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섬 탐색
“네…?”
나도 모르게 되물으며 눈을 부릅떴다.
800살 쿵듀 말랑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이름이었다.
“젊은데 벌써 귀가 안 좋은 겐가? 현무라니까.”
귀가 안 좋아서 못 들은 건 아니었다.
단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현무라니.
주작, 청룡, 백호와 함께 동서남북의 방위를 다스리는 사신 중 하나.
당연히 신화 속에서의 허구라고 생각하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존재라고 하기엔 너무 비슷한데.
당장 인터넷에서 사신 현무만 쳐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말랑이 말한 현무와 익히 알려진 사신 현무의 생김새가 몹시 닮아있다는 것은 말이다.
“아는 이름인가?”
“네. 한국에 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에요. 신화 속 허구의 존재라고 여겨지고 있었고요.”
“그런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 과거엔 분명히 존재했으나 후세에 전해지며 허구의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말이야. 워낙 믿기 힘든 힘이나 업적을 가지고 있었으면 더더욱 그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 만났던 존재들을 떠올렸다.
페샨부터 배로로, 그리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데몬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뭐가 실존하든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세상이긴 했다.
“거북이… 아니지. 현무 등에 가시가 돋아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죠?”
“워낙 커서 등을 볼 일이 있어야 말이지. 바닷속에서 헤엄칠 땐 본 적이 있는 거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난다네.”
“으음!”
턱을 슥슥 문지르며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와 투구를 통해 봤던 기억을 취합해봤다.
기억에서 장수는 무언가를 딛고 바다 위에 서 있었다.
무언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었고 말이다.
장수가 딛고 서 있었던 걸 현무라고 가정하면.
슥슥슥슥슥슥!
열이 날 정도로 턱을 문지름과 동시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님이다…!
현무의 실존을 확인한 순간 여러 가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왜군뿐만이 아니라 데몬과도 싸워왔던 장군 이순신, 그리고 이순신과 함께 싸워왔던 거대한 크기의 킹북이 현무.
내심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 생각했던 가능성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 둘의 마지막 전투도 이 부근이었을 거야. 엄청난 수의 데몬이 몰려왔었지.”
마지막 전투가 이 부근이었다라.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장소.
기억 속 인물을 충무공 이순신으로 확신하며 새롭게 생긴 의문이기도 했다.
투구를 통해 본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딱 봐도 최소 S급인 데몬 몇 마리와 족히 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군대를 이순신과 현무 단둘이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량 해전이 아니었나.
“뭔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려진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님의 전사 장소는 여기가 아니거든요. 한참 떨어진 다른 바다에서 왜군에 의해 전사하셨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렇다면 알려진 역사가 잘못된 게야.”
두루뭉술하게 간신히 기억을 떠올리며 말하던 때와는 달랐다.
말랑이 확신에 찬 표정과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첫 번째로 왜군이 그 장군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장군은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였거든. 모든 전투에서 왜군은 장군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어. 그걸 왜군도 알았기에 장군이 살아있는 동안은 한반도 근처로 얼씬도 안 했던 거고. 두 번째로.”
슬픈 기억인 모양이었다.
침통한 듯 작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찌푸리는 말랑.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던 장군의 시신을 수습한 게 당시 배로로 족의 어른들과 나였다네.”
“…!”
“전투가 끝난 후 장군의 나라에서 여러 척의 배를 보냈었어. 장군의 시신을 찾는 듯 보였는데 바다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어 난항을 겪고 있었지. 그들이 시신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데몬 시체에 깔렸던 장군을 바다 위로 올려보냈다네.”
말랑이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한 이유였다.
“그럼 현무는 어떻게 됐나요? 이순신 장군과 함께 마지막을 맞이했던 건가요?”
“그건 알 수 없다네. 마지막 전투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장군과 함께 죽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고개를 든 말랑이 수염을 매만지며 천장을 바라봤다.
“어딘가에서 못다 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 * *
풍덩!
물로 뛰어들어 깊은 수심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말랑이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장소로 가보기 위해서였다.
없겠지.
일단 큰 기대는 내려놓은 상태였다.
말랑이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수습한 건 몇백 년 전이었다.
지금 가본다고 바닥 어딘가에 활이 떨어져 있을 확률은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서였다.
- 쿠울…!
몇 가지를 더 알려준 뒤 깊은 잠이 들었던 말랑.
전에 비해 훨씬 많은 걸 말한 탓이었을까.
조금만 더 듣고 싶어 조심스럽게 톡톡 건드려봤으나 말랑은 깨어나지 않았었다.
더럽게 깊… 앗.
잠시 우매했던 머리를 탓하며.
[도윤 - 비젼 수리검]
꺼내 든 수리검을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보냈다.
마음 같아선 휙 던지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해저에 괜한 충격을 주고 싶진 않았다.
“….”
그렇게 잠시 수리검이 내려가길 기다렸다가 비젼을 사용했다.
오씨…!
비젼을 사용하기 무섭게 펼쳐진 광경에 식은땀이 흘렀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심해 공포증이 다시 도지는 기분이었다.
개무섭네.
어둠에 눈이 적응되길 기다린 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완전 깜깜하진 않고 희미하지만 햇빛이 스며드는 걸로 보아 그렇게 깊진 않은 모양이었다.
스윽.
가만히 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순신 장군님의 마지막 장소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저벅.
수리검을 닻으로 사용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당장 눈에 보이는 황금색이나 보라색 빛은 없었다.
기대는 버렸다고 하면서도 내심 앞에 황금빛이 떨어져 있길 살짝 기대했었는데.
너무 도둑놈 심보였던 모양이다.
응?
그렇게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한참을 방방거리며 무작정 바닥을 훑고 있을 때.
대부분이 바닥에 묻힌 사각형의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드드득…!
깊이 묻힌 건지 약간 힘을 줘 들어 올리자.
이건… 드론?
동영상에서 종종 봤던 수중 드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니 잠수함의 모양을 띤 드론으로 심해 탐사 등을 할 때 기업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 몇 년 전인가… 한 번 거대한 배가 여러 척 와서 바다를 뒤졌었다네.
말랑이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해준 이야기였다.
처음 보는 각종 장비로 몇 달을 두들기고 땅을 파헤쳤었다는 것.
배는 이걸로 끝내지 않고 굴업리에 있는 각종 기록까지 싹 거둬들여 갔었다고 말랑은 말했었다.
어디에서 먼저 온 거지.
잔뜩 녹이 슨 드론을 문지르며 여기저기 돌려보았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한발 빠르게 이곳에 도착했던 사람들.
규모만 들어봤을 땐 개인이 아니라 기업일 가능성이 높았다.
음?
드론의 한쪽 구석.
거의 다 지워져 희미하지만, 구분이 가능한 정도로 남아있는 두 개의 글자가 보였다.
# 해신.
아는 이름이었다.
대산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굴지의 기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곳.
… 그럴싸한데.
어떻게 이 장소를 미리 알고 찾아온 건가 의아했었는데.
그게 해신이라면 조금 납득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분명 해신의 회장이….
해신은 이순신 장군과 많은 접점이 있는 기업이었다.
* * *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기업 해신의 회견장.
여러 사람이 모인 회견장으로 갈색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찰칵!
그와 동시에 터지기 시작하는 카메라의 후레쉬들.
카메라의 렌즈는 모두 조금 전 들어온 노인에게 향하고 있었다.
“허허… 이거 참 너무 눈부신데요. 다들 식사는 하고 오셨는지요? 저는 아직 못 먹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자리에 앉은 노인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을 건네자 기자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어졌다고 생각한 건지 천천히 입을 열어 자기소개를 하는 노인.
“안녕하십니까. 기업 해신의 회장 이수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이수천의 자기소개에 여기저기서 답 인사가 들려왔다.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회견마다 기자들에게 자기의 이름을 알리는 게 이수천의 습관이었다.
“그럼 편하게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수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수천이 한 명의 기자를 가리키자 미소를 지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JBC의 김대우 기자입니다. 기업 해신에서 드디어 이순신 장군의 전시회를 연다고 들었습니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허허! 다 알고 오셨으면서 또 물어보시는군요.”
“하하하! 그래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회장님이 직접 말씀해주셨으면 해서 질문드렸습니다.”
대기업 해신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회장 이수천의 1인 기업.
해신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물 및 역사 사업 덕분이었는데.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이수천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유물과 정보들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알고 계신 대로 준비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사용했던 각종 무기, 그리고 전쟁에 쓰였던 각종 병법서 및 갑주, 기타 도구들까지. 이 모든 게 전시 준비를 마쳤으며 곧 공개될 예정입니다.”
“프라이빗 전시회라고 들었는데요. 입장료가 좀 많이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유가 있을까요?”
너털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이수천이 말을 이었다.
“기업의 영업이익을 위해서…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삑.
화면으로 이수천이 준비해온 한 장의 설계도가 비쳐졌다.
“다들 아시다시피 엄청난 가치를 가진 유물들입니다. 작은 훼손조차 일어나선 안 되는 것들이지요. 그렇다 보니 전시회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바로 보안입니다.”
설계도에 이어 유물을 지키기 위한 각종 안전장치가 소개되었다.
“이 모든 걸 충족하다 보니 들어오는 관람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위치 또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관람료뿐만이 아니라 여러 절차의 유지 및 장소까지 접근 비용이 더 해진 거군요.”
“정확합니다. 자 많이 물어보신 거 같으니 김대우 기자님은 마지막 질문하도록 할까요?”
미소와 함께 끄덕인 기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하겠습니다. 모든 유물을 꼭 둘러봐야겠지만, 하나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회장님께선 어떤 유물을 추천하실 건가요?”
“그거야 당연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가장 아끼고 애용했던 무기.”
고민조차 하지 않은 이수천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쌍룡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