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구워보자
삿포로에 위치한 본부 기지.
쾅! 쾅! 쾅!
기지를 둘러싸고 데몬과 군 헌터 간에 격전이 벌어졌다.
“원거리 각성자는 저 날개 달린 놈부터 노려!”
“기지의 방어 시스템은 왜 동작하지 않는 거야!”
“시스템이 다 마비됐습니다! 마츠다 짓인 거 같습니다!”
“이런 젠장…!”
전방으로 나선 1, 2급 헌터들이 데몬과 몸을 부딪혔다.
제대로 된 전형을 짜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기지 바로 옆에서 열린 정체불명의 포탈.
포탈을 통해 한 무더기의 데몬이 기어 나와 기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밀리지 마! 여기가 뚫리면 끝이다!”
1급 헌터 츠로이가 데몬의 공격을 받아내며 뒤를 돌아봤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방어 시스템은 마비되어 무용지물인 상태.
기지에 남아있는 건 지원 부대와 비전투 인원들이었다.
데몬이 한 마리라도 들어가는 순간 무차별 학살이 벌어질 터였다.
“쉬이이익!”
콰앙!
츠로이가 거대한 창을 들어 덮쳐오는 데몬을 쳐냈다.
“대체 뭐냐 이놈들은!”
지금까지 봐오던 데몬과는 달랐다.
보통 종족이 다르면 데몬끼리도 적으로 인식해 치고받기 마련인데.
기지를 덮치고 있는 놈들은 마치 서로가 아군이라는 걸 인지한 것처럼 협력하며 밀려오고 있었다.
“말을 하더니.”
휘이….
“동료라는 개념이라도 생긴 거냐!”
쾅!
“크르르…!”
창은 유효타를 내며 히트했지만.
데몬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한 얼굴로 츠로이를 노려보는 데몬.
으득.
데몬을 바라보며 츠로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협력도 협력이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최소 B등급, 높은 건 S등급까지 볼 수 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녀석만 해도 S등급에 버금가는 피부 강도였다.
까드드득…!
“끄… 끄아아아!”
“!!”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데몬과 가까이 붙었던 몇 명의 헌터가 얼어붙고 있었다.
‘저놈들은!’
푸른 기운을 띈 채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두 마리의 쌍둥이 데몬.
본 적이 있는 놈들이었다.
‘서리누!’
몇 년 전 훗카이도의 최북부에서 모습을 감춘 S급 데몬이었다.
사라지기 전 수십 명의 헌터를 통째로 얼려버렸던 놈들.
웬만한 공격은 기스도 못 내는 가죽과 닿는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기운이 문제였다.
두두두두두두!
여러 발의 탄환이 서리누에게 날아들었다.
투두둑.
냉기에 닿기 무섭게 속도가 죽으며 탄환이 튕겨 나갔다.
가죽에 닿기도 전에 약화되고 마니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가까이 붙지 마! 거리를 벌려라!”
“예… 예!”
쐐에에에…!
“!!”
퍼억!
다른 곳에 시선을 너무 오래 판 모양이었다.
창을 맞았던 데몬이 츠로이의 어깨로 주먹을 적중시켰다.
“끄으…!”
간신히 반응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서는 츠로이.
츠로이가 숨을 몰아쉬며 혀를 찼다.
‘안 좋다.’
앞에 놈은 어떻게든 막고 있었지만.
성큼성큼 기지로 걸어가고 있는 서리누가 문제였다.
기지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무작정 막겠다고 다가가면 얼어 붙어버리니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상황.
‘불이 필요한데…!’
다시 창을 휘두르며 달려들면서도.
츠로이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리누의 전진을 막을 수 있을 만한 화염 각성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퍼엉! 퍼엉!
그나마 유탄 및 화염탄이 적중될 때마다 걸음을 멈칫거리는 서리누였다.
‘저걸론 얼마 못 버텨.’
멈칫거리는 것뿐이지 데미지를 입는 건 아니었다.
탄은 유한했고 서리누의 전진은 멈추지 않고 있으니.
언젠간 탄이 바닥나며 서리누가 기지에 도달할 터였다.
“크르르!”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며 소리 지르는 듯한 데몬에.
츠로이가 두 손으로 힘을 끌어모았다.
‘일단.’
위이이이잉!
츠로이의 창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놈부터 처리한다.’
“이거나 먹어라!”
전방의 데몬에게 창을 내지르며.
뒤에서 지원 중인 헌터들을 떠올렸다.
‘조금만 버티고 있어라…!’
* * *
두두두두두두!
펑펑!
미라코가 쉴새 없이 탄을 쏘아댔다.
아비규환.
눈 앞에 펼쳐진 전장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서리누한테 탄을 집중해! 다리를 노려라!”
5미터는 족히 되는 크기였다.
다리로 쏘는 거야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콰앙!
문제는 데미지를 받지 않는단 거였다.
미라코 역시 화기의 유탄을 계속해서 서리누에게 쏟아붓고 있었지만, 도무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게… S급 데몬.’
미라코가 탄을 갈며 서리누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데몬을 바라봤다.
데몬과 맞서고 있는 건 일본에서도 손에 꼽히는 헌터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웬만한 중대 하나의 전력과 맞먹는 인원들인데도.
각자 맡은 데몬을 쉽사리 처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기지 주변에 나타난 데몬의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철컥!
장전을 마친 미라코가 다시 한번 서리누를 겨누었다.
장전 한 번 했을 뿐인데 꽤 많은 거리를 좁힌 서리누.
덩치가 워낙 커 보폭이 보통 넓은 게 아니었다.
“후우.”
엎드린 채로 조준을 마치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저 서리누의 전진을 최대한 늦추는….
스륵.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미라코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공간을 채울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였다.
“…?”
“위다!!”
미라코가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귓가로 부대원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
몸을 빙글 돌려 하늘을 조준했다.
쐐에에엑---!
두껍고 긴 부리와 거대한 날개를 가진 펠로크.
비행이 가능한 수릿과 데몬이었다.
근접전에 취약하다는 지원 부대의 단점을 알기라도 하는 건지.
펠로크 놈들은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내려올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하늘로 갈겨!”
두두두두두두!!
쐐엑!
탄이 날아들기 무섭게.
뭉쳐 있던 펠로크 무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저… 저게 뭐야.”
타아밍을 정확히 맞추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사람이 지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서… 서리누가!”
“하늘도 심상치 않습니다!”
지원 부대의 화력이 하늘로 향한 사이.
어느새 서리누는 기지와 멀지 않은 곳까지 와있었다.
거기다 기운이 모여들고 있는 하늘에선 파란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손이다…!!’
미라코만이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백운과 함께 있을 때 본 손이었다.
일 분이 채 되지 않아 도시를 날려버렸던 누군가의 손.
그 손이 기지의 상공으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서리누한테 탄을….”
콰득!
“!!”
서리누에게 시선을 돌렸던 헌터가 펠로크에게 잡혀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득.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원 부대가 위치한 곳을 방어해주는 인원이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방어를 해줄 높은 급수의 헌터들은 전방을 맡느라 뒤를 신경 써 줄 겨를이 없었다.
철컥…!
조금이라도 전진을 막고자.
근처에 펠로크가 없는 걸 확인한 미라코가 다시 서리누에게 화기를 겨누었다.
“미라코!!”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쐐에에엑!!
“아….”
무언가를 하기엔.
어디선가 나타난 펠로크의 부리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 런.’
미라코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다가오는 부리를 바라봤다.
죽을 상황에 처하면 몸이 굳는다고 하더니.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질끈.
두 눈을 질끈 감아 공포를 줄이는 것.
몸이 굳어버린 미라코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콰직!!
‘…?’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머리가 부서진 후에도 소리가 들리던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스륵.
미라코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미라코의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달려들던 펠로크의 머리엔 커다란 수리검 하나가 박혀있었다.
번쩍.
그리고 수리검이 빛나는가 싶더니.
사아아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검은 연기와.
그런 연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현 상황에 누구보다 반가운 이의 모습이.
미라코의 앞으로 등장했다.
* * *
굴러떨어지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라코의 눈은 커져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퍼엉!
연기를 터뜨리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채가듯 하늘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독수리 데몬들.
“끼루루룩!!”
날 발견한 데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독수리가 왜 갈매기 소리를 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칼데아의 연기를 모았다.
망자의 세계에서 치라타를 소화 시키며 연기 양이 상당량 증가한 칼데아였다.
고향이었던 토라소처럼 무한으로 사용할 순 없지만 말이다.
충분하지.
“끼루루루!”
마치 편대를 구성해 날아드는 데몬 무리를 바라봤다.
연기 양이 충분해지며 가능해진 게 있었다.
“끼루…!?”
데몬들이 충분한 거리로 들어온 순간.
온몸을 감출 정도로 모았던 연기를 터뜨렸다.
파아아앙!
연기가 검은 가시의 형태를 띠며 사방으로 뿜어졌다.
이카로스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힘.
푸푸푸푸푹!!
“끼… 루.”
그대로 연기에 꿰뚫린 열댓 마리의 데몬이.
휘이이…!
숨이 끊어진 채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음… 연기 소모가 확실히 많긴 해.
일반적으로 비행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소모량이었다.
형태를 만들어 유지하는 시간에 비례해 감소하는 연기.
치라타를 먹고 많이 늘어났다 해도 형태 공격을 남발할 수준은 아닌 듯했다.
다음은.
고개를 내려 전황을 살폈다.
다른 녀석들은 헌터들이 웬만큼 막아내고 있었다.
성큼.
문제는 저 두 놈 같았다.
몸에 두르고 있는 기운 때문인가.
놈들의 몸엔 푸르딩딩한 기운이 둘러싸여 있었는데.
헌터들이 그 기운을 경계하며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쩌적. 쩌적.
얼음인가.
놈들이 앞으로 전진할 때마다 땅이 얼어붙고 있었다.
범위 자체가 넓진 않으나 닿는 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 같았다.
급속 냉동고 같은 느낌이구먼.
날아든 탄환마저 얼리며 속도를 낮추고 있는 냉기.
저 냉기 때문에 군 헌터들이 어느 한 곳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단순무식하지만, 냉기를 이기려면 불이겠지.
아닌가? 불을 이길 때 냉기인가?
순간 든 의문에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상성 같은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가위바위보에서도 강한 찌가 주먹을 으스러뜨리는 법인데.
[유탈라스 동기화, 전신 의태 - 갑주]
그럼.
온몸을 비늘로 감싼 뒤.
파앙!
연기를 터뜨려 냉기 데몬을 향해 강하를 시작했다.
구우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