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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39화 (239/473)

239화. 로인의 이야기

놀란 표정의 로인을 쳐다봤다.

뭐랄까.

나에게도 약간의 양심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로인을 마주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지난번 날로 먹었던 일이 떠올랐다.

무려 망자의 길로 안내까지 해줬는데 대충 그럴싸한 말로 둘러대 버렸었다.

바로 낫 꺼내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로인은 그저 저 새끼가 왜 여기에…!? 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선수필승.

“왜 여기에 있어?”

로인이 할 법한 질문을 먼저 건넸다.

나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아는 한 로인의 활동 장소는 그리스였다.

그리스에 사는 놈이 런던 한복판에서 차에 처박힌 건 분명 놀랄 일이었다.

“….”

인상을 찡그린 로인이 대답을 망설였다.

원래부터 좀 음습한 기질이 있는 녀석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거나 할 녀석이 아니었다.

“어두워서 잘 못 보긴 했는데, 아까 너 날렸던 놈을 얼핏 봤거든.”

“…!”

로인의 얼굴로 변화가 생겼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로인의 몸에 잔뜩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과 발동되었던 페샨의 눈.

“같은 사신한테 당한 거지?”

언젠가 로인은 말했었다.

사신은 자기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각성 능력인데도 비슷한 부류가 집단처럼 더 있다는 게 신기했었는데.

그땐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었다.

맞나 보네.

로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말로 하진 않았으나 대답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벅.

몇 발자국 더 걸어가 침대 옆 의자에 몸을 앉히고.

잔뜩 찡그리고 있는 로인을 바라봤다.

가까이서 보니 상태가 더 최악이었다.

상처가 깊거나 한 건 아니지만 이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야윈 상태.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분명한 건 하나였다.

얼마 못 버티겠지.

생김새까진 못 봤어도 느껴졌었다.

거리에서 봤던 덩치 큰 사신 놈은 로인보다 강했다.

그리스 때처럼 멀쩡한 로인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태라면 며칠 버티지 못하고 죽을 터였다.

차로 안 날아왔으면 모를까.

그냥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을 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로인의 도움을 받은 덕에 늦지 않게 대산에 도착할 수 있었고.

가던 길에 봉인된 도윤도 발견해 꺼내올 수 있었다.

… 생각해보니까 스노우볼이 엄청났구먼.

그런데도 말 몇 마디로 때워버렸으니.

날강도 새끼가 따로 없었다.

“도와줄게.”

“뭐…?”

다시 한번 놀라는 로인에.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응시했다.

“그러니까 말해봐.”

“….”

잠시 망설이던 로인이.

“내가 런던으로 온 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그리스 외곽에 위치한 공터.

지붕에 앉은 로인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안녕 애들아! 오늘은 맛있는 생선 가져왔어!”

아래엔 밝게 웃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고 있는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

바라보기만 해도 따듯함이 느껴지는 눈동자였다.

“냐아앙--!”

소녀의 주변으로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주변에 피해를 끼칠까 언제나 한적한 공터로 와 먹이를 주는 소녀.

“사이좋게 먹어야지!”

생선을 향해 서로 달려드는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며.

소녀가 기쁜 듯 미소를 머금었다.

“….”

그런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로인.

로인 역시 알지 못했다.

어째서 자기는 항상 같은 시간에 공터로 와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지 말이다.

“더 있으니까 많이 먹어! 내일도 사 올 거니까 걱정 말고!”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만은 분명했다.

비가 오나 태풍이 오나 소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터로 왔다.

아픈 아이가 있는지를 살폈고, 고양이가 사는 집이 망가져 있기라도 하면 곧장 도구를 가져와 수리까지 해놓았다.

손재주는 없는 건지 약간 엉성하긴 했지만 말이다.

“자! 다 먹었다!”

이제 없다는 듯 소녀가 손을 펼쳐 보였다.

“냐아!”

고맙다는 듯 소녀에게 얼굴을 부비는 고양이들.

한참을 쓰다듬던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일찍 가볼게! 내일 보자!”

소녀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멀어져 가는 소녀를 보며 로인이 고민에 잠겼다.

소녀가 평소보다 일찍 떠나서일까.

오늘따라 왠지 모를 공허함이 남아있었다.

스윽.

로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소녀를 더 보고 싶었다.

* * *

터덜… 터덜.

몸이 축 늘어져 걸어가는 소녀를 바라봤다.

하루에 몇 개나 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부지런한 소녀였다.

‘일을 마치고 공터에 들린 후, 바로 다시 일이라니.’

소녀를 만난 지는 오래됐지만.

지금까지 소녀가 어떻게 사는 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끼이익.

소녀가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의 문을 열었다.

일하고 있는 번화가와 공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네였다.

“다녀왔습니다아…!”

축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한 소녀가 집으로 들어갔다.

‘…?’

아무도 없는 집이었다.

소녀의 집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의 집들에도 사람이 사는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어떤 이유로 인해 버려진 동네.

그곳에서 소녀는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

로인은 한동안 소녀를 따라다니며 지켜봤다.

정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이었다.

힘들게 일한 소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공터로 가 고양이들을 살폈고, 그 후엔 다시 일을 가거나 싸늘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어째서?’

로인은 의문이 들었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들면서.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아무도 없는 집에 인사를 건네고 들어가면서.

어째서 공터에 있는 다른 생명을 알뜰살뜰하게 챙길 수 있는 걸까란 의문이었다.

‘….’

보면 볼수록 의문만 쌓이는 소녀에.

로인은 태어나 처음으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소녀에 대한 답답함인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감정은 말하고 있었다.

소녀를 더,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고 말이다.

사아아…!

하지만.

이런 로인의 바람을 누가 듣기라도 한 걸까.

“!!!”

소녀에게 표식이 새겨졌다.

사신만이 볼 수 있는 표식.

소녀는 5일 뒤에 죽을 운명이었다.

* * *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로인을 바라봤다.

사랑이구먼.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뻔했는데.

뒤이어 소녀가 죽을 운명이란 말을 들으며 황급히 흐뭇한 감정을 거둬냈다.

“조용히 5일이 되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원래라면 해야 했을 통보도 하지 않은 채로요.”

로인의 표정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마주하며 얼마나 복잡한 심경이었는지를 말이다.

어떤 선택을 했을까.

로인이 하는 일은 알고 있었다.

5일 후에 죽을 운명인 사람에게 죽음을 통지하고.

5일이 되는 날에 나타나 목숨을 거두어 가는 것.

그게 사신 로인이 하는 일이었다.

“5일째가 되던 날에도 전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거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로인은 이도 저도 못한 채 그냥 기다렸다고 했다.

소녀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무언가를 말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친구를 지켰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소녀의 운명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요.”

마냥 기다린 게 아닌 듯했다.

마음속으로 죽음이 소녀를 피해 가길 열심히 기도했을 로인이었다.

“그리고… 소녀의 죽음이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건 저와 같은 사신이었습니다.”

“응?”

다음 말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음의 정체가 사신이라니?

사신이 하는 일은 죽을 운명인 사람의 목숨을 거둬 가는 것일 텐데.

저건 경우가 좀 달랐다.

“좀 이상한 거 아니야?”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였다고 한다.

로인이 나타난 사신을 막아서며 이유를 물은 것은 말이다.

“사신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녀를 죽이려고만 했죠.”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유 없이 소녀를 죽이려는 사신과, 그런 사신을 막아서는 로인의 싸움이.

“소녀로선 무서웠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 간의 싸움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주변에서 사고가 일어났으니까요. 그리고 오래 버틸 수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몇 명이 사신이 더 찾아왔습니다.”

“너도 같은 사신… 이잖아?”

의아한 얼굴로 묻자 로인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집단에 소속된 사신과 소속되지 않은 사신. 적은 전자였고, 전 후자였죠.”

그리스에 더 머물다 간 버티지 못할 거란 걸 깨달은 로인.

로인은 그 길로 소녀에게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모습을 드러냈고 놀라는 소녀에게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싸대기 안 맞았나.

나였으면 놀란 마음에 손을 휘둘렀을 것 같았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놈이 떠나자고 말하다니.

콧방귀를 뀔 일이었다.

“놀란 눈으로 절 응시하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평소에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며, 거짓말이 아니란 것도 안다고 말하면서요.”

눈을 바라보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

소녀가 각성한 능력이라고 로인은 말했다.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고 망자의 길에 올랐습니다. 중간에 절 공격했던 사신 무리를 만나 쫓겨 나왔고.”

“그게 여기 런던이다?”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망자의 길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 모양이다.

로인이 내가 타고 있는 차에 날아와 박힌 건 말이다.

“그럼 그 소녀님은 어디에…?”

“제 갑주를 건네고 숨겼습니다.”

갑주를 건네…?

잠시 귀를 의심했다.

각성 능력 중 일부인 갑주를 어떻게 건넸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같이 온 소녀를 지키기 위해 전투 수단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싸웠다는 소리였다.

사랑이 눈을 멀게 만든다더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 뻔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갑주까지 건넬 정도면 찐사랑이었다.

끼익.

로인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왜 일어나?”

“가봐야 합니다. 갑주의 힘이 유지되는 동안은 발견 못 하겠지만… 얼마 못 버틸 겁니다.”

휘청.

“끄윽…!”

발을 내디딘 로인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휘청였다.

갑주도 없이 차에 처박혔으니.

멀쩡한 게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몸을 일으킨 로인 때문인지.

밖에 있던 에밀리아도 병실로 들어섰다.

설명해야겠지.

사신 스스로가 죽을 운명을 만들어낸다는 것과.

에밀리아가 말했던 의문사.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접점이 있을지도 몰랐다.

“에밀리아 님.”

몸을 추스르고 있는 로인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사아아…!

!!

그 순간.

발동하는 페샨의 눈에.

쐐에에엑!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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