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죽음의 요코하마
“사실 전 간부가 된 지 얼마 안 돼서요.”
쭈굴거리며 이실직고하는 야츠모토에.
짜악!
망설임 없이 이마를 후려쳤다.
“…?”
이번엔 왜 맞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야츠모토가 날 바라봤다.
“간부 말단 밖에 안 되는 놈이 처음에 그렇게 가오 잡고 거들먹거렸던 거야?”
“그, 그래도 물어보신 거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해신과 어떤 관계인지도 잘 알고 있고요.”
“… 빠, 빨리 말하지.”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던 야츠모토가 말을 이어갔다.
“해신과 사이조의 협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습니다. 주로 협력하는 건 유물 관련 사업인데 해신이 유물을 가져오면 사이조가 깨끗이 세탁한 자금으로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중간에 여러 과정이 있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송유빈과 대산이 의심하던 대로 해신이 유물을 빼돌리고 있단 점이었다.
송유빈도 설마 이수천이 빼돌린 유물을 팔아 처먹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겠지만 말이다.
이수천 이 새끼 보소.
처음 호칭은 할아버지였으나 이젠 아니었다.
그런 호칭조차 아까울 정도로 매국노 자식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면서 그 유물을 모조리 빼돌리고 있었다니.
노인 공경이고 뭐고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확보한 뒤 박살 내줄 필요가 있었다.
“이수천도 연관된 거 확실하지? 해신이 회장 모르게 팔아먹는다거나.”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전 말단이라 아직 한 번도 거래에 참여해본 적은 없지만, 이수천 회장 혹은 그의 비서 실장이 항상 직접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둘이 거래 기록하거나 그런 거 있지? 가져와.”
“그런 건 없습니다.”
감히 거짓말을…?
손을 들어 올리자 야츠모토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으…! 정말 없습니다! 다른 지부에도 없을 겁니다!”
“그게 말이 돼? 누가 언제 뒤통수 칠 줄 알고.”
“서로 뒤통수칠 건덕지조차 없는 사업입니다. 사이조는 이수천의 유물 공급을 절실히 원하고, 이수천 역시 밝혀졌을 때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묘하게 납득이 가는 말에 들었던 손을 내렸다.
편의상 찾으려고 했으나 사실 장부나 기록이 없어도 되긴 했다.
이수천이 빼돌린 진품만 찾아 돌아가면 만사 오케이였다.
“믿어 줄게. 그럼 아까 사이조가 금고를 가지고 있다 했지? 어느 산에 있어?”
두들기는 와중에 야츠모토는 금고란 단어를 계속 내뱉었다.
- 금고가… 끄억! 금고! 금고 위치를…! 그만!!
“요코하마에 사이조가 소유한 작은 산 하나가 있습니다. 그곳에 커다란 금고가 하나 있는데. 해신으로부터 사들인 유물들은 전부 금고에 보관한다고 들었습니다.”
“들었습니다? 너 이 새끼 직접 가본 거 아니구나.”
“아, 안 가봤지만 확실합니다! 직접 현장엔 안 나갔어도 오키나와 해역에서 거래를 마친 유물을 제가 요코하마까지 수송했었습니다!”
덜덜 떨리는 야츠모토의 눈을 바라봤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타고난 연기 천재 같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들어가는 방법은?”
“그건… 거기 지부에 가셔서 물어보셔야….”
“….”
또 한 대 후릴까 바짝 쫄아 말하는 야츠모토에 한숨을 내쉬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매만지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걸 보니 원래부터 겁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이것만 해도 기대 이상의 수확이긴 해.
날이 밝기 전에 쿄스케가 알려준 지부를 전부 훑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야츠모토의 말이 사실이라면 요코하마가 내가 털어야 할 마지막 지부가 될 터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같다만.
사이조가 어떻게든 유물 관련 사업을 숨기려 한다는 걸 고려했을 때.
거래했던 모든 유물을 보관 중인 금고는 사이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장소일 게 분명했다.
그런 장소를 몇 대 맞았다곤 하나 너무 술술 불고 있었다.
가보면 알겠지.
잠깐 야츠모토를 데려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무기왕으로 특정 가능한 칼데아 날개를 보여 준다는 게 조금 찝찝했다.
나중에 다시 오지 뭐.
수리검을 밖에 두고, 하회탈을 쓰고 한 게 모두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훗카이도 상공에서 날개와 함께 악귀참도를 휘두르던 영상이 일본 전역으로 퍼진지 얼마 안 지난 시점이기도 했고 말이다.
“갔는데 거짓말이면 아주 뒤지는 거야. 어떻게든 다시 찾아내서 죽인다.”
한참 두들겼던 주먹을 내보이자 야츠모토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지체 없이 요코하마로 갈 생각에 몸을 일으키다.
“아.”
깜빡하고 안 물어봤던 게 있어 야츠모토를 돌아봤다.
쌍룡궁과 큰 관련은 없지만 금고 이야기를 듣고 생긴 의문이었다.
“사이조는 왜 닥치는 대로 한국 유물을 사들이는 거야? 되파는 것도 아니고 금고에 처박아두기만 할 거면.”
“아무거나 다 사진 않습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특히 이순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유물만 사들이죠.”
“이유는?”
잠시 뜸을 들이던 야츠모토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사이조는 일본 고위 관리 몇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막대한 자금과 비리를 저질러가면서까지 유물을 모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과거 대패하며 일본의 큰 오점으로 남았던 전투와 그 중심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장수. 뒤늦게나마 그의 유물을 거둬들여 발아래에 둔다면.”
야츠모토의 눈으로 묘한 광기가 어렸다.
“한반도 땅에 깃들어 있는 그의 혼과 넋을 더럽히고 꺼뜨릴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 *
사이조의 오키나와 지부.
백운이 다녀가고 얼마 뒤.
… 번쩍!
기절해있던 야츠모토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허억…! 헉!”
거칠게 호흡을 고르는 사이 평소보다 몇 배로 부풀어 오른 이마가 시야로 들어왔다.
“이 하회탈 개자식이…!!”
주변에 백운이 없다는 걸 확인한 야츠모토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 어?
한차례 신나게 얻어맞은 직후.
조금만 더 맞았다간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백운의 질문에 일단 대답하고 본 것이었다.
추후에 사이조의 응징이 있더라도 살아있어야 대책을 세울 테니까 말이다.
- 그래?
어쨌든 이런 야츠모토의 생존에 대한 진심이 통한 건지 구타를 멈추었던 백운.
금고 위치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음에도 안 때리길래 끝났다 생각했었는데.
떠나기 직전 야츠모토가 한 대답에 백운은 풀스윙으로 주먹을 휘둘렀었다.
이순신의 유물을 가져간 이유를 듣자 더럽게 괘씸해서 참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가 물어봤으면서… 끄으!”
이마를 문지르며 야츠모토가 널브러진 부하들을 바라봤다.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기절해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어디서 보낸 자식이냐.”
야츠모토가 좁은 공간을 누비던 백운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귀신 같은 움직임이었다.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는 엄청난 반사신경과 움직임으로 단 한 대도 맞지 않은 채 모든 부하를 제압한 백운.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저런 녀석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후우…! 뭐 어차피 곧 뒈지겠지만.”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야츠모토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프고 겁에 질려 이것저것 발설하긴 했으나 야츠모토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제 곧 사이조의 요코하마 지부에 도착할 백운.
백운이 그곳에 도착해 만날 수 있는 건 확정된 죽음뿐이었다.
“멍청한 하회탈 자식. 금고가 있는 만큼 요코하마는 철옹성이다.”
다른 지역은 다 고만고만하지만, 요코하마는 아니었다.
사이조에서도 최정예 인원들이 모인 지부가 바로 요코하마였다.
A급 헌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지부.
금고를 둘러싼 각종 보안 시스템까지 더해지면 백운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살아남을 확률은 0에 수렴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고개를 휙휙 털어낸 야츠모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운이 요코하마 지부에 도착하기 전.
미리 현재 상황을 알려 조금이나마 문책의 무게를 줄이고 싶어서였다.
저벅!
빠르게 걸으며 백운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는 야츠모토.
야츠모토의 입가로 쌤통이라는 듯한 조소가 머금어졌다.
“잘 가라. 하회탈 자식아.”
* * *
히메지 성의 서재.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장군 히라이 쇼고가 펜을 내려놓았다.
“사이조의 뒤를 캤다면서.”
동시에 옆에 서 있는 쿄스케에게 쇼고가 말을 건네자.
“… 죄송합니다. 보고도 없이.”
약간 놀란 듯하던 쿄스케가 쇼고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름 최대한 은밀하게 알아본 건데 하루도 안 되어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아니야. 나한테 물어봤어도 허락했을 거야. 당연히 비공식이겠지만.”
쇼고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무기왕 백운한텐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였다.
자신과 쿄스케를 포함한 여럿의 목숨을 빚진 터라 다 갚을 수 있긴 한 건가 의문이지만 말이다.
“한 시간 전에 기무라한테 전화가 왔었어.”
“…!”
기무라 라는 이름에 쿄스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본에서 엄청난 다음의 권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공안부.
기무라는 그곳을 이끄는 공안부장이었다.
“히메지 성이 사이조에 왜 관심을 두는지 궁금해하더라고. 무얼 알아냈고, 알아낸 걸 어디에 사용할 것이며, 직접 사용할 게 아니라면 어디에 넘겼는지 말이야.”
작은 한숨을 내쉰 쿄스케가 조용히 쇼고의 말을 경청했다.
“일단 성 차원에서 언제 위협이 될지 모르는 야쿠자 조직을 미리 알아봐 둔 거다… 라고 대답은 했어. 전혀 안 믿는 눈치였지만.”
“감사합니다. 쇼고님.”
감사 인사는 됐다는 듯 쇼고가 손을 내저었다.
“마지막에 기무라가 그러더라고. 지금처럼 성에서 평화롭게 앉아있고 싶으면 넘어도 되는 선인지 아닌지를 잘 판단하시라고.”
“!!”
쿄스케가 놀란 눈으로 쇼고를 바라봤다.
아무리 공안부장이라 해도 총리조차 상호 존중하는 장군을 협박하다니.
기무라가 한 건 이미 그 선이란 걸 한참 넘은 행동이었다.
톡. 톡.
쇼고가 손가락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백운 님은 아마도 요코하마에 도달하시겠지?”
요코하마에 사이조의 무언가가 있다는 건 정재계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이조를 받쳐주는 보이지 않는 힘과 요코하마를 둘러싼 무력이 하도 막강하다 보니 못 본 척하는 것뿐이었다.
“빠르든 늦든 그곳에 원하는 게 있다면 도달할 겁니다. 사이조 지부를 다 털어서라도요.”
“너도 알다시피 요코하마는 막강해. 단순히 수준급 전투원들을 넘어 산을 둘러싸고 있는 기계 병사나 방어 체계가 말도 안 되니까. 요새라고 부르는 게 맞을 정도로.”
줄줄이 요코하마의 힘에 대해 읊는데도 별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쿄스케에.
쇼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네. 백운 님이니까요.”
쿄스케가 확신 이전에 그저 당연한 진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쿄스케에 쇼고도 그건 그렇지 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요코하마가 함락되면 사이조가 무너질 거고, 사이조가 무너지면 끈끈하게 묶여 있던 인간들도 같이 흔들릴 거야.”
톡… 톡.
“쿄스케. 난 그 순간이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야.”
“…!”
“의도한 건 아니지만 백운 님이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춘 쇼고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썩은 뿌리를 뽑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