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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59화 (259/473)

259화. 이상한 애

다음날 런던.

“왜 텅 비어있지?”

“그, 그러게요.”

에밀리아의 물음에 이사벨이 땀을 흘렸다.

백운이 머무르고 있었던 호텔 스위트룸.

호텔 아래까지 왔는데도 연락을 안 받아 올라와 본 건데.

정작 방에 있어야 하는 백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머무르긴 한 거 같은데.”

방으로 들어온 에밀리아가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백운이 이곳에 머물렀던 흔적은 분명했다.

흐트러져 있는 침구와 거품 목욕을 한 욕조, 하루종일 먹기만 한 건지 잔뜩 쌓여 있는 접시까지.

단순히 머무르기만 한 게 아니라 아주 제대로 스위트룸 호캉스를 즐긴 모습이었다.

“설마 야반….”

자기도 모르게 야반도주란 말을 하려던 이사벨이 말을 삼켰다.

런던을 구한 영웅에게 감히 꺼낼 단어가 아니었다.

“도주는 아니지만 떠난 거 같긴 하네.”

방을 훑은 에밀리아가 열려 있는 창문을 바라봤다.

애초에 빈손으로 왔던 백운이라 남은 짐이 있나 살펴볼 것도 없었다.

단지 스위트룸에 제공되는 각종 차와 화장품, 선물 세트 등 어매니티가 깔끔하게 사라진 걸로 보아 떠난 게 확실해 보였다.

“어, 어쩌죠…?”

이사벨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두 사람이 호텔 방까지 급하게 올라온 건 이유가 있었다.

런던을 구한 백운을 한발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어쩔 수 없지.”

작은 한숨을 내쉰 에밀리아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밀리아는 방 문을 열며 백운이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본인을 칭송하는 행사에 참여해 박수갈채를 받으며 얌전히 앉아있는 것과는 거리가 매우 멀어 보였었기 때문이다.

또각.

허리에 손을 짚고 텅 빈 방을 바라보고 있을 때.

호텔 복도를 울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꼴깍.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른침을 삼키는 이사벨.

곧 등장할 인물에 이사벨이 문에서 천천히 비켜섰다.

“안 계신가 보네요.”

방으로 들어오기 전 들려온 건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잠시 후.

허리까지 오는 화사한 금발을 찰랑거리며 이사벨과 에밀리아와 동행한 VIP가 등장했다.

“공주님.”

이사벨과 에밀리아가 그새를 못 참고 올라온 공주, 샤를 엘리자베스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인 샤를이 두 사람에게 답인사를 하며 방을 둘러봤다.

맑고 호기심 넘치는 벽안으로 방을 살피던 샤를이 미소를 머금었다.

“어쩔 수 없죠. 한곳에 머무르는 걸 싫어하는 분을 며칠씩이나 잡아두려고 했으니.”

샤를이 턱을 문지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라도 당장 달려와서 만났어야 했는데 너무 게으름 부렸다는 혼잣말과 함께였다.

“그나저나…. 에밀리아 님. 회중시계의 흔적을 찾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에밀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여러 가지랑 뒤섞여 있어서요. 작업하다 보면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회중시계의 크기를 봤을 땐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런던 박물관에서 가장 높은 보안 등급에 보관 중이었던 회중시계.

대외업무로 바쁜 샤를도 종종 들려서 보고 갈 정도로 좋아하던 시계인데, 이번 사건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역시 그렇겠죠.”

허리에 손을 짚은 샤를이 푸념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금세 등장했을 때의 쾌활함을 되찾은 샤를이 빙글 몸을 돌렸다.

“에밀리아 님이랑 이사벨 님 시간 괜찮으시죠?”

“네, 네!”

“저녁까진 샤를 님과의 동행 일정이니까요.”

샤를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중시계도 없어졌겠다, 보고 싶었던 영웅님도 못 보게 됐으니. 기운 차리게 달콤한 거나 먹으러 가요.”

그렇게 세 사람이 방을 나서려는 순간.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호텔의 지배인이 다가왔다.

“…?”

꾸벅 인사하며 조심스럽게 종이 꾸러미를 건네는 지배인.

“루, 룸서비스 청구서입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청구서와 어마어마한 숫자에.

“허어…!”

“어…?”

에밀리아와 이사벨의 입이 벌어지고.

청구서를 받아 든 샤를이 재밌다는 듯 입가 한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떤 분인지 점점 더 보고 싶어지네요.”

* * *

“에취!”

살짝 튀어나온 콧물을 슥슥 닦았다.

누가 내 얘기하나.

왠지 모르게 간지러운 귀까지 한 번 후벼준 후.

고개를 들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바라봤다.

아깝네. 조금 남았을 거 같은데.

곧장 날아왔으면 이미 한국에 도착하고도 남았겠지만, 런던에서 한국까지는 여러 나라를 횡단하는 여정이었다.

그만큼 중간중간에 만나는 유명한 명소가 많았고 그곳에서 여유를 부리다 보니 도착하기 전에 해가 떠버리고 말았다.

- 퐁당.

해의 등장에 칼데아가 사라지며 바다로 빠진 것은 물론이었다.

하도 많이 겪어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루틴이긴 했지만 말이다.

부시럭.

목에 메고 있는 방수팩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대륙횡단 중 배고프면 먹으려고 호텔에서 챙겨 온 것이었다.

와작!

바닷물에 동동 뜬 채 초코바를 한 입 크게 깨물었다.

런던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건 아니겠지.

우물거리며 어젯밤 먹었던 룸서비스들을 떠올렸다.

한바탕 싸우고 난 탓인지, 아니면 원래 뱃속에 거지가 든 건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찬 탓에 끝도 없이 주문했었다.

뭔가 가격이 붙어있긴 했지만, 뒤에 달린 0이 적길래 마음이 편했던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고 말이다.

“…?”

남은 초코바를 다 먹고 우물거리던 중.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저건.

멀지 않은 곳에서 머리만 쏙 내밀고 날 바라보고 있는 생명체가 있었다.

대충 한반도의 서쪽이라 여겨지는 바다의 한가운데였다.

무언가를 만나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맨들맨들.

대머린가.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머리와.

그 아래로 달려있는 눈코입 및 간잽이 수염까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게 여간 얍실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왜 쳐다보는 거지.

실험 삼아 방수팩에서 초코바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슬금슬금.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는 녀석.

한 입 더 베어 물자 마음이 조급해진 건지 녀석이 손에 닿을 거리까지 다가왔다.

“나도 줘.”

“!?”

다짜고짜 말을 건네는 녀석에 눈이 커졌다.

이건 수달이야 물개야 하는 순간이었는데 말을 건네다니.

“너 뭐, 뭔데?”

말이 통하는 걸 깨닫고 질문을 건넸으나.

“줘.”

녀석의 관심사는 온통 내 초코바로 향해 있었다.

이젠 손까지 내밀며 노골적으로 초코바를 원하는 녀석.

손은 어찌나 오동통하고 동글동글한지 왠지 모르게.

키, 킹 받네.

딱 보니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초면부터 반말을 갈긴 것도 모자라 초코바 강요라니.

유교 사상 아래에서 사는 백의민족으로써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는 현장이었다.

쏘옥.

보란 듯이 입안으로 초코바를 몽땅 집어넣었다.

“!!”

눈에 띄게 놀라며 부들부들 대는 녀석.

“으음, 맛있어.”

손가락에 묻은 초코까지 쪽쪽 빨며 녀석의 반응을 보려는 순간.

미약하지만 후웅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웅…?

웬 바람 소리지 하고 고개를 들자.

“듀고옹!!”

빠악!

의미 모를 비장한 외침이 들려옴과 동시에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사이.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코 아래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스윽.

손으로 훑자 보이는 선명한 붉은색.

코, 코피!?

믿기지 않는 현실에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델라르 놈들을 상대하면서도 흘린 적이 없었던 코피였다.

“쿵! 푸! 듀고옹!”

저, 저런 놈한테…?

오동통한 손을 말아 쥐고 이리저리 뻗으며 콧김을 내뿜고 있는 듀공 자식.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부들부들.

치욕스러움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야 듀공.”

지 혼자 치명적인 척 손을 뻗고 있는 놈을 불렀다.

“또 맞을…?”

그제야 다시 돌아보는 듀공을 향해.

“딱 대.”

왼손으로 오른손의 중지를 최대한 뒤로 젖힌.

풀 스윙 딱밤을 날렸다.

빠아악!!

* * *

듀공으로 이루어진 종족, 배로로.

어려서부터 쿵푸를 배우며 자란 만큼 싸움에선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종족이었다.

그중 나이는 많지 않으나 쿵푸에 두각을 보인 듀린이, 모랑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 실전에서 자신의 강함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실전.

“제대로 가고 있는 거지?”

뒤에서 들려오는 물음에 모랑이 호다닥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챙겨온 건지 선글라스까지 끼고 여유로운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는 백운.

모랑은 백운이 건넨 끈을 잡고 열심히 앞으로 헤엄치는 중이었다.

“넵! 제대로 가고 있슴다!”

모랑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실전의 결과는 참패.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 빠아악!!

눈동자를 위로 올리자 몇 배는 부풀어 오른 이마가 시야에 들어왔다.

엄청난 타격음이 귀를 파고들며 눈앞으로 별이 그려졌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랑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참 밀려난 바다에 동동 떠 있는 상태였다.

아주 순간이지만 딱밤 한방에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 너 뭐야? 한 대 더 처맞기 전에 빨리 말해.

바로 옆에 있는 정체불명의 인간을 보며 모랑은 빠르게 두뇌 회전을 했었다.

방심했다곤 하나 파워를 봤을 때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힘이었기에.

- 죄송합니다! 모랑이라고 합니다!

곧바로 바닷물에 머리를 박으며 항복을 선언했었다.

모랑이 속해 있는 배로로에 관해 빠짐없이 실토한 건 물론이었다.

- 한 번 가보자.

근처에 배로로가 사는 섬이 있다고 하자 신기해하며 안내하라고 말했던 백운.

백운의 말을 들은 순간 모랑의 두뇌는 다시 한번 빠르게 회전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인간!’

배로로 족이 사는 한반도 근처의 섬.

그곳으로 데려가 친구들과 흠씬 두들겨 아까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아주 빠짐없이 골고루 두들겨 줄 테니까!’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모랑이 회심에 찬 미소를 그려 보였다.

* * *

첨벙첨벙!

고개를 약간 젖혀 날 끌고 열심히 헤엄치는 중인 듀공을 바라봤다.

모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듀린이였다.

이름도 킹 받아.

왠지 모르게 킹 받는 이름을 떠올리며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킹냥이 종족 페샨도 신기했었는데 이젠 말하는 쿵푸 듀공이라니.

말세네, 말세야.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혀가 내둘러지는 참이었다.

“잠수함돠!”

“뭐?”

뽀글!

듀공년이…!?

갑자기 날 물속으로 이끄는 모랑.

날 익사시키려는 셈인가 해서 다시 두들기려는 순간.

푸화악.

물 표면으로 올라간 모랑이 해맑은 목소리로 외쳤다.

“도착했슴다! 배로로 족이 사는 섬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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