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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37화 (237/473)

237화. 런던으로

번쩍!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닌데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딱 좋은 시간이구만.

수학여행 가는 날에 깊이 잘 수 없듯이.

나 역시 얕은 잠을 자며 고요한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벅.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옆에 놓인 가방을 집었다.

이틀 치 정도의 식량이 담긴 방수 가방.

가방을 들고 잘 머물렀던 방을 나섰다.

용서하십시오, 태랑 님.

건물을 나서며 아까 봤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미라코의 의견을 수렴해 선택한 건 안읽씹이었다.

둘 중에 뭐가 더 잔인한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니까.

눈을 반짝이며 미라코에게 한국 헌터청으로 회신을 부탁했었다.

방에 가보니 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무조건 무죄야.

몰랐는데 어떻게 가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을 나섰다.

못 본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평온해졌다.

저벅.

걸음을 옮기다 빠져나온 본부를 쳐다봤다.

오랜만에 전용기 타보나 싶었는데.

원래라면 내 출발 시간은 오늘 오후였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갈 수 있도록 전용기를 준비해주겠다고 료코는 말했었다.

그럼에도 어둑한 시간에 몰래 나온 건 이유가 있었다.

- 사람이 좀 많을 거예요.

벌써부터 공항엔 수많은 인파가 대기 중이라고 료코는 말했었다.

료코의 인터뷰부터 저녁쯤에 공개된 동영상까지.

일본 전역에서 날 보기 위해 텐트까지 가져와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되지.

잘난 얼굴도 아닌데 봐주러 온다니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싶었다.

내 정체야 안 들키도록 료코가 어련히 잘 해주겠으나.

그 많은 인파를 헤치며 꾸역꾸역 런던으로 가고 싶진 않았다.

런던 갈 거라고 말도 안 했고.

말한다고 료코가 어디에 퍼트리고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굳이 내가 다음에 어디 갈지를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다시 걸음을 옮기며 눈을 반짝였다.

런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미지수였다.

필요하다면 건물 하나를 뽀개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야밤에 박물관을 털어야 할 수도 있었다.

행선지를 알려서 용의 선상에 미리 올라갈 필요는 없지.

합리적인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꺼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스으으읍… 파하아아!”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정면을 바라봤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훗카이도를 다 날릴 기세로 에너지를 퍼붓던 하늘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달과 약간의 구름만이 낀 밤하늘은 세상 평화로워 보였다.

비행기로 대략 12시간이었으니까… 뭐, 더 빨리 도착하겠지.

삑… 삑.

주머니에서 소리 내고 있는 GPS를 꺼냈다.

별 기능은 없지만 방향 하나는 잘 나타내주기에.

런던까지 내 방향을 잡아 줄 녀석이었다.

“그럼.”

펄럭.

날개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볼까.”

* * *

… 나…!

으음.

무거운 눈꺼풀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인가.

제대로 안 자고 새벽에 깨서일까.

런던으로 한참 날아가던 도중.

거의 다 왔을 때쯤 해서 졸음이 미친 듯이 밀려왔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꺼풀이 팍팍 감기는 상황에.

- 졸음 운전은 안 되지.

란 마인드로 연기도 채울 겸 바다로 착지했었다.

그대로 배낭을 베개 삼아 배영 자세로 잠이 든 상태.

아침 해가 뜨려는 새벽 시간대라 약간 눈부시긴 했지만, 바람도 선선했기에 마취총에 맞은 듯 잠에 빠졌었다.

… 라고!!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오고.

꿈이라면 왜 이렇게 날 못살게 구는 걸까 싶은 사이.

스으으…!

!!

이마에 닿으려는 차가운 금속 재질에.

콰득!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이마에 닿았던 걸 잡아챈 뒤, 손을 뻗어 누군가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

“꼼짝 마!!”

“그거 안 놔!?”

사방에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레.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날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개의 총구와 각종 무기들.

요즘 들어서 총구에 둘러싸이는 일이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군인인가.

모두가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딱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끄윽…!”

앗.

들려오는 신음에 호다닥 손을 놨다.

제복에 가까운 사람들과 달리 화려하게 생긴 갑옷을 입은 여자.

내게 잡혀있던 여자가 작은 신음을 뱉으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뭐 하는 놈이냐…!”

대답하기 전에 지난 경험을 되살려 손을 번쩍 들었다.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까진 가장 적절한 대처가 아닐까 싶었다.

막대기구나.

싸늘한 느낌에 누가 총구를 들이댄 줄 알았는데.

여자가 들고 있는 건 팔목 크기의 지휘봉 같은 것이었다.

….

지휘봉에서 시선을 조금 더 올리자.

인상을 찡그린 채 헝클어진 금발을 쓸어 넘기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백인이라 당연한 거겠지만.

여자는 유독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 피부의 위로는 시뻘건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에… 에밀리아 님!”

“에밀리아 경!”

주변 사람들도 손바닥 자국을 확인한 건지.

저마다 걱정스런 목소리로 여자의 이름을 불러댔다.

에밀리아… 경?

설마 내가 손바닥 자국을 내놓은 게 기사의 얼굴인가 싶은 순간.

에밀리아가 다시 한번 지휘봉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누구냐!!”

* * *

안내에 따라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내 담당인지 함께 올라타는 흑색 단발머리의 여자.

여자의 제복엔 이사벨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뭐지, 데자뷰인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랑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수갑은 안 찼네.

두 손이 자유로웠다.

조금만 더 수상하면 바로 공격해올 거 같은 상황에.

훗카이도에서 머물며 뽑아놨었던 신분 확인서를 보여줬었다.

국가직 소속 헌터라는 걸 알자 한층 경계가 누그러졌었던 사람들.

슬금.

“정말 수영해서 오신 거예요?”

옆으로 다가온 이사벨에.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수영해서… 왔는데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수영해서 왔노라고 대답했었다.

물론 일본부터가 아닌, 인근 나라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했다.

무거웠었지.

수영이란 단어 때문인지 대답하기 무섭게 정적이 깔렸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공격해야 하는 갈등이 사람들의 얼굴에 잠깐 스친 거 같기도 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했던 어필은 잘 먹힌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떠내려왔다는, 세상 억울하다는 듯한 어필.

어쨌든 모두가 겨눴던 무기를 내려놨고 수갑도 안 채웠으니 된 일이었다.

“저 이제 감옥 가나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묻자.

실소를 터뜨린 이사벨이 고개를 저었다.

“감옥 가실 거면 이렇게 두 손 자유롭게 안 가죠. 잠시 런던청으로 가서 간단한 입국 절차만 다시 밟을 거예요.”

“휴, 다행이네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였으나.

만약 감옥행이었다면 고민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감옥을 부수고 탈출하는 것보다 지금 차에서 뛰쳐나가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말이다.

“정말 다행인 거죠. 바로 앞이면 모를까 바다엔 데몬이 득실거릴 텐데. 별일 없이 여기까지 오신 게 천만다행이에요.”

“하하… 그렇죠.”

자면서 떠내려오는 중에 데몬을 몇 마리 잡긴 했었다.

지 죽을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달려들던 놈들이었다.

스윽.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사벨을 바라봤다.

참 해맑네.

짧은 머리를 바짝 당겨 묶은 이사벨.

누가 영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차갑다고 했었는데.

이사벨한테는 포함되지 않는 말인 듯했다.

“혹시 아까 그 에밀리아 라는 기사분은 괜찮으신가요?”

“네! 원래 피부가 약하시거나 그러진 않은데… 빨개지셔서 놀랐어요.”

뜨끔.

잠결에 잡아서인지 힘 조절이 안 된 모양이었다.

“에밀리아 님은 국가직 소속 헌터로 공을 많이 세우셨거든요. 그래서 기사 작위도 받으셨고요.”

그래서 경이라 불렀구만.

이사벨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완전 제 인생 롤모델이세요. 아름다우시고, 멋지고, 강하고, 성격도 완전 온화하시고요!”

“온화… 하신 거죠?”

내 탓이 크겠지만.

처음 봤던 에밀리아의 첫인상과 온화란 단어는 거리가 좀 있었다.

딱 봐도 무척 차가울 듯한 얼굴이었다.

“원칙주의자에 완벽주의자셔서 평소에 차갑게 보이긴 하는데요. 아… 실제로 좀 차가우실 때가 많긴 한데… 저도 자주 혼나긴 하고요… 어쨌든 온화하고 착하세요!”

이리저리 고민하는 이사벨에 더 이상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려니 하며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응?

이사벨의 주머니에 든 작은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수첩… 은 아닌 거 같은데.

수수한 거 같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었다.

무언가 제목까지 적힌 걸로 보아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인가 싶었다.

“아…!”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이사벨이 부쩍 당황하며 열려있던 주머니로 고개를 내렸다.

난처한 듯 헤헤 웃어 보인 이사벨이 모른 척해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슬그머니 주머니를 닫았다.

“책인가요?”

휙휙.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보여서일까.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고개를 몇 번 두리번거린 이사벨이.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완전 좋아하는 작가님이거든요!”

작가명엔 로즈란 이름이 쓰여있었다.

“제가 왜 이 작가님 소설을 좋아하냐면요!”

이사벨의 수다 버튼을 눌러버린 모양이었다.

팬이 된 이유에 대한 이사벨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로즈 작가는 자신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것과, 모든 소설에서 소나타 윈스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게 주된 주제라는 설명이었다.

모든 소설이 똑같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이과적인 의문을 뒤로하고.

설명을 마친 뒤 눈을 반짝이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이사벨에.

“정말 재… 재밌겠네요!”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쵸!”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인 이사벨이 내게 책을 건넸다.

“….?”

“영국은 처음이라고 하셨죠? 첫 방문 선물로 드릴게요, 시간 나실 때 꼭 읽어보세요!”

쉽게 따라가지 못할 수준의 엄청난 친화력이었다.

총구부터 겨누며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는데 이런 텐션이라니.

“꼬… 꼭 읽어볼게요!”

안 받으면 실례일 거 같아 책을 받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한 명의 팬을 더 늘렸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사벨이 뿌듯한 얼굴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다시 한번 해가 뜨는 나라,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

이사벨이 환영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

무언가 날아오는 감각에.

휙!

자리에서 일어나 이사벨을 감싸 안았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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