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쌍룡궁
모습을 드러낸 쌍룡궁에 손으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쌍룡궁의 생김새가 경이롭거나 놀라워서 생긴 건 아니었다.
단지.
질끈!
개아까워!
순식간에 공중분해 당한 1억이 너무 아까웠다.
섹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쌍룡궁.
쌍룡궁에선 코딱지만큼의 빛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생김새는 딱 투구에서 봤던 건데.
거리가 멀고 비바람과 파도가 몰아치긴 했으나.
실루엣과 색감, 그리고 전체적인 느낌을 봤을 땐 기억에서 봤던 활이 분명했다.
내가 찾는 무기가 활이 아니었던 건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기억에서 봤던 것 중 내가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건 활과 갑옷뿐이었다.
문제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전시회에 있으며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덩그러니 놓인 쌍룡궁을 응시했다.
다시 제자리긴 했으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다행이라 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장군의 후손이 가진 무기를 보며 시원하게 털지도,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하고 괴로워할 일은 없어졌으니까 말이다.
문서부터 다시 뒤져봐야 하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금 더 앞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시작할 땐 하더라도 일단 전시회에 남겨진 먼지 하나까지 다 눈에 담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가루가 된 1억이 그나마 덜 아까울 것 같았다.
“유빈 님. 저쪽으로 한 번… 응?”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사이 사라져버린 송유빈.
고개를 들자 쌍룡궁 바로 앞까지 가 몸을 바짝 내밀고 있는 송유빈이 보였다.
송유빈은 미간까지 잔뜩 찌푸려가며 쌍룡궁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다.
… 잠깐만.
빛이 안 보여 실망한 나머지 한 가지 가능성을 잊고 있었다.
설마하며 희박하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송유빈이 말했던 것처럼 전시된 쌍룡궁이 가짜일 가능성이었다.
가루가 되었다고 생각한 1억이 어쩌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벅.
조심스럽게 집중하고 있는 송유빈에게 다가갔다.
진심 분석 모드 같은 건가.
눈을 부릅뜬 건 물론 인상까지 팍 찡그리고 있는 송유빈에.
쉽사리 말은 걸지 못하고 조용히 옆을 지키고 있었다.
“백운 님.”
“네?”
한참 집중하던 송유빈이 고개를 돌려날 올려다봤다.
송유빈의 눈동자에선 뭔가 갈등하는 듯한 번뇌와 꽂힌 것에 대한 이글거림이 공존하고 있었다.
“쌍룡궁을 더 가까이서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좀 곤란한 상황이 생길 텐데 괜찮을까요? 정말 잠깐이면 돼서 꼭…! 꼭!! 좀 보고 싶지만. 백운 님께서 안된다고 하시면 안 갈 거예요. 절 데려와 주신 것만 해도 이미 너무 감사한 일이니까요.”
두 번 강조된 꼭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송유빈은 오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것이란 걸.
뭐 얼마나 곤란한 상황이겠어.
송유빈이 갑자기 휘발유를 꺼내 전시회에 불을 지르진 않을 테니.
그러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뭐 하시게….”
“감사합니다!”
휙!
“에?”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과 함께 손이 올라갔다.
갈 곳 잃은 손 너머에선 송유빈이 열심히 쌍룡궁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제한 구역 표시용으로 설치된 라인은 가볍게 뛰어넘어서 말이다.
왜에에에엥--!
전시관으로 위협적인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천장에서 두꺼운 철창과 유리막이 내려와 송유빈과 내 가운데를 갈라놓았다.
쿵.
커다란 소리가 나며 나올 수 없게 되었음에도.
송유빈은 그러든가 말든가 쌍룡궁이 놓인 유리관에 얼굴을 바짝 대고 관찰 중이었다.
역시 노빠꾸구먼.
옆통수로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외모를 떠나 송유빈이 인기 많은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철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길 잠시.
어디 방에서 대기라도 하고 있던 건지 사방에서 우락부락한 가드들이 뛰쳐나왔다.
자기는 쌍룡궁에 손댈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송유빈.
그러면서도 두 눈만큼은 쌍룡궁에서 떼지 않는 송유빈이었다.
“뭐하시는 거냐 물었습니다!”
철창 안으로 몇 명의 가드가 달려 들어가고.
뒤따라와 내 앞에 선 가드 한 명이 무서운 얼굴로 물어왔다.
“벼, 병이 있어요.”
“무슨…!?”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에 일단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너무 멋있는 걸 보면 노빠꾸로 달려나가는 병이라 저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거든요.”
손을 들어 이마에서 흐른 땀을 가리켰다.
“이거 보세요. 놀라서 땀 흐르는 거. 으휴 어쩌지 저거 정말.”
“지금 저랑 장난치시는…?”
본격적으로 화를 내려던 가드가 말을 멈추며 몸을 돌렸다.
인이어가 꽂힌 귀로 손이 간 걸로 보아 뭔진 몰라도 지시가 내려온 듯했다.
바로 사형 이런 건 아니겠지. 그래도 대한민국인데.
어느새 가드에게 몰이 당해 나온 송유빈이 옆에 섰다.
아쉬움이 아닌 확신이 깃들어 있는 얼굴.
뭔진 몰라도 원하는 바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저 사람이 대장인가.
아직도 어딘가와 통신 중인 가드를 바라봤다.
우루루 몰려나온 이들은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대장 가드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척 마음에 안 들고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두 분 밖으로 안내해드려.”
* * *
송유빈의 돌발행동으로 경고음이 울렸던 전시회장 내부.
출입을 막아 놓은 전시회장엔 수십에 달하는 가드가 도열해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를 둘러싸 보호하고 있는 가드들.
저벅.
그 사이로 조금 전 도착한 회장 이수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깔끔하게 넘긴 갈색 머리와 구김 하나 없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흠.”
쌍룡궁 바로 앞까지 걸어가 뒷짐을 지는 이수천.
꿀꺽.
그 뒤로 선 가드와 해신 간부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수천이 화를 내거나 소리 지른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만큼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수천은 몹시 열 받아 있는 상태란 걸 말이다.
‘그 대산 나부랭이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이수천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송유빈과 함께 온 백운을 떠올렸다.
백운만 아니었어도 전시회에서 규칙을 어긴 송유빈을 아주 곤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라이브 방송에서 건방진 질문을 했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할 기회였는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회장님.”
이수천 옆으로 가느다란 뱀눈을 가진 남자가 다가왔다.
근육질은 아니지만 단단한 체형으로 흑발을 깔끔하게 넘긴 이수천의 비서 실장 진강현이었다.
“알아봤어?”
전시회로 오며 이수천은 조용히 백운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었다.
대놓고 대산에 물어보진 못하더라도 뭐 하는 놈인지는 알고 싶어서였다.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놈이 아니라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수천에 진강현이 말을 이었다.
“대산에 있는 정보통을 통해 알아봤습니다만, 여러 번 드나드는 건 본 적이 있는데 정확히 정체가 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소피아 회장과 어떤 사이인지도 모르고요. 단지 아무 때나 대산을 방문해도 홍보실 실장이나 팀장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 맞이하는 VVIP라고 합니다.”
“뭐…? 홍보실 실장이라면 그 최리아 독사 년을 말하는 건가?”
“예.”
“허어?”
이수천은 최리아를 아주 싫어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고개 한 번 제대로 숙인 적이 없는 건 물론, 해신의 요구사항을 번번이 무시하거나 내쳐버리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해신이 하는 모든 걸 의심하며 이것저것 찔러보는 것 또한 아주 마음에 안 들고 심기가 불편했었다.
‘그런데 그 최리아가 버선발로 맞이한다…?’
이수천이 헛웃음을 짓는 사이.
눈치를 살피던 진강현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소득은 있었습니다. 백운이란 자가 국가직 소속 헌터라고 합니다.”
이수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점점 갈수록 미궁이었다.
어떻게 국가직 헌터 나부랭이가 소피아와 이 정도의 친분이 있을 수 있는 걸까.
“헌터청에 우리 돈을 받는 놈이 있을 텐데? 중앙 소속은 아니더라도 꽤 권한이 있는 놈이니 시스템에서 조회는 해볼 수 있을 거 아니야.”
진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가장 이상합니다. 락이 걸려있어 조회가 불가능했는데 그 락을 건 사람이 강태황 장관이라고 합니다.”
“…!?”
이수천이 놀란 눈으로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비공식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권한이 막강하다고 알려진 강태황이었다.
그런 강태황이 락을 걸고 보호하는 인간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으득.
입술을 깨문 채 눈을 감은 이수천이 애써 심호흡을 했다.
뭘 알아챈 건지 알 수 없는 송유빈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지끈거리는 중이었는데.
골칫거리가 한 명 더 추가된 기분이었다.
“일본 야쿠자 쪽에 연락해서 선수 몇 명 보내라고 해. 잡혀도 탈 없는 놈들로.”
눈을 뜬 이수천이 위험 요소인 송유빈을 떠올렸다.
웬만해선 직접 처리하고 싶었지만 백운이란 정체 모를 놈이 있는 이상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분명 무언가를 알아낸 듯한 송유빈을 가만히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뜨는 진강현에.
다시 쌍룡궁으로 눈을 돌린 이수천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으득.
“날파리 놈들이…!”
* * *
줄줄줄.
“백운 님. 그 이… 입에서.”
“아.”
입에서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후다닥 닦아냈다.
방금 들은 이야기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멍 때리고 말았다.
시, 시발.
닦으면서 조금 전 송유빈이 말한 문장을 되새김질했다.
- 가짜예요.
전시회장에서 충분히 멀어진 뒤 아이스크림 집으로 날 끌고 들어왔던 송유빈.
자리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을 때까지 아무 말 없던 송유빈이 건넨 첫 마디였다.
“쌍룡궁이 가짜란 말씀이죠?”
“네. 확실해요. 정말 잘 베꼈지만 제가 봤던 거랑 다른 활이에요. 멀리서 봤을 땐 안 보였지만 가까이서 확인했으니 확실해요. 아주 작지만 문양 자체가 완전히 다른 부분이 있어요.”
홀리 슅…!
송유빈의 기억이 잘못됐을 리는 없었다.
잘못 기억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제가 어떻게든 전시회에 들어가서 쌍룡궁을 보려 했던 이유예요. 인양 당시 제가 자세히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었던 게 쌍룡궁이었거든요.”
슥슥슥슥.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턱을 문질렀다.
내다 버렸다고 생각한 1억원이 다시 살아나 눈앞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는 기분이었다.
제자리가 아니었구먼.
입가로 미소가 그려진 건 물론이었다.
내가 찾아야 하는 게 활이 아니면 대체 난 뭘 찾아야 하는 건가 막막해지던 참이었는데.
계속 활을 찾으면 된다는 호재 중에서도 극상 호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룡궁이 가짜라는 건.
톡… 톡… 톡.
턱 문지르기를 멈추고 대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자 해신의 회장인 이수천을 떠올렸다.
이 할아버지 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