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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52화 (252/473)

252화. 격차

“데모닉, 데모닉.”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무기고에 추가된 데모닉을 보고 나왔더니 콧노래가 멈추질 않았다.

그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중간에 훗카이도까지 껴있어서 더 오래 걸린 듯한 느낌.

그나저나.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떻게 나가지?

데모닉을 얻어서 기쁜 건 그렇다치고.

아까 뒷순위로 미뤄뒀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지구… 도 아닌 거 같은데.

세계 곳곳을 가본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봐도 지구 중 어딘가로는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흉측한 식물이나 신기하게 생긴 지형 등.

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지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으음.”

팔짱을 끼고 턱을 슥슥 문질렀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건 산산조각이 난 런던 잔해와 데몬 시체뿐이었다.

공명에서 나와 걸은 지도 꽤 시간이 흐른 시점.

일단 눈에 보이는 것 중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쿵! 쿵! 쿵!

아, 하나 있네.

새로운 데몬이 나타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실시간으로 건물의 잔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정확히는 하늘에서 새로운 잔해들이 떨어져 기존에 있던 땅으로 쌓이는 중이었다.

어디서 떨어지는 거야.

기존 잔해들과 비슷하게 생긴 걸로 보아 분명 런던의 건물인데.

하늘에 열렸던 문이 어떤 구조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빨려 올라갔는데 여기선 떨어진다라.

화장실에서 처박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턴 빠르게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고개를 들어 잔해를 토해내고 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비가 내리듯 아주 자연스러운 떨어짐이었다.

[도윤 - 비전 수리검]

후우웅…!

수리검을 잔해가 떨어지고 있는 하늘로 내던졌다.

시야에서 수리검이 사라지고 비전이 가능한 최대 범위에 도달했을 때.

[비전]

하늘로 몸을 옮겼다.

아니네.

하늘이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잘못 짚은 것 같았다.

런던으로 나가지긴커녕 아무것도 없는 하늘 위로 옮겨진 몸.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신기하네.

마치 부서진 건물이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나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건물의 잔해들.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만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분리수거장 같은 곳에 들어온 건가.

후우우… 쿠웅!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건물이 쉴 새 없이 옮겨지고 있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하늘에 나타난 문에 의해 런던이 쉬지 않고 파괴되고 있다는 것.

거기다 날이 바뀌며 로인이 말했던 죽음의 날이 도래한 시점이었다.

- 딱 한 명을 제외하고요.

나만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게 불안한데.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인의 표식이 가리켰던 상황이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파앙!

약간 다급해진 마음에 연기를 터뜨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공간을 돌아보며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만약 표식이 가리켰던 게 지금의 상황이라면.

위험하다.

나를 제외한 런던의 모든 이가.

파앙!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 * *

전 델라르의 장로 하만이 고개를 들었다.

하만의 앞엔 적지 않은 수의 사신이 집결해 있었다.

모두가 드락스와 델라르를 막기 위해 하만의 부름에 답한 사신들이었다.

“하만 님, 저건…!”

옆에 있던 사신 한 명이 하늘에 열린 문을 바라봤다.

사신을 따라 눈을 돌린 하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환하려는 게야.”

드락스가 하려는 게 뭔지 하만은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늘에 열린 건 델라르의 땅인 포리페의 문이었다.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냐… 드락스.’

지구와 포리페는 엄연히 다른 세계인 만큼.

서로에게 간섭하기 위해선 동등한 교환이 필요했다.

드락스가 포리페에 있는 무언가를 런던으로 옮기고 싶어했기에.

뒤바꾸는데 필요한 질량만큼 런던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린 언제 움직이는 겁니까?”

“드락스가 델라르를 이끌고 나타나는 순간이라네. 우리끼리만 싸워선 안 돼.”

하만이 포리페의 문 아래 모여있는 헌터들을 응시했다.

아까 봤던 런던의 헌터들을 제외하고도 각 도시에서 지원 온 인원들로 꽤 강한 전력이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가 도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어하며 적이 나타나고 있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가 저들의 눈이 되어줘야 해. 저들은 델라르를 볼 수 없을 테니까.”

아무리 전력이 강하더라도 적을 볼 수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하만이 돕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적에 무참히 학살당할 터였다.

“드락스란 사신을 이길 수 있는 겁니까? 권능까지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부름에 응해 달려오긴 했으나.

사신들은 아직 현재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한 게 아니었다.

그저 사신으로 각성하며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규율을 델라르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게 그들이 아는 전부였다.

“쉽지 않을 걸세. 하지만, 모두가 싸우다 보면 분명 틈이 생길 게야.”

하만이 미간을 좁히며 각오를 다졌다.

“틈만 생긴다면 충분히 승산이….”

오싹.

“!!”

말을 멈춘 하만이 고개를 돌렸다.

“승산?”

싸늘하면서도 비웃음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틈이 생겼다고 한들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지?”

으득.

하만이 눈을 찌푸리며 하늘을 응시했다.

뒤로 깔끔하게 넘긴 흑발과 칠흑에 가까운 눈동자를 가진 남자.

“드락스…!”

“다 늙어빠져서 부리나케 도망간 주제.”

홀로 나타난 드락스가 하만과 모여 있는 사신들을 훑었다.

“오합지졸을 모아서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못 본 사이에 거만해졌구나, 드락스.”

“거만?”

드락스의 입가로 조소가 그려졌다.

“거만이란 단어는 강자가 약자에게 쓰는 것이다. 너 같이 늙어빠진 약자가 쓸 단어가 아니란 말이다.”

명백한 적의에 대화를 듣고 있던 사신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눈앞에 있는 드락스가 강하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드락스는 홀로 모습을 나타냈다.

지금 모여있는 전력을 무시해 방심한 것이었다.

‘이건 기회야.’

하만도 다른 사신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런 호위도 없는 지금이, 드락스가 홀로 다수의 사신과 맞서야 하는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기회라고 생각하는 건가?”

“…!”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한 드락스가.

천천히 사신들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준비하세.”

하만의 말에 따라 모여있는 사신들이 자세를 잡았다.

딱 한 번의 틈.

하만이 말했던 그 틈을 어떻게든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척.

드락스가 땅에 발을 내디딘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기 중이던 사신들이 드락스에게 달려들었다.

“딱하군.”

드락스의 말에 하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죽음을 마구잡이로 먹어 권능을 얻었다 해도.

지금 달려드는 숫자는 쉽게 볼 수 없는 전력이었고 드락스 역시 그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딱하군 이라니.

의아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오싹함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

“주제를 모르고 나에게 달려든 죄.”

다가오는 사신들을 바라보며 드락스가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같은 사신임에도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의 죄.”

“드락스 뭘 하려는…!”

사신들에게 향한 드락스의 눈에서 불길한 기운이 일렁이며 흘러나왔다.

‘!!’

드락스가 뭘 하려는지 깨달은 하만이 다급히 외쳤다.

“고개 돌려!! 눈을 쳐다보면 안 돼!!”

하만의 외침이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으나.

거기까지였다.

“천 번 죽어 마땅하다.”

하만의 말이 도달하기 전.

가까이에 있던 드락스의 말이 먼저 사신들에게 들려왔고.

동시에 드락스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이 눈을 마주치고 있던 사신들에게 스며 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기세 좋게 달려들던 수십의 사신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쓰러져 뒹굴기 시작했다.

“아…!”

비명을 내지르는 사신들에 하만이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말도… 안된다.’

드락스가 권능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됐다.

‘어떻게 드락스가 저 힘을…!’

권능은 한 가지 힘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사신마다 가진 무기의 형태가 다르듯, 권능을 얻게 되었을 때 개화되는 힘도 달랐는데.

드락스가 방금 사용한 권능은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내가 이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

드락스가 여유로운 미소를 그리며 놀란 하만을 바라봤다.

“그럴 만도 하지. 너를 포함한 늙은이들은 날 한낱 병졸로 생각했을 테니까.”

어깨를 으쓱인 드락스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하만, 너라면 알고 있겠지. 조금 전 내가 사용한 권능은.”

하만의 얼굴엔 경악이, 드락스의 얼굴론 환희가 번져갔다.

“왕이 될 자격이 있는 사신만이 개화할 수 있는 힘이란 걸.”

“….”

하만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드락스가 하고 있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놀라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모든 규율을 어기며 권능을 얻은 드락스에게 왕의 자격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릉.

품에서 두 자루의 낫을 꺼낸 드락스가 하만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었지? 사신은 더 이상 버려진 땅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자격이 있는 우리야말로 더 커다란 세계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저벅.

하만을 노려보며 핏대를 세운 드락스가 크게 외쳤다.

“내가 개화한 왕의 권능이!”

파아앙!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

쏘아져 오는 드락스를 보는 하만의 등 뒤로.

서늘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틀렸다. 드락스가 왕의 권능을 개화한 이상.’

꿀꺽.

‘이젠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죽어라! 늙은이!!”

드락스가 든 두 자루의 낫이.

쐐에에엑!

하만에게 매섭게 휘둘러졌다.

* * *

콰아아앙!!

‘!!’

에밀리아와 함께 있던 로인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굉음이 들려온 건 하만과 사신들이 모여있는 장소였다.

“지금 뭐가…?”

헌터들의 시선이 굉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로인 님 저곳은.”

에밀리아의 말에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인은 에밀리아에게 하만과 사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뒀었다.

때가 됐을 때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잠시 가봐야겠어요.”

로인이 상황을 살피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쿠구구구…!!

“…!?”

묵직한 소리가 들리며 런던을 빨아들이던 문이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키이이이이이---!

“으…!”

귀를 찌르는 파열음과 함께.

“…!”

“하… 하늘에….”

고오오오오…!!

사신의 땅, 포리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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