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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45화 (245/473)

245화. 안전한 곳

머엉.

넋이 나간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아이작의 건틀릿이 실존하며 어디에 있는지도 안다는 줄리아의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으로 야호!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던 중이었다.

-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는데요.

작은 문제란 말에 난 손가락을 좌우로 휘휘 흔들어 보였었다.

뭐가 됐든 나한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확신과 함께 말이다.

문제네.

“문제죠?”

옆에 있는 줄리아가 싱긋 웃으며 날 돌아봤다.

“그… 그렇네요.”

작고 크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상대적이긴 하지.

내 기준에서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줄리아가 건틀릿이 있다고 말해 준 장소는.

# 런던 박물관.

무려 런던 시내 정중앙에 위치한 박물관이었다.

규모도 얼마나 큰지 한눈에 채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이작이 사라졌을 땐 저도 연구소의 보조였던 터라, 딱히 보관할 장소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인을 통해 박물관으로 건틀릿을 보내게 됐죠.”

“그럼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건틀릿! 이런 걸로 전시된 건가요?”

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느 르네상스 무명 과학자가 발명한 장갑… 이라고 전시 중이에요. 위치도 구석진 곳에 있고요.”

“그건 왜…?”

“당시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혹시나 아이작의 명성을 듣고 건틀릿을 탐내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웠고, 또 아이작 역시 사라지기 전까지 건틀릿의 존재를 사람들한테 숨겼었어요. 누가 무슨 용도의 장갑이냐 물어도 취미로 만든 거라고만 대답했었죠.”

아이작이 건틀릿의 정체를 숨긴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당시 연금술이란 행위는 금단 혹은 이단으로 분류됐었다.

연금술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 모두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한 이유였다.

- 연금술을 증폭해주는 장갑.

아이작은 건틀릿을 그렇게 소개했었다.

이단이라 분류됐던 연금술을 증폭시키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에겐 장갑의 힘을 숨겼던 것이다.

으음.

턱을 슥슥 문지르며 박물관 여기저기를 살폈다.

무장하고 제복을 입은 인원들이 구역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사이마다 보안용 AI로봇 같은 녀석들도 수두룩했고 말이다.

“정말 안… 안전한 장소긴 하네요.”

보자마자 철통보안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웬만큼 작정하지 않고선 보관된 물건을 터는 건 물론이요, 접근하기도 전에 제압당할 것 같았다.

“박물관 물건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오…? 탈취하려는 건 아니지만, 성공했나요?”

“아뇨, 전부 수포로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시도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 그렇군요.”

그다지 힘이 나는 말은 아니었다.

박물관을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선지 마음이 경건해짐과 동시에 웅장해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그 날이 온 건가.

무기 모으기를 시작하며 생각해온 순간이 있었다.

법을 어겨야만 무기를 획득할 수 있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백운이란 이름을 숨기고 무기왕이란 이명을 만들어 사용해 왔던 것이다.

어디선가 수배당해도 백운이 아닌 무기왕으로 수배당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 건너간 거 같지만.

지금은 처음에 비해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전부터 조금씩 내려놓던 중에 뿌려진 훗카이도 영상을 보며 편하게 마음을 먹기로 한 것이었다.

내가 무기왕이란 걸 아는 사람도 너무 많아.

한국만 해도 내가 무기왕이란 걸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모두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사람은 아니라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지만.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영상에 찍히는 횟수가 늘수록 내 능력을 알아보는 사람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칼데아가 아니더라도 리볼버부터 화려하니까.

잭 더 리퍼의 기본 면도칼이 아닌 이상.

내 능력은 전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처음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소년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가면을 쓰고 있을 때만 능력을 사용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그건 안 하기로 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종종 만화나 소설에서 힘을 숨기는 주인공을 보며 무척 답답하게 느꼈었는데.

내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꾸욱.

주먹을 움켜쥐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죄송합니다, 한국 헌터청 여러분.

전 여기까지인듯하니 강제 퇴장 부탁드립니다…!!

“들어가서 한 번 보시겠어요?”

앗.

머릿속으로 빠르게 앞으로의 도피 생활을 그리던 중.

줄리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건틀릿이 무기고에 넣을 수 있는 녀석인지도 확인하기 전이었다.

미친놈이 무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범죄 저지를 생각부터 해…!?

스스로를 나무라며 줄리아를 바라봤다.

“꼭 보고 싶습니다!”

* * *

슅…?

박물관에 들어와서 내 당황 수치는 더 상승했다.

줄리아가 안내한 곳은 박물관의 최고 구석이었고.

건틀릿은 그곳에 있는 단단한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길 만큼 거대한 건틀릿이었다.

이게 건틀릿…?

물론 내가 당황한 건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

빛이 보이지 않았다.

황금색이 아니라면 최소한 보랏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건틀릿에선 어떠한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무룩.

다리에 힘을 안 줬으면 바닥으로 녹아내릴 뻔했다.

일본에서 런던으로 출발하며 건틀릿 찾을 생각에 신이 났었다.

무기인지 아닌지는 가봐야 아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무조건 무기다! 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울하구먼.

그래도 줄리아에게 아이작의 소식을 전했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봐야….

기아아아악!!

뿌듯하고 보람찬 일을 하긴 했으나.

해피엔딩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 안에 건틀릿이 있어요.”

줄리아가 유리관으로 손을 얹었다.

“네… 정말 거대한 건틀릿이네요…!”

입안에 주먹을 쑤셔 넣고 간신히 대답하자.

그걸 보고 있던 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유리 안이 아니라, 건틀릿 모형 안쪽이요.”

“…?”

쑤셔 넣었던 주먹을 빼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하는 얼굴로 줄리아를 바라봤다.

“워낙 걱정이 많았거든요.”

줄리아의 말은 이러했다.

건틀릿의 본체조차 다른 이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에.

당시 친했던 장인에게 부탁해 금속 건틀릿 모형 안에 진짜 건틀릿을 넣어놨다는 것.

“….”

무슨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마트료시카 인형이냐구….

나도 모르게 살짝 원망 섞인 눈으로 줄리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생겨난 한 줄기 희망의 빛에 건틀릿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 다행이었으나.

아까 가졌던 문제가 조금 더 심화되었다.

이걸 어쩌지.

팔짱을 끼고 턱을 어루만졌다.

갑자기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저 모형 안에 있을 건틀릿은 무기고로 넣을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었다.

일단 안 열어본다는 선택지는 없어.

톡… 톡.

“위험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묘한 미소를 머금는 줄리아에.

이번엔 감추지 않고 같이 미소를 그려 보였다.

“정확하십니다. 어떤 길이 덜 위험할까 고민하는 중이에요.”

“실행하기 전에 말씀해주세요. 저는 먼저 나가야 하니까요.”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는 줄리아에.

걱정 말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자! 이번엔 르네상스 시대 무명의 과학자가 사용했던 장갑 모형입니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단체로 온 여행객과 가이드가 다가왔다.

잠시 후면 시끌벅적해질 것 같은 자리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일단 나갈까요?”

* * *

런던 외곽에 위치한 성당.

“여기로 장비 가져와!”

“거긴 어때?”

“세 구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타버렸습니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건 런던 소속 헌터들이었다.

감식반에 소속된 이들로 성당에 널브러져 있는 사신의 시체를 살피는 중이었다.

“자세히 보긴 해야겠지만… 딱히 특별할 게 없을 거 같기도 하고.”

사신의 시체를 보며 감식반의 반장, 해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외관만 봤을 땐 일반 사람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생김새였다.

사신이란 존재에 관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명령에 일단 와보긴 했지만.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저벅.

한창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을 떄.

성당 안으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뚜벅.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발소리에.

조사하던 헌터들이 고개를 돌렸다.

위아래로 새까만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훤칠한 키와 호리호리한 듯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몸을 가진 남자.

무스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 아래로는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흑색의 눈동자가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누구지?’

성당에 있는 그 누구도 당장 남자를 제지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미 성당 밖엔 관계자 외의 사람을 막기 위해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만약을 대비한 전투 요원도 포함해서 말이다.

뚜벅.

어디 기관의 관계자 중 한 명이겠지 하고 있는 사이.

마리아상 바로 아래까지 걸어온 남자가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둘러봤다.

뚜벅.

“!!”

다시 한번 걸음을 옮기는 남자에.

해리를 포함한 감식반의 동공이 커졌다.

감식반에게 있어 현장이 오염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는데.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까만 구두로 시체를 밟은 것이었다.

“저기요! 어디서 나오신 겁니까!?”

지켜보던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묻자.

걸음을 멈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흠칫.

남자가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해리를 포함한 헌터들은 어느새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단순히 싸늘한 표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리를 응시하고 있는 두 개의 검은색 동공이 문제였다.

너무 깊어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수렁.

조금만 더 바라봤다간 수렁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내게 질문을 한 건가?”

“…!”

남자의 물음에 해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온몸이 저릿해질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였다.

“나에게 말을 건 죄.”

남자가 고개를 치켜들며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시선들을 훑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본 죄.”

수렁 같은 남자의 눈에서 검은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왠지 모르게 끈적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기운이었다.

“천 번 죽어 마땅하다.”

기운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쓰러져라.”

남자의 한 마디와 함께.

“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남자와 눈을 마주쳤던 이들이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남자가 사방에서 뒹굴며 비명을 지르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내가 누군지 물었으나,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는 놈은 한 놈도 없구나.”

뚜벅.

남자가 성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이름은 드락스.”

손을 든 남자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사신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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