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깨끗해진 하늘
“날개쉨!”
툭툭.
손을 털며 아래로 추락하는 데몬을 바라봤다.
료헤이는 어디 갔지.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료헤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빈대떡이 됐을 터였다.
- 쐐엑!
의리없는 데몬 녀석.
내가 나타나자 날개 데몬이 선택한 건 도망이었다.
어깨에 료헤이가 타고 있든 말든 최고 속도로 몸을 피했던 녀석.
- 으… 으아악!!
덕분에 료헤이는 내게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죽은 걸 보면 힘을 모으고 전달하는 것 외에 다른 능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표정 엄청났지.
에너지가 떨어지기 전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는데.
조금 전 봤던 료헤이는 나라가 망한 걸 넘어 세상이 멸망이라도 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료헤이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을 절대적인 존재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던 목소리가 그 증거였다.
어떤 데몬이었으려나.
결국 그게 누군지는 볼 수 없었다.
악귀참도로 검기를 뿌려낸 이후.
포탈은 무언가를 하나 툭 뱉어내고 곧장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으.
료헤이가 모시던 주인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쿠우우…!
포탈이 열렸던 바로 아래.
지상엔 푸르딩딩한 팔 하나가 놓여있었다.
어깻죽지까지 깔끔하게 잘린 팔.
분명 하늘에서 에너지를 쏘아내던 손이었다.
- 시벌…?
검기를 뿌려내고 호흡을 가다듬으려는 찰나.
열려있던 포탈에서 거대한 팔이 떨어져 내렸다.
쏘아졌던 에너지가 하늘을 뒤덮은 만큼.
떨어지는 팔도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 스르르…!
맑은 밤하늘에 푸르딩딩한 거대 팔이라니.
료헤이와 데몬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물론 그 크기 그대로 지상에 떨어진 건 아니었다.
료헤이의 힘 덕분에 거대화됐던 건지 시퍼런 팔은 떨어지면서 급속도로 크기가 줄어들었다.
숭허구만, 숭해.
작아져서 그나마 덜 숭해진 팔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숭하지만 깔끔하게 잘린 팔이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처음 쏴 재낀 리볼버의 탄환은 닿지 못했으나.
악귀참도가 뿌려낸 검기는 구원교가 절대자라 물고 빨던 녀석에게 닿으며 시원하게 팔을 날려버렸다는 것.
흐뭇.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머금어졌다.
몹시 흡족스러웠다.
“쯔즛, 건방지게 말이야. 누가 누구한테 못 닿아?”
혀를 차며 에너지가 사라진 하늘을 응시했다.
녀석이 쏜 에너지 때문에 대낮처럼 밝아졌던 하늘인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별을 반짝이며 청명한 밤하늘로 변해있었다.
휘이이.
뺨을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구만.
바람과 함께 승리의 여운을 즐기고자 두 눈을 감았다.
…!
정확히는 감으려고 했다.
사락.
앗.
너무 신이 나서일까.
날개 데몬을 쫓아다니느라 연기가 거의 바닥났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던 날개가 사라지며.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꾸아아아아!”
* * *
“멈춰 주세요.”
료코의 말에 전속력으로 달리던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차가 멈추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사람들의 가장 앞에 선 료코가 하늘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 백운 님이 곧장 이곳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손에서 에너지가 쏘아지기 전.
1급 헌터 츠로이가 본부에 와 전한 말이었다.
원래라면 백운만 남겨두고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떠나라고 말한 게 백운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괜히 남아 방해만 될 여지가 있었기에 료코는 망설임 없이 철수 명령을 내렸다.
- 안돼….
차로 달리는 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하늘로 향해 있었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으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아무리 달려 벗어나고 있다 해도.
저런 게 떨어지는 순간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게 사라져 버릴 거란 사실을 말이다.
- 신이시여.
스스로가 간사했다는 생각에 료코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료코는 종교를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너지가 쏘아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신을 찾고 말았다.
기댈 곳이 없을 때 기도를 하게 된다더니.
그럴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10급 헌터이자, 무기왕… 백운.’
물론 료코의 바람대로 신이 나타나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그곳엔 백운이 있었다.
검은 연기로 된 날개를 단 채 에너지를 마주하고 있었던 백운.
‘도망치지 않았어.’
날개와 함께 이동하는 백운의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했다.
혼자 피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에너지 범위 밖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운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한 자루의 검을 쥔 채 조용히 떨어지는 에너지를 응시했다.
‘….’
지금 떠올려도 꿈을 꾼 건가 싶은 광경이었다.
하늘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손과 그 손에서 뿜어지던 파멸의 에너지.
밤하늘마저 대낮처럼 밝힐 정도로 에너지는 엄청났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이제 곧 파멸이 찾아올 거란 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 끝났어….
- 흑흑.
차량 곳곳에선 작은 흐느낌 혹은 포기한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평소라면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포기하지 말라거나 힘을 내라거나 말을 건넸을 테지만.
아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료코 역시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료코가 다른 사람들처럼 포기했던 건 아니었다.
- 꽈악.
어째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였다.
료코는 포기 대신 주먹을 꽉 쥔 채 하늘에 떠 있는 백운을 향해 기도했었다.
먼 곳에서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으나.
그건 차후의 문제였다.
- 백운 님…!
왠지 모르게 질 것 같지 않았다.
떠오르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백운이라면 이겨낼 것 같았다.
- 콰아아아아아아!!
에너지가 쏘아진 직후.
료코와 차량의 사람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훗카이도를 날리고도 남을 듯한 에너지를.
백운이 단신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 ….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 훗카이도에 사는 수백만 사람의 목숨이 백운에게 달려있었다.
- 콰아아아아아!
백운과 에너지 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 스가아아아악!
무언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고.
아래에서 뿜어진 반달 모양의 기가 에너지를 뿜던 손으로 휘둘러졌다.
뇌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 절대 잊히지 않을 장면이었다.
반달의 기가 나아갈수록 하늘을 덮었던 에너지가 걷혀갔다.
마치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 쿠우우우우…!
그렇게 파멸의 색으로 물들여졌던 하늘은 맑아졌고.
하늘에선 백운의 승리를 증명하듯 에너지를 쏘아내던 것의 거대한 어깻죽지가 떨어져 내렸다.
띠리리리리리.
통신을 방해하던 에너지가 걷혀서일까.
기다렸다는 듯이 료코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정부의 총리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료코입니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속사포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훗카이도에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는 일본 북부 전체에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설명하겠습니다.”
료코가 담담한 어조로 이틀 전부터 오늘까지 일을 상세히 보고해나갔다.
# ….
료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시끄러웠던 전화기 너머는 고요해졌다.
너머에선 한 명만 듣고 있는 게 아니었다.
총리를 포함한 각 고위 관리들이 함께 듣고 있을 터였다.
# 훗카이도는… 무사한 겁니까…?
침묵이 이어지던 전화기에서 간신히 쥐어짜 낸 질문이 건네졌다.
처음 전화 건 관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총리님.”
짧게 예를 표한 료코가 대답을 이어갔다.
“훗카이도를 파멸로 이끌 뻔했던 위험은 완전히 소멸하였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안도의 환호가 들려왔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큰일을 해주었어요, 료코 장관.
“… 제가 아닙니다.”
# 예…?
뜻밖의 대답에 다시 고요해진 전화기로.
침을 한 번 삼킨 료코가 입을 열었다.
“위험을 소멸하고 훗카이도와 수백만 인구를 구한 건, 한국의 헌터….”
이름을 말하려던 료코가.
한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숨기며 무기왕으로 알려진 백운을 떠올렸다.
여기에 있는 인원들은 입단속 시킬 수 있었지만.
정부로 알려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퍼져 나갈 터였다.
“후우.”
한차례 숨을 내쉰 료코가 머릿속에서 정정한 이름을 말했다.
“대한민국 국가직 소속 헌터, 무기왕 입니다.”
* * *
저벅. 저벅.
“시원한 밤바람이 내 뺨을 스치네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훗카이도는 러시아 뺨 때리게 추운 곳이라고 들었는데.
한껏 열을 올린 탓인지 춥긴커녕 밤바람이 몹시 상쾌하게 느껴지는 중이었다.
툭툭.
“파닥이 뒈졌고.”
괜히 지나가는 길에 있는 날개 데몬을 몇 번 건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걸음 더 걸어가자 엎어져 있는 료헤이가 눈에 들어왔다.
“으.”
이건 건드려 볼 필요도 없었다.
“싸… 싸이비 사도 죽었고.”
예상했던 대로 료헤이 역시 이미 요단강을 건넌 상태였다.
꼬라지를 보니 무조건 즉사였다.
“나약한 쉨이 그냥 어? 조금 센 형 뒤에서 말이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혀를 차며 빙 돌아 툭 떨어진 팔로 다가갔다.
그래도 운동은 열심히 했는지 울룩불룩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팔이었다.
“흐음.”
턱을 슥슥 문지르며 하늘로 시선을 들었다.
“이건 안 뒈졌겠지?”
* * *
“끄아아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지하 공당을 가득 메웠다.
“빨리 옮겨라!”
“치료 능력을 가진 데몬을!”
비명만큼이나 공당은 아비규환 상태였다.
헤키리스를 치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포이카도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으아아아아!! 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보란 말이다!!”
꿀꺽.
헤키리스의 고통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포이카가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이 사단을 만들어낸 인간이 누구인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헤키리스의 팔이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공당의 데몬들이 헤키리스를 절대적인 존재로 모셔온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있었으니.
그 누구도 헤키리스에게 닿을 수 없다는 무결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으나.
포이카를 포함한 많은 데몬의 머릿속엔 한 가지 사실이 새겨지고 있었다.
‘무결성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