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헛된 몸부림
두 마리의 냉기 데몬이 고개를 돌렸다.
저건 또 뭐하는 날파리길래 달려드는 거지란 표정.
“뭐… 냐.”
“죽으러… 온다.”
오…?
생긴 건 어디 폐수거함에 버려진 누더기인데 말을 하다니.
다시 한번 외관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으으…!
누더기 데몬에 가까이 다가가서일까.
비늘을 두르고 있음에도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냥 다가왔으면 바로 얼었겠는데.
누더기가 지나온 곳엔 꽁꽁 얼어버린 몇 명의 헌터가 있었다.
전방에 나선 걸 봤을 땐 저들도 낮지 않은 급수일 텐데.
상대가 안 좋았던 모양이다.
“왜 날… 아 와.”
“너도… 얼어 버…?”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두 마리의 누더기에게 각각 손을 뻗었다.
콰악!
“!?”
“안… 얼…!?”
여유 넘치는 얼굴로 걸음을 내딛던 놈들인데.
내가 냉기에 닿았음에도 얼어붙지 않자 당황한 듯했다.
어눌한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녀석들.
후우웅…!
뭐라 뭐라 말을 하는 놈들을 무시하며 정면으로 날길 잠시.
이쯤이면 되려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비행 데몬이 있는 건 본부 위뿐만이 아니었다.
열리고 있는 포탈에서 기어 나온 데몬들이 아래로 활강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왕 굽는 거 한 번에 많은 수를 소각하면 좋을 것 같았다.
데몬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확인하고 두 손에 힘을 줬다.
꽈아아악.
“끄… 끄으…!”
“놔… 놔!”
“기다려봐, 놔줄 테니까.”
놓치지 않게끔 머리를 잡은 손의 갈무리를 마치고.
스으으…. 파앙!
연기를 터뜨리며 봐뒀던 자리로 솟아올랐다.
“끼루…?”
“크르?”
괴성을 질러대며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던 데몬들.
데몬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타난 내게로 쏠렸다.
“크… 크르!?”
아마 손에 쥐고 있는 누더기 때문인 듯했다.
냉기에 휩쓸릴까 걱정한 건지 몇 마리의 데몬이 다급하게 몸을 뺐다.
못 도망갈 텐데.
거리를 벌리려는 놈들을 굳이 다시 잡아 오진 않았다.
어차피 열심히 날아 가봐야 별 의미 없는 짓이었다.
누더기의 냉기야 피할 수 있겠지만, 다른 건 피하지 못할 터였다.
휘익!
잡고 있던 데몬을 하늘 위로 던지며 칼데아를 해제했다.
[라 - 불꽃의 문양]
화륵.
문양을 넘어 새어 나오려는 불꽃을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았다.
악귀참도를 얻은 뒤 균열 안에서 했던 것처럼.
일정 범위의 하늘을 즉석 오븐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화르… 르르….!
화염을 얼마나 눌러 담았을까.
이젠 더 못 누르고 있겠다는 판단이 든 순간.
하늘로 던졌던 누더기 두 마리가 나와 수평을 맞출 정도로 내려왔다.
“너… 뭐…!”
“여기… 떨어져도 안 죽…어…!!”
장난감 다루듯이 붙잡고 내던진 거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까보다 일그러진 채로 뭐라뭐라 열심히 소리 지르는 녀석들.
“알아 이 새끼야, 떨어진다고 안 죽는 거.”
굳이 검으로 그어보거나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놈들이 두르고 있는 누더기는 두껍고 강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화르르르르…!
더 이상 눌리지 않는 화염을 느끼며 꽉 쥐고 있던 양손을 들어 올렸다.
“이건 다를걸.”
들어 올린 양손을 맞잡으며.
내보내달라고 요동치던 불꽃을.
꽈악…!
한 번에 폭발시켰다.
* * *
“크흑…!!”
데몬 위에 있던 료헤이가 몸을 숙였다.
말도 안 되는 열기였다.
꽤 먼 거리임에도 마주하기 힘든 엄청난 불꽃.
불꽃은 허공의 한가운데에서 터져 나왔다.
‘무슨…?!’
료헤이가 자신을 태우고 있는 데몬을 내려다봤다.
거대한 날개를 가져 엄청난 비행속도를 가진 데몬이었다.
만약 불꽃이 터진 순간 데몬이 반응해 거리를 벌리지 못했다면.
료헤이는 불꽃에 닿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열기에 익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스윽.
어느 정도 불꽃이 잦아들 때쯤.
료헤이가 얼굴을 가렸던 팔을 내렸다.
‘….’
보는 이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분명 포탈에서 나온 비행 데몬 무리가 눈앞의 하늘을 채워가고 있었는데.
지금 데몬은 온데간데없이 새까만 밤하늘만이 말끔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 나타난 불…?!’
펄럭.
불꽃이 터졌던 위치에 무언가 있었다.
료헤이는 의아했다.
펄럭이고 있는 저 검은 연기는 대체 뭐길래 이렇게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걸까 하고 말이다.
“조금만 가까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말을 알아들은 데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밀한 날갯짓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데몬.
‘겁먹었다? S급 데몬이…?’
포효하며 미친 듯이 날갯짓하던 아까완 달랐다.
데몬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뚝.
그리고 얼마 다가가지도 않아 날갯짓을 멈춰버린 데몬.
본능적으로 멈춘 녀석에게 더 다가가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고, 동시에 료헤이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스윽.
료헤이가 눈을 찡그리며 몸을 기울였다.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달빛이 펄럭이는 무언가에 비치고 있었다.
스르륵.
료헤이가 보고자 하는 것이 달빛과 완전히 겹쳐진 순간.
‘!!!’
료헤이의 얼굴로 경악이 번져갔다.
‘백운!!’
본부 기지에 있던 구원교 신도가 보내온 사진.
사진 속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찍혀있었다.
체격이 다부지긴 했으나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훽!
검은 연기와 불꽃의 주인이 백운이란 걸 확인한 료헤이.
료헤이가 지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헤키리스에게 힘을 보내느라 하늘에만 집중하고 있던 터였다.
‘서리누가…!!’
이미 기지를 초토화 시키고 있어야 할 S급 데몬, 서리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륵.
서리누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료헤이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조금 전 불꽃이다.’
냉기로 잔뜩 둘러싸여 있는 서리누를 한 방에 없애버릴 정도의 불꽃이라면.
꿀꺽.
위험했다.
- 까드득.
공당을 방문하며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서리누의 냉기가 얼마나 지독하고 시린지 말이다.
“… 후우우우.”
료헤이가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상식을 깨는 백운의 힘이 놀랍긴 했지만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리 백운이 강한 힘을 가졌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 게 있었다.
곧 힘을 전달받은 헤키리스가 에너지를 뿜어낼 테고, 그 순간 훗카이도의 대부분이 사라질 거란 사실이었다.
‘저게 뭐가 됐든… 아무 의미도 없다.’
다시 눈을 뜬 료헤이가 하늘을 바라봤다.
포탈은 거의 다 열린 상태였다.
구조물의 힘 역시 조금만 더 올려보내면 끝이기에.
거의 다 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스윽.
하던 일을 마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료헤이.
그런 료헤이의 귓가로.
끼아아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이 들려왔다.
* * *
하늘에 있던 놈들이 모두 재가 된 걸 확인한 후.
지상으로 내려와 스이카를 꺼냈다.
[칼데아 윙 & 스이카]
연속으로 연기를 터뜨려 이동하며 발도를 뿜어냈다.
옆에 뭐가 나타난 건지도 모른 채 상반신이나 팔다리가 날아가고 있는 데몬들.
- !!!
처음엔 바로 옆에서 뿜어지는 발도에 헌터들이 기겁했었다.
데몬을 마주하면서도 그렇게 커지진 않았던 거 같은데.
너무 놀란 탓인지 발도가 뿜어지기 직전엔 굴러떨어질 정도로 눈이 커진 상태였다.
죄송!!
놀라서 굳어버린 헌터들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바빠죽겠는데 발도를 휘두를 때마다.
이건 귀신의 검 스이카인데요.
발도 범위 안에 있어도 제가 베고자 하는 게 아니면 안 베이거든요.
그러니까 귀는 좀 아파도 안전하니까 안심하세요!
라고 구구절절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끼아아아아아악---!
자리를 옮기며 몇 번이나 휘둘렀을까.
지상에 있던 데몬의 숫자는 처음보다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당신은…!”
멋진 창이구만.
거대한 드릴로 싸우고 있던 헌터가 말을 걸어왔다.
헌터가 입은 제복 위엔 츠로이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츠로이 님, 얼른 본부에 있는 분들이랑 여기서 멀어지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건넸다.
훗카이도의 1/3이 날아가는 만큼 여기서 멀어진다고 무언가 달라질까 싶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아래에 있는 것보단 멀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불똥 튈 수도 있으니까.
하늘에서 나오고 있는 손은 미친 듯이 거대했다.
이전 도시에서 봤던 손과 비교할 수 없는 크기.
구조물로부터 얼마의 힘을 받느냐에 따라 손의 크기도 달라지는 듯했다.
떨어지는 것도 엄청나겠지.
뿜어지던 원형 에너지의 크기가 손에 비례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악귀참도로 베어내도 에너지의 잔여물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이었지만 츠로이는 무언가를 더 묻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있었기에 츠로이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곧 엄청난 게 떨어질 거란 사실을 말이다.
“그럼!”
연기를 터뜨려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거의 다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의 손.
에너지를 쏘아내기 전에 뭐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앤 보니&메리 리드 - 작열탄]
철컥.
거대한 손과 손목을 향해 리볼버를 조준했다.
저게 뭔진 몰라도 일단 나쁜 놈의 손모가지인 걸 분명했기에.
일단 한바탕 갈겨 볼 생각이었다.
[빛의 구원]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빛의 탄환이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손으로 날아갔다.
뭐 하는 놈인진 몰라도 따끔은 하겠…?
슉슉수숙숙.
뭐야?
쏘고 있으면서도 두 눈을 의심했다.
탄은 손에 닿지 않았다.
손에서 터지지 않고 진행 방향 그대로 뚫고 지나가 버리는 탄환들.
마치 신기루에 대고 총을 갈긴 느낌이었다.
“푸… 푸하하하하하!!”
“…?”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꽤 먼 거리였다.
날개가 달린 데몬 위에 올라타 있는 한 명의 남자.
저 구석에 있었네.
이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화기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하하하하하!! 하…!!”
뭐가 그렇게 웃긴지 한참을 웃던 료헤이가 날 응시했다.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요.”
저놈부터 보내야겠네.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닿지 않는 게 있다고요! 하하하하!”
파앙!
날개를 터뜨리며 방향을 틀었다.
능력을 이용해 데몬을 강화하는 녀석이었다.
뭐가 됐든 먼저 죽여둬서 나쁠 건 없었다.
“자! 계속 발악해보십시오!”
오냐 바로 죽여…?
료헤이에게 나아가려는 찰나.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의 움직임에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헛된 몸부림일 뿐이니!”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손에서.
번쩍.
빛이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