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61화 (261/473)

261화. 등급 심사

예상했던 대로 배로로 족의 섬은 인천과 가까웠다.

굴업리란 이름을 가진 생소한 섬.

굴업리에서 빠르게 수영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쏴아아.

그리고 지금은 오랜만에 돌아온 내 집에서 샤워를 즐기는 중이었다.

“으음! 스윗 마이 홈!”

따신 물을 맞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물론 오자마자 이렇게 여유로이 샤워를 즐긴 건 아니었다.

- 푸화아악!

문을 열기 무섭게 뿜어져 나왔던 엄청난 양의 먼지.

집을 오래 비우면 안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음!?

뽀득뽀득 비누칠을 하던 중 눈에 띈 곰팡이에 솔을 집어 들었다.

슥삭.

“휴.”

빠르게 제거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의 먼지를 다 제거하고 화장실을 문을 열자 날 반겼던 곰팡이 천국.

순간 집을 버릴까 고민이 될 정도로 엄청난 비주얼이었었다.

끼익.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으며 창밖으로 펼쳐진 넓은 바다를 바라봤다.

단순히 예쁘네 하고 보는 건 아니었다.

어디였을까.

투구에서 봤던 바다를 떠올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가 봤던 것만으로 어디에 있는 바다인지를 특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등장했던 미지의 장수를 쫓아가는 방법뿐이었는데.

너무 정보가 부족해.

내심 이순신 장군님이 아닐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닐 가능성도 충분한지라 시원하게 결정을 내리고 파헤치는 게 쉽지 않았다.

역사 공부의 필요성이 느껴지는군.

정확히는 비공식적인 역사에 관해서였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학교에서 공통으로 배우는 국사뿐인 상태.

이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모두에게 공개되는 만큼 논쟁의 여지가 있거나 불확실한 내용들은 삭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데몬이란 존재가 공식적으로 없었던 만큼 이능의 존재에 관련된 내용도 싸그리 날아갔을 테고 말이다.

기록이 없었을 리는 없어.

페샨과 배로로만 봐도 인간과 교류를 해왔었다.

분명 어떤 형태로든 기록이 남았을 텐데 공식 문서에 존재하지 않는 건 물론 아는 사람조차 한 명이 없으니.

말을 하는 킹냥이와 쿵푸 듀공인 만큼 공식 문서에 기재되는 게 힘들어 보이긴 하나, 이런 사례가 꽤 많을 것 같았다.

음… 역시 그곳으로 가야 하나.

막대한 자본력으로 닥치는 대로 공식, 비공식 정보를 가리지 않고 모으는 곳.

당장 떠오르는 장소는 역시 슈퍼 대기업 대산 뿐이었다.

다양한 게 많았지.

대산에서 받았던 문서엔 그야말로 방대하면서도 유니크한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광활한 인터넷에서도 구경할 수 없었던 정보들.

물론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만큼 진실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판단해야겠지만, 어차피 바닥부터 찾아야 하는 지금의 내겐 그리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저벅.

대산에 가서 자료 구걸 좀 해야겠다 마음먹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오씨…!”

열기 무섭게 한가득 쌓여 있는 메시지와 메일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핸드폰은 사자마자 물에 빠지거나 부숴 먹은 탓에 확인할 틈이 없었던 메시지들.

여러 사람한테 메시지가 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으니.

# 기태랑.

덜덜.

머릿속으로 훗카이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아이작의 건틀릿을 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에라이 몰라! 하고 안읽씹 해버렸었던 기태랑의 메시지.

조심스럽게 클릭하자 가장 최근에 도착한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 런던에서 야반도주 했다던데. 한국이겠지?

다음 줄로 넘어갔다.

# 한국이었으면 좋겠는데.

마지막 줄까지 읽은 순간.

띠링.

소름 돋는 알림음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추가되었다.

# 읽은 거 보니 한국이네.

호돌돌!

# 이젠 좀 오자. 올 때 됐잖아?

잠시 동공지진을 일으키다 조심스럽게 키보드로 손을 얹었다.

# 넵! 지금 갑니다!

메시지를 보낸 후 노트북을 덮었다.

“….”

아무래도 갈 때가 된 것 같았다.

대산으로 가기 전 경유지로 헌터청을 추가하며.

호다닥!

빠르게 옷을 챙겨 입었다.

* * *

오랜만이구먼.

웅장하게 서 있는 헌터 중앙청을 올려다봤다.

안 온 지 꽤 됐는데도 바뀐 게 전혀 없는 모습.

아니군.

바뀐 게 한 가지 있긴 있었다.

우글우글.

정문으로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엄청난 인파.

무슨 행사라도 하는 건지 안쪽은 물론이고 바깥까지 사람이 득실거렸다.

대부분 사람은 정문까지 간 뒤 어쩐 일인지 다시 되돌아가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한적한 대산이나 가고 싶다.

잠시 튈까 고민을 하다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많아서 나중에 온다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었다.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몇 명의 사람을 해치고 입구에 도착하자.

중앙청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길을 막아섰다.

“요새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헌터 지망하는 분들이 많아져서요. 중앙청은 당분간 본청 직원 혹은 업무가 있는 대한민국 소속 헌터를 제외하곤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둘 중에 해당하는 곳이 있으실까요?”

해맑은 미소와 함께 관련 안내가 빠르게 전달되어왔다.

수천 번을 반복한 건지 음율이 일정하면서 빠른 전달이었다.

“대한민국 소속 헌터에요. 오늘 중앙청에서 업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이름은 백운이고요.”

“네 잠시만요. 10급 헌터 백운 님이시고, 잡힌 스케줄이 있는지 확인 좀 해볼게요.”

타타탁.

“…!”

기계적으로 검색하던 직원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스, 스케줄 확인되었습니다. 강태황 장관님과 면담이시군요.”

직원의 눈에 적힌 메시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10급 헌터따리가 장관님과 면담이라니! 라는 눈빛.

이름으로 검색했을 땐 닉네임은 나오지 않으니 이해가 가는 바였다.

“된 건가요?”

놀라서 멈춰있는 직원에게 묻자.

“아, 잠시만요.”

직원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명찰 목걸이를 건넸다.

# 대한민국 소속 헌터. 10급.

“….”

10급이 커다랗게 적혀 있는 명찰이었다.

아마 건물 내부에서 쉽게 알아보기 위함 같았다.

“이걸 메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목걸이를 멘 채로 문을 통과했다.

“문서 빨리 가져와! 빨리!”

“처리 아직이야? 어느 세월에 하려는 거야 대체!”

조금 전 직원의 말대로였다.

분주한 걸 넘어 시장에 들어온 건가 싶은 수준의 혼잡함.

모두가 문서 한 다발씩을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 얼른 올라가자.

보기만 해도 아찔해지는 광경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로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빨리 한적함을 즐기고 싶었다.

“어제 겨우 그거 마신 걸로 빌빌대는 거야!? 오늘도 마셔야 하는데 벌써부터 빠져 가지고. 나 때는 말이야….”

말랑의 여파로 라떼는 이야기에 몹시 질려있던 터.

또 누가 라떼는을 시전하나 하고 있을 때.

퍽!

무언가의 부딪힘과 함께 가슴팍으로 뜨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이쿠!”

조금 전 라떼는을 시전하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오늘 개시한 새 옷에 커피를 퍼부은 남자가 서 있었다.

라떼는이 아주 잘 어울리는 생김새의 남자였다.

# 대한민국 소속 헌터. 4급.

4급 명찰을 단 남자가 사과는커녕 자신의 옷에 튄 커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날 위아래로 훑어보는가 싶더니.

“응? 10급?”

티가 날 정도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남자가 내 얼굴을 바라봤다.

“뭐야. 나 10급 때는 엘리베이터 쳐다도 못 봤는데 말이야. 안 그래? 어?!”

돼지년이…?

명백하게 아래 등급이라고 무시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10급이 벌써부터 편하려고 말이야.”

“하하… 팀장님 얼른 들어가세요.”

중앙청이지만 잠시 뺨따기를 올려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뒤에 있던 부하 직원이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이며 돼지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를 하며 조금씩 멀어지는 부하 직원과 상사 돼지.

“뭘 죄송해! 아까운 내 커피만 다 버렸구만! 에이!”

멀어지는 와중에도 꿀꿀대는 꿀꿀이를 바라봤다.

오도독.

이마에 핏대를 한 줄 세운 채 꿀꿀이가 앉는 자리를 확인한 후.

띵동.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 * *

“요즘엔 커피를 옷으로 마시나?”

들어가자마자 날 반겨주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여전히 번쩍이는 은갈치 정장을 입은 비광이었다.

“드디어 왔네.”

TV를 보고 있던 기태랑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두 사람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호다닥!

중앙 쇼파에 앉아있는 강태황에게 90도로 인사를 박았다.

대한민국 헌터청 장관.

날 편하게 대해주기도 하고 몇 번인가 만나긴 했었지만, 여전히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하하하!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를 하나! 앉아, 앉아.”

강태황이 가리키는 자리로 가 착석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두 무릎에 손을 얹은 채로 말이다.

“커피 안 줘도 되지? 이미 마신 거 같으니까.”

실실거리는 비광을 바라봤다.

“주, 주세요. 입으로는 아직 안 마셨어요.”

재밌다는 듯 웃으며 커피를 내주는 비광.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태랑이 입을 열었다.

“왜 오라고 한 건지는 알고 있지?”

“넵. 등급 심사 다시 받으라고 부르셨죠.”

“하하하! 요새 보면 엄청 바쁜 거 같은데 미안하구만! 우리도 워낙 압박을 받고 있어서 말이야. 더 높은 곳에서.”

강태황이 호탕하게 웃으며 위를 가리켰다.

어딘지는 몰라도 장관보다 위라고 하니 상당히 높은 분인 모양이었다.

“저 혹시….”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재심사는 어떤 걸 보나요?”

대한민국 헌터청의 등급 심사.

자세히는 몰라도 확실히 기억나는 건 있었다.

한 등급 한 등급 올라가기가 더럽게 힘들다는 악명이 자자하다는 것.

등급에 큰 미련은 없는지라 떨어져도 상관은 없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으면 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활 찾으러 가야 돼!

얼른 대산으로 달려가서 자료실을 종횡무진 누비고 싶었다.

- 제가 도와드릴게요!

갈 때마다 동료들과 함께 큰 도움을 주는 찹쌀떡 전수희도 있었기에.

관련된 자료 좀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독사 최리아로부터 잠시 벗어나게도 해주고 말이다.

후룹.

커피를 한 잔 마신 비광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 등급을 보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르지. 드는 기간도 천지 차이고.”

“설명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들어보고 가능하다 싶은 걸로 심사 요청할게요.”

9급 심사 신청해야지 하는 순간.

기태랑이 무슨 소리하냐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넌 무조건 1급이지.”

“넵…?”

1급이라니.

국가에서 몇 안 되는 건 물론이요 달았다 하면 유명인이 되는 급수.

아득하게만 느껴져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급수였다.

안 되는데.

1급이면 분명 시간도 더럽게 오래 걸릴 터.

얼마나 오래 걸리려나 하며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탁.

“…?”

식탁 위로 명찰 목걸이 하나가 올려졌다.

# 대한민국 소속 1급 헌터. 백운.

이게 뭐야.

멍한 얼굴로 명찰을 바라보고 있자 강태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시간부로 자네는 1급 헌터야. 심사는….”

강태황이 여유로운 미소를 그려 보였다.

“장관 권한으로 패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