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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08화 (208/473)

208화. 돌멩이가 금으로

터벅.

이거 참 부담스럽구만.

위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이의 시선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악수 요청까진 안 와서 다행인 건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며 거의 도착한 길을 바라봤다.

망자의 세계를 나가기 위한 첫 번째 재료, 여우 구슬을 구하기 위해 도착한 구덩이.

내려갈 땐 자유낙하였지만 지금은 온전히 두 발을 이용해 올라가고 있었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는데도 저주에 안 걸리는 거지?”

“어이! 저기 아래서 뭘 봤어!?”

“왜 다시 올라가는 거야?”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혹여나 저주에 걸려 늙어버릴까 한 발자국도 뒤로 가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놈들이 나타났으니 당황스러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흠.

날개로 한 번에 올라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무기고에 있는 칼데아의 감각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되지.

약간 뭐랄까… 먹튀…?

조금 전.

먹으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데아의 연기가 여우쉨을 덮쳤었다.

- 오… 오.

뭔가 묘한 광경이었다.

보통 생물체 간의 포식 장면은 몹시 잔인한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칼데아의 식사는 달랐다.

찐한 색의 검은 연기가 덜 진한 색의 검은 연기를 잡아먹는 모습.

그래도 조금 웅장하긴 했어.

피가 튀거나 살이 찢기진 않았다.

그럼에도 장면을 바라보는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포식이었다.

명확히 형상화되진 않았으나 여우의 연기를 닥치는 대로 흡수해버린 칼데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하는 정갈한 식사라기보단 게걸스럽게 해치워버리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여우의 연기를 먹어 치운 다음이었다.

먹을 것도 다 먹었겠다 이제 좀 올라가볼까 했었는데.

마치 연기를 다 소모했을 때처럼 칼데아가 사라지며 해제되어버렸다.

알다 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연기를 먹었으면 이제 더 빵빵해졌을 텐데 왜 사라져!

라는 마음에 무기고로 호다닥 쫓아 들어갔었다.

- 고오오오.

크기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단지, 상태가 조금 달랐다.

이전엔 독수리 날개를 닮은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면, 지금은 연기가 똘똘 뭉쳐 커다란 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소화.

연기로 된 구체를 보며 떠오른 단어였다.

오랜만의 식사였기 때문일까.

급격히 쏟아져 들어온 연기를 자신의 것으로 동기화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이지는 꽉 차다 못해 넘어가 있네.

처음이었다.

게이지가 다 찬 무기가 어떤 조건이 만족될 때까지 개방되지 않은 적은 많았지만.

게이지를 넘어간 상태로 무기고에 있는 것은 말이다.

거기다 게이지 자체도 무기를 사용해서 채운 게 아니었다.

매번 날개를 꺼내 이동했음에도 쥐똥처럼 상승하던 게이지가 여우쉨 한 마리를 먹자 폭발하듯 상승했다.

무기를 성장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인가.

무기고에 대해 모르는 게 아직 너무 많구나란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려가지 말고 올라가세요!”

앞의 사람들에게 올라가라고 말을 건넸다.

-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주자.

소화를 위해 무기고로 들어간 날개를 대신하여 수리검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잠시 위를 바라보던 노운이 입을 열었었다.

- 무를 향해 계속 걸어 내려오는 건 불쌍하니까.

슥.

고개를 돌려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노운을 바라봤다.

착하단 말이야.

솔직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냥 첫 번째 재료를 구했으니 바로 다음으로 가볼까 하고 있었으니까.

- 네가 나타나 구슬을 차지하든 하지 못했든, 어차피 저들에겐 헛걸음이었겠지만.

노운은 마지막에 묘한 말까지 덧붙였었다.

무슨 말인지 물어볼까 했지만 일단은 이 눅눅하고 습한 구덩이를 벗어나는 게 먼저였기에.

오랜만에 좋은 일이나 좀 하자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벅.

그렇게 매크로 같은 멘트를 계속 건네며 꽤 오랜 시간을 걷고 나서야.

“후웁… 하아!”

처음에 뛰어내렸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좀 살 거 같네.”

바깥도 그다지 상쾌한 공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습기까지 더 해진 아래보단 훨씬 나았다.

“올라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네.”

정상에 도착한 뒤 돌아본 구덩이.

구덩이에 있던 이들은 우리 쪽에 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알려줘야 할 건 다 알려줬으니까. 이후부턴 저들의 선택이야.”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덤덤하게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노운.

“너… 너희들! 어떻게!?”

아 한 명 더 있었지.

구덩이로 뛰어내리기 전에 만났던 할아버지, 륭.

륭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와 노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음.

그냥 가는 게 낫겠지.

륭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옳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륭은 여우의 저주로 노화해버렸고, 저걸 되돌릴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꾸벅.

건넬 말도, 건넨다고 해서 좋은 말도 없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륭을 지나쳤다.

* * *

“어때? 너가 말한 재료 맞아?”

이리저리 돌려보며 구슬을 살피고 있는 노운.

그렇게 한참을 관찰하던 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생각했던 것보다 에너지도 가득 차 있고.”

“이제 두세 개 남은 거지?”

노운이 턱을 문지르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 개면 될 거 같아.”

“!?”

잠시 대답을 망설이길래 찾아야 될게 늘어난 건가 긴장 중이었는데.

오히려 재료의 숫자는 한 개로 줄어 있었다.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재료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슥.

내게 구슬을 건네며 노운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에너지가 충분해서 필요 없을 거 같아.”

“오…!”

건네어진 구슬을 받아 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노운이 정확히 뭘 만들려고 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료가 줄었다는 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됐단 것이었다.

“이젠 이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쏘아낼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 거야. 이제 구하러 가는 건 그 장치의 재료고.”

문을 열 수 있는 에너지와 에너지를 쏘아낼 방향을 정하는 것.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일차원적인 메커니즘 같았다.

얘는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지.

망자의 세계로 오기 전 과학자 혹은 발명가였을 거란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엄한 세계에서 이렇게 척척 장치와 필요 재료를 떠올리다니.

갈수록 정체가 궁금해지는 녀석이었다.

관상은 참 좋은데.

관상은 과학이다 파지만 그렇다고 마냥 맹신하는 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스며들듯 자연스레 동행하게 된 노운.

나의 필요로 인해 시작된 동행이었지만 난 아직 노운을 100%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운에 대해 아는 게 없어도 너무 없었다.

라면 한 사발이하고.

사과 몇 개 먹고.

텐트 구석탱이에서 자고.

구덩이 내려가서 구슬 구해오고.

노운과 함께 했던 전부였다.

- 나가게 도와줄 테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아직 그 부탁이 뭔지 듣진 못했으나.

그나마 노운에게 신뢰가 생긴 구간이었다.

무조건적인 선의를 경계하는 나였기에 노운과 주고받을 게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마음이 놓였었다.

파지직.

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중.

옆에 있던 노운의 손에서 붉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구덩이에서 오리를 만들었던 스파크였다.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네.

여우가 앞에 있던 상황이라 물어보는 걸 잠시 미뤘었는데 완전히 망각하고 말았다.

“그건 뭐야?”

당시엔 싸움에 전혀 쓸모 없는 오리가 튀어나와 고개를 휙 돌렸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신기한 능력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손에서 오리 조각상이 튀어나오다니.

파지직.

“아거?”

노운이 스파크 튀는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연금술.”

* * *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단지 멍한 얼굴로 노운을 바라봤다.

연금술…?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들어본 적 있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나 구리 같은 걸 금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 맞지?”

역사책에도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였다.

각 시대마다 연금술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애초에 성질이 다른 광물들은 절대 금으로 변하지 않았다.

“철로는 금을 만들 수 없다. 이게 당시의 결과였어.”

스윽.

걸어가던 노운이 쭈그리고 앉아 바닥의 모래를 집었다.

“사실 그런 시도 자체는 연금술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거야. 철로는 금을 만들 수 없다.”

파직!

오…?

스파크가 튀나 싶더니 노운의 손바닥 위에 있던 모래가 작은 코인으로 변했다.

파삭.

잠시 후 다시 모래로 돌아가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어.”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며 노운이 무언가를 읊었다.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

“등가교환의 법칙.”

반사적인 내 대답에 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을 사용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법칙이야.”

툭툭.

자리에서 일어난 노운이 손을 털었다.

“그런데 철을 대가로 금을 얻고자 했으니, 급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던 거지.”

“난 연금술이란 게 단순히 화학적인 실험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네.”

“대부분은 그랬어. 애초에 연금술을 하던 사람들은 거의 화학자였으니까.”

약간이지만 노운의 손에 남아있는 스파크를 바라봤다.

연금술이란 조금 특별한 화학 실험을 일컫는 단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능한 사람이 있었다니.

역시 화학 쪽에 종사하던 과학자였나.

“음.”

자신의 손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를 바라보며 노운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손을 쳐다보는 표정이었다.

“난 언제부터 이런 걸 할 수 있었던 거지.”

“….”

무언가 물으려고 했으나 노운이 한 말에 조심스레 입을 다물었다.

본인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본능적으로 방법은 알고 있지만 사용하게 된 계기 같은 것을 말이다.

“신기하네.”

“뭐가?”

“원래 어제까진 몰랐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갈수록 당황스럽게 만드는 노운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알겠더라고.”

어제까진 몰랐던 연금술을 오늘은 사용하고 있다는 것.

“왠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어.”

저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던 기억이 정상화 되고 있단 이야기일 테니까.

“안개에 싸여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걷히는 느낌이야.”

“한참 그랬던 거 아니야? 왜 갑자기?”

“으음… 아마도.”

노운이 얼빠져 있는 내 얼굴을 응시했다.

“망자가 아니면서도, 내 기억이 만들어진 세계에서 온 너랑 가까이 있어서겠지.”

노운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거짓말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진 항상 침착하고 흔들림 없던 노운의 눈동자가 잠깐이지만 불안정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노운도 당황하고 있었다.

“조금 떠올라서 그런가 궁금해졌어.”

스윽.

노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난 누구였고.”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뭘 잊어가고 있었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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