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뿌려내다
하늘의 포탈 너머, 지하 공당.
“크… 크륵.”
공당 안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왔다.
포탈을 여느라 근처에 있었던 포이카도 마찬가지였다.
잔뜩 그을린 어깨를 감싼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뭐가 날아온 거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열어 놓은 포탈을 통해 날아든 수 백발의 탄환.
인간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탄이 아닌, 빛으로 이루어진 탄이었다.
- 콰가가가가가!
포탈을 통해 탄이 날아드는 걸 보고 있던 포이카였다.
곧장 포탈에서 물러난 덕에 탄 자체에 피격되지 않았으나.
탄은 주변에 있던 데몬이나 벽에 부딪히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덕분에 모여있던 많은 데몬이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꽈악.
포이카가 부상당한 어깨를 움켜쥐었다.
탄이 날아든 게 포탈이 완전히 열린 후라 다행이었다.
‘내 역할은 다 했다.’
힘을 받아 거대해진 헤키리스의 손이 나갈 수 있도록 포탈을 여는 것.
포이카가 맡은 임무였다.
그 이후는.
스윽.
포이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헤키리스를 응시했다.
탄이 날아들든 말든 헤키리스에겐 닿지 않았기에.
헤키리스는 온전히 자신의 힘에 집중하고 있었다.
“클클… 크하하!”
지상을 향해 에너지를 쏘아내며.
헤키리스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나의 힘이란 말인가!!”
에너지를 쏘아낸 지 몇 초 안 된 시점이었으나.
헤키리스는 알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이 쏘아낸 에너지는 곧 훗카이도를 날려버릴 거란 사실을, 그리고 그곳에 존재하던 모든 생명체를 재로 만들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힘의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적지 않은 수의 데몬이 부상당한 건 물론이며 지하 공당 여러 곳이 엉망이 되었고, 지상에 내려갔던 S급 데몬 서리누와 여러 데몬들이 한 남자에게 처참히 박살 나버렸다.
하지만, 그 무엇도 헤키리스의 관심을 끌 순 없었다.
현재 헤키리스의 모든 신경은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황홀한 힘과 곧 그 힘이 만들어낼 결과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서져라! 재가 되어라! 다른 차원의 힘에 굴복하라!”
헤키리스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토록 바라던 결과가 임박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애가 탔다.
1분이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로 벌어질 참극을 말이다.
“새로운 신의 탄생을 전 세계로 알리거라!! 크하하하!!!”
헤키리스의 웃음소리가 공당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메워졌던 웃음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
“…?”
헤키리스가 이상함을 느끼며 웃음을 그쳤다.
이상했다.
지금도 계속 뿜어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첫 에너지가 뿜어진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충분히 지상에 에너지가 도달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어째서 어떠한 파괴음도 들려오지 않는 걸까.
스윽.
헤키리스가 고개를 내려 포탈 너머를 응시했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포탈의 범위로 보이는 건 헤키리스가 쏘아낸 에너지뿐이었다.
“왜 닿지 않는 것이냐?”
곁에 있던 포이카가 화들짝 놀라며 포탈 아래를 바라봤다.
어깨의 통증 때문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어 몰랐는데.
헤키리스의 말처럼 무언가 이상했다.
“음…?”
포이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이지만 백색 에너지의 중앙에서 무언가 일렁거렸었다.
흐릿하지만 분명 검은색의 기운이었다.
‘조금 전 뭔가가…!?’
그리고 잠시 후.
콰가가가가가가가가!!
포이카가 굳이 헤키리스의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었다.
이젠 헤키리스의 눈에도 선명히 보이고 있었다.
에너지의 바다에서 미친 듯이 들끓고 있는 수만 개의 형상이 말이다.
“저건… 무엇이냐?”
포이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포이카 역시 몰랐기 때문이다.
대체 저게 뭐길래 헤키르스의 힘을 거스르고 있단 말인가.
꾸드득.
“!!!”
헤키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어떤 놈이 감히…!!”
다른 한 손으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던 손을 붙잡았다.
“감히!!”
헤키리스가 거칠게 포효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언가가 자신이 뿜어낸 힘을 밀어냄과 동시에 소멸시키고 있었다.
꾸드드드득!!
헤키리스가 미친 듯이 출력을 올렸다.
료헤이가 건네준 힘은 충분했다.
지금보다 더 강하게 쏘아내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찍어 누를 생각이었다.
“나의 힘은 무한이니라!!”
쿠구구구…!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진 힘에.
지하 공당이 흔들리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포탈 너머의 공간에 쏘아내는 게 전부라 공당엔 미세한 영향만이 있을 뿐이지만.
그 미세한 영향이 진동을 만들어낼 정도로 헤키리스의 힘이 커진 탓이었다.
‘헤… 헤키리스 님…!’
꿀꺽.
포이카가 마른침을 삼키며 핏대를 세운 헤키리스를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지하 공당이 붕괴할 판이라 말려야 했지만, 감히 말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간 포이카의 먼저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번쩍.
‘…!?’
헤키리스와 무언가의 힘겨루기가 한참 이루어지고 있을 때.
하늘을 덮었던 에너지가 갈라지며.
쐐에에에엑!
무언가 공당으로 날아들었다.
* * *
드드드드득!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힘이었다.
포탈 너머에서도 내 존재를 알아차린 건지 계속해서 강해지는 힘.
파아아앙!
나도 질세라 연기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여기서 밀려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밀리는 순간 에너지의 파도에 삼켜져 함께 지상으로 내리꽂힐 터였다.
연기는 아직 괜찮다.
형상화를 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버틸만한 양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아직 채 휘둘러지지 못한 악귀참도를 바라봤다.
고오오오…!
완전히 휘두르진 못했으나 도에서 뿜어진 악귀들이 에너지를 휘젓고 있었다.
사라지고 있어.
단순히 휘젓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악귀들은 닿은 에너지를 쉴새 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완벽하게 베어버리기 위해 힘을 줄여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우웅…!
그리고, 악귀가 삼킨 에너지는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니었다.
악귀참도를 잡은 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삼켜진 에너지는 베지 못하는 걸 베는 힘으로 고스란히 치환되어 악귀참도에 쌓이는 중이었다.
쿠드득.
강해진 에너지와 상관없이.
거대해진 악귀참도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에너지가 강해지는 속도보다 악귀가 빨아들이는 속도가 더 빠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쿠구구구!
…!
순간이지만, 분명히 보였다.
하늘 전체를 물샐 틈 없이 가득 채웠던 에너지가 갈라지며.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아아…!
칼데아의 연기를 모으고.
꽈악.
악귀참도를 잡은 손에 최대의 힘을 주었다.
가능하다.
지겨운 줄다리기를 끝낼 시간이었다.
이미 악귀참도에 쌓인 힘은 사용자인 나조차 아찔해질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뿜어내야 할 때였다.
“스으으….”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으며.
파아아아앙!
날개의 연기를 폭발시켰다.
순간적으로 쏘아지는 날개의 힘을 실어, 지금까지 쌓인 힘과 함께.
이제 그만.
스가아아아악!
꺼져라.
악귀참도를 휘둘렀다.
* * *
콰아아아아아!
포이카가 주저앉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포탈 너머에서 에너지를 가르며 날아오고 있는 것.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반월 모양의 것엔 아까 봤던 수만 마리의 악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
헤키리스 역시 그걸 보고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서걱!!
“…?”
공당으로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 포탈을 통해 넘어온 건 거대한 검기였다.
닿는 모든 걸 날려버릴 듯한 예기가 서려 있는 검기.
‘뭐… 뭐지?’
포이카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말도 안 되는 검기가 들어왔다.
당연히 공당 전체가 베이며 무너지거나 주변에 있던 데몬들이 두 동강 날 거라 생각했는데.
공당은 멀쩡했고 검기가 스치고 지나간 데몬들 역시 작은 상처 하나 없는 상태였다.
‘분명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째서 검기에 닿은 이들이 멀쩡한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 검기에 의해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들렸었다.
곁에 있던 데몬도, 공당도 아니라면.
‘대체 뭐가 베인…!!!’
포이카의 입이 벌어졌다.
에너지가 갈라지고 검기가 날아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란 상태였다.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놀란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일이 포이카의 시야로 들어왔다.
핏… 푸슉.
“…?”
포아키보다 더 놀란 이, 헤키리스가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무엇이냐 이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너무 낯설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감각.
“헤… 헤키리스 님!!”
포이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헤키리스는 그저 궁금했다.
지금 왜 어깨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지고 있으며.
어깨에서 느껴지는 이 감각은 무엇인지 말이다.
스윽.
멍한 얼굴의 헤키리스가 다른 쪽 손을 어깨로 옮기려는 순간.
푸슉… 푸화아아아아악!!
어깨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지며.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통증이란 감각이 헤키리스의 몸으로 퍼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 * *
“….”
료헤이가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였… 다?’
어떻게든 생각해보려 했지만 굳은 료헤이의 머리는 움직이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시를 날리는 에너지가, 훗카이도를 날릴 수 있는 에너지가, 구원교의 수많은 신도가 몇 년간 모아온 힘이.
단 한 명의 남자에 의해 베어져 사라졌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 꿈에서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었다.
- 난 내가 닿을 수 있다에 전재산을 걸지.
어째서일까.
지금 상황에 백운이 말했던 내기가 떠오르는 것은.
‘절대 깰 수 없는 법칙이… 아니었다고…?’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절대 틀리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었고,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게 바로 헤키리스의 무결성이었다.
무엇에도 닿지 않는 절대적인 법칙이자 무결성.
그 무결성 때문에 인간을 저버리고 동료들을 죽였던 데몬에게 붙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 그 무결성이 겨우 한낱 인간 때문에 깨어졌다.
‘내가… 틀렸다…?’
아찔한 기분에 료헤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사아아…!
등 뒤로 아까 느꼈던 소름 끼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거 어쩌냐.”
왠지 모르게 신이 난 목소리였다.
“닿아버린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