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23화 (223/473)

223화. 가능성이 현실로

“말… 말도 안돼.”

바닥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존재에.

미라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놀랍긴 하네.

다목적실에 들어오며 봤던 여러 가지 문양들.

문양을 보며 이놈들은 악마 혹은 데몬을 숭배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은 했었다.

단순히 숭배가 아니었네.

실존하지 않는 걸 숭배하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

설마하는 작은 가능성만 남겨둔 채 그러려니 했었다.

열린 바닥에서 데몬이 기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척… 비척.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데몬을 응시했다.

거대한 덩치에 몸 여기저기로 뿔이 솟아있는 녀석이었다.

흔히 하수구에서 볼 수 있는 색깔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들었다.

인간… 체형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팔다리가 있긴 했는데 엉성하게 생겼다.

만들어지다 만 듯한 생김새.

데몬이 어느 정도 걸어오자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준비되었습니다. 카랑클 님.”

이름도 있어?

자연스럽게 이름까지 부르는 걸 보니 확실했다.

사로카가 등장하며 조심스럽게 떠올랐던 한 가지 가능성.

인간과 데몬의 유착이 더 이상 가능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진 순간이었다.

“키… 키륵… 키르륵.”

신기한 광경이었다.

카랑클이라 불린 데몬은 말을 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그렇다고 옆에 있는 신도들을 공격하거나 하진 않았다.

말을 이해하진 못하나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아군이란 걸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별꼴을 다 보네.

고개가 절로 내저어지는 상황이었다.

인류의 최대 적이라 불리는 데몬을 숭배하는 것도 모자라 힘까지 합치고 있다니.

인간의 선택 범위는 무궁무진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스윽.

고개를 돌리자 사색이 된 미라코의 얼굴이 보였다.

단서를 잡기 위해서라곤 하나 미라코에게 못 할 짓을 한 건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 어떻게 저럴 수 있죠…? 같은 사람이면서.”

미라코의 눈엔 신도들에 대한 분노와 데몬으로 인한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데몬의 편에 설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덤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어서 아닐까요. 원하는 바를 이룰 수만 있다면 데몬이고 뭐고 일단 붙고 보는 거죠.”

꿀꺽.

긴장한 건지 미라코가 마른침을 삼켰다.

신도들에 대한 분노는 둘째 치더라도.

무방비 상태에서 만난 데몬에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모습이었다.

약해 보이지 않기도 하고.

전에 봤던 사로카나 로튼과 함께 다니던 칸 급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풍겨오는 기운이 결코 낮은 등급의 데몬은 아닌 듯했다.

“자! 카랑클 님! 거역자들에게 심판을 내려 주십시오!”

“키르… 키르륵.”

“거역자에게 심판을! 거역자에게 심판을!”

남자와 신도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잠시 멈춰 섰던 카랑클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너네가 말한 심판이 데몬한테 먹이 주는 거였어?”

“입 닥치세요! 감히 성스러운 심판 중에! 카랑클 님은 신의 사도 중 한 명이십니다!”

데몬을 사도로 모시며 사람을 먹이로 주고 있는 꼴이라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남자를 바라봤다.

“너 잠깐만 기다려.”

눈깔이 가장 멀쩡한 사람이었다.

정신이 나가버린 다른 신도들에 비해 묻는 말에 대답할 여지가 많아 보였다.

“곧 먹힐 거역자 따위가 감히…!”

오만상을 찌푸린 남자가 카랑클을 향해 소리 질렀다.

“당장 저들에게 심판을!!”

비척… 비척. 비척. 비척.

말을 알아듣긴 하는 건지 카랑클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걸어왔다.

정면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기 힘든 생김새였다.

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기분이 나빴는지.

“키르르륵!!”

도착한 카랑클이 지체 없이 우락부락한 손을 뻗어왔다.

* * *

‘어떻게 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다.

싸이비 종교와 데몬의 협력이라니.

너무 끔찍해 쉬쉬하던 가능성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중이었다.

꽈악.

걸어오는 카랑클을 보며 미라코가 손에 힘을 주었다.

카랑클이 도달하기 전에 일단 묶여 있는 손이라도 어떻게 해야 했다.

꽈아악…!

한참을 힘주던 미라코의 얼굴로 절망이 번져나갔다.

기둥과 손을 묶고 있는 건 단순한 밧줄이 아니었다.

철 성분이 섞인 건지 아무리 힘을 줘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비척.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한 데몬, 카랑클.

“키르르륵!!”

카랑클이 괴성을 지르며 백운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안돼…!?’

우악한 손에 백운의 머리가 잡힐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미라코의 눈앞엔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어… 어떻게…?’

여전히 발은 묶여 있지만 백운의 손은 자유로워져 있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언제 어떻게 푼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보다 당장 믿기지 않는 건.

부들부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카랑클의 손을 붙잡고 있는 백운이었다.

어떻게든 손을 뻗으려 부들대는 카랑클과 달리.

대충 한 손을 뻗어 카랑클을 막고 있는 백운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데몬이 약한 게 아니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카랑클의 우악스러운 힘이 충분히 느껴졌었다.

단지.

그런 카랑클을 붙잡고 있는 백운의 힘이 비정상적이었다.

“너 좀 씻고 다녀야겠다. 내 말 이해하지?”

천연덕스럽게 한 마디 건네기까지 한 백운이.

철컥!

‘…!’

묶여 있던 발을 움직이자 꼼짝도 않던 줄이 힘없이 끊어졌다.

아주 얇은 실로 묶어 놓은 것 마냥 힘없이 끊어지는 매듭에.

안 그래도 놀라 커질 대로 커져 있던 입이 더 크게 열렸다.

“키르르!”

화가 난 건지 다른 쪽 손까지 휘두르려는 카랑클에게 백운이 발을 뻗었다.

콰앙!

걷어차인 카랑클의 몸이 기도 중이던 신도들에게 날아갔다.

“으… 으악!”

엎드려 기도하느라 거대한 덩치의 카랑클을 피하지 못한 신도들이 짧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

놀란 건 미라코만이 아닌 듯했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기도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는 다목적실이었다.

스윽.

고요해진 다목적실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라코가.

뚜둑. 뚜둑.

고개를 돌려 백운을 바라봤다.

백운은 별거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손목을 돌리고 있었다.

‘이게….’

한없이 여유로운 백운의 얼굴을 바라보며.

꿀꺽.

미라코가 마른침을 넘겼다.

‘10급 헌터라고…?’

* * *

저 멀리로 날아간 카랑클을 바라봤다.

무기를 바로 꺼낼까 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덩치 값 못하네.

방금 붙잡아봤기에 가늠할 수 있었다.

카랑클은 굳이 무기를 꺼내지 않아도 두들기는 게 가능한 수준이었다.

“무… 무슨…!”

이제야 좀 봐줄 만한 표정이 됐네.

이곳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뭐라도 된 양 기세등등하던 남자였다.

카랑클이 날아가자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당황하는 상태.

“키르…!”

주춤거리며 날아갔던 카랑클이 일어났다.

말은 안 하지만 카랑클 역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당장 달려들기보단 전투태세를 취하며 응시하고 있는 녀석.

조금만 더 두들겨볼까.

한 방에 죽일까 싶었지만 뭔가 나올 것만 같았다.

스윽.

고개를 돌려 정면에 있던 구조물을 바라봤다.

뜻밖의 상황에 신도들의 기도가 끊겨서인지 힘의 증가를 멈춘 상태였다.

기도에 따라 힘이 증가하는 구조물이라.

페샨의 눈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할뻔했다.

당당거리는 귀여운 말투.

킹냥이 리카르도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아 맞다.

호다닥.

뚜두둑 손목을 풀다 몸을 돌려 미라코에게 걸어갔다.

왠지 모르게 신도들보다 더 놀란 얼굴이었다.

투둑.

묶여 있는 손목과 발을 한방에 풀어주자 더욱더 놀라는 모습.

저 놀라움을 없애주려면 오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기에.

애써 외면하며 몸을 돌렸다.

“가… 감히!!”

응?

인상을 찌푸린 남자의 손엔 전화기가 들려있었다.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료… 료헤이 사도 님!”

료헤이?

료헤이라 불리는 자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한 남자가.

핸드폰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스피커로 바뀐 건지 핸드폰 안에서 료헤이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깃들지어다.

우웅.

…?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무섭게.

정면에 있던 구조물에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르륵.

흘러나온 기운이 향한 곳은 카랑클이었다.

넘칠 만큼 흘러나와 카랑클에게 스며들고 있는 구조물의 기운.

“키… 키르르르르!!”

카랑클이 몸을 부들대며 괴성을 질렀다.

고통스럽다기보단 기분 좋아 보이는 듯한 외침이었다.

“크… 크하하하! 어리석은 거역자 놈! 알량한 힘으로 우쭐대는 것도 이제 끝이다!”

잠시 사그라졌던 남자가 다시 주댕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스며들고 있는 기운이 카랑클의 승리를 확정 지은 것처럼 말이다.

투둑… 뚜둑.

“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변신… 이라기보단 강화라고 부르는 게 나을 듯했다.

몸이 울룩불룩하더니 카랑클이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힘의 증가를 증명하듯 솟아있던 뿔도 더 크고 뾰족하게 치솟았다.

조금 기다려야 할 거 같으니.

스슥.

턱을 문지르며 신도와 구조물, 그리고 강화 중인 카랑클을 번갈아 봤다.

완벽하진 않아도 대략적인 메커니즘은 알 것 같았다.

신도를 모아 기도 혹은 믿음으로 구조물에 기운을 모으고.

모은 기운을 소모해 데몬을 강화시킨다.

남자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구조물은 전화기 너머에 있는 료헤이란 자의 작품인 듯했다.

목소리에 반응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말도 안 되는 에너지였습니다.

오타루를 날린 힘에 대한 료코의 설명이었다.

하나의 개체만으론 힘들 수 있지만.

오는 길에 본 신도가 전부는 아닐 터였다.

사제복을 안 입고 있더라도 이 도시 자체가 집어 삼켜진 모습이었기에.

지역별로 훨씬 더 많은 신도가 기도하고, 그 기도가 각 구조물로 모이고 있을 듯했다.

숫자가 많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어.

료헤이란 자의 기운이 어디까지 깃들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데몬만 강화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어떠한 무기나 장치에도 깃들 수 있는 건지는 확인이 필요했다.

만약 데몬만 강화 가능한 거라면… 무기는 아니겠네.

훗카이도를 날린 건 무기가 아니라 료헤이에 의해 강화된 데몬이란 결론이 도출될 터였다.

“키르으으으!!”

강화를 마친 건지 우렁찬 괴성이 들려왔다.

괴성엔 카랑클의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었다.

“오만한 거역자에게 심판을!!”

남자도 확신에 차 있긴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자신감 넘치는 외침이 퍼지기 무섭게.

쿵! 쿵! 쿵!

훨씬 거대해진 카랑클이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걷어차인 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거침없는 돌격이었다.

자세한 건 쟤한테 물어보자.

간략한 메커니즘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카랑클의 역할은 끝났다.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오른팔에 비늘을 두르고.

“죽어라 거역자여!!!”

“키르르르르르륵!!”

괴성과 함께 달려오는 카랑클을 향해.

스윽.

뻗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