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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73화 (273/473)

273화. 시간이 흐르면

고개를 든 카진이 입을 벌렸다.

“끄… 아?”

입에선 비명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말이다.

- 스륵.

조금 전 카진의 눈에 보인 빛은 달빛이었다.

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금고에선 절대 볼 수도, 보여서도 안되는 빛.

처음엔 약간 보이는가 싶은 정도였는데 지금은 달빛이 아예 금고 전체를 환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산, 산이…!”

놀라서 말을 더듬는 건 회장 카진뿐만이 아니었다.

카진 옆에 서 있던 미야몬과 미유 역시 얼굴로 경악이 물들어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폭우가 내린 날에 종종 일어나던 산사태완 차원이 달랐다.

산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대체 어느 수준의 충격이 가해져야 산이 이렇게 박살 날 수 있는지는 감조차 오지 않았다.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 미, 미야몬 님!

인이어로 바깥을 살피러 나갔던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광경을 보고 있는 건지 몹시 당황한 목소리였다.

# 산이 무너지고 있고… 배치되었던 보안 시스템이 모조리 무효화 되었습니다!

“뭐…?”

마른침을 삼킨 미야몬이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산 전체에 배치한 보안 시스템.

배치된 장소 자체가 박살나며 무너져 내렸으니 시스템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단지.

“모조리 무효화라니….”

오랫동안 보안 시스템을 봐왔던 미야몬인 만큼 쉽게 와닿지가 않았다.

대규모 비행 부대든 공수 부대든 한순간에 전멸시킬 수 있는 화력을 가진 막강한 시스템이었다.

- 강도를 약하게 해놓긴 했는데… 그래도 오기 전에 죽어버리는 거 아닐까요?

미야몬은 조금 전까지 오히려 걱정했었다.

카진이 생포하라고 말한 하회탈이 매복 중인 입구에 도착도 하기 전에 죽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정도로 강력한 시스템이 1분도 안되는 시간에 허공으로 흩어진 것이었다.

“미야몬.”

“예, 예!”

카진의 부름에 정신 차린 미야몬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병력은 문제없겠지?”

“예! 쓸려나간 건 보안 시스템뿐입니다. 병력은 모두 금고 입구에 집결해 있습니다.”

카진이 몸을 돌려 미야몬을 내려다봤다.

놀란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건지 카진의 얼굴은 차갑게 변해있었다.

“그럼 금고 역시 문제가 없겠군.”

“다, 당연합니다!”

낮게 가라앉은 카진의 목소리에 미야몬이 황급히 대답했다.

자연재해를 넘어선 재앙이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금고의 모든 책임은 미야몬에게 있었다.

만약 카진이 아끼는 금고에 약간의 문제라도 생겼다간 목이 달아날 터였다.

“아무 문제도 없어야 할….”

“야 할아버지.”

“!?”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미야몬과 카진이 고개를 들었다.

“하, 하회탈!!”

투명한 금고 위엔 언제 온 건지 알 수 없는 하회탈이 내려와 있었다.

안쪽을 살피려는 건지 금고 벽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 채였다.

‘정말 저놈이 한 거란 말인가…!’

미야몬이 미간을 찌푸렸다.

산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미야몬은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인간 한 명이 하기엔 불가능한 스케일이었기에.

혹시나 하회탈이 아닌 S급 이상의 데몬이 나타난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저 태연한 모습과 목소리를 보니 범인은 하회탈이었다.

“지금 뭐 위에 서 있는 거야?”

다시 한번 건네진 말에 미야몬의 시선이 카진의 발아래로 향했다.

이수천에게 가장 큰 금액을 들여 사왔던 것.

충무공 이순신의 유해가 든 관이었다.

“설마 싶지만 만약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약간 가라앉은 듯한 하회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족발 치워라.”

* * *

그냥 금고 안은 어떻게 생겼나 살펴보려고 했던 건데.

생각지도 못한 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일단 발 치우라고 말은 했으나 쉽사리 믿기진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남자가 밟고 있는 바닥 아래의 관.

처음엔 무슨 관이지 했었는데 금고가 대부분 이순신 장군의 유물이란 걸 고려해보면 떠오르는 가능성이 있었다.

도둑년 이수천이 이순신 장군의 유해까지 빼돌렸다는 것.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미친 짓이지만, 이미 유물을 닥치는 대로 팔아먹은 놈인 만큼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휙휙.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금고 내부를 훑어봤다.

당장 눈에 보이는 빛은 없지만 폐쇄되어 가려진 공간이 꽤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금고.

대체 얼마나 팔아치운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완전 호로자식이네 이거.

이런 호로 도둑놈을 상대로 잠시나마 후손이 가진 쌍룡궁을 가져가도 되는 걸까 고민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소속을 밝히게나. 난 사이조의 회장 카진. 넌 어디서 보낸 놈이지? 히메지 성인가?”

왠지 끝판왕 같은 느낌이긴 했는데 회장이라니.

금고에서 컬렉션을 감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사이라고 서로 소속을 밝혀. 너 그리고 발 안 치울래?”

관 위에서 미동조차 않는 녀석에 다시 한번 묻자.

약간의 조소를 머금은 카진이 입을 열었다.

“난 움직일 생각이 없다네. 네가 거기서 백날 떠들어도 마찬가지겠지. 왜냐면.”

의미심장한 말을 한 카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그러고 싶지 않거든. 일본 총리가 와서 부탁해도 마찬가지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건 절대 강제할 수 없지.”

여러 배후가 있다곤 듣긴 했었는데 생각보다 더 어마무시한 모양이었다.

저렇게 총리까지 들먹이며 으스대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옮겨 줄 테니까.”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마음 같아선 천장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괜히 안에 있는 유물들을 상처 입힐 필요는 없었다.

“입구를 찾는 거라면 저쪽이라네.”

허?

카진이 여유로운 동작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걸 보니 예상했던 대로 열심히 대비해둔 것 같았다.

“많이 웃어놔.”

실실 웃고 있는 카진에게 마지막 말을 건네며.

“잠시 후면 못 웃게 될 테니까.”

입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그 시각 한반도 깊은 바닷속.

빛 한줄기 닿지 않는 심해로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그 진동의 중심엔 거대한 두 존재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레비아탄…. 넌 절대 내보낼 수 없다.”

용보단 이무기의 생김새로 빛나는 붉은 갑주를 두른 레비아탄이란 데몬과.

“어리석은 놈.”

기다란 팔과 다리,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현무였다.

두 존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으며 자신들만의 소통 방법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꿀렁!

레비아탄이 한 번 몸부림치자 몸을 묶고 있는 수천 개의 사슬이 크게 요동치고.

덩달아 마주하고 있던 현무의 몸도 크게 진동했다.

엄청난 수의 푸른 사슬이 현무와 레비아탄의 몸을 잇고 있었다.

“이미 네 봉인은 망가지고 있다. 그 증거로 나의 아이들이 한반도 바다로 올라가고 있지.”

현무가 조용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몸에 감겨 있는 사슬은 레비아탄의 것 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바다와 이어진 것부터 아주 먼 바다로 뻗어있는 것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슬이 현무의 몸에 감겨 있었다.

현무는 필사적으로 그 사슬들이 풀려나지 않도록 억누르는 중이었고 말이다.

“네가 지키려던 바다는 이미 피로 물드는 중일 거다.”

조롱 섞인 레비아탄의 말에도 현무는 대꾸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몇 개의 사슬이 풀려 사라졌고 바다에 갇혀 있던 녀석들이 물 위로 올라갔을 터였다.

드드드… 카앙.

말하기 무섭게 현무의 몸 일부가 바스러지며 또 하나의 사슬이 풀려났다.

풀려남과 동시에 푸른색 가루로 흩어지는 사슬.

서서히 모습을 감추는 사슬에 현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현재의 상황이 당황스럽거나 한 건 아니었다.

현무의 힘은 무한이 아니었기에 이미 예정된 결말이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굳이 따지자면 넌 나와 더 가까운 존재일 텐데.”

“피에 굶주린 네놈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레비아탄이 피식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몸이 그 지경이 되면서까지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건가? 네놈 꼬라지를 봐라.”

레비아탄이 천천히 현무의 몸을 살폈다.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던 등껍질은 오랜 시간 사슬을 버텨내느라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바스러지는 중이었으며.

모든 걸 절단했던 거대한 이빨 역시 그 예기를 잃고 무뎌져 가고 있었다.

“저놈들이 너한테 해준 게 뭐가 있지? 이 바다에 너란 존재가 있는지도, 지금껏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조차 모를 텐데.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신들을 지키던 존재가 바스러져 죽어가든 말든 잘 먹고 잘 사는 중이겠지.”

이번에도 현무는 대꾸하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해서, 무언가 대가를 받기 위해서 시작한 싸움이 아니었다.

- 미안하구나, 벗이여.

유일하게 자신을 벗이라 부르며 함께 싸줬던 이의 목소리.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순간 어째선지 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설마 함께 싸웠던 하찮은 존재와의 약속 때문은 아니겠지?”

“내 벗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벗? 그 벗은 지금 어디에 있지? 네놈이 오랜 시간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이 순간, 대체 어디에 있냔 말이다. 아! 일찍이 뒈져서 편히 쉬고 있겠구나.”

- 지금 저들에겐 레비아탄과 군대를 막아낼 힘이 없다네.

레비아탄이 떠들든 말든.

현무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떠올려 나갔다.

-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새로운 영웅이 태어나 성장할 시간이.

벗의 얼굴엔 슬픔과 미안함이 가득했었다.

홀로 남겨질 현무에게 너무 많은 걸 맡기고 간다 생각해서였다.

- 얼마나 많이 기다려야 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네. 하지만 분명….

벗은 마지막에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었다.

- 나타날 거라네.

나타날 거라고 말이다.

* * *

“살벌하네.”

입구로 들어서며 정면을 바라봤다.

카진이 자신 있어 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입구에 모여있는 엄청난 수의 능력자들.

한국 헌터로 치면 최소 3급 혹은 4급은 되어 보였다.

간간이 2급 느낌의 녀석도 있었고 말이다.

무기를 더 써야 할 수도 있겠는데.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면도칼과 수리검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까다로운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다면 결국엔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증거인멸 확실하게 하지 뭐.

물론 처음 오키나와 지부로 갔을 때와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앞에 있는 놈들은 애초에 날 제대로 죽일 작정으로 나온 녀석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살려주니 마니 하면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럼.”

뚜둑.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날 기다리고 있는 놈들에게 발을 뻗었다.

“얼른 끝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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