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머리채
습기 가득한 지하 공당.
“왕이시여.”
목소리만큼이나 기괴한 모습을 가진 데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체는 사람이지만 하체는 거대한 굼벵이의 모습을 한 데몬이었다.
“포이카.”
굼벵이 데몬을 포이카라 부른 데몬, 헤키리스가 눈을 떴다.
1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였다.
울룩불룩한 근육질로 뒤덮인 파란색의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지상의 준비가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포이카가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를 올렸다.
“많은 신도를 모았고 그에 비례해 힘의 충전도 어느 정도 완료되었습니다.”
“그래?”
두 개의 뿔을 가진 헤키리스가 흥미롭다는 듯 몸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빠르구나.”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아무리 빨라도 몇 달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끝마치다니.
“료헤이란 인간이 생각보다 쓸만합니다.”
일본 구원교의 교주, 료헤이.
헤키리스가 처음 료헤이를 만난 날을 떠올렸다.
너무 연약하고 작아 손가락을 튕겨 목을 따버릴까 했었다.
“안 죽이길 잘했군.”
앞에 선 료헤이는 약해도 너무 약했다.
작은 힘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태라 혐오감마저 들 정도였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키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라면 아무것도 아닌 능력이었다.
비각성자와 전혀 다를 게 없어 지나가는 개 한 마리보다 못한 인간.
하지만.
판을 깔아 주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졌다.
“다른 이의 믿음을 먹고 강해지는 능력이라.”
료헤이가 각성한 능력이었다.
다른 이가 료헤이를 믿으면 믿을수록.
믿음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료헤이는 더 강해졌다.
“그 힘이 곧 헤키리스 님께 전달되겠죠.”
헤키리스가 료헤이를 돕는 이유였다.
믿음이 쌓일수록 료헤이의 힘은 증폭되지만 거기까지였다.
“반쪽짜리라.”
료헤이는 쌓은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힘을 모아 건넬 수는 있되 직접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반쪽짜리 능력자였다.
“마음에 든단 말이야.”
료헤이를 같은 편에 둘 수 있는 자로선 이보다 훌륭한 능력이 또 있을까 싶었다.
- 정의를 위하여.
료헤이가 처음부터 헤키리스에게 협조한 건 아니었다.
처음 료헤이가 찾아온 이유는 헤키리스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위치를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료헤이는 적지 않은 수의 동료를 데리고 지하 공당으로 내려왔었다.
- 놔둬라.
원래라면 공당에 발을 들이기 전에 죽었어야 했지만.
헤키리스의 명령에 료헤이와 동료는 공당의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 10분을 주마, 마음껏 공격해라.
헤키리스는 조소를 머금으며 그들에게 10분을 줬었다.
- 콰가가!
10분 동안 필사의 공격이 쏟아졌지만, 헤키리스의 몸엔 작은 기스조차 생기지 않았다.
- 내 차례구나.
한 명씩 손가락을 튕겨 머리를 날렸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남게 된 이가 료헤이였고.
- 털썩.
료헤이는 압도적인 헤키리스의 힘에 무릎을 꿇었었다.
“료헤이도 알아버린 거죠. 그 누구도 헤키리스 님께 상처 입힐 수 없다는 사실을요.”
포이카가 헤키리스를 치켜세우며 고개를 숙였다.
“클클.”
헤키리스가 포이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부를 위한 말 따위가 아니었다.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었다.
그 누구도 헤키리스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단순히 단단하고 강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다른 법칙을 적용받고 있었기에 헤키리스는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었다.
“어리석은 놈들… 사로카 하나를 잡았다고 기고만장하고 있겠지.”
뚜둑.
“조금만 기다리거라.”
헤키리스가 목을 풀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찔해지는 한 방을 선물해 줄 테니.”
* * *
차량에서 내려 오타루를 거니는 사이.
미라코가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봤다.
“영… 영광입니다.”
“아니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영광이란 말을 몇 번이나 한 건지 세는 것도 포기해버렸다.
눈만 반짝여도 부담스러운데 바짝 붙어 저런 말까지 하고 있으니.
당수라도 날려서 기절시켜야 하나 잠시 고민될 정도였다.
- 정… 정말인가요?!
생각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장관이란 자리 때문인지 차분한 어조로 무게를 지키던 료코인데.
괜찮다면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화들짝 놀라며 입을 벌렸었다.
- 마을을 날려버리는 놈들이라니, 이… 이런 악질 놈들은 가만히 둘 순 없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차마 내가 후려올 수 있는 무기일까 싶어 협조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대신 눈을 불태우며 정의의 사도에 빙의해 주먹을 움켜쥐었었다.
내심 바라고 있었어.
즉각적인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료코는 갈등 중이었다.
우연히 만났지만 누구보다 확실한 전력에 도움을 요청할까 말까를 말이다.
료코 님은 아마 알고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료코는 후지산에서 유탈라스를 봤었다.
무인도에서 사로카를 부수며 방송할 때도 유탈라스로 마무리했었으니.
료코는 내가 무기왕이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반응이었겠지.
생각보다 솔직한 반응을 보인 료코를 떠올리고 있을 때.
불쑥!
히익.
옆에서 미라코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이 앞부터 오타루입니다!”
“네… 네.”
총을 겨눴을 때까지만 해도 비장한 각오를 다진 헌터였는데.
지금은 처음의 이미지가 많이 깨진 미라코였다.
- 미라코 요원이 훗카이도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동네를 혼자서 누비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라 길잡이를 한 명 부탁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미라코와의 부담스러운 동행.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관님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애초에 친구도 아닌데.
미라코는 처음 봤던 비장함을 이상한 방향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공격이 떨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요. 동 시간대 레이더에서도 큰 에너지가 감지됐었고요.”
미라코가 말한 곳으로 걸어갔다.
지반이 다 뚫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 나 있었다.
여길 시작으로 번져나갔나 보네.
구멍을 살피다 주변을 둘러봤다.
시야가 닿는 곳까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강한 에너지가 떨어져야 이렇게 되는 거지.
망자의 세계에서 카사락이 시전했던 마법이 떠올랐다.
그것보단 약한 느낌이지만 오타루에 떨어진 에너지도 보통은 아니었다.
“주변을 날던 비행기도,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항공모함도 없었어요.”
“흐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
턱을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에너지를 떨어뜨린 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면 분명 거리에 한계가 있을 터였다.
“오타루 주변에서 이상한 일 같은 건 없었나요?”
“이상한 일요?”
“이번 일과 아무 상관 없는 거여도 괜찮아요. 평소에는 안 일어났던 일 중에 아무거나.”
미라코가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을 검색해보려는 것 같았다.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일이 오밀조밀하게 이어져 있을 때도 있으니까.
정말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훗카이도 1/3이 날아갔던 3일 후까지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혔으면 좋겠네.
“어… 완전 최근은 아니지만 며칠 전까지 누적된 실종 신고가 꽤 많았어요.”
미라코가 계속해서 내용을 읽어나갔다.
“신고한 건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들이에요. 이상한 종교 같은 거에 빠지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요.”
“종교요?”
“네, 하얀색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랑 종종 만났었대요. 그 사람들은 만난 이후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모습을 감추었대요.”
사제복이라… 응?
“미라코 님, 혹시 그 사제복 사진도 있나요?”
“멀리서 몰래 찍은 거라 화질이 안 좋긴 한데… 마주치면 알아볼 수는 있을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툭툭.
핸드폰에 몰두하고 있는 미라코의 어깨를 두들겼다.
“혹시 저건가요?”
“네?”
미라코가 뭔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
서서히 다가오는 수십 명의 사제복 무리에 미라코의 얼굴이 굳어졌다.
맞나 보네.
철컥!
곧장 화기를 꺼낸 미라코가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겨누었다.
“백운 님, 제 뒤로 오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미라코의 뒤로 숨은 뒤 다가오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얀색 사제복을 입은 채 사방에서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눈깔 봐라 저거.
조금 전 미라코가 읽어준 내용이 떠올랐다.
어딘가 맛이 가는 거 같다더니.
다가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맛탱이가 간 눈을 하고 있었다.
“사도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이여.”
“우매한 인간들. 언제 깨닫고 헛된 발버둥을 멈출 것인가.”
눈만 간 게 아니구나.
복장만 보면 평화로워야 정상인데.
사제들은 각각 무기를 갖춰 들고 있었다.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며 다가오는 무리에 미라코가 안전장치를 풀었다.
“더 이상 다가오면….”
톡톡.
마지막 경고를 하려는 미라코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운 님?”
“우리 잡힙시다.”
“네?”
미라코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다가오는 무리만 해도 골치 아픈데 그냥 잡히자니.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요, 한꺼번에 덮쳐 오면 방법이 없잖아요. 얌전히 굴면 다짜고짜 공격할 거 같지도 않고요.”
먼저 공격해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취조는 씨알도 안 먹힐 거 같아.
처음엔 몇 명만 남겨놓고 쓸어버린 뒤 정보를 캐낼까 했었지만.
맛탱이가 가버린 눈과 정신 상태를 보니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정신까지 가버린 놈들은 아무리 캐내도 입을 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스륵.
고민하는 듯하던 미라코가 화기를 내려놓았다.
“대신 저한테 딱 붙어 계세요…!”
“넵!”
꼬옥.
각오를 다지는 미라코의 팔을 슬며시 붙잡으며.
다가오는 놈들을 쳐다봤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왔던 건데.
싱긋.
머리채를 잡게 생겼다.
* * *
삿포로에 위치한 본부.
미라코에게 연락을 취하던 상황병이 몸을 일으켰다.
“미라코 님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한국의 헌터분과 오타루에 나가 있었습니다.”
“…?”
직접 지휘를 위해 상황실에 내려와 있던 니시다 료코.
기지의 사령관과 대화를 나누던 료코가 상황병에게 걸어왔다.
“신호도 안 가는 건가요?”
“예, 누군가 의도적으로 완전히 망가뜨린 것 같습니다.”
료코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잠복하던 놈들한테 잡힌 게 분명하다! 마지막 위치로 빨리 병력 보내!”
“주변 수색도 시작하겠습니다!”
급하게 명령을 알리는 사령관에 무언가 생각하던 료코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보죠.”
뜻밖의 명령에 상황실로 정적이 찾아왔다.
“예…?”
너무 뜻밖인지 되묻는 사령관에게 료코가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조금만 기다려보도록 해요.”
백운이 누군가에게 잡힌다는 것.
‘잡힌 게 아니라.’
료코의 상식선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잡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