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강림 계획
의자에 앉은 에밀리아가 시계를 쳐다봤다.
새벽 두 시.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에밀리아를 포함한 런던 헌터들은 백운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이사벨에.
에밀리아가 백운이 나간 후로 열린 적 없는 문을 바라봤다.
백운이 밖으로 나간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사신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두 시까지는 돌아온다고 말했던 백운.
‘무슨 일이라.’
에밀리아가 무슨 일이란 말을 곱씹었다.
이사벨과 다른 헌터들은 못 봤지만.
에밀리아는 병실 바로 옆에서 백운이 사신을 상대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 건가.’
기사 작위를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그만큼 다양한 적과 마주쳤었고 말이다.
그 중엔 목숨을 걸고 간신히 이겼던 강자들도 있었다.
이렇듯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온 에밀리아였기에 마주한 상대의 기량을 가늠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백운은 예외였다.
- 콰드득.
상대가 약한 게 아니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온 도끼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힘이 실려있었다.
‘미동도 안 했어.’
무언가를 두른 백운의 손바닥과 도끼가 만나며.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강력한 마찰이었다.
그럼에도 백운은 밀리긴커녕 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었다.
표정 역시 여유로웠다.
마치 처음부터 밀리지 않으리란 걸 확신했던 사람처럼 말이다.
- 콰아아아--!
커다란 덩치를 밀어낸 힘과, 나가떨어진 사신을 쫓기 위해 꺼냈던 검은 연기의 날개까지.
옆에서 보면서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떤 능력을 각성한 건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건지.’
백운은 측정불가의 강자 그 자체였다.
- 제가 잡아올게요.
원래라면 당연히 반대했을 터였다.
혼자 나가서 둘러보다 사신이 있으면 잡아오겠다는, 몹시 무모하고 위험한 제안이었다.
런던에 온 지 하루도 안 지난 사람을 혼자 보내는 일인 만큼 말도 안되는 제안이기도 했고 말이다.
실제로 제안을 들었던 이사벨은 혼자서는 너무 위험할 거 같다는 의견을 냈었다.
- … 알겠습니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아니었다.
런던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빚을 갚느라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덧붙였던 백운.
여기까지 들은 에밀리아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제안을 수락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운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말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찾으러…”
삐익.
말을 건네려는 순간 방 안에서 알람이 울렸다.
에밀리아와 헌터들이 위치한 장소의 센서였다.
“아…!”
비춰지는 입구 카메라에 이사벨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곳엔 어디 마실 나갔다 온듯한 백운이 서 있었다.
“문 열겠습니다.”
철컹.
에밀리아가 바라보고 있던 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던 백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
한 손엔 누군가의 머리채를 움켜쥔 채였다.
* * *
응?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몇 명만 대기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모두가 잠에 들지 않은 채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좀 빨리 올 걸 그랬네.
원래 오고자 했던 시간보다 오래 걸리고 말았다.
“끄으… 끄….”
옆에서 들리는 신음에 고개를 내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 이 새끼 때문이야.
밑도 끝도 없는 남 탓을 하는 게 아니었다.
가자고 했을 때 그냥 얌전히 따라왔으면 훨씬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놈은 도끼 자식과 마찬가지로 감히! 인간 따위가! 같은 뻔한 대사를 뱉으며 달려들었었다.
단검을 뺏어 집어던지니 괴성을 꽥꽥 지른 건 물론이었다.
“얌전히 안 따라오더라고요.”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꼭 매를 들어야 말을 듣는다니까.
적당히란 게 참 어렵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냥 박살 내는 거였으면 1초 컷 했을 텐데.
얌전히 따라오되 말은 할 수 있는 그 정도를 지키며 두들기느라 애를 먹었다.
믿고 있던 갑주도 산산조각 내놨고 말이다.
“야, 너 아까 말했던 거 있지?”
놈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두들기면서 계속 질문을 했었다.
“그대로 말해.”
“입 닥….”
쫘아악!
시원하게 놈의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끌려오는 동안 힘이 조금 돌아온 탓인지 다시 시건방져 있었다.
“그… 그만…! 말…할게.”
쫘악!
“…?”
다시 한번 올려붙이자.
놈이 이번엔 왜…? 라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존댓말 해.”
“….”
망설이던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전 사신 능력을 각성한 다비드라고 합니다.”
더 맞으면 죽을 거라 생각해서일까.
한층 고분고분해진 자세로 다비드가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에서 만난 사신은 왜 그렇게 쫓아온 거야?”
질문을 시작하려고 다가오는 에밀리아에.
한발 빠르게 로인에 대한 걸 물었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을 운명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봤고, 함께 하지 않으나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건 껄끄러우니까요.”
로인을 공격한 건 단순히 아일라 때문만은 아니었다.
표식이 찍힌 생명도 거두며 방해가 될 것 같은 존재도 치우고자 끈질기게 따라붙은 것이었다.
저벅.
다 했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다가온 에밀리이가 몸을 숙였다.
“집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젠 약간 울먹이기까지 하는 다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일한 능력을 각성한 자들이 있습니다. 집단의 이름은 델라르… 죽음을 수확하는 자들이란 의미입니다.”
“죽을 운명이 아닌 사람들의 목숨을 여러 차례 거둬왔다는 거, 사실인가요?”
이번 질문엔 대답을 망설이는 다비드에.
스윽.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보여줬다.
“!!”
화들짝 놀란 다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문사도 대부분 델라르의 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에밀리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델라르가 하는 짓에 화가 나지만 애써 억누르는 것 같았다.
“무엇을 위해 기존 룰을 어겨가며 힘을 모으는 거죠?”
“… 강림.”
“강림…?”
아까 들으며 혀를 찬 부분이었다.
결국 욕심이었다.
현재 자리에 만족하지 못한 녀석들의 욕심.
“언제까지… 어둠 속에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요.”
지금보단 훨씬 소수지만 사신은 아주 머나먼 옛날부터 존재했다고 다비드는 말했었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죽을 운명인 자의 목숨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사신의 일이었다.
그리고, 절대적이라 불렸던 규율이 깨진 건 최근이었다.
“두 개의 파벌이 나뉘었습니다. 사신이란 존재는 지금처럼 어둠 속에서만 머무르며 세상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된다는 파와, 이젠 어둠에서 벗어나 세계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파였습니다.”
“후자가 이겼군요.”
다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수적으로 엄청난 열세였습니다. 현재 델라르의 대부분은 각성의 시대가 열리며 새로 소속된 사신들입니다. 규율을 지키자 했던 건 각성 시대 전 장로급 사신 몇 명뿐이고요.”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돌을 빼낸 셈이었다.
“그럼 지금 델라르란 집단을 이끄는 건 각성하며 사신이 된 자인가요?”
“아닙니다… 원래 장로에 속해있던 사신입니다.”
내가 봤을 때 가장 나쁜 새끼였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다가 달콤한 말로 신입들을 꼬드겨 동료의 뒤통수를 갈긴 놈이었다.
“세계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뭘 하려는 건가요?”
다비드의 대답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나도 여기까진 듣지 못했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꼴깍.
다비드가 마른침을 삼키며 내 눈치를 봤다.
“우월한 존재를 우러러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 *
뚜둑… 뚜둑.
몸을 풀며 걸음을 내디뎠다.
어두운 밤거리였다.
시간이 늦은 만큼 사람 그림자라곤 코빼기도 안 보이는 으슥한 길.
우월한 존재라.
천천히 걸으며 다비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참 탐욕스러운 놈들이 질리지도 않고 등장하는 시대였다.
굳이 다른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싶어하다니.
사서 귀찮은 일을 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저는 잘 모르지만… 무슨 길이 열려 망자의 세계란 곳을 다녀왔다고는 들었습니다.
다비드의 대답 중 몹시 흡족했던 부분이다.
설마 다른 집단도 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했었는데.
망자의 세계란 이름과 얼마 전에 다녀왔다는 걸 듣자 마음이 놓였었다.
나한테 다짜고짜 공격을 날렸던 놈들은 델라르였다.
딱 기다려.
장갑 찾고 갈 테니까.
들어보니 혼자 찾아가는 건 힘들 것 같았기에.
때가 되면 다비드의 신변을 잠시 빌리기로 에밀리아와 얘기도 해놓았다.
- 그리스 사신의 존재를 아는 건… 런던에 있는 사신들뿐입니다.
다비드가 에밀리아와 헌터들에게 구속되어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로인에 대해 더 물었었다.
어쨌든 도와주기로 한 이상.
현재 처해있는 위협으로부터는 벗어나게 해줄 셈이었다.
다행이야.
들려온 대답을 들으며 한시름 놨었다.
만약 로인의 존재를 델라르란 놈들이 알고 있다면.
런던에 있는 사신을 처리하더라도 로인과 아일라는 계속 목숨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장갑을 찾기 전에 놈들을 먼저 찾아가야 하는 필요까진 없게 된 것이었다.
저벅.
어둠이 내리깔린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으로 거대한 성당이 하나 나타났다.
“은근 변태 같은 구석이 있는 새끼들이야.”
성당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네 힘 키우자고 목숨을 뺏는 놈들이 성당이라니.
천벌 받을 놈들이었다.
-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같은 집단에 속한 만큼.
런던에 있는 사신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고 다비드는 말했었다.
- 어디야.
늦은 새벽이지만 미룰 생각은 없었다.
괜히 시간을 끌면 변수만 더 늘리는 셈이기에.
장소를 묻고 곧장 밖으로 나왔었다.
- 저… 저는 어떻게…?
다비드는 약간 기대에 찬 얼굴로 날 올려다봤었다.
시키는 대로 이야기 다 해줬는데 안 풀어 주느냐는 물음이었다.
멍청한 놈.
다비드의 머릿속에 들어가 본 건 아니지만.
안 봐도 비디오였다.
여기만 빠져나가면 동료를 불러오든 델라르로 돌아가든 할 수 있을 테니 만사 오케이라는 듯한 다비드의 생각을 말이다.
- ….
그런 다비드를 향해.
정말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줬었다.
- 잡힌 걸 다행으로 알아, 이제 곧.
스윽.
- 니가 런던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사신이 될 테니까.
손을 뻗어 굳게 닫혀 있는 성당의 문을.
끼이익.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