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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18화 (218/473)

218화. 돌아가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푸른빛의 입자.

“하아.”

빛이 완전히 사라짐을 확인하고 나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헤어짐이 슬퍼 눈물이 흐르거나 하진 않았다.

헤어지기 전까지 이야기했던 대로 왠지 마지막이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윽.

악귀참도를 쥐고 있는 손을 내려다봤다.

미세하지만 계속해서 떨리고 있는 손.

아까의 떨림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

망설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다시 만날 거라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별개였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이의 심장으로 검을 찔러 넣는데 어찌 망설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거 참.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힘을 줬었다.

끝까지 어이없게 만들며 농담이나 건네던 녀석이었지만.

이런 내 망설임과 떨림을 보면 떠나는 순간에 죄책감을 가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이구만.

검을 잡은 손이 떨린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하운드를 마주했을 때도, 무기를 얻으며 몇 번이고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도.

회귀한 이후 단 한 순간도 떤 적이 없었는데 기묘한 일이었다.

스르르.

악귀참도를 해제하고 나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어졌다.

잠시 그 상태로 멈춰있다가.

“하압!”

짜악!

얼굴을 두드리며 멍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우울해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작의 말대로 다시 만나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역시 과학자였어.

처음 봤을 때부터 예전 시대의 과학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예리함을 재확인하며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유사 과학의 힘은 위대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물론.

- 아이작 뉴턴.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아이작 뉴턴은 단순히 유명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사람이었으니까.

“쒸잍…! 아이작 뉴턴이라니!”

온몸으로 느껴지는 소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작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달라며 말을 덧붙였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자신의 유명함을 몰랐던 건가.

동명이인은 아니겠지.

책을 읽으며 봤던 아이작 뉴턴과는 이미지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위인서에 그려져 있던 아이작 뉴턴은 고뇌의 흔적인지 폭삭 삭아버린 얼굴과 과학자 특유의 딱딱함 및 괴짜다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인물이었다.

아 괴짜다움은 똑같네.

하나를 제외하곤 완전히 달랐다.

어릿어릿한 건 물론이고 딱딱하긴커녕 호기심이 가득해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른보다는 어린아이에 훨씬 가까운 이미지.

책을 완전 대충 읽었어.

지금 돌이켜보니 아이작의 정체를 떠올릴만한 게 꽤 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았다.

아니지.

생각해보니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정상인 거 같기도 했다.

아이작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통해 중력을 발견하긴 했지만.

무슨 애플 홀릭인 것마냥 사과를 미친 듯이 먹어대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 파지직.

아이작의 손에서 피어올랐던 붉은 스파크를 떠올렸다.

역시 알아차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누가 그걸 보면서 연금술을 떠올리고 과거의 과학자를 생각해낼 수 있겠는가.

연금술이라… 진짜 있던 거였어?

노운이 아이작 뉴턴이란 걸 알게 되며 새롭게 생긴 의문이었다.

다른 광석을 금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되었던 연금술.

많은 과학자가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연금술에 시도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전부 실패했다고만 들었을 뿐 성공 사례는 없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정설이었다.

- 그라비티 디바이스.

거기다 아이작이 사용한 연금술은 단순히 물체를 만들어내고 바꾸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 번뿐이지만 카사락의 무효화시켰던 힘.

그건 분명 중력이었다.

“하아.”

공식적인 개방의 시대 전에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과 존재가 있었다.

이 사실을 무기를 구하며 누구보다 많이 접해온 나지만.

접할 때마다 설명하기 힘든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가만히 서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서일까.

어느샌가 손의 떨림도 멈춰있었다.

스윽.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망자의 세계를 살폈다.

텁텁한 공기는 물론이고 생명이라곤 풀 한 포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세계.

삭막하기 짝이 없는 세계라 미련이 남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짧은 기간 적지 않은 일을 겪어서일까, 아니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라 생각해서일까.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었다.

….

그렇게 잠시 망자의 세계를 둘러보다가.

꽈악.

메고 있는 가방의 끈을 고쳐 잡으며 몸을 돌렸다.

우우우웅…!

저벅.

아이작이 열어 준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세계에서 목적했던 바는 모두 이루었다.

친구를 구했고, 친구를 만났다.

이제는.

저벅.

돌아갈 시간이다.

* * *

지글지글.

서울 강남의 소고깃집.

“냠.”

척유라가 구워진 고기를 집어 물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소고기의 담백함과 고소함에 척유라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유라야, 맛있어?”

고기를 우물거리며 척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척유라와 소고기, 그리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찹쌀떡까지.

낯설지 않은 조합이었다.

“생활하면서 불편한 건 없어?”

“네 없어요.”

존댓말을 하는 척유라에 전수희가 끼잉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산에 온 척유라의 담당자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주말이면 외곽으로 놀러 간 적도 있으며 오늘처럼 단둘이 밥을 먹은 적도 많았다.

‘이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척유라는 전수희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나이 차가 꽤 있어 존댓말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 맞지만.

전수희는 척유라가 단둘이 있을 때만이라도 말을 놓길 바랐었다.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백운 님한테만 편하게 말하고.’

부러웠기 때문이다.

척유라가 오빠라고 부르며 편하게 말을 건네는 유일한 존재, 백운.

전수희도 백운처럼 척유라에게 편한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었다.

“수희 님, 이거 드세요.”

반말은 고사하고 호칭도 쉽지 않았다.

- 언니라고 편하게 불러도 돼!

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척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단 한 번도 전수희를 언니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어째서야!’

전수희가 커다란 눈망울을 촐망이며 척유라를 바라봤다.

‘어째서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거야!’

완전히 다르지만.

순간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생각나는 전수희였다.

“제일 맛있는 새우살이에요. 식으면 맛없으니까 빨리 드세요.”

“고마워!”

전수희가 바라는 대로 반말을 하거나 언니라 불러주진 않았으나.

척유라는 예뻐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항상 맛있는 걸 먹을 때는 전수희를 우선 챙겨주고 보는 척유라.

칠칠치 못한 자신을 항상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전수희는 생각했다.

척유라는 약간 무뚝뚝하긴 하지만 정말 착한 아이라고 말이다.

“유라야, 백운 님한테 선물할 거라는 건 잘 만들고 있어?”

전수희가 새우살의 고소한 풍미를 느끼며 물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척유라.

“이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알 것 같아요.”

“다행이네! 원래 감이 잘 안 온다고 했었잖아.”

“네, 이제 감은 왔는데… 아직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요.”

척유라의 말에 전수희의 눈이 커졌다.

네가 무기 중에 못 만드는 것도 있냐는 눈이었다.

“하지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요.”

확신에 찬 척유라의 대답에 전수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나저나.”

이름을 꺼내며 떠올랐는지 전수희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운 님은 대산에 한 번 들른다고 하더니 소식이 없네.”

전수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척유라도 입을 열었다.

“바람 같은 사람이에요.”

“오… 바람이라.”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다.

바람.

갑자기 불어왔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마는.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바람.

백운에게 딱 알맞은 표현 같았다.

“수희 님한테는 어떤 바람이었어요?”

“!?”

흔치 않은 척유라의 질문에 전수희의 눈이 커졌다.

평소에 만나고 있어도 대부분 질문은 전수희의 몫이었다.

척유라는 궁금한 게 없다는 듯이 물어오는 것에 성실히 답할 뿐이었다.

척.

척유라의 질문에 기뻐하기도 잠시.

“으음!”

전수희가 턱을 괴며 고민에 잠겼다.

“극적인 바람이려나.”

“극적인 바람요?”

대산의 회사 앞 카페부터 공원에서 만난 것까지.

매번 상황은 달랐지만 백운과의 만남과 그 만남으로부터의 결과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항상 내 주변의 많은 게 변했었거든. 처음엔 잘 몰랐는데 엄청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렇군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척유라.

척유라를 잠시 보던 전수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라한테는 어떤 바람이었어?”

고기를 우물거리던 척유라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고기 귀신인 척유라가 먹는 걸 멈추다니.

고기를 먹는 것 이상으로 고민이 된다는 증거였다.

“저한테는.”

척유라의 입가로.

보기 드문 잔잔한 미소가 그려졌다.

‘은인.’

백운을 떠올리며 척유라가 입을 열었다.

“따듯한 바람이에요.”

“오오… 따듯한 바람…!”

척유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전수희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바람님은.”

가게의 창문 밖에선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어디서 뭘 하고 계시려나.”

* * *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을 응시했다.

기다림의 시간 끝에 끓어오르는 만큼 반가워야 정상인데.

전혀 반갑지 않았다.

“고기 먹고 싶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고기, 미트.

정말이지 간절한 바람이었다.

툭. 툭.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손놀림으로 라면 스프를 털어 넣은 후.

옆에 놓여 있는 스팜을 뜯어 숟가락으로 퍼넣었다.

스팜 라면이라니.

가난한 자취생에겐 사치의 극에 달해있는 요리였다.

스윽.

어느 정도 설익어 꼬들한 면과 스팜을 집은 후.

“후루룹!”

크게 한 입 집어넣었다.

“으음! 맛있다! 스팜 라면 맛있다! 맛있….”

애써 자기 최면을 걸다가 느껴지는 현자타임에 젓가락을 내려놨다.

“시발… 고기 먹고 싶다.”

아무리 맛있어도 적당히 먹어야지.

며칠째 똑같은 걸 먹고 있으니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

“미친 길은 언제 끝나는 거야.”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쭉 이어져 있는 길을 바라봤다.

묘한 공간이었다.

넓은 길 하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코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를 보니 망자의 세계는 아니었다.

- 조금 걸어야 할 수도 있어.

아이작이 지나가는 투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다.

- 저벅.

아이작이 열어 놓은 균열로 발을 디디며 기대한 광경은 이게 아니었다.

내가 아테네의 목걸이를 사용했던 장소가 바로 나타나거나.

하다못해 지구의 어딘가이길 바랐었는데.

이런 나의 바람을 비웃듯 눈 앞에 펼쳐진 건 지구도, 망자의 세계도 아닌 또 다른 길의 공간이었다.

- 길의 끝은 지구야. 지구의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이쯤 되니 흐리듯 말했던 아이작의 뒷말이 떠올랐다.

확신 가득했던 앞과는 달리 무척 자신이 없어 보이는 말이었다.

너 설마…!

그땐 지구면 어디든 상관없지란 마인드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애써 눈을 피하던 아이작의 모습을 떠올리니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휙휙!

불안을 털어내기 위해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어쨌든 걷다 보면 지구에 도착하는 건 확실했다.

“길은 다 이어져 있으니까! 암! 그렇고말고!”

애써 자신을 토닥인 뒤.

이건 고기다. 이건 고기다.

자기 암시를 걸며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후루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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