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63화 (263/473)

263화. 팔다리가 긴

“어서 오십시오. 백운 님. 부서 실장 김정윤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등장한 탐사 및 발굴실의 실장, 김정윤.

50대 정도로 아무렇게나 뻗어 있는 흰머리와 조명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범생 안경까지.

김정윤은 누가 봐도 학구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주륵.

부담스러워!

옆머리로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전수희의 연락을 미리 받아서인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대기 중인 실의 사람들.

실장인 김정윤까지 버선발로 나와 맞이해 주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운 님. 아 바쁘실 테니… 임진왜란 시절 장수들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시다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김정윤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찾는 물건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자료를 더 자세히 선별할 수 있을 겁니다.”

“활이에요. 제 키보다 더 기다란 활인데… 몸체가 물색 비슷한 색을 가졌다는 거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상태예요.”

옛날이었다면 라이벌이었을 대산도 눈에 불을 켜고 찾을 테니 비밀로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다 찾아놓은 유물도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넘겨줄 정도이니.

내게 있어 대산은 완벽한 조력자였다.

“활을 사용했던 장수라.”

“갑옷도 봤었는데요.”

추가로 봤었던 갑옷의 형태를 말해주자 고개를 끄덕인 김정윤이 패드를 들어 올리며 분류를 시작했다.

삐빅.

이리저리 자료를 쪼개고 모으던 김정윤이 패드를 내밀었다.

“일단 말씀하신 시기와 특징들로 분류해봤습니다. 어느 장수의 자료부터 보시겠습니까?”

패드엔 장수의 이름으로 분류된 폴더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꽤 많네.

모두 조선시대에 활약했던 장수들 같았다.

익히 들어봤던 이름이 있는가 하면 처음 보는 이름도 있었다.

그만큼 자료의 수도 적은 모양이었고 말이다.

이름이 알려진 장수 중에 있길 바라야겠어.

리스트를 살피다 가장 많은 자료를 보유 중인 이름을 가리켰다.

“이순신 장군님 자료를 먼저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예,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감사합니다!”

앞서가는 김정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걱정하지 마세요. 백운 님.”

“네…?”

텐션이 올라간 듯한 목소리에 나란히 걷고 있는 전수희를 쳐다봤다.

왠지 모르게 상기된 얼굴로 팔까지 걷어붙이고 있는 전수희.

최리아로부터 벗어나서인지 뭐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찹쌀떡의 눈은 강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자료 정리의 달인인 제가 다 찾아 드릴게요!”

반짝!

* * *

탐사실로 올라오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못해도 5시간은 넘은 것 같았다.

시무룩.

시간이 흐를수록 반짝이던 전수희의 눈은 빛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힘들어서라기보단 패기롭게 찾는 중임에도 유의미한 자료가 안 나오고 있어서였다.

“하아아!”

자료집 하나를 덮은 전수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네요. 이순신 장군님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거에 관한 내용밖에 없어요.”

내가 찾고 있는 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지만.

자료를 뒤지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꽤 있었다.

국사에도 어느 정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전투를 치러왔다는 것이었다.

썅놈의 새끼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누구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뒤에서 쑥덕거리며 업적을 깎아 먹을 생각이나 했던 인간들.

국사에서 소개된 건 아주 약한 맛 몇 가지뿐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음, 여기도 마찬가지로 딱히 건질만 한 게 없군요.”

덜덜.

김정윤의 목소리에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김정윤은 실의 온 직원을 동원해 함께 자료를 찾아주고 있었다.

직장인들에겐 칼퇴근만큼 기쁜 게 없을 터인데.

나 때문에 강제 야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추, 추가 수당 주겠지.

대기업이니까 줄 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눈을 돌렸다.

“이건 각 지역 백성의 목격담을 기록해둔 건데… 여기에도 딱히 건질만 한 게 없네요.”

또 한 권의 자료집을 보던 전수희가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로 고개를 내저었다.

“왜군과 큰 해전이 있던 날. 안개가 있어 상세히 보진 못했으나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정말 거대한 크기였다. 웬만한 섬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으며 움직일 때마다 파도가 일었다.”

체념 섞인 목소리로 자료를 읽는 전수희를 쳐다봤다.

어이가 없었던 내용인지 혼잣말 비슷하게 읽어 나가는 중이었다.

“사족보행을 하였는데 그 팔다리가 얼마나 긴지 섬의 반을 덮을 기세였고, 그것이 입을 벌리고 우는 순간엔 거대하게 돋아있는 이빨이 보여 털썩! 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라니. 완전 판타지 소설 읽는 느낌이에요. 팔다리가 길고 이빨이 뾰족하게 돋은 거북이가 세상에 어딨어.”

“하하. 그러게…?”

어?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전수희에 웃으며 맞장구 쳐주려는 순간.

굴업리 섬에서 들었던 800살 할아버지 말랑의 말이 떠올랐다.

- 팔다리가 무척 긴 거북이었지. 이빨은 뾰족뾰족 날카로웠고 말이야.

라떼는 할아버지가 또 허풍을 치시는구나 하고 흘려들었던 이야기.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비슷한 목격담이었다.

슥슥슥슥슥.

잠깐만.

머리를 스치는 기억에 빠르게 턱을 문질렀다.

만약 이게 진짜고 말랑 님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면.

- 우리랑도 친하게 지냈었지.

800년을 살아온 쿵푸 듀공 할아버지, 말랑.

말랑은 정말 어떤 존재와 친하게 지냈으며, 그 존재는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격담이 기록되었을 때도 이순신 장군과 왜군의 해전이 있었을 때고, 말랑 역시 거북선 같은 배는 못 봤지만 이상하게 생긴 거북이를 봤었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벌떡!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화들짝 놀란 전수희와 사람들이 날 올려다봤다.

하도 안 나와서 정신이 나간 건가 하는 표정.

“잠시 확인해봐야 할 게 생겨서요. 혹시 제가 따로 빼놨던 자료들 메일로 좀 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충무공 이순신의 생애와 마지막, 조선 내에서의 입지 등 몇 가지를 따로 빼놨었다.

활을 찾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당시의 여러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네 가능합니다. 바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김정윤이 문제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정윤과 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며.

아직도 벙쪄있는 전수희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뒤 미소를 그렸다.

“수희 님 나이스!”

* * *

자료를 찾는 사이 찾아온 저녁 시간.

대산의 옥상에서 곧장 날개를 꺼내 굴업리 섬까지 날아왔다.

입수!

집에 가서 수영복을 챙길 시간 따윈 없었기에 곧장 물로 몸을 던졌다.

어푸어푸.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잠수 후 수영하기를 잠시.

눈에 들어온 배로로 족 마을 입구에 지체없이 위로 부상했다.

푸화아악!

“끼아아아악!”

“우아아아악!!”

뚝뚝.

들려오는 비명에 물기를 대충 털며 주변을 둘러봤다.

모랑을 포함한 몇몇 듀린이가 기겁한 채 발라당 넘어져 있었다.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헤엄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 초코바 형!?”

“….”

이젠 형이란 호칭까지 붙여 주는 걸 보니 건네줬던 초코바 세 개가 몹시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앞에 붙은 초코바란 수식어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지만, 어쨌든.

“할아버지 계셔?”

“네, 넵! 마침 깨어 계심돠! 집으로 가시면 됨돠!”

기합이 바짝 든 모랑을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랑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잘했어.”

칭찬과 함께.

부시럭.

“!?”

대산의 간식 창고에서 가져온 초코바 한 봉다리를 건네주었다.

“가, 감사함돠!!”

* * *

“홀홀… 거북이 말이지.”

뭔가 스위치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날 발견하자마자 라떼는으로 운을 떼는 말랑에 허겁지겁 말을 막으며 거북이에 관한 질문을 건넸었다.

“좋은 친구였지. 우리가 이 섬으로 오기 전부터, 정확히는 훨씬 오래전부터 바다에 살고 있던 친구였어.”

배로로 족이 살기 전이라면 말랑이 태어나기 훨씬도 전일 터.

팔다리가 긴 거북이는 대체 언제부터 살고 있던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기억이 나기 시작했을 땐 배로로 족과 거북이는 이미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네. 강한 폭풍우가 오거나 해일이 밀려와도 그 친구가 섬을 지켜주었지. 그 친구 덕에 위험한 존재들도 근처로 접근하지 못했고 말이야.”

위험한 존재라면 데몬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정체불명의 거북이는 어쨌든 배로로 족을 보호하며 함께 살아온 듯했다.

“혹시 이름 같은 건 모르시나요? 거북왕이라든가, 킹북이라든가.”

“으음…!”

말랑이 턱을 문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무언가 기억이 나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으으음. 분명 들었었는데… 이놈의 기억력이 영 시원찮아서.”

점점 더 심하게 몸을 비트는 말랑에.

“기, 기억하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좋은 친구랑 이순신 장군… 그 가장 싸움을 잘했다는 분과의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 좋은 친구는 편의상 거북이라고 부르기로 하고요.”

더 무리하게 기억을 떠올렸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질문을 바꾸었다.

그제야 얼굴이 평온해진 말랑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둘 사이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네. 첫 번째는 끊임없이 싸웠다는 거야.”

“이순신 장군님은 왜군과 싸웠을 테고… 거북이는 누구랑 끊임없이 싸운 건가요?”

“위험한 존재들이라네. 끊임없이 이 바다와 땅, 자네들이 한반도라 부르는 곳을 차지하려고 공격해 왔었거든.”

“거북이가 한반도를 지켰다는…?”

말랑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랫동안 지켜왔다고 했었네. 몇 년이라고 시간을 따지기 힘들 정도로 오랜 시간을 말이야. 이게 그 장군이란 사람과의 두 번째 공통점이라네. 한반도란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점이지.”

점점 더 존재가 궁금해지는 거북이었다.

오랜 시간 바다에서 데몬을 상대로 한반도를 지켜왔다니.

“그럼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내 기억으론 이 부근에 위험한 존재… 뭐라 부르지?”

“데몬요.”

“그래, 데몬. 갑자기 나타난 데몬 군대를 상대로 거북이가 한참 싸우던 중이었어.”

그 날을 떠올리는 듯 말랑이 수염을 어루만졌다.

“꽤 강한 놈들이었지. 항상 손쉽게 이겨 오던 거북이가 고전할 정도였으니까. 그때 그 장군이 나타났고, 거북이를 도우며 순식간에 데몬 군대를 박살 냈었다네.”

“허.”

단순히 왜군을 상대로만 싸워온 게 아니었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진 않았으나 충무공 이순신은 데몬을 상대로도 나라를 지킨 것이었다.

“아!”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던 말랑이 무릎을 쳤다.

“기억났다네! 거북이의 이름!”

꼴깍.

침을 넘기며 말랑에게 귀를 기울였다.

“거북이의 이름은….”

살짝 뜸을 들이며 천천히 입을 여는 말랑.

긴장된 침을 한 번 더 삼키려는 찰나, 귀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