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동행 좀
방송국 CBC의 회의실.
“싸가지 없네.”
“!!”
거침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유빈아 제발 말조심 좀 해라 쪼옴!”
회의실 중앙에 앉아있던 팀장이 제발 부탁이라는 투로 말을 건네자.
목소리의 주인공인 송유빈이 머쓱한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아주 온갖 대인배인 척, 여유로운 척은 다 하면서 뒤끝 장난 아니네.’
TV에선 기업 해신의 기자회견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보기만 해도 화기애애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나이 먹으면서 쪼잔함만 늘었나.’
“지금 속으로 이수천 회장 욕하고 있지?”
송유빈이 뜨끔하는 표정을 짓자 팀장인 조영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송유빈이 자신의 기자회견 출입을 금지한 이수천을 욕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말이다.
“아니 그렇잖아요. 무릇 리포터라면 궁금한 걸 물어보는 게 당연한 건데. 자기들 마음에 조금 안 드는 질문 한 번 했다고 기자회견장에도 못 오게 하고.”
“조금?”
되물으며 조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물이랑 역사 사업하는 기업 회장한테 가짜 유물 아니냐고 물어본 게 조금? 한창 화기애애했던 생방송 소개 방송에서 대놓고 회장 면상에 대고 물어본 게 조오오금?!”
폭발하려는 조영천에 송유빈의 후배이자 카메라맨인 진유석이 눈치를 보냈다.
제발 더 말대꾸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으라는 신호였다.
“….”
그런 진유석의 신호에 송유빈이 말을 삼키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휴.”
웬일인지 순순히 한 수 접는 듯한 송유빈에 진유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그럼 리포터가 방송에서 물어보지 어디 낚시터에서 물어보나.”
“야 송유빈! 너 진짜!”
구시렁거림에 폭발한 조영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씩씩거리며 뭐라고 말을 쏟아내는 조영천을 못 본척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송유빈.
송유빈이 한창 대답 중인 TV 속의 이수천을 바라봤다.
‘분명 뭔가 구린 게 있어.’
대기업 해신엔 잊을만하면 종종 불거지는 논란이 있었다.
바로 해신이 전시하는 유물이 가짜라는 것과 회장인 이수천이 과연 이순신 장군의 진짜 후손이 맞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구린 게 없다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틀어막겠어.’
논란은 불거지더라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기업답게 해신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논란을 잠재웠었기 때문이다.
SNS는 물론 각종 방송국의 인터뷰까지 모조리 막아버렸던 해신.
이후 논란에 관해선 철저한 무시로 응수하는 이수천에 송유빈이 생방송에서 노빠꾸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뭘 숨기고 있을까.’
불만과 의심이 가득한 채로 TV를 보고 있을 때.
# 쌍룡궁 입니다.
송유빈의 귓가로 한 유물의 이름이 들려오고.
잠시 구석에 밀어놨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벌떡!
대꾸조차 안 하던 송유빈이 벌떡 일어나자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과 조영천.
“뭐, 뭐야? 할 말 있어?”
너무 뭐라고 한 건가 싶어 약간 움츠러든 채 묻는 조영천에.
고개를 돌린 송유빈이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저 해신 전시회 좀 보내주세요!”
* * *
결국 여기구만.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 앞에서 정면을 바라봤다.
기업 해신이 전시회를 열고 있는 프라이빗 장소였다.
굴업리 바다 밑에서 드론을 발견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
해신이 활을 가져갔을 거란 가능성을 가지고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봤었다.
별다른 건 없었지.
유물관에서 일할 때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게 있는지 열심히 찾아봤었는데.
이수천이 이순신 장군의 후예라는 것과 해신이 유물 및 역사 사업을 하는 것 등 대부분이 동일했었다.
딱 한 가지.
회귀 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게 있었다.
- 해신이 유물을 팔아먹는다고 하던데?
물론 그때도 구두로만 종종 들렸을 뿐 증거가 발견되거나 한 건 아니었다.
나 역시 무념무상으로 살던 시기라 딱히 관심을 더 가지지 않았었고 말이다.
뭐… 이건 당장 활이랑 관련 없으니까.
자료를 찾던 중 회장 이수천의 기자회견 동영상을 발견했었다.
꼭 봐야 하는 유물을 꼽으라는 말에 쌍룡궁을 말했었던 이수천.
- !!
이름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었다.
여러 정황상 내가 찾고 있는 무기가 쌍룡궁일 확률이 높아서였다.
- 호다닥!
그 길로 전시회가 열린다는 이곳으로 달려왔었지만.
결과적으로 난 쌍룡궁의 털끝도 구경하지 못했었다.
- 확실한 신분이 필요합니다.
전시회의 입장 조건 중 하나, 신분 확인.
내가 입구 컷 당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시회에 들어갈 만한 급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1급 헌터를 내밀기엔 타이밍이 좀 그렇지.
고민하긴 했지만 일단은 발걸음을 돌렸었다.
무기왕이 10급에서 1급으로 초고속 승급했다는 헌터청의 발표로 전국이 떠들썩한 상태였다.
1급 승급이 닉네임으로 발표된 첫 사례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백운이란 이름의 1급 헌터.
이 두 가지가 모이면 헌터청 관계자가 아니어도 충분한 유추가 가능할 것 같았기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일단 물러난 것이었다.
스윽.
목에 걸린 황금색 목걸이를 내려다봤다.
대, 대산 최고!
방법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전화로 쭈굴대며 문의하자 곧장 사람을 보내 목걸이를 건네온 대산.
무려 회장인 소피아가 직접 보증한다는 날인을 새겨 보내온 목걸이었다.
그저 빛!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하이패스 할 수 있는 합격 목걸이를 찰랑이며 컷 당했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한적하구만.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전시회임에도 한적한 이유는 간단했다.
신분 확인은 어찌저찌 통과한다 하더라도.
# 1인 1회 입장료: 1억.
정신 나간 입장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가격이야.
처음엔 0을 두세 개 더 센 건가 했었다.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재확인하고 나서야 현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휴… 그래도 다행이야.”
전시회 한 번에 1억.
더럽게 아까웠지만 불가능은 아니었다.
한참 안 본 사이 후원금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1억짜리 전시회.
꼴깍.
마른침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가보….
덥썩!
“…?”
가보자구! 하면서 기합을 넣으려던 찰나.
옷깃을 잡아끄는 누군가에 고개를 돌렸다.
* * *
송유빈이 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잡은 옷의 주인을 올려다봤다.
깔끔하게 넘긴 흑발과 시원하게 뻗은 눈썹, 그리고 부리부리하지만 또렷한 눈동자까지.
잠시 송유빈이 넋을 놓은 채 맑고 깨끗한 남자의 피부를 바라봤다.
‘어디 재벌집 도련님이신가 보다.’
“…?!”
갑자기 옷깃을 잡아서인지 남자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송유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 송유빈이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백운입니다.”
‘감기 걸린 건가.’
잔뜩 잠긴 코맹맹이 목소리.
당황하는 백운을 보며 송유빈이 최대한 해맑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들어가려는 남자에 일단 다짜고짜 옷깃을 잡은 터라 뭐라고 해야 하나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건 또 뭐 하는 앤가 욕하고 있을 테니까 얼른 생각하자.’
송유빈이 백운의 옷깃을 잡은 이유는 간단했다.
- 절대 안돼에에에에엑!!!
전시회에 보내달라는 송유빈의 말에 팀장 조영천은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 질렀었다.
전시회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한 건 물론이었다.
‘킁!’
당연히 들을 생각은 1도 없었다.
이미 전시회에 있을 유물들에 꽂힌 송유빈이었기에 적금까지 깨부숴 1억을 마련한 후 달려온 것이었다.
- 안됩니다.
달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입구 컷 당해버렸지만 말이다.
‘진짜 뒤끝 징글징글하네.’
질문 한 방에 해신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가버린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1억을 싸들고 왔는데도 안 들여보내 줄 리가 없었다.
‘오기로라도 들어가고 만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전시회 가시려는 거 맞죠?”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백운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 송유빈이 절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이 좀 들어가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 * *
꼴깍!
동행하게 해달라는 송유빈에 마른침을 삼켰다.
어, 어떡하지.
이미 송유빈이 등장한 시점부터 난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여러 차례 만나긴 했지만 그때의 난 무기왕이었다.
백운으로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상태였기에 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못 알아챘어.
가장 먼저 숨긴 건 목소리였다.
감기 걸린 척 최대한 코맹맹이 소리를 냈음에도 딱히 수상하단 표정을 짓진 않았었다.
나와 무기왕을 전혀 연관 짓지 못하는 듯했다.
그나저나 왜 못 들어가는 거지?
약간 의아했다.
송유빈은 국민 리포터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다.
입장료만 있다면 이보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도 없을 터.
이에 대해 물어보려는 순간 송유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제가 못 들어가는지 궁금하시다면… 저는 CBC의 리포터인데 생방송에서 회장한테 유물 가짜 아니냐는 질문 한 번 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거든요.”
“….”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노빠꾸 송유빈다운 이유였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송유빈이 절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들어가시려는 건가요? 전시회 같은 거 안 보면 그만이잖아요.”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이미 한 번 입구 컷을 당했으며 1억까지 드는 전시회였다.
아무리 이순신 장군에 관심이 크고 돈이 많더라도 모르는 사람의 옷깃을 잡아가면서까지 들어가려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잠시 뜸을 들이던 송유빈이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제가 해신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이유와 관련이 있는데요.”
“네. 생방송에서 질문한 거요.”
“몇 년 전에 해신이 대대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인천 바다에서 벌인 발굴 작업이 있어요.”
귀가 기울여지는 내용이었다.
굴업리의 바다에서 벌인 작업일 터였다.
“비공식으로 이루어졌던 작업이지만 전 미리 정보를 주워들었고, 몇몇 기자와 함께 해신의 배가 정박 예정인 장소에 나가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본 게 있어요.”
정박 장소에서 기다리기를 한참.
마침내 해신의 배들이 들어왔고, 기자들을 발견한 이수천은 기다린 노력을 생각해 발굴한 유물의 이송 작업을 지켜볼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사진이나 동영상 등 기록을 남기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제가 그때 몇 개의 유물을 봤어요. 아주 가까이서요. 아, 그리고 자세히 설명하자면 긴데 제가 기억력이 엄청 좋거든요.”
사진을 찍듯 기억하는 송유빈의 절대 기억력에 관해선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설명은 넣어두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전시회에 있는 유물들을 보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전시된 게 몇 년 전에 제가 봤던 유물인지 아닌지를요.”
송유빈이 확신에 찬 얼굴로 전시회장을 응시했다.
“전 지금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