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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07화 (207/473)

207화. 성장

사뱌티의 여우.

시간을 잡아먹는 악마.

아홉 개 꼬리를 가진 공포.

‘….’

강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여우, 치라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세계의 모든 이에게 균등히 적용되는 법칙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기에 노력만으론 바꿀 수 없는 법칙.

강자와 약자의, 잡아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운명이었다.

- 난 포식자다.

치라타는 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몹시 강하게 태어났으며 높은 곳에서 군림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치라타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 살려줘!

- 콰득!

- 제발!

- 콰직!

길을 가며 만나는 모든 이를.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목숨을 구걸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저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게 최후를 맞이할 뿐이었다.

- 억울해 하지 마라! 너흰 어차피 먹이일 뿐이니!

구걸을 하는 놈들을 보면 뭐랄까, 오묘한 혐오가 피어올랐다.

날 때부터 먹이인 놈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꼴이라니.

역겹다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 쿵!

- 으아아! 치라타다!

치라타가 나타는 곳은 항상 아수라장이 됐었다.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여우 형상의 악마, 치라타.

치라타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포식자였다.

- 네… 네놈도… 먹힐 거다.

어느 날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먹이 한 명이 건방진 소리를 해왔다.

- 내가 먹이사슬의 정점이거늘. 누가 날 먹는다는 거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저 죽어 가는 먹이의 발악일 거라 생각했다.

- 서쪽에서 올… 폭풍을… 맞이하라.

여기까지 들은 후 치라타는 먹이의 목숨을 끊었다.

더 이상 헛소리를 들어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먹이가 마지막에 한 말을 잊어 갈때쯤.

- ….

치라타는 폭풍을 만났고 치욕적인 구걸과 함께 이곳으로 쫓겨나야 했다.

으드득.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치욕을 떠올리며.

치라타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화가 나서 깨문 건 아니었다.

“어… 어째서…?”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는 공포.

자신을 먹을 수 있는 포식자에 대한 공포를 견뎌내기 위해 깨문 것이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먹이에 만족하며 으스대던 치라타는 온데간데없었다.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며 서서히 연기로 된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는 여우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주춤.

치라타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토라소의 폭풍… 칼데아!!”

* * *

토라소의 폭풍?

기세등등하던 여우쉨이 바짝 쫄아 중얼거린 말이었다.

드드드…!

달려드는 여우를 보며 처음엔 악귀참도를 꺼내려 했었다.

망자의 세계에 있는 녀석이기도 했고 연기가 일렁이는 걸 보아 일반적인 공격은 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우우우우…!

그 순간이었다.

무기고의 칼데아 윙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말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칼데아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어서 날 꺼내달라는 외침이 말이다.

- [이카로스 - 칼데아 윙]

그래서 칼데아의 바람대로 꺼내주었다.

- 콰드득!

등 뒤로 날개가 펼쳐지기 무섭게 칼데아의 연기가 뿜어져 날아들던 여우의 꼬리들을 잡아냈고.

그때부터 여우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좀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여우의 몸 역시 검은색 계통의 연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칼데아랑 조금 비슷하네 생각은 했었지만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었는데.

짧게 봤던 기억과 녀석의 반응으로 보아 인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놈한테는 악연인 모양이지만.

저벅.

칼데아의 연기가 여우를 붙잡고 있는 틈을 타 걸음을 옮겼다.

“야 먹이.”

“!?”

연기로 이루어져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엄청 놀란 얼굴이었다.

상대적인 덩치로 봤을 때 개미만 한 놈이 자기를 먹이라고 불러 놀란 것 같았다.

“구슬 어디에 있어.”

“건… 건방 떨지 마라!”

이 새끼 보소.

여우의 머릿속을 들어가 본 건 아니지만.

녀석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눈에 보듯 훤했다.

착각 중이겠지.

앞에 끔찍한 공포를 심어줬던 칼데아가 있긴 하지만, 코딱지만 한 인간 따위는 별거 아닐 거란 오만한 생각.

더불어 자신의 담당 일진을 만났다는 사실을 열심히 현실 부정 중일 터였다.

기억을 조금 더 되살려줘야겠네.

“건방? 먹이 새끼가 정신이 나갔나.”

저벅.

한 발자국 더 다가서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곰팡이로 떡칠 되어 있을 듯한 습한 공간이었다.

마치 회귀하기 전에 살았던 유물관 골방과 비슷한 느낌.

“잡아먹히기 싫어서 여기까지 도망친 새끼가 말이야.”

“!!!”

여우가 동요해서일까.

녀석의 몸을 이루고 있는 연기가 크게 넘실거렸다.

“그렇게 목숨을 구걸하길래 살려줬더니… 시간이 좀 흘렀다고 다 잊어버린 모양이야.”

기억으로 거기까지 보진 못했으나.

아직 저놈이 살아있는 걸 보니 영혼을 갈아 넣은 구걸이 통한 것일 터.

그 증거로 놈의 연기는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구슬 가져와.”

척.

어느 정도의 간격에 멈춰선 후.

떨고 있는 여우를 향해 조소를 머금었다.

“그럼 살려줄게.”

* * *

예상대로였다.

교활한 건지 상황 판단이 빠른 건지.

여우쉨은 천천히 몸 안에 있던 구슬을 꺼내고 있었다.

“저거 맞아?”

확인 차원에서 뒤에 있던 노운에게 묻자.

“맞아, 첫 번째 재료.”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샤삭.

맞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빠르게 걸어가 구슬을 낚아채 왔다.

녀석의 공격 수단인 꼬리는 칼데아에 의해 무력화되었기에 갑자기 공격당할 일도 없었다.

당한다 해도 안 맞으면 그만이고.

기억으로 봤던 게 있는지라 효과적이게 칼데아로 위협을 하고 있었지만.

칼데아가 없었더라도 여우쉨 한 마리쯤은 뚝딱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반짝.

오호.

손에 들어온 구슬을 바라봤다.

크기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구슬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커다란 에너지가 응축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여우 구슬이라.

과거 설화에도 종종 등장하는 녀석이었다.

구미호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쌓아 놓는 저장소, 여우 구슬.

생명의 힘이 담겨 있는 만큼 인간이 구슬을 삼키면 영생을 얻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생은 이미 얻었으니까.

옛날이었으면 탐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에 있어 여우 구슬은 날 이곳에서 탈출시켜 줄 재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아.

잠시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뭐지.

노려보고 있는 건가.

연기로 되어 있어 헷갈리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여우년이 날 노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 같아도 화나긴 하겠다.

구걸해가며 얻은 목숨이었다.

기껏 지하에 처박혀 열심히 먹으며 힘을 비축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놈이 구슬을 날름 채갔으니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칼데아에 대해 아는 거 다 말해.”

그러든가 말든가.

내가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몰라도 너무 몰랐어.

단순히 이카로스의 날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기억 속에서 했던 이카로스의 말을 미루어보건대 칼데아의 역사는 더 오래된 것 같았다.

누군가의 날개가 아닌 칼데아라는 존재로 말이다.

“토라소라는 지역이 있었다.”

구슬을 내주며 자포자기해서일까.

여우는 순순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줬다.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죽는 약육강식의 대표격인 지역이지.”

노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추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망자의 세계에도 여러 지역이 있는 모양이었다.

오면서 만난 사람들이나 여우를 봤을 땐 망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곳에서 태어나는 존재는 모두 검은 연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끊이지 않는 식탐을 갖고 태어나지.”

“너도 연기잖아.”

“처음부터 연기였던 건 아니다. 먹다 보니 연기가 된 것일 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연기가 아니었는데 먹이를 잡아먹다 보니 검은 연기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

짭 연기였구먼.

여우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

계속 말해보라는 의미로 턱을 까딱였다.

“포식자들이 드글대는 토라소를 쓸어버렸던 게 포식의 태풍 칼데아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무슨 소리지.

팔짱을 낀 채 여우의 말을 경청하긴 했지만.

그다지 쏙쏙 이해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요컨대.

칼데아는 강자들이 득실대는 지역을 씹어먹었고.

먹을 게 없어지자 망자의 세계에 있는 다른 지역으로 가 포식을 하다 여우를 만났다는 건가.

나름 잘 요약을 한 듯했지만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포식을 해대던 칼데아는 어째서 이카로스에게 깃들게 된 걸까?

여우가 알 리는 없을 듯하고.

이제 보니 여우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녀석이었다.

토라소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길을 가다 칼데아란 절대 포식자를 만난 거니까.

그런 여우가 칼데아에 대해 더 아는 건 불가능해 보였기에.

슥.

어깨를 으쓱 올리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당장 급하게 알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날개가 성장해 나감에 따라 보이는 기억 또한 늘어날 터였다.

덥썩.

내려올 때 먼저 던졌던 꾸러미를 챙겼다.

추락 전에 잘 잡아서인지 상한 곳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필요한 것도 다 구했으니 올라가 볼까.

찌릿.

여우로부터 등을 돌린 이후부터.

뒤통수가 뚫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레이져가 나오는 눈으로 내 뒤통수를 노려보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감각이었다.

“아 맞다. 나도 말해 줄 게 하나 있는데.”

“…?”

정보 제공은 보통 기브앤테이크였다.

별 도움은 안 됐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한 여우에게도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줘야 했다.

주섬주섬.

말을 건네기 전.

꾸러미에서 바나나 하나를 꺼냈다.

“칼데아는 자비를 베풀어서 널 살려 준 게 아니야.”

“뭐…?”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 칼데아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까부터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먹어.]

“잠시 놓아준 거지.”

휙!

들고 있던 바나나를 구덩이 위로 힘껏 던졌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지. 지금 놓아주면 나중에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파사삭!

위로 올라가기 무섭게 바나나가 썩어 문드러졌다.

“!!”

“이 교활한 여우 새끼야.”

잊지 않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며 구덩이를 올라오자 노화했다는 륭의 이야기를 말이다.

여우쉨은 애초부터 날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위로 올라가며 저주의 먹이가 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뿐이었다.

이 정도면 잘 참았다.

스윽.

천천히 몸을 돌려 당황하는 여우를 바라봤다.

“아… 잠… 잠깐…!”

지겨운 구걸을 또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때를 기다리며 일렁이고 있던 칼데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식사 시간이다.”

콰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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