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먹이
가끔 인터넷이나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사람이 어딘가에서 떨어질 땐 무거운 머리부터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진짜였구만.
어느새 뒤집혀 바닥으로 향해 있는 머리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느낌이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게 몽땅 뒤집혀 있는 신기한 경험.
“!!!”
구렁텅이를 내려가던 모든 이가,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며 몇 개월을 넘어 몇 년의 시간을 걷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텅 비어 있는 구덩이의 중심으로 향해 있었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륭이 들려준 이야기를 미루어 봤을 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내려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아래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아래에 괴물이 있든 죽음이 있든 빨리 가겠다고 일단 뛰어내리고 앉았으니.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이긴 했다.
슥.
고개를 돌려 함께 떨어지고 있는 노운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덤덤하네.
뛰어내리기 직전 깜짝 놀라던 걸 미루어 봤을 때.
분명 비명을 지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게 자유낙하구나.”
비명은커녕 이런 말이나 하고 있었다.
언제 바닥과 만나 머리가 터져나갈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지하의 중력이 우릴 당기고 있는 거야.”
….
호기심을 빛내며 내게 알려주려는 듯 말을 건넸지만.
내 머릿속엔 이러한 정보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덤덤할 수 있는 노운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무언가 열심히 중얼거리던 노운이 내게 물어왔다.
자기까지 잡아다 점프한 날 원망하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궁금한 것 같았다.
지하 중력의 끌어당김으로부터, 자유낙하 운동 중인 이 상황으로부터 어떻게 안 죽고 살아남을 것인지를.
“다 방법이 있지.”
떨어지면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주변을 감상하긴 했지만.
내 눈은 줄곧 바닥 쪽을 향하고 있었다.
언제 바닥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던져볼까.
얼추 처음 눈에 닿았던 지점까진 내려온 느낌이었기에.
[도윤 - 비젼 수리검]
수리검을 꺼내 아래를 향해 빠르게 던져냈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며 바닥으로 향한 수리검.
수리검이 날아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쿠웅!!
수리검이 바닥과 만나며 만들어낸 마찰음이 들려왔다.
지금 비젼하면 거꾸로 도착할 테니까.
옆에 멀뚱히 있는 노운을 위해 안정적인 랜딩을 하기로 결정하고.
바닥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타이밍에 맞춰 꺼낸 날개의 연기를 바닥 쪽으로 터뜨렸다.
퍼엉!!
바닥과 부딪힌 연기의 반발력으로 떨어지던 속도가 순간 상쇄되었다.
휘릭.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바로 하며 바닥으로 발을 내디뎠다.
착지 성공.
“대단한데.”
바닥에 착지하고서도 노운은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아직도 일렁이고 있는 내 날개를 감상하고 있었다.
스르르.
바닥과 부딪히며 사방으로 퍼졌던 연기가 희미해질 때쯤.
꿈틀.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늘에서 웬 먹이가 떨어졌구나. 뭐 하는 놈이냐?”
지하 공간 전체를 울리는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여우…?
륭의 경험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건 여우 형상을 한 생명체였다.
생명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약간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형태를 갖추고 말을 하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말했던 것보다 훨씬 큰데.
륭 역시 거대한 아가리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눈앞에 있는 여우는 거대한 수준이 아니었다.
거대한 기와집 몇 개를 붙여 놓은 듯한 초거대한 몸집이었다.
“뭐 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여우쉨이?
계속해서 강압적으로 묻는 말투가 거슬렸지만 지금은 찾아야 할 게 있었다.
- 첫 번째 재료는 구슬이야.
“여기에 구슬이 있다고 들어서요. 구슬을 찾으러 왔습니다.”
지하의 눅눅함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있었기에.
지체 없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말했다.
“!!!”
구슬이란 단어 때문이었을까.
여우의 몸을 이루고 있는 연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드드드!
단순한 연기가 아닌지 서 있는 지반마저 흔드는 엄청난 진동.
좀 천천히 접근했어야 했나.
너무 돌직구로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스스스--!
“감히 망자 따위가!!”
여우의 주변으로 무언가 모여들고 있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덩이의 지형.
지형으로 퍼져 있던 무언가가 여우의 뒤쪽으로 흘러들어왔다.
화악…!
어느 정도 모여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모여들던 게 순식간에 사방으로 펼쳐졌다.
구… 구미호?
단순히 여우를 닮은 녀석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아홉 개의 꼬리.
이것만 봤을 땐 영락 없는 구미호의 모습이었다.
쩌적.
오우.
꼬리라고 하면 보통 복슬복슬하고 두툼한 꼬리가 생각나기 마련이지만.
눈 앞에 펼쳐진 꼬리는 귀여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연기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는 꼬리.
아마 륭 할아버지가 위층에서 봤던 아가리가 저 꼬리일 것 같았다.
“망자따위가 내 구슬을 노리고 들어오다니… 먹이 주제에 용기가 가상하구나.”
“먹이?”
내 되물음에 여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연기로 이루어진 여우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먹이들이 제 발로 끊임없이 기어들어 오는, 이 몸의 천연 식량 창고이니라! 키하하하!!”
뭐… 뭐야, 무섭게.
혼자서 화내고 처웃고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가 난 여우쉨.
미친놈만큼 무서운 게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식량 창고라니.
설마?
“망자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소문, 네가 퍼뜨린 거냐?”
“정확하다. 덕분에 먹이가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지 않느냐.”
여우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여우가 그렇진 않겠지만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이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유기농 식량 보급소를 만들다니.
여우 놈은 그저 이곳에 머무르며 꼬리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잡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교활하지만 스마트해.
여우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며 옆에 서 있는 노운을 바라봤다.
노운 역시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것일 터.
헛된 발걸음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걱정하지 마.”
“응?”
그런 내 생각을 눈채 챈 걸까.
가만히 여우를 바라보던 노운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누가 퍼뜨렸든 구슬이 재료라는 건 변하지 않아.”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이야기의 주체가 누구던지 구슬이 필요하다는 확신이었다.
“도망칠 생각은커녕 아직도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터벅.
여우가 나와 노운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노운 뭐 가능한 거 있어?”
다가오는 여우를 보며 노운에게 물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노운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해 둘 생각이었다.
“음.”
잠시 생각하던 노운이 두 손을 들어 모았다.
파지직!
…!?
그렇게 노운의 두 손 사이에서 붉은 스파크가 생기나 싶더니.
포옹.
재질을 알 수 없는 작은 조각상이 생겨났다.
오… 오리쉨…?
여우에 이은 오리라니.
의아한 얼굴로 노운을 바라보자.
“연금술이 내 능력인데.”
노운이 유감이라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망자의 세계로 올 때 장갑을 놓고 와서 이 정도가 한계야.”
… 그냥 짧게 말해.
도움 되는 능력은 없다고.
“허튼 수작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도망갈 곳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얌전히….”
콰아아!
여우의 꼬리가 한꺼번에 내 쪽으로 덮쳐왔다.
“나의 먹이가 되거라!”
그렇게 신이 난 여우의 연기가 내게 다가오는 순간.
드득.
…?
착지를 한 뒤 무기고로 넣어뒀던, 평소라면 얌전히 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칼데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 * *
얼레.
여우쉨의 꼬리가 내게 덮쳐오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멈추며 검은 연기가 사방을 감싸나갔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놀라긴 했지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날 감싸고 있는 건 칼데아 윙의 연기였기 때문이다.
화악!
강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연기가 걷어졌다.
“사… 살려줘…!”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지하 구덩이가 아니었다.
주변의 공기와 분위기를 봤을 때 망자의 세계 어딘가였다.
여우쉨…?
그리고 내 앞엔 기세등등했던 여우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일렁.
눈 옆으로 연기의 일렁임이 보였다.
연기는 내 몸 전체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이카로스의 기억인가…?
“아니, 나이기 이전의 기억이야.”
“!?”
고개를 돌린 곳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그리스에서 아테네가 가지고 있던 유골을 통해 만났던 이카로스.
이카로스가 내 옆에 서 여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데아의 기억… 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칼데아의 기억이라.
칼데아는 그냥 날개의 이름이 아니었던 건가.
단순히 이카로스가 자신의 날개를 칼데아라고 부른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칼데아의 기억이라니.
이카로스는 마치 칼데아를 살아있는 존재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다시는…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그러니 제발!”
다시 한번 여우쉨이 울부짖었다.
여우가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대상은 내가 현재 들어와 있는 칼데아였다.
“….”
칼데아는 여우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고, 빙의해 있어서인지 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 하찮아서.
칼데아에게 있어 여우의 존재 의의는 아주 단순했다.
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칼데아는 목숨을 구걸하는 여우를 바라보며 살려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먹을까 말까를 고민 중이었다.
“저 바닥 밑으로! 볕이 들지 않는 지하의 구렁텅이 밑으로 처박혀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 그러니 제발… 살려다오!!”
여우의 구구절절한 목숨 구걸을 끝으로.
칼데아의 기억은 끝이 났다.
* * *
“얌전히 나의 먹이가 되거라!”
쿠아아아---!
거만하게 달려드는 여우를 보고 있자니 뭐랄까.
피식.
실소가 터졌다.
게이지가 꽉 차지 않은 칼데아가 왜 갑자기 이런 기억을 보여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억을 통해 분명해진 건 하나 있었다.
“감히.”
눈앞에 있는 건 더 이상 흉측하고 무섭게 생긴 여우 괴물이 아니었다.
앞에 있는 건….
스윽.
달려드는 여우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먹이 주제에.”
먹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