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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60화 (260/473)

260화. 쿵푸 듀공, 배로로

배영 자세에서 몸을 뒤집어 땅으로 걸어나갔다.

모랑이 날 익사시키려고 물로 끌고 들어간 건 아니었다.

어느 섬의 내부, 정확히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는 섬의 공간에 배로로 족은 살고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바다에 잠겨 있었고 말이다.

아까 보니까 사람이 사는 섬이던데.

익숙한 듯 모랑이 열심히 피해 다녔던 여러 척의 배들.

인천 근처에 붙어있는 섬인 것 같았다.

차박차박.

바다에서 올라온 모랑을 바라봤다.

내가 알고 있는 듀공은 꼬리를 달고 있었는데 모랑은 짤막한 두 다리로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던 거야?”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한 천 년 됐을검돠.”

“!?”

언제부터 사람이 사는 섬에 들어와 산 건가 궁금했는데.

모랑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하네. 섬 속의 마을이라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건축이란 개념은 없는지 암벽에 송송 뚫려 있는 구멍들.

배로로 족은 그 구멍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본격적으로 마을로 진입하기 전.

호다닥 앞서 나간 모랑이 마을 안쪽으로 달려갔다.

아마 종족의 어른을 불러올 생각인 것 같았다.

혼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배를 피해 다니는 거 보면 딱히 인간과 교류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인간과 마주치지 않는 게 배로로 족의 불문율일 수도 있을 터.

듀린이인 모랑이 다짜고짜 날 데려온 걸 수도 있었다.

나가라면 나가지 뭐.

모랑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커다란 목적이 있어서 온 건 아니었다.

인천 근처였고 가는 길이라 들려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다.

“여기야!”

잠시 후 모랑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오, 왔네.

고개를 돌리자 우루루 몰려온 듀공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 고만고만한 크기인 걸 보니 모랑과 비슷한 또래의 듀린이들인 모양이었다.

“빨리 왔….”

“어이!”

어, 어이?

모랑이 허리에 손을 짚으며 늠름하게 소리를 질렀다.

콧김까지 푹푹 쏘는 걸 보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상태였다.

즉, 제대로 된 유교 교육을 받기 전으로 회귀한 것이었다.

“함정인 줄도 모르고 따라왔구만! 흠씬 두들겨 주마!”

“….”

왜 이렇게 순순히 날 데려오나 했더니.

또래 친구들을 불러서 다시 덤비려는 모양이었다.

“어이? 이거 참.”

뚜둑.

“어이가 없네. 듀린이가.”

다시 한번 제대로 두들겨 줘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풀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쿵푸 듀공! 돌겨….”

빠악!

“꺄울!”

…?

모랑이 패기롭게 돌격을 외치려던 순간.

모랑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벽으로 처박혔다.

내가 한 건 아니었다.

모랑의 뒤쪽에서 다짜고짜 날아든 매서운 주먹에 의한 것이었다.

“허허 이거 참!”

듀린이에 비해 확연히 커다란 몸집.

어른으로 보이는 듀공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루루!

어른 듀공의 등장에 모랑을 따라왔던 듀린이들이 왔을 때처럼 우루루 빠르게 해산했다.

잠시 널브러져 있다가 금세 일어난 모랑이 그 자리에서 어른 듀공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서 보긴 했지만 인간과 이렇게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군요!”

오랜만이라니.

오래 전엔 인간과 함께 살았었다는 페샨 족 리카르도의 말이 떠올랐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쿵푸 듀공 배로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배로로의 족장이자 모랑의 아빠인 발랑이라고 합니다.”

발라당이야 뭐야.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백운입니다!”

“모랑이 폐를 끼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난 그냥….”

빠악!

“꺄울!”

무언가 변명하려다 다시 한번 날아가 버리는 모랑.

이쯤 되니 약간 불쌍해지고 있었다.

자업자득이긴 하나 오늘이 운수 좋은 날인 건지 먼지나게 두들겨 맞기만 하는 중이었다.

“손님을 계속 서 있게 했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발랑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처음부터 반말을 박았던 모랑과 달리 흡사 훈장님의 기운이 느껴지는 발랑이었다.

흐느적흐느적.

자주 처맞는 건지 오뚜기처럼 일어난 모랑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처음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풀이 팍 죽은 모습이었다.

부시럭.

“!!”

그런 모랑에게 초코바 세 개를 쥐여주며.

토닥.

토실토실한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줬다.

* * *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커다란 동굴 속.

동굴 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조명으로 밝혀져 있었다.

푹신푹신.

뭐로 만든 건지. 좋네.

안내해 준 자리에 있었던 방석을 꾹꾹 누르며 발랑이 내준 음식을 내려다봤다.

물고기 같은 걸 생으로 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노릇노릇.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잘 익혀진 생선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와삭.

생선을 베어 물며 앞을 바라봤다.

안내된 동굴 속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듀공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쿠울…!”

어찌된 영문인지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계속 자고 있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배로로의 최고 장로, 말랑 님이십니다.”

하마터면 먹고 있던 생선을 뿜을 뻔했다.

모랑부터 발랑에 말랑까지.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면 장난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잠이 많아지시더군요.”

발랑이 말랑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랑을 바라봤다.

외관만 봐도 나이가 많아 보이긴 했다.

못해도 80살은 되었을 듯한 생김새.

“800년을 사셨으니 배로로 족에서 최고령이시죠.”

“푸흡!”

예상했던 것보다 10배로 올라가는 나이에.

이번엔 참지 못하고 뿜어버리고 말았다.

앗.

주무시는 사이 날벼락을 맞은 말랑에.

호다닥 손을 뻗어 생선의 잔해를 털어냈다.

“으음.”

끔찍한 불쾌함을 느낀 건지 잠에서 깨어난 말랑이 눈을 떴다.

“호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인간이라니.”

말랑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꿀꺽.

다행히 한 조각 붙어있는 생선 살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 말씀 나누시죠.”

“…?”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앉아있던 모랑과 발랑 부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호다닥 동굴을 빠져나가는 두 듀공.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른 퇴장이었다.

“허허허. 여긴 어쩌다 왔는가?”

“근처에 왔다가 우연히 모랑을 만나서 오게 됐어요.”

물론 이마를 두들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섬의 사람은 아닌 모양이군.”

“사실 이런 섬이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지금까지 몰랐던 배로로 족이 산다고 해서 와본 거예요.”

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사람이니 모를 수 있지. 700년 전만 해도 꽤 교류했었던 터라 우릴 아는 인간이 많이 있었다네.”

“그, 그렇군요.”

700년 전이라니.

수명이 무한대가 된 시대에 살고 있긴 하나 쉽게 와닿지 않는 숫자였다.

슥슥.

길게 뻗은 수염을 몇 번 어루만진 말랑이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무언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는 듯한 모습.

대어르신의 그런 모습에 나도 예의 바르게 자세를 잡으며 귀를 기울였다.

“800년 전, 나 때는 말이야….”

그렇게 800년을 산 쿵푸 듀공, 말랑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그래서 보다 못한 내가 돌진하던 상어의 코에 주먹을 날렸다네. 쩌어어억!! 하고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지! 상어는 그대로 뻗어 바다 위로 동동 떠올랐고 말이야.”

“그, 그렇군요!”

말랑이 깨어나자 두 듀공이 빠르게 튀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몇 시간 째 계속되고 있는 말랑의 라떼는 이야기.

예를 지키고자 말랑에게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흐릿!

지친 건지 조금만 방심해도 시야가 흐릿해진 건 물론.

뻐근!

끄덕이던 목은 담이 온 건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투머치토커를 외딴 섬 아래에서 만나게 될 줄은.

엄청난 지루함과 백의민족의 유교 사상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호, 혹시!”

“음?”

말랑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찰나.

빠르게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옛날에 한반도 바다에서 벌어졌던 전쟁 이야기는 없나요?”

“다른 나라와 싸웠던 해전 말인가?”

“!?”

단번에 나오는 설명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 오동통한 주먹으로 상어를 때려잡았다는 등 허풍이 심해 신뢰가 가진 않았으나.

어쨌든 무기를 찾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이 근처에서도 엄청난 전투가 많이 벌어졌었지.”

여러 가지 전투에 관해 듣던 중.

“엄청난 사람이었어.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누구보다 강하고 용맹했지.”

솔깃해지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그분의 이름은 모르시나요?”

“이름은 모르지. 그저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사람이었어. 말도 안 되는 전력차를 그 사람 혼자 뒤집어버렸었거든. 한 번도 아니고 몇 차례나 말이야. 당시 듀공들 사이에선 해신이라고 불렸었다네.”

“제가 생각하는 분이 맞다면 거북이 닮은 배를 타고 다니셨을 텐데… 혹시 보시거나 들으신 적 없나요? 등에 뾰족뾰족 가시가 돋아 있었을 거예요.”

말랑의 이야기에 떠오르는 건 내 지식상에서 딱 한 사람뿐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말랑이 말하고 있는 게 이순신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으음… 거북이를 닮은 배라.”

거북선에 대해 묻자 말랑이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턱을 슥슥 문질렀다.

“그런 건 없었는데? 그렇게 눈에 띄는 게 있었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거든.”

“그런가요….”

말랑 님이 본 건 이순신 장군님이 아닌 건가.

팔짱을 끼고 투구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장 떠올렸던 건 한 명뿐이었으나 활의 주인이 이순신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말랑이 본 사람조차 누군지 정확하지 않으니 모든 게 오리무중이었다.

“배는 없고 거북이는 있었다네.”

“네? 거북이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봤다면 거북선을 거북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팔다리가 무척 긴 거북이었지. 이빨은 뾰족뾰족 날카로웠고 말이야.”

“….”

거북이의 대명사는 짤막한 팔다리인데 기다랗다니.

왠지 또 시작된 듯한 허풍에 게슴츠레하게 말랑을 쳐다봤다.

“우리랑도 친하게 지냈었지.”

가슴을 활짝 펴고 늠름하게 말하는 말랑에 이번에도 허풍임을 확신하는 순간.

“쿠울….!”

“!?”

잔다고?!

처음 왔을 때처럼 잠에 든 말랑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잠들다니.

어이없는 얼굴로 말랑을 쳐다보다.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말랑이 일어나 또다시 허풍 가득한 네버엔딩 라떼 스토리가 펼쳐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호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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