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두 마리의 용이 그려진
쐐에에에엑!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내며 손을 뻗었다.
서걱!
“끄으…!”
흩뿌려지는 피를 방패 삼아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확실히 요코하마가 사이조의 본진은 본진인 모양이었다.
오키나와에 있던 놈들보다 전투력과 경험이 높은 건 물론 능력도 다양했다.
번쩍!
빛을 본 순간 날카로운 화살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시야를 가리며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화살.
다대다 전투인 만큼 한눈파는 순간 바로 꿰뚫릴 것 같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옆으로 빠르게 달려드는 놈을 바라봤다.
신체 강화형인지 깃털이 달린 신발을 신은 녀석이었다.
이 자식이었구만.
잊을 만하면 얼굴로 날아오던 깃털이 이놈의 공격이었던 모양이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는데 알아서 앞에 나서주다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보고 쥐새끼래 이 깃털 돼지…!?”
깃털 돼지에게 다가가 면도칼을 그으려는 순간.
미끌!
중심이 무너지며 시야가 허공으로 뒤집혔다.
언제 한 건지 방금 발을 디딘 바닥이 맨들맨들해져 있었다.
장거리 왁스칠 능력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멍청하구나! 귀찮게 하던 내가 나타나는 순간 네놈이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단순한 트릭에 걸려들다니 하하하하하!”
“….”
돼, 돼지 년이…?
웃음을 터뜨리는 깃털 돼지가 얄밉긴 했으나.
하나 같이 다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쥐새끼처럼 움직이던 것도 이제 끝이다! 죽어라!”
내가 못 움직이는 순간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수의 공격이 쏟아졌다.
주변에서 서성이던 근거리 녀석들까지 일제히 달려든 건 물론이었다.
이거 참.
다가오는 놈들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슬슬 안 되겠다고 느끼던 찰나였다.
인원도 많은데 가지각색인 능력까지 신경쓰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쪼개져라!!”
허공에 붕 뜬 채로 눈앞까지 다가온 양날도끼를 잠시 바라보다.
수리검과 면도칼을 해제시킨 후.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사사키 코지로 - 스이카]
연기를 터뜨리며 달려들던 녀석들의 뒤로 움직였다.
콰앙!
반대편에 발을 디딘 후에야 바닥에 닿은 무기의 마찰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어디에…!?”
연기를 일렁이며 정면에 있는 놈들을 바라봤다.
원거리에서 이것저것 능력을 구사하던 녀석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연기의 서늘함을 느낀 건지 맨바닥을 후려쳤던 놈들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잔 드디어 쥐새끼를 잡았다는 사실에 해맑아진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커진 눈동자로 내게서 뿜어지는 연기를 살피는 중이었다.
“너네가 먼저 죽이려고 했다.”
자세를 낮추며 허리춤에 있는 스이카로 손을 가져갔다.
철컥.
“그럼 수고하시고.”
끼아아아아아아악---!
* * *
카진이 입구를 비추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얼굴엔 놀라움을 넘어 경악이 물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흐른 건지 온몸은 식은땀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귀를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온몸이 굳어질 정도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단순한 비명이 아닌 수천수만 개의 원한이 서려 만들어진 듯한 절규였다.
“뭐냐 저건…!”
어금니를 깨문 카진이 거친 음성을 뱉어냈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온몸이 뜨거워졌다.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많은 걸 경험하고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건 지금까지 쌓아온 게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득하면서도 아찔한 광경이었다.
# 끄….
모니터 너머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하회탈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넓은 범위로 백색 검기가 뿌려졌다.
그리고 검기에 닿은 모든 이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한 번 못 지르고 조각이 나는 중이었다.
“카, 카진 님! 피하셔야 합니다!”
미야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카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피해야 한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이 금고를 가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데 모든 걸 두고 도망치라니.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저거 하나 못 막고!”
카진이 입술을 떨며 미야몬과 미유를 노려봤다.
달랑 한 명이었다.
어디서 제대로 준비를 해 보내온 군대가 아닌, 단 한 명.
겨우 한 명 때문에 지금까지 쌓았던 성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이 무능력한 새끼들!!”
벌벌 떨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금고 책임자니 비서니 하면서 으스대더니 정작 능력을 뽐내야 할 땐 비에 젖은 개 마냥 떨어대고 있었다.
“금고에 문제가 생기면 네놈들이라고 무사할 거 같으냐! 어떻게든지…?”
더 타박하려던 카진이 말을 멈추며 눈살을 찌푸렸다.
미야몬과 미유 뒤로 모니터 안에서 봤던 연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털이 곤두서는 서늘함을 가진 연기였다.
“!!!”
카진의 타박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야몬과 미유도 뒤에 도착한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미야몬과 미유.
두 사람은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 마른침만을 삼켜대고 있었다.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지배한 본능적인 공포에 굳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야 늙은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하회탈의 남자가 천천히 카진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거칠게 소리 지르던 카진이었으나 지금은 마주하게 된 공포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
카진이 뭐라도 해보라는 눈치를 보냈지만.
미야몬과 미유가 그 눈빛을 못 본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젠 사이조의 회장이고 뭐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움직이면 주, 죽는다.’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쌓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카진에게 다가가는 남자는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이는 순간 모니터에서 봤던 것처럼 목이 달아날 것이란 걸 말이다.
“내가 그 족발.”
카진 바로 앞까지 다가간 남자가 한쪽 다리를 뒤로 젖혔다.
“치우라고 했지.”
빠아아아악!!
* * *
“끄아아아아아악!!”
바닥에 드러누운 카진이 날카로운 비명을 쏟아냈다.
데굴데굴 구르며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려대는 카진.
유교 사나이로 노인 공경을 중요시하는 나지만 눈앞에 있는 놈은 제외였다.
“야 딴 데 가서 굴러다녀.”
완전히 분리된 다리를 안고 구르는 카진을 발로 툭툭 차 밀어냈다.
“끄… 끄으으…!?”
잠시 내려다보다 카진의 얼굴 앞으로 면도칼을 들이댔다.
다리가 부러져서 아프긴 하겠으나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비명 그만 지르고 잘 대답해. 한 번이라도 거짓말하면 바로 쑤셔버릴 거니까.”
스윽.
카진이 밟고 있던 아래를 응시했다.
“진짜 이순신 장군님의 관이야?”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카진에 작은 한숨을 뱉어냈다.
설마 했었는데 진짜인 모양이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한국에 있는 묘는 뭐고.”
“그, 그건 가짜다. 애초에 진짜는 우리한테 있었다.”
몸을 일으켜 발을 들어 올렸다.
빠각!
“끄아아아아아아!!”
남은 다리도 마저 박살내며 카진을 내려다봤다.
“호로 새끼네 이거. 아는 새끼가 올라 서 있었던 거야?”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썩어있을 줄이야.
원래는 쌍룡궁만 찾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알게 된 이상 이수천도 가만히 놔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엄청난 애국자는 아니지만.
쌍룡궁과 함께 하게 될 걸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함께 하는 이의 일인 만큼 남의 일로 미뤄둘 순 없었다.
관련된 놈들에게 바닥 아래 지하실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콰악.
“끄으…!?”
카진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쌍룡궁 여기에 있지?”
“!!”
뜻밖의 이름이었는지 카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그걸 찾으러 왔거든. 어디에 있어?”
“너, 넌 그걸 가져갈 수 없다.”
헛소리를 하는 카진에 주먹을 들자.
“내, 내 도움 없이는 말이다!”
신음과 함께 다급히 말하는 카진에 잠시 주먹을 내려놨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카진이 계속해서 말을 뱉기 시작했다.
“쌍룡궁은 금고에서도 특수한 공간에 들어있다. 정확한 비밀번호 입력과 생체 인식이 없으면 절대 열리지 않지.”
“산 박살 난 거 못 봤어? 부수면 그만이지.”
“그럼 쌍룡궁을 잃게 될 텐데?”
안되지 그건.
마음 속으로 대답하며 조용히 카진을 내려다봤다.
내가 자신을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쌍룡궁을 가지러 왔다는 걸 안 순간.
카진은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빛 말이다.
“원하는 게 뭔데.”
찡그려진 카진의 눈으로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날 살려다오.”
예상하던 대답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애초에 난 쌍룡궁만 손에 넣으면 됐거든. 사이조나 너한테는 관심 없어.”
“날 살려준다는 그 말…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하지?”
“음… 나도 쌍룡궁이 필요하니까 거래에 응하려는 건데 말이야.”
턱을 슥슥 문지르다 카진에게 얼굴을 가져갔다.
“상황 파악은 좀 하자. 내가 빨리 쌍룡궁을 얻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시간을 들일라치면 네놈 없어도 충분히 열 수 있을 거야. 내가 혼자서 이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해?”
뻥카와 함께 손바닥을 펼쳤다.
“10초 센다. 셋 둘 하나.”
면도칼을 입안으로 집어넣자.
“저, 저곳이다!!”
카진이 다급하게 손을 들어 금고의 끝을 가리켰다.
딱 봐도 튼튼해 보이는 금속으로 둘러싸인 장소였다.
콰악.
“끄… 으!”
카진의 머리채를 잡고 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녀석의 말대로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야, 약속은 지키겠지…!?”
“원수라고 해도 약속한 건 지킨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내 신념이다.”
더듬거리는 것 없이 엄근진하게 말하자 날 잠시 쳐다보던 카진이 문에 있는 패드로 손을 뻗었다.
삑삑. 삐리릭 삑.
꼴깍!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빠, 빨리 열어!
얼굴은 평온했지만 입안은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삐릭!
애타는 마음으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여러 절차가 끝나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홀리…!
그토록 보고 싶었던 황금색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의 기억에서 봤던 대로 바다색의 몸체에 두 마리의 용이 그려진 활이었다.
“이제 날….”
콰앙!!!
온 힘을 다해 카진을 금고 한 쪽으로 꽂아 넣은 후.
빛을 뿜어내고 있는 쌍룡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
황금색 빛을 뿜어내는 무기를 마주하는 순간.
지금까지 여러 번 겪은 순간이었지만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벅차오르는 느낌.
툭툭! 샤샥!
최대한 옷을 털고 머리를 슥슥 넘기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후우욱!”
심호흡을 두어 차례 한 후.
스윽.
쌍룡궁으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