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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09화 (209/473)

209화. 두둥실

백운과 노운의 등장으로 소란이 일어났던 구덩이.

구덩이 옆에 앉은 륭이 백운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무언가 달랐다.’

륭에게 무언가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인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이 노화한 채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자신이나 구덩이를 빙글빙글 끊임없이 내려가고 있는 저 사람들과는 달랐다.

‘온기… 같은 건가.’

정확한 표현을 떠올리기 위해 륭이 인상을 찌푸렸다.

구덩이에서 올라온 백운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느껴졌었다.

완전히 사라져버려 잊힌 무언가가 백운에게서 만큼은 강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살아있는 느낌.’

륭은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약간의 혼동을 느끼고 있었다.

백운에게서 느껴지는 온기가 없는 자신은 그럼 뭐란 말인가?

‘난 뭐지?’

분명 숨을 쉬고 말을 하고 있음에도 륭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몰랐지만 차이점을 가진 이를 만나며 생긴 변화였다.

… 구구…!

그렇게 륭이 갑자기 찾아온 괴리감에 당황하고 있을 때.

앉아있는 지면으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

처음엔 잘못 느낀 건가 싶었지만.

구구구…!

진동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땅이 흔들리는데.”

진동이 어느 정도 다가오자 아래로 내려가던 이들도 구덩이 밖을 바라봤다.

뭐가 다가오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늙어버리는 저주가 두려워 감히 위를 향해 올라가 보진 못했다.

“어이! 거기 위에! 무슨 일이야!?”

“궁금하니까 말 좀 해봐! 아직 있지!?”

내려올 때 만났던 노인 륭을 떠올리며.

구덩이에 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

분명 밖까지 들렸을 텐데도.

어째선지 륭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어… 어!”

“꽉 잡아!”

어느새 다가온 진동은 구덩이의 이들이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 밖에 있던 륭만이 유일하게 그 진동의 정체를 보고 있었다.

“….”

륭은 구덩이 안에서 물어오는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하지만, 대답하는 건 불가능했다.

‘뭐… 뭐야 저건.’

처음엔 빛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었다.

망자의 세계 자체가 빛이라고 표현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밝기를 가졌지만.

그 작은 빛마저 소멸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먼 지면으로부터 서서히 검은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라라라--!!”

“크어어어!”

밀려드는 물결에서 쏟아지는 포효에 륭이 몸을 움츠렸다.

머리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울음소리였다.

‘수만… 수십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위압감이었다.

지형이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숫자.

이 세계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망자들의 군세였다.

털썩.

륭이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떨기 시작했다.

서 있기 힘들게 만드는 진동도 진동이었지만, 이런 광경을 보고도 다리가 풀리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

그렇게 륭이 망연자실한 상태로 군세를 바라보고 있기를 한참.

다그닥… 다그닥.

겁에 질려 있는 륭에게 한 명의 망자가 다가왔다.

한 명의 망자라고 하기엔 존재 자체가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지는 자였지만.

달리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륭의 머리엔 떠오르지 않았다.

다그닥.

그대로 떨고 있는 륭을 지나쳐 구덩이 바로 앞까지 걸어간 망자의 왕, 카사락.

카사락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구덩이를 내려다봤다.

“…!!”

카사락의 등장에 웅성거리던 구덩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어느 누구도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단순히 겁에 질려서는 아니었다.

격차.

이 세계에서의 카사락은 감히 말을 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찌꺼기를 먹던 녀석이 사라졌군.”

치라타가 사라졌다는 걸 인지한 카사락.

카사락의 푸른 안광이 묘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규율을 어긴 것도 모자라 혼돈을 가져오고 있구나.”

다그닥.

잠시 구덩이를 바라보던 카사락이 몸을 돌렸다.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수십만의 망자.

카사락이 망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청소부가 없어졌으니.”

다그닥.

해골마를 탄 카사락이 륭을 지나치며.

망자들에게 짧은 명령을 내렸다.

“치워라.”

* * *

“….”

가만히 멈춰 서 앞에 있는 걸 바라봤다.

뭐냐.

강아지 같이 생겼지만.

“멍옹.”

라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놈이었다.

어째서 저놈은 고양이처럼 우는 걸까가 첫 번째 의문이었고.

“잠깐만 기다려.”

저런 놈을 노운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두 번째 의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 벽에 숨어 있으니 나타난 개냥이 녀석.

갑작스러운 등장에 난 잠시 뇌정지가 왔지만 노운은 익숙한 듯 몸을 숙이고 개냥이를 반겨줬다.

뒤적뒤적.

꾸러미 안을 뒤지던 노운이 플라스틱과 철로 이루어진 스팸통을 꺼냈다.

- 이건 챙겨둬야 돼.

스팸을 다 꺼내 먹은 뒤 휙 버리려던 찰나였다.

쓸데가 있다며 통을 챙겨두자 했었던 노운.

저걸로 뭘 하려는 거지.

“선물을 줘야 돼. 여우 구슬에 대해 알려 준 아이야.”

“!?”

정보를 알려줬단 말에 저게?! 란 눈으로 멍냥이를 바라봤다.

둘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은 건지 늠름하게 몸을 세우는 녀석.

그런 녀석을 보며 잠시 웃어 보인 노운이 말을 이어갔다.

“망자의 땅 여기저기를 떠도는 아이야.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기에 못 가는 곳이 없어.”

저 녀석이 우리보다 먼저 구덩이에 내려갔었던 건가.

약간이지만 노운에 대한 의문점 하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노운은 내려가 보지도 않은 구덩이에 구슬이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던 건지 줄곧 궁금했었는데.

빠안.

저런 멍냥이에게 그런 비밀이 있을 줄은.

“토라소.”

“!?”

그나저나 노운은 멍냥이 언어를 어떻게 알아들은 건가 새로운 의문점이 피어나려는 찰나.

멍냥이의 입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분명 여우가 칼데아 대해 말할 때 들었던 장소였다.

“그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선물은 하나야.”

대충 던져진 듯한 말에 대답한 노운이 스팸통 두세 개를 들고 걸어 나왔다.

파지직!

노운의 손으로 일어나는 붉은색 스파크.

스파크와 함께 스팸통들이 뒤섞이는가 싶더니.

뿅.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고양이 모양의 조각상이 생성됐다.

오…오.

노운의 솜씨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고양!”

이번엔 고양이처럼 운 멍냥이가 노운에게 달려갔다.

조각을 물려주자 신이 나 주변을 몇 바퀴 빙글빙글 도는 녀석.

“잘 가, 또 보자.”

익숙한 일인 듯 노운이 멍냥이를 향해 손을 몇 차례 흔들고 몸을 돌렸다.

나도 비슷한 장단에 맞춰 손을 두어 번 흔들어준 뒤 노운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 멍냥이도 제 갈 길 가겠지 생각하는 순간.

“도망가.”

조금 전과는 달리 착 가라앉은 멍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동시에 멈춰 서 뒤를 돌아봤다.

“같이 있으면 안 돼.”

멍냥이의 반짝이는 눈이 날 응시했다.

“규율을 어겼어.”

* * *

멍냥이쉨!

길을 걸으며 조금 전 만났던 멍냥이를 떠올렸다.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네.

날 노려보며 노운에게 도망가라고 말한 뒤 멍냥이는 모습을 감췄다.

마치 나랑 있으면 위험하니 당장 떨어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스윽.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노운을 바라봤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나란히 걷고 있는 노운.

멍냥이의 말을 듣고도 노운은 약간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걸으며 꾸러미에 있는 과일을 꺼내 먹을 뿐이었다.

- 별일 아니야.

멍냥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물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노운은 별거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분명 뭔가 알고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 망자를 죽였다고 하자 노운은 분명 말했었다.

- 완전 규율 위반이지.

규율 위반.

내가 뭘 위반했는지는 대충 감이 왔다.

원래라면 죽일 수 없는 망자를 죽인 것.

내가 어길만한 건 이것뿐이었다.

문제는 망자를 죽인 일이 이 세계에서 얼마나 큰 위반이고 잘못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음.

멍냥이가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도망치라 했던 거 보면… 날 잡으려고 뭐라도 오고 있는 건가?

이 세계엔 망자를 죽여선 안 된다는 규율이 있으며 이것이 깨어졌을 때 바로 잡으려는 존재가 있다는 것.

내가 유추해볼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였다.

쩝.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무언가 더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기에.

콧방귀를 뀌며 어깨를 으쓱였다.

날 잡으러 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땐 규율 위반이 아니라 파괴자가 되는 거지.

무식하게 도출된 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토라소라고 했지?”

바나나를 우걱거리던 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사과만 조지더니 점점 먹는 스팩트럼이 넓어지고 있는 노운이었다.

“토라소에서만 길을 여는 게 가능하거든.”

“무슨 장치라도 있는 거야?”

잠시 말을 멈춘 노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모습이었다.

“장치라고 할 수도 있고 흔적이라도 할 수 있어. 문이 한 번이라도 열렸던 곳에 남는 흔적이랄까.”

간신히 기억을 되살려 말을 이어가는 노운이었기에.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고 묻진 않았다.

어차피 이미 탑승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난 노운이란 배에 탑승한 것이었다.

이것저것 의문점 투성이었지만 어차피 노운이 아니면 이곳에서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한 상태.

배의 목적지가 어디든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노운이 없으면 난 세계 미아야.

다시 한번 스스로의 현실을 자각한 후.

걷고 있는 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턱.

엇.

길을 걸을 땐 앞을 잘 보며 가라고 누누이 들었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버렸다.

갸우뚱.

순간적으로 등에 메고 있던 짐이 기울어지며.

데구르르.

노운이 꺼내먹기 좋게 맨 위에 올려놨던 사과 몇 개가 굴러떨어졌다.

마이 애플!

싱그러운 사과가 황폐한 땅에 떨어질까 손을 황급히 뻗어 두어 개를 잡아냈지만.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한 나머지 한 개마저 구하기엔 조금 늦을 것 같았다.

하나는 낙오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으면서도.

늦은 타이밍에 떨어진 한 개는 멍냥이에게 줬다 치자라고 체념했다.

두둥.

!?

텁.

예상과 달리 손에 붙잡혀 있는 사과를 바라봤다.

뭐야?

조금 전 분명히…?

내 손이 낚아채기 전.

사과는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낙하를 멈추고 공중에 머물렀던 사과.

스윽.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과가 떨어지던 방향으로 뻗어진 노운의 손이 보였다.

파지직.

손에선 붉은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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