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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41화 (241/473)

241화. 사랑꾼들

앞에 앉아있는 소녀, 아일라를 바라봤다.

평범함을 넘어 약간의 비범함까지 느껴지는 친구였다.

대단해.

로인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안 보이는 놈들끼리 싸우느라 사방이 부서지고, 갑자기 나타난 놈의 떠나자는 말에 고민없이 휙 와버리다니.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서워하지도 않고.

방에 들어오며 최대한 착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었다.

분명 요상하게 생긴 갑주와 홀로 남겨진 소녀는 엄청 겁에 질려있을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 로… 로인 님!

물론 자주 그러듯.

내 예상은 시원하게 빗나갔다.

아일라는 겁먹고 있긴커녕 붕대를 칭칭 두른 로인이 나타나자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달려왔었다.

능력으로 로인의 찐 진심을 봐서인가.

실제로 두 사람이 얼굴을 본 지는 얼마 안 되었을 터였다.

붕대를 칭칭 감고 왔더라도 보통 저런 진심 어린 걱정이 안 나올 텐데.

아일라는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지극정성으로 로인의 몸을 살폈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앗.

너무 빤히 쳐다본 모양이었다.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네는 아일라에.

나도 세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안 묻었어요. 대단하다 싶어서요, 무서워하지도 않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에요. 지금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어깨를 으쓱인 아일라가 무릎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주변에서 갑자기 이유도 없이 벽이나 화분이 부서지고 했을 때도 무서웠어요. 혼자 살고 있었으니까요.”

“용케 로인이 나타났을 때 신고 안 했네요.”

생각난다는 듯 아일라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로인 님이 나타났을 때도 깜짝 놀랐어요. 신화에나 나오는 사신의 생김새에 커다란 낫까지 들고 있었거든요.”

낫이란 단어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애에 있어서 무지한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처음 만나는 자리에 낫을 들고 가진 않을 터였다.

“제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지금 떠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잘 안 들렸어요. 너무 놀라서 머리가 정지해 있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로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으며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필사적이라는 걸 말이다.

“그때도 로인 님은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상태였어요. 로인 님은 이전의 일을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절 지키려다 일어난 싸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아일라의 얘기를 들으니 가자고 하자마자 따라나선 게 조금이나마 납득이 가는 듯했다.

스윽.

고개를 든 아일라가 건너편에 있는 에밀리아와 이사벨, 로인을 쳐다봤다.

에밀리아는 어딘가로 연락해 아일라와 로인을 보호할 장소를 찾고 있었고.

이사벨은 로인과 함께 아까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며 의문의 죽음들에 대한 경우의 수를 되짚어 보고 있었다.

“저는 결국 죽게 되겠죠?”

쿨럭.

갑작스러운 아일라의 혼잣말에 넘어가던 물이 입으로 뿜어졌다.

“저한테 표식이 새겨져 있는데, 원래는 죽어야 하는 사람한테만 새겨지는 거라고 들었거든요.”

“….”

안 해도 될 얘기까지 했구만.

로인의 핑크빛 미래가 완성될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애초에 새겨지면 안 되는 사람한테 새겨진 거니까요.”

아일라가 보고 있는 로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갑주를 두른 후부터 로인은 그나마 힘을 회복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지난번보다 전 많이 약해졌습니다.

다른 이의 목숨을 거두며 사신의 힘을 유지해야 했지만.

내가 연화의 표식을 없앤 이후로 로인은 단 한 명의 목숨도 거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 혹시… 모르니까요.

텅 빈 것처럼 감정이 없어 보이던 로인이라 별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지난번 일로 믿어 오던 규칙이 깨지며 혼란을 느꼈던 것 같았다.

한국까지 따라와서 물어본 이유가 있었구만.

당시에는 이 새끼는 뭐 이런 걸 물어보고 앉았어? 라고 생각했었는데.

목숨을 못 거두고 있었던 걸 보면 본인은 무척 심각했던 모양이다.

저벅.

응?

“백운 님은 뭐하고 계세요? 아까부터 뭔가 들여다보고 계시길래요.”

가만히 앉아있는 게 심심했던 걸까.

내 옆으로 걸어온 라일라가 몸을 숙였다.

감정을 공유한다고 했지.

어차피 거짓말하면 들킬 테니까.

보고 있던 노트북을 아일라 쪽으로 돌렸다.

런던 내에 아이작 뉴턴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남아있는 뉴턴의 물건이라거나, 과거에 사용했던 연구소의 위치 같은 것들이었다.

“뉴턴이네요…!”

“쉿!”

“…?”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저만의 비밀 수사라고나 할까요.”

목소리까지 낮추며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하자.

재밌다는 듯 아일라가 검지를 코로 가져다 대며 나와 같은 제스쳐를 해 보였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건가요?”

덩달아 목소리를 낮춘 아일라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 없죠. 제가 관심 있는 건 아이작 뉴턴이거든요.”

어느새 나란히 앉은 아일라가 오오 하면서 안경을 치켜올렸다.

“혼자 있을 때 이것저것 오래된 책 읽는 걸 좋아하거든요. 특히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요. 뉴턴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어요.”

아일라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심사가 겹쳤다 생각한 건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고 있는 아일라.

역시 비범한 친구야.

방금 혼잣말을 들어봤을 땐 자기가 죽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아일라였다.

5분도 안 지났는데 이런 밝기로 관심사 이야기까지 가능하다니.

어린 나이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하라, 과거의 나!

새삼스레 각성 못 했다고 방구석에 쭈그러졌던 게 생각나 창피해졌다.

“뉴턴이랑 가깝게 지내던 과학자의 자서전도 읽었었는데요. 이게 엄청 재밌었어요. 다른 책들은 전부 업적에 대해서만 칭송하고 있는데, 이 책에선 아이작 뉴턴을 영국 최고의 사랑꾼이라고 표현했었거든요.”

“!?”

끄덕이며 듣다가 고개를 훽 돌렸다.

내가 알고 있는 뉴턴 역시 사랑꾼이었다.

자신의 몸과 바꿔 줄리아를 망자의 세계에서 꺼낸 것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잊고 싶지 않아 내게 그런 부탁까지 했었다.

“보통 뛰어난 과학자일수록 탐구에 몰두하느라 결혼이나 연애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뉴턴은 달랐다고 해요. 결혼한 건 아니지만, 연구실에서 여자친구와 항상 함께 했다고 하더라고요. 뉴턴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요.”

아이작도 찐 사랑꾼이었구만.

짜식이…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일라를 바라봤다.

“혹시 그 여자친구 생김새나 살았던 장소 같은 건 안 적혀있었나요?”

잠시 음… 하며 생각하던 아일라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영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흑발이라고 했어요. 정말 진한 흑발과 바다를 보는 듯한 푸른 눈동자라고요.”

흑발과 푸른 눈동자.

좋아 좋아.

타다닥.

열어놨던 문서에 빠르게 적어 넣었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몰라도 없는 것보단 좋았다.

저벅.

뜻밖의 수확이군! 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

통화를 마친 에밀리아가 걸어왔다.

* * *

높구만, 높아.

이사벨에게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어디인지 물었었다.

그렇게 도착한 72층짜리 고층 건물, 더 샤드.

꼭대기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 안전한 장소를 받았어요. 그곳에서 로인 님과 아일라 님을 보호할 거예요.

통화를 마치고 온 에밀리아가 한 말이었다.

보이지도, 감지하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사신이 물리적인 법칙까지 무시하는 건 아니었기에.

사방이 방벽으로 막힌 장소에서 두 사람을 지키겠단 것이었다.

- 저와 팀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의문사를 되짚어 볼 생각이고요.

역으로 추적하며 수사를 진행할 거란 에밀리아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사건은 요즘도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말에 든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제안이었다.

- 제가 잡아 올게요.

수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역으로 추적한다고 해서 사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찾는다고 해서 사신의 목적을 알 수 있는지 여부도 미지수였고 말이다.

그래서 떠올린 게 현장 검거였다.

본인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지.

도끼 자식이 나타나면 베스트겠지만.

아니라도 상관은 없었다.

일단 궁금한 건 왜 죽을 운명이 아닌 사람까지 건드려가며 힘을 키우냐였다.

톡… 톡… 톡.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두드리며.

무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설마 쫄아서 숨은 건 아니겠지.

병원에서 있었던 습격 실패 탓에 꼬리를 감춘 건 아닌가 라는 걱정이 들었으나.

왠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제대로 나눠본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도끼 사신 놈은 엄청난 우월감에 젖어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엄청 특별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지네도 일반 사람이었으면서.

사신이란 단어가 주는 뽕의 문제점이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간지가 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정신이 제대로 안 박힌 놈이면 사신뽕에 충분히 맛탱이가 갈 수도 있었다.

빨리 나와라아.

한 놈만 걸려라 하며 지루한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던 찰나.

사아아.

눈이 파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또각… 또각.

어두운 길을 걷던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오싹하지.’

집과 가까워 항상 다니는 길이었다.

방치가 오래되어 존재 여부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인 만큼 인적도 드물었다.

오늘은 시간까지 늦어서인지 소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길.

‘몸살 기운인가.’

고개를 흔든 소녀가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그리고.

스르르.

소녀의 뒤를 쫓는 이가 있었다.

일반적인 눈으론 볼 수 없는 존재, 사신.

런던에 있는 사신 중 한 명인 다비드가 여유로운 얼굴로 혀를 날름거렸다.

‘오랜만에 한 명 거둬가겠군.’

다른 사신들에 비해 다비드의 생명 수확량은 저조했다.

마음에 드는 소녀들의 목숨만을 노린 탓이었다.

- 우리를 볼 수 있는 놈이 있다.

‘멍청한 새끼.’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신, 류도가 한 말을 떠올렸다.

어디서 얻어맞고 와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소리나 지껄이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우월한 존재인 사신이란 놈이 인간 하나 처리 못 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내 앞에나 나타났으면 좋겠군. 다신 우릴 못 보게 눈깔을 뽑아 줄 테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다비드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럼 거둬가 볼까.’

소름 끼치는 미소를 그리며 다비드가 소녀에게 다가갔다.

사아아아…!

‘!!!’

소녀에게 다가가려던 다비드가 걸음을 멈췄다.

판단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본능적인 멈춤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로 뒤 허공에서.

“찾았다, 쥐새끼.”

기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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