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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22화 (222/473)

222화. 끌려간 곳엔

나와 미라코를 둘러싼 채 행렬을 이어가는 신도 무리.

이렇게 계속 걷고 있자니.

중요한 사람이 된 느낌이야.

수많은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대통령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흐뭇하게 물샐틈없는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는 대통령을 생각하다.

스윽.

고개를 내렸다.

물론 대통령은 손에 이런 거 안 차고 있겠지만.

나와 미라코의 손엔 쇠로 된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투둑하고 뜯겨 나갈 정도의 강도.

너무 답답하면 풀어버렸겠지만 생각보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하루건너 하루 차서 그런가.

처음에 찼을 땐 답답했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심신이 고요해지는 기분이었다.

강제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게 되어서인 듯했다.

여기까지는 다 좋은데.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저 주댕이만 좀 다물었으면.

아마 두 손이 묶이지 않았다면 귀를 막았을 것이다.

걸어가는 내내 속죄하라고 울부짖는 인간들.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짓고 산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난 지은 죄도 없는데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 없는 사람한테 속죄하라고 말해봐야 뭐하겠는가.

조금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걸.

“백… 백운 님, 걱정하지 마세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걱정하지 말라니.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얼마나 긴장한 건지 미라코는 쉴새 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바짝 굳어 있었다.

하긴.

걱정 안 되면 이상한 상황이지.

나와 다르게 미라코는 정말 무방비 상태였다.

가지고 있던 화기는 빼앗겨 행렬의 맨 앞에서 옮겨지는 중이었다.

저 엄청 강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꼼짝없이 잡혀가는 상황에 그런 말을 해봐야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터였다.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요?”

걱정 가득한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하도 둘러싸여 있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기도 힘들었다.

“그러게요. 어디가 됐든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한 시간만 더 저 속죄하라를 듣는다면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것 같았다.

마침 해도 저물었으니 일단 다 때려잡고 날개를 꺼내 주변 탐색하기로 말이다.

“데려가서 어쩌려는 걸까요. 설마 해치거나 하진 않겠죠…?”

“그렇죠. 이 사람들이 데몬도 아닌데요.”

미라코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하며.

옆에 있는 신도 한 명을 바라봤다.

데몬보다 더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생긴 건 멀쩡한데 역시 눈이 문제였다.

회까닥 맛이 가서 갑자기 칼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고개를 갸웃하며 까치발을 들었다.

번화하진 않았으나 분명 도시 내부였다.

당연히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대로 한복판인데도 이 꼬라지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는 건.

전부 한통속이란 이야기였다.

아직 정체는 모르겠으나 사제복 무리는 단순한 싸이비 종교 수준이 아닌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됐다.

무기를 든 신도 행렬이 사람 두 명을 수갑 채워 데려가고 있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니.

쿠궁…!

다 온 건가.

맨 앞쪽에서 둔탁하면서도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저벅.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사방이 확 특인 다목적실 같은 느낌.

딱 봐도 중소규모 싸이비 종교가 집회하기 좋은 장소였다.

체육관 같은 곳인가.

내부 곳곳엔 이상한 문자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싸이비 종교가 있는 곳이요! 하고 대놓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문자는 뭔지 모르겠고.

문양은 아무리 봐도 데몬인데.

추상적인 악마를 숭배하는 건지, 데몬을 숭배하는지는 정확지 않았으나.

이들이 멀쩡한 신을 섬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끼이익.

기분 나쁜 쇳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꿉꿉한 공기가 가득한 공간에 도착해있었다.

“들어가.”

“넵.”

단호한 목소리에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엉성하게 만들어진 감옥이었다.

사용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나와 미라코가 첫 방문객은 아닌 모양이었다.

끼익… 탁.

철창문이 닫히기 무섭게 얼기설기 대충 만들어진 의자로 몸을 앉혔다.

“미라코 님, 여기 좀 앉으세요.”

감옥까지 등장해서인지 미라코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앉으라고 옆을 두드리자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미라코였다.

저벅.

불편한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여기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철창문 바로 앞까지 와 안을 응시하는 남자.

조금 멀쩡하네.

눈깔이 다 뒤집힌 놈들에 비하면 몹시 또렷한 편이었다.

“그대들이 신을 거역하는 분들이군요.”

믿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딱히 거역했던 적은 없었다.

그냥 날아간 마을에 뭐가 있을까 어슬렁거린 게 전부였다.

“거역한 건 아닌….”

“닥치십시오.”

이 새끼도 정상 아니네.

급발진 하는 남자를 보며 일단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거역자인 당신들을 어떻게 할지는 그분이 정해 주실 겁니다.”

“그분이 누구….”

“닥치라고 했을 텐데요.”

이 새끼가…?

딱히 나쁜 마음은 없었는데.

본능적으로 얼굴을 기억하게 만드는 놈이었다.

“속죄하며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지 할 말만을 마친 남자가.

스윽.

천천히 몸을 돌려 멀어져 갔다.

* * *

고요한 방 안.

쇼파에 앉은 료헤이가 와인 잔으로 손을 뻗었다.

“….”

와인이 흘러들어오며 입안으로 고급스러운 풍미가 퍼졌다.

‘얼마 남지 않았다.’

풍미를 느끼며 료헤이가 고개를 쇼파에 기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데몬의 편에서 힘을 보태게 된 것은 말이다.

‘헤키리스.’

료헤이가 지하 공당의 주인 헤키리스와.

- 공당에 강한 데몬들의 수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처치하고 이름을 떨칩시다!

헤키르스를 잡기 위해 모였던 날을 떠올렸다.

료헤이가 일행과 만나며 민병단을 결성한 지 약 일 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 얼른 해치워버리죠!

당시 료헤이가 속한 민병단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모인 후 1년이란 시간 동안 수많은 데몬을 처치해왔으며.

훗카이도 지역에서 나름 이름있는 민병단으로 자리를 잡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한텐 료헤이 님이 계시니까요!

민병단의 핵심 전력을 꼽으라면 당연히 료헤이였다.

딱히 각성한 능력이 전투에 특화되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대신 팀적으로 봤을 때 엄청난 시너지가 되는 능력이었다.

믿음이 모일수록 힘이 쌓이고, 그 힘을 나눠줄 수 있는 능력.

팀원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소중한 서포터가 아닐 수 없었다.

- 그럼 가시죠!

이름이 퍼지며 많은 사람이 민병단을 믿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료헤이의 힘이 증폭된 건 물론이었고, 이에 비례해 민병단의 전력도 함께 강해져 있었다.

그래서였다.

정보를 접한 민병단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지하 공당으로 향한 것은 말이다.

- 내 힘도 더 강해지겠지.

고민하지 않은 건 료헤이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위험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민병단 활동은 수월했기에.

이번에도 빨리 지하 공당의 데몬을 잡고 명성을 얻어 힘을 증폭시킬 생각뿐이었다.

- 어…?

하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하 공당에 있는 데몬은 지금까지 봐온 개체들과 차원이 달랐다.

- 마… 말도 안 돼.

그토록 자신감 넘치던 민병단원들이었는데.

헤키리스가 제시한 10분 후엔 모두가 절망에 휩싸여 있었다.

희망 가득했던 얼굴엔 죽음의 공포가 새겨져 있었으며 승리를 외치던 입에선 믿을 수 없다는 말만이 되풀이되는 중이었다.

- 생채기조차… 안 났다고…?

단원들이 약한 건 아니었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료헤이의 힘을 건네받은 단원들은 평소처럼 강했고 거침없었다.

- 크클.

문제는 상대에게 있었다.

지하 공당의 주인인 헤키리스.

헤키리스에겐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법칙을 적용받는 듯 공격을 피하지조차 않았던 헤키리스.

- 이젠 내 차례구나.

헤키리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살이 시작되었고.

일 년간 이어졌던 료헤이의 민병단 생활은 막을 내렸다.

- 넌 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어떠냐? 살려 줄 테니 나를 위해 그 힘을 쓰는 게.

너무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며 다리마저 풀려 있던 료헤이였기에.

헤키리스의 제안에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

그렇게 료헤이는 무사히 지하 공당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료헤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법칙에서 사는 헤키리스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헤키리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인류에 희망 따윈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헤키리스를 정말 신으로 믿고 따르는 건 아니었다.

단지 신에 필적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인간이 아닌 헤키리스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 누구도, 헤키르스에게 상처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을 때.

띠리리.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 * *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남자가 한 말이었다.

무슨 판결이냐고 굳이 묻진 않았다.

또 닥치라고 할 게 분명했으니까.

저벅.

감옥을 나서자 처음 지나왔던 다목적실이 나타났다.

아까와 다른 게 있다면.

화형 시키는 건가.

다목적실 중앙에 원형의 공간이 갖추어졌다는 것과.

그 공간을 중심으로 많은 수의 신도가 둘러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딱 두 사람 서기에 좋게 만들었네.

남자가 나와 미라코를 원형 공간으로 안내했다.

“묶어라.”

다가온 덩치 좋은 몇 명의 신도가 나와 미라코를 원형 공간의 대에 묶었다.

과거 마녀사냥이라며 사람을 태워 죽이던 게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백운 님…!”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역시 소용없겠지만 일단 말을 건네둔 뒤.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응?

사아아.

“백운 님 눈이…!”

열심히 두리번거리다 정면의 단상 구조물에 도달했을 때.

페샨의 눈이 발동했다.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신을 섬기지 않은 자 심판이 내릴지어다.”

신도들이 기도하면 할수록 왠지 모르게 안의 기운이 늘어가는 구조물이었다.

힘을 모으고 있는 건가?

무언가 늘어 가는 건 보였으나 그게 뭔지는 당장 알 길이 없었다.

“거역자에게 내린 료헤이 사도님의 판결은.”

앞으로 걸어 나와 신도들을 향해 선 남자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심판.”

남자의 입에서 심판이란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속죄하라!! 속죄하라!! 속죄하라!!”

신도들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이 정도로 열렬한 환호라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럼 심판을 시작한다.”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 서 있던 신도들이 길을 비켜섰다.

쿠구구…!

오…? 돔까지 갖춰져 있다고?

신도들이 서 있던 바닥이 열리며.

허.

설마했던 가능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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