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내 이름은
다가오는 노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었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하얀 더벅머리와 안경.
온종일 붙어 다닌 탓인지 이제 안 보이면 허전할 것 같은 노운이었다.
“….”
신기한 일이었다.
만난 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게 아닌데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그리고.
“날 죽여줘.”
반가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에 말했던 부탁을 하겠다며 입을 연 노운.
당연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애초에 노운이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어떤 어려운 부탁을 하든 상관없이 전부 들어줘야지 마음먹었었는데.
“뭐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예상하던 부탁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죽여달라니.
차라리 뒤에 있는 망자들을 죽여달라는 부탁이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운이 죽여달라고 말하는 대상은 카사락이나 망자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었다.
“잔인한 부탁인 거 알아. 하지만 들어줬으면 좋겠어.”
놀란 내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노운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너밖에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없거든.”
노운이 고개를 돌려 여전히 무릎 꿇고 있는 카사락을 응시했다.
“카사락도 망자를 소멸시키는 건 가능하겠지만… 뭐랄까, 저자에게 당하는 건 정말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 같거든.”
“잠깐만.”
따라가기 힘든 진행이었다.
망자를 베는 데 있어 나와 카사락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당장은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한 건 왜? 였다.
“어째서 널 죽여달라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에는 지구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려있었다.
이젠 방황을 끝내고 나와 함께 나가면 될 터였다.
노운이 살아왔던 시대는 없겠지만.
노운의 정체를 아직은 알 수 없었으나.
옷차림이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땐 꽤 오래전의 사람이었다.
지금 지구로 나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노운을 맞이하겠지만.
황량하기 짝이 없는 망자의 세계보단 분명 백배 천배는 더 좋은 세계였다.
“같이 나가자. 어차피 지구도 데몬이고 능력이고 나타나서 개판이야! 나도 아직은 낯선 세계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웃으며 날 바라보던 노운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왜 이곳을 벗어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려는 건지 물으려는 순간.
쐐엑.
노운이 들고 있던 날붙이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이런 미…!?”
무슨 짓이냐고 소리 지르며 손을 내밀려고 했지만.
…!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날붙이가 목에 닿았었다.
피가 흩뿌려졌어야 정상일 텐데.
사락.
노운의 목은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질 뿐이었다.
내가 악귀참도를 구하기 전 면도칼로 망자를 베었을 때처럼 말이다.
“난 나갈 수 없어. 내가 속해있는 곳은 여기, 망자의 세계거든.”
스윽.
노운이 쥐고 있는 주먹을 천천히 내 손등으로 올렸다.
“육신을 잃은 자의 온도야.”
날붙이로 목을 긋는 돌발 행동에 놀랐었는데.
놀랐던 마음이 손등에 닿고 있는 온도로 인해 진정되어가고 있었다.
차갑다.
노운의 손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없는 게 불가능한 온기가 말이다.
약간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몰랐지.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주 앉아 먹은 밥만 해도 적지 않을 텐데.
단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 내 생각에는 말이야.
황량한 길을 걸으며 쉴새 없이 대화를 나눴었다.
시간이 되면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고, 식사 후엔 가방에 있는 과일까지 꺼내 야무지게 먹었었다.
- 와삭!
나보다 훨씬 잘 먹었었다.
과일 중에도 특히 사과만 집요하게 폭격했던 노운.
사과를 못 먹은 게 한이 됐나 싶을 정도로 노운은 사과를 열심히 집어먹었다.
… 모르는 게 당연하네.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는데 어떻게 눈치챌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확신했던 것이다.
당연히 문을 연 이후엔 나와 같이 망자의 세계를 떠날 거라고.
“아직 모든 게 기억난 건 아니야. 그래도 너와 지내면서 많은 게 기억났거든.”
노운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기억났다고 밝힌 것들을 하나씩 곱씹어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망자의 세계에 온 이후 나는.”
* * *
“그렇게 흘러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여기까지가 내가 떠올린 기억의 전부야.”
노운은 아직 스스로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망자의 세계로 빨려들기 바로 직전의 상황만 기억하고 있을 뿐.
육신이 있을 때의 기억 역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휙.
고개를 돌렸다.
어느샌가 서 조용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카사락.
노운이 겪은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난 저자를 원망하지 않아.”
“…!”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노운이 진정하라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다 잊어버렸거든. 이제 와서 굳이 복수하거나 그러고 싶지도 않고.”
톡톡.
노운이 손으로 스스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 육신을 버리기로 한 건 내 선택이야. 누구도 등 떠밀지 않았어.”
도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였으면 당장 원인을 제공한 카사락이란 놈을 박살 내버렸을 텐데.
노운은 자신의 선택이라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내 부탁, 들어줄 거지?”
다시 한번 느끼지만, 신기한 녀석이었다.
자기를 죽여달란 부탁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하다니.
세상에 이런 인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웃고 있는 노운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까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고개를 저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노운이 덤덤하게 들려준 이 세계에서의 이야기.
이야기를 들으며 노운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부탁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다시 잊고 싶지 않거든.
노운은 단순히 망자의 세계에서 평생 살아가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을 서서히 잊어 간다는 것.
노운이 두려워함과 동시에 가장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지 않으니까.
경우는 달랐지만 나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한 명 두 명씩 떠나가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를 말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거겠지…?”
“응.”
노운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육신을 잃은 노운이 망자의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가는 건 불가능했다.
노운은 계속 이곳에 머물러야 했고.
내가 균열을 타고 떠나는 순간 나로 인해 되살아났던 기억들은 모두 잊혀질 터였다.
“까먹은 것 같아서 다시 말하지만, 넌 날 죽이는 게 아니야. 이곳으로부터, 끝없는 망각으로부터 날 벗어나게 해주는 거지.”
이야기를 하던 중 노운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약간 정정했었다.
죽여줘에서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으로 말이다.
“안 까먹었어.”
“다행이네.”
싱글대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게 지금 죽여달라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얼굴이란 말인가.
“잠깐만 기다려.”
기다리라는 말을 건네며 몸을 돌렸다.
저벅.
날 지켜보고 있는 카사락에게 걸어갔다.
카사락과 망자 모두 아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울부짖거나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골쉨!
마음 같아선 사건의 원흉인 카사락을 줴패 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운의 말을 떠올리며 간신히 참을 인을 새겨 넣었다.
“….”
가만히 날 응시하고 있는 카사락에게 입을 열었다.
“육신을 잃은 사람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겠지?”
“없다.”
이 새끼가 고민도 안 해보고.
약간의 텀도 없이 대답하는 게 얄미웠지만.
그만큼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의미했기에 더 묻진 않기로 했다.
“난 이 세계의 왕이지만 떠나가는 망자의 혼조차 붙잡지 못한다. 다른 세계의 생명을 되돌릴 수 있을 리가 없지.”
합리적인 변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사락과 망자들에게 더 볼 일은 없었다.
이젠 떠나기 위해 몸을 돌리기 전에.
스윽.
카사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의아해하는 카사락에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불러야 하지?”
“….”
가만히 내 손을 응시하던 카사락이 손을 들어 올렸다.
앙상한 해골만이 남은 망자의 손.
카사락이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 내민 내 손에 가져다 대었다.
“리베 토 아스가.”
카사락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주문 같았다.
스르르.
주문이 이어지며 카사락의 손으로 푸른 기운이 일렁였고.
곧 일렁이던 기운은 흘러나와 내 손등에 문신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두 개의 낫 사이에 사각형의 문이 서 있는 모양의 문신.
뼈로 이루어진 듯한 낫과 문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괴함이 느껴졌다.
스륵.
손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지고.
손등에서 손을 뗀 카사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요로 할 때 문을 열면.”
고오오오…!
카사락을 포함한 수만의 망자가 안광을 일렁이며 날 응시했다.
“내가 갈 것이다.”
카사락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스윽.
몸을 돌려 기다리고 있는 노운에게 걸음을 내디뎠다.
* * *
우우우웅…!
망자의 세계를 벗어나는 균열 앞.
균열은 이질적인 밝은 빛을 쉴새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네가 나갈 때까지는 유지될 테니까 겁먹지 마.”
균열 앞에 나란히 선 노운이 말을 건네왔다.
“겁 안 먹었어.”
이 순간에 와서까지 딴 얘기를 하는 노운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있던 긴장과 슬픔마저 없애버리는 녀석이었다.
“준비됐어?”
이쯤되니 어이가 없었다.
보통은 반대로 물어보는 게 정상일 텐데.
노운은 내게 준비됐냐고 묻고 있었다.
[척준경 - 악귀참도]
내 손에 쥐어지는 악귀참도를 보며 노운이 미소를 머금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너라면 또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네.”
이번 말에는 나도 모르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겠으나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스윽.
노운이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부탁할게.”
“….”
그런 노운을 바라보며 한차례 심호흡을 한 후.
스윽.
천천히 악귀참도의 검 끝을 노운의 심장으로 가져갔다.
꽈악.
망설여지려는 검을 부여잡으며.
노운의 심장으로 검을 밀어 넣었다.
사락.
연기에 검을 넣는 느낌과 함께.
검이 닿은 심장을 기점으로 노운의 몸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 이런 느낌이었구나.”
흩어지고 있는 건 자신의 몸인데도.
노운은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빛의 입자가 되고 있는 몸을 내려다봤다.
“…?”
스윽.
하도 조용해서일까.
흩어지는 몸을 바라보던 노운이 고개를 들었다.
“안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네.”
“거 좀… 마지막까지.”
나도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피식.
날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터뜨린 노운이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사과 있으면 하나만 줄래?”
“….”
어이가 없었다.
이 지경이 돼서도 사과를 달라니.
없어진 어이야 어쨌든.
호다닥.
빠르게 메고 있는 가방을 뒤져 사과 하나를 꺼내 건네었다.
스륵… 툭.
“이런.”
“…!”
그대로 노운의 손을 통과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과.
“아.”
잠시 떨어진 사과를 바라보고 있던 노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억났다.”
“…?”
어느새 목 바로 아래까지 푸른빛으로 변해버린 노운이었다.
“잘 기억해둬, 내 이름은.”
노운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날 응시했다.
“아이작.”
“!!”
“아이작 뉴턴.”
스르륵…!
몸이 완전히 빛으로 흩어짐과 동시에.
마지막 목소리가 내 귓가로 울려 퍼졌다.
“또 보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