

뭐냐고 이 인간.

기껏 끓인 라면이 없어질까 호다닥 달려와 모르는 인간과 같이 먹은 나도 레전드였지만.

생판 모르는 내 라면을 다짜고짜 뺏어 먹은 눈앞의 남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한 인간은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한다고? 라면?”

“라면은 맞긴 맞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야!?”

너무나 뻔뻔한 태도였다.

라면 한 젓가락이라도 더 처먹겠다고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있긴 했지만 이젠 알아야 했다.

나와 함께 라면을 먹은 이 인간이 대체 누구인지를.

“음… 내 이름은.”

꼴깍.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망자의 세계.

그런 세계에서 갑자기 나타나 자기소개를 하려는 남자였다.

“… 뭐지?”

“….”

한참 뜸을 들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발의 남자.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갈 뻔했다.

아마 친한 사이였으면 바로 뺨을 올려붙였을 것이다.

“장난하지 말고.”

“장난이 아니라 진짜 기억이 안 나는데.”

남자가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구라치는 거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납득이 가는 반응도 아니었다.

보통 자기 이름이 기억 안 날 정도면 심각한 상황일 텐데.

남자는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래도 뭐라고는 불러야 되니까 노운이라고 불러.”

“노운…?”

게임에 등장하는 종족 노움은 알지만 노운이라니.

무슨 의미가 담긴 걸까?

“알 수 없음이니까 언노운.”

잠시나마 노운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내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영어라니.

역시 영어권 국가에 살던 사람이 분명했다.

“넌 누구야?”

자신의 이름을 언노운이라고 대충 밝혔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백운.”

“저 꾸러미 안에는 뭐 있어?”

콱씨.

기껏 알려준 이름은 들은 척 만 척하며 노운이 꾸러미에 관심을 보였다.

배가 고프거나 해서 식량을 노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단지 노운의 눈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보고 확인하는 걸 좋아하거든.”

여기 오기 전에 과학자였나.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지만 심히 과학자스러운 느낌이었다.

빠안.

잠시 꾸러미와 날 번갈아보던 노운이 입을 열었다.

“혹시 과일도 있어?”

* * *

와삭!

기묘한 상황이었다.

라면 먹방에 이어 과일 먹방이라니.

착하게 생겼어.

노운의 강점이었다.

관상이 과학이라는 지조를 갖고 있는 입장에서 노운의 관상은 무척 선했다.

나쁜 생각일랑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을 듯한 얼굴.

노운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건 맑고 깨끗한 느낌뿐이었다.

- 먹어.

아마 관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일은 없냐는 말에 뺨따구를 후리는 대신 꾸러미를 풀러준 건 말이다.

“달다 달아.”

노운은 유독 많은 과일 중 사과만 먹고 있었다.

골라 먹는다기보단 집중 포격을 해 조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어?”

맛있게 사과를 먹고 있던 노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 그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내 기준에서는 엄청 오래됐어.”

애매한 답변이었다.

내 기준에서 오래됐다니.

과거사 코스프레를 하는 게 아닌 이상 옷차림만 봐도 족히 몇백 년은 지났을 듯했다.

“너는?”

“오늘 왔어.”

그렇게 노운과 나 사이에 짤막한 질문과 답변이 몇 번 오갔다.

합의한 건 없었지만 서로 자연스럽게 말을 놔버린 상태.

심심하진 않네.

그렇게 몇 번의 말을 주고받다 보니 말동무가 생긴 느낌이었다.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구만.”

어쩌다 보니 망자의 세계에 온 이유까지 말해버렸다.

“너 멋있구나. 동료를 구하려고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머쓱.

뜬금없이 날아온 칭찬에 나도 모르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나도 모르게 노운에 대한 호감도가 약간 상승했다.

“흐음.”

“…?”

노운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아까 뭘 좀 느꼈는데 말이야.”

“뭘 느꼈는데?”

스윽.

“너.”

깍지를 끼고 턱을 괸 노운이 입을 열었다.

“망자를 죽였지?”

“…!”

분명 망자를 죽일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 노운은 없었다.

눈으로 닿을 거리는 아니었으니 노운의 말대로 느낀 것이었다.

“정말 흥미롭다, 흥미로워. 죽은 망자를 또 죽이다니.”

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머금었다.

“아까 말했듯이 나도 여기서 나름 꽤 오래 있었거든.”

잠시 뜸을 들이던 노운이 말을 이어갔다.

“처음 봤어, 망자가 죽는 건. 뭐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는 죽였을지도 모르지만.”

슥슥.

무언가 생각하던 노운이 흙바닥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대충 봤을 때 망자의 세계와 지구를 표시하는 듯했다.

“이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구, 그리고 이게 망자의 세계야.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그림엔 두 개의 거대한 원이 있었다.

조금의 접점도 없이 완벽히 분리된 원이었다.

“이 두 세계는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어. 뭐 가끔 지구에 육체를 두고 이곳으로 넘어와서 약간의 접점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지만.”

아마도 피렌조의 케이스였다.

도윤에게 봉인 당해 영혼은 망자의 세계로 왔지만, 육신은 광산에 존재했었다.

그러다 육체에 피를 수급받으며 육신이 영혼을 끌어당겼고 말이다.

“어쨌든 이 두 세계는 서로 간섭할 수 없어. 간섭해서도 안 되고.”

처음 망자의 길에 왔을 때 로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해진 최소한의 길을 제외하곤 절대 벗어나선 안 된다는 말.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기 때문에 길을 벗어나는 순간 이쪽 세계의 망자들이 바로 알아볼 거란 말이었다.

말은 안 들었지만.

로인의 신신당부에도 수리검의 울림을 무시할 수 없어 뛰쳐나갔지만 어쨌든.

노운이 하는 말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았다.

스윽.

노운이 손가락으로 두 세계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런데 넌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 간섭을 한 것도 모자라서.”

그리고 그 선을 연장해 망자로 보이는 개체에 엑스자를 표시했다.

“망자를 죽여버렸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설명하는 내내 웃고 있는 노운.

한참을 웃던 노운이 말을 마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완전 규율 위반이지.”

* * *

규율 위반이란 말을 강조해 말한 노운.

여기까지만 말하고 말을 멈춘 노운을 향해 질문을 건넸다.

“규율 위반이면 어떻게 되는데?”

“큰일나지.”

당연한 걸 묻냐며 노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지.”

처음엔 뺨을 때리고 싶었지만 몇 번 들으니 적응이 될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 올리며 노운이 옆에 있던 사과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설명은 사과의 대가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얘는 안 나가고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너무 갑자기 등장해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들이 떠올랐다.

꽤나 오랜 시간을 망자의 세계에서 보냈다는 노운.

노운에게선 이곳에 갇혔다는 어떠한 절망이나 슬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게 당연한 것 인냥 덤덤한 자세였다.

“너는 어쩌다 여기에 온 거야?”

나는 내 발로 들어왔다 치더라도 노운은 어떻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로인과 같은 능력을 가졌던가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납치를 해 이곳에 버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정확히 뭘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해선 안 될 일을 해버린 거 같아.”

슥.

노운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기억이 안 나서 답답하긴 한데… 어쨌든 원래 살던 세계에서 추방당할만한 일을 저지른 거겠지.”

추방당할만한 일이라.

로인을 제외하고 당장 떠오르는 건 도윤과 피렌조의 봉인뿐이었다.

그것 외엔 완전히 단절된 두 세계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하늘을 보고 있는 노운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 알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노운이었다.

그런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들 기억하고 있을 확률은 몹시 낮았다.

“응.”

“응?”

예상을 깨부수는 답변이 들려왔다.

특유의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표정으로 응이라 답하는 노운.

내가 되묻자 확답을 주려는 듯 노운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여기 나가는 방법,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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