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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54화 (254/473)

254화. 내려와

휴.

눈앞으로 드러난 런던 상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스아아아악!

악귀참도에서 검기를 뿌려내며 간절히 기도했었다.

부디 검기가 그냥 하늘을 통과하지 말고 뭐라도 베어내기를, 베어내되 엄한 것은 베지 않기를 말이다.

- 콰가가각!

첫 번째 바람은 검을 휘두르자마자 바로 실현됐었다.

검기가 닿기 무섭게 하늘이 찢어지기 시작한 것.

그 틈으로 또 다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었고, 난 지체없이 그곳을 향해 날아올랐었다.

엄한 걸 벤 거 같지도 않고.

천천히 지상으로 착지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엔 박살이 나 있는 지반과 건물에 순간 내가 한 건가 놀랐었는데.

악귀참도에 베일 리 없는 것들이기에 이내 다른 원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저쪽이겠지.

하늘엔 거대한 섬이 떠 있었다.

그 아래로 길게 늘어서 있는 사신들.

로인이 말했던 델라르란 놈들 같았다.

“백… 백운 님…!”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돌자.

바닥을 얼마나 뒹군 건지 엉망진창이 된 이사벨이 서 있었다.

“괜… 괜찮아요?”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엉망이 된 몰골을 떠나서라도 왠지 모르게 넋이 나가 있는 이사벨이었다.

“백운 님.”

곧이어 에밀리아와 로인도 내게 다가왔다.

딱히 무언가 말하거나 하진 않았으나 이사벨과 마찬가지로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이었다.

냅다 토신 줄 안 건가.

“제가 도망친 게 아니고요. 그게….”

“누구냐, 네놈은.”

어디 갔다 온 건가 간략 설명을 시작하기 전.

인상이 찌푸려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랄까.

듣기만 해도 목소리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거만함과 오만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윽.

고개를 들자 흑발을 깔끔하게 넘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신보다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갑주를 두른 남자였다.

“드락스.”

옆에서 남자의 이름을 작게 읊조리는 로인.

저놈이 대빵이었구만.

어쩜 저렇게 거만한가 했는데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포리페의 문에서 나온 거지?”

“그 분리수거장 이름이 포리페야?”

“뭐?”

“출구가 없길래 만들어서 나왔는데.”

거리가 꽤 멀었지만 알 수 있었다.

드락스의 얼굴이 구겨졌다는 걸 말이다.

역시 포리페는 델라르와 연관이 있는 공간인 것 같았다.

“안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한 거냐.”

궁금한 게 많은 드락스에.

안에 있었던 것들을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엉망이 된 지형 곳곳엔 조각난 데몬 시체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다.

내가 아이작의 기억으로 공명하기 전 썰어 재꼈던 데몬들이었다.

저놈이었구만.

어떤 취미 이상한 새끼가 데몬을 모으나 했었는데.

드락스가 지구 어딘가에 뿌리려고 도토리 모으듯 포리페에 잡아뒀던 모양이다.

궁금할 만하네.

열심히 모아놓은 도토리를 겨울에 먹으려고 꺼냈더니 껍데기만 후두둑 떨어진 격이었다.

크기도 큼지막하고 숫자도 엄청났으니 화가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스윽.

대답하는 대신 드락스를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일단 내려와 봐. 그럼 알려 줄 테니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정확히는 망자의 길에서 공격당했던 순간부터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

저렇게 거만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게 말이다.

“지금 감히 누구한테….”

“어… 어어!!”

무언가 말하려는 드락스의 뒤쪽.

드락스와 멀지 않은 위치에 도열해 있는 사신 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이 개새야!!”

망자의 길에서 무리의 가장 앞에 있던 사신이었다.

떨어지는 순간 잊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되새겼던 얼굴.

드락스와 가까이 있는 걸로 보아 오른팔이나 왼팔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백운 님…?”

갑자기 욕을 박아서일까.

에밀리아와 로인을 포함한 주변 헌터들이 입을 벌린 채 날 바라봤다.

안 그래도 넋이 나가있던 이사벨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아는 얼굴이라서요.”

저벅.

단전에서 올라오는 반가움에 드락스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당장 면상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었다.

연기를 터뜨려 곧장 하늘로 향하려는 순간.

번쩍.

사신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일제히 휘둘렀다.

“!!”

망자의 길에서 내게 날린 공격이었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날아오는 공격의 숫자였다.

“쉴드 전개!”

“충격에 대비해!”

에밀리아를 중심으로 헌터들이 방어막을 펼쳤다.

주변 지형을 다 때려 부순 건 아마도 저 공격인 것 같았다.

[유탈라스 - 동기화]

칼데아를 집어넣고 비늘을 꺼냈다.

[전개]

최대한 잘게 쪼개어 낸 비늘을 헌터들 위로 넓게 펼쳤다.

“…!!”

자신들의 위로 정체불명의 청색 비늘이 덮이자 당황하는 헌터들.

내가 한 걸 알아서인지 잠시 날 바라보던 에밀리아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잠시 후.

“온다!”

사신이 뿌려낸 수백 개의 검기가 전개된 유탈라스로 떨어져 내렸다.

* * *

콰가가가가가가!!

드락스가 지상으로 쏘아낸 검기를 바라봤다.

더 이상 헌터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은 없었기에.

처음과 비교되지 않는 강도와 숫자로 검기를 뿌려냈다.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으득.

드락스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래에 있는 것들은 전부 죽었을 테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를 놈 때문에, 그런 놈이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흥분해버렸기 때문이다.

스윽.

고개를 돌린 드락스가 완전히 박살 나버린 포리페의 문을 바라봤다.

‘어떻게 한 거냐.’

잠깐 갈라지거나 한 게 아니었다.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해버린 포리페의 문.

마치 모든 걸 먹어치우는 무언가에 집어삼켜 진 모양새였다.

- 스아아아…!

거기다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던 검은 연기의 날개까지.

드락스의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든 요소였다.

‘감히.’

사신의 왕인 자신이, 권능을 가져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할 자신이.

한낱 인간의 힘을 보며 불길함을 느꼈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

- 야이 개새야!!

검기가 뿌려지기 직전 욕과 함께 손가락질하던 백운을 떠올렸다.

백운이 가리킨 건 드락스가 아니었다.

조금 더 뒤쪽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린 드락스가 백운의 손가락이 향했던 사신을 바라봤다.

델라르에서 꽤 강한 축에 드는 사신.

드락스가 망자의 세계처럼 직접 가기 꺼려지는 곳을 갈 때 몸을 빌려 쓰기도 한 사신이었다.

‘…!’

사신을 잠시 응시하다.

무언가를 깨달은 드락스의 눈이 커졌다.

휙!

백운이 있던 아래로 고개를 돌리는 드락스.

‘그놈이다.’

드락스가 망자의 길에서 만났던 백운을 떠올리고, 두 눈으로 의문이 어렸다.

분명 망자의 길에서 검기를 쏟아부었을 텐데 어째서 죽지 않았는가란 의문이었다.

- 안 건드렸어도 되는, 건드리면 안 되는 걸… 괜히 건드렸구나.

순간.

카사락이 했던 말이 드락스의 머리로 스쳤다.

그땐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솔직히는, 카사락을 마주하며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기에 서둘러 나왔었다.

‘….’

다시 기억을 곱씹어 보니 이상했다.

망자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 카사락.

말도 안 되는 군대와 힘을 가진 자였다.

그런 카사락이 한낱 인간을 상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을 하다니.

거기다.

‘망자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 나온 거냐?’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카사락이 망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변을 가만히 두고 보진 않았을 터.

그럼에도 아래의 남자는 상처 하나 없이 망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설마…?’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 드락스의 머리로 스치고.

그 순간.

번쩍!

두두두두두두두두!!

“…!”

지상에서 엄청난 수의 빛줄기가 뿜어졌다.

쉴 새 없이 쏘아져 소환된 포리페와 사신을 강타하는 포격.

콰앙… 화륵!

직전에 헌터들이 날렸던 포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맞는 순간 엄청난 화염이 뿜어지는 탄이었다.

“가… 갑주가… 으아악!”

“!!”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포탄에 정면으로 직격 됐음에도 기스조차 나지 않는 사신의 갑주가.

마치 평범한 갑옷을 입은 것처럼 탄에 쓸려나가고 있었다.

“갑주 전개!!”

“맞지 말고 피해!!”

헌터들의 공격이 쏟아졌을 때도 위치를 이탈하지 않았던 델라르의 사신들이.

탄의 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콰가가가가!

드락스가 자신의 갑주로 부딪히는 탄을 바라봤다.

다른 사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를 가진 갑주기에 탄에 뚫리거나 하진 않았으나.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괜히 다른 사신들의 갑주가 뚫리고 있는 게 아니란 것을 말이다.

‘….’

드락스가 다시 한번 밀려드는 불길함을 느끼며.

탄이 쏘아지고 있는 아래를 응시했다.

* * *

- [앤 보니&메리 리드 - 빛의 구원, 작열탄]

한바탕 탄을 쏘아낸 리볼버를 집어넣으며 하늘을 응시했다.

일단 냅다 갈기고 봤는데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쿵…! 쿵!

리볼버의 탄에 뚫려 그대로 추락하고 있는 사신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가 하늘에 남아있었다.

에밀리아 님이랑 대부분의 헌터가 근거리야.

저들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 이상.

방금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포격을 그대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역시 마음에 안 들었다.

원래 자신들의 위치가 하늘이란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오만한 꼬라지가 말이다.

….

한차례 하늘을 뒤덮었던 연기가 희미해지고.

그런 하늘을 바라보다 조용히 읊조렸다.

[아이작 뉴턴 - 데모닉]

키이이이…!

오른손을 붉은 스파크가 휘감기는가 싶더니.

손가락 끝부터 시작된 황금빛 회로가 어깨 위까지 그려졌다.

드드드!

회로가 그려졌던 순서대로 팔을 감싸나가는 새벽빛의 광석.

어깨 위까지 광석이 뒤덮으며 악마의 힘이 깃든 장갑, 데모닉이 완성되었다.

키이잉.

어스름한 바탕 위로 황금색 회로가 쉴 새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몇 번 주먹을 쥐었다가 피며 데모닉의 감각을 익힌 후.

“후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만한 놈들을 위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으론 이거만 한 게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사용할 수 있을까.

지금은 딱히 대가로 치를만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에 금 떨어진 거… 응?

주변에 대가로 쓸만한 게 없나 둘러보던 중.

데모닉을 통해 느껴지는 깨달음에 눈이 커졌다.

- 주인이 따로 있었구나 싶어서.

공명을 끝내기 전.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아이작이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이런 의미였나.

데모닉을 꺼내고 나니 아이작이 뭘 말하고 싶었던 건지 알 것 같았다.

스윽.

몸을 낮춰 데모닉을 땅으로 짚었다.

키이이잉!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인지 회로의 빛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르르.

고개를 들자.

걷히는 연기 속에서 여전히 날 내려다보고 있는 드락스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왠지 모를 당혹감이 서린 얼굴이었다.

“야.”

그런 드락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드락스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상관없었다.

드드드드드….!!

“내려와.”

[그라비티 디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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