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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77화 (277/473)

277화. 거북이에게

이순신의 화살이 쏘아지고 몇 시간이 지난 시점.

레비아탄이 멍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뭐냐 이건.’

눈앞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산산조각이나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부하들.

정확히는 부하였던 것들의 잔해가 주변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인간의 힘이라고…?’

시선을 내린 레비아탄이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서 있는 이순신을 응시했다.

첫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쏘아진 건 단 세 발의 화살이었다.

그리고 그 세 발에 대부분의 부하가 쓸려나간 건 물론이고.

욱씬.

레비아탄의 몸 일부분이 처참하게 뜯겨나간 상태였다.

온몸에 두른 갑주를 믿은 채 제대로 피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위험할 뻔했군.’

레비아탄이 급히 몸을 피한 건 세 발째 화살이 거의 완성되었을 쯤이었다.

앞의 두 발과 비슷한 위력일 거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힘을 담은 건지 몇 배나 강력한 위력을 가진 화살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 콰아아아아아아!

활시위가 완전히 당겨지자 서서히 만들어진 물의 화살.

화살 주위론 바닷물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둘러졌고, 이윽고 쏘아진 화살은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직선상에 놓인 모든 걸 갈아버렸었다.

웬만한 포탄과 공격에는 기스조차 안 나는 레비아탄의 갑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말이다.

“어디서 그런 힘을 손에 넣은 거지?”

레비아탄이 이순신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순신에게 감탄했다거나 존경심이 들어 물은 건 아니었다.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이렇게 작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었는가라는 궁금증.

“어디서 손에 넣었다라… 잘 모르겠구나. 시간이 흐르며 천천히 쌓인 무라서 말이야.”

“제대로 대답해라. 그럼 마지막은 편하게 보내 줄 테니.”

레비아탄의 말에 이순신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정도 상처를 입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거대한 몸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레비아탄은 여전히 건재했으며 건너편에서 물살이 이는 걸 보니 적의 추가 병력이 달려오는 중인 것 같았다.

[괜찮은가?]

현무의 목소리에 이순신이 옅은 미소를 그렸다.

처음 만난 녀석들은 어떻게 정리하긴 했으나 이젠 한계였다.

조금 전 세 발의 활을 쏘아내며 안 그래도 만신창이었던 몸은 피를 쏟고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며, 이순신을 덮치려는 적을 막아주던 현무의 몸 역시 당장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한 발 더 쏠 수 있을지조차 잘 모르겠군. 술식은 어떠한가 벗이여.”

이순신이 바다 아래로 조용히 펼쳐지고 있는 현무의 사슬을 응시했다.

둘 역시 레비아탄과 모든 흉수를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시간을 끌며 현무의 봉인 술식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다 전체를 덮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레비아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뭘 속닥거리는 거지? 대답할 생각이 없다면 이만 죽어라.”

레비아탄이 거대한 발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달빛에 반사되어 붉은빛을 뿜어내는 날카로운 발톱.

‘막아낼 수 있을까.’

이순신이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쌍룡궁을 발사하기 위해선 아직 약간의 회복이 더 필요한 상태.

당장은 검이라도 휘둘러 시간을 벌어야 했다.

“가라앉아라. 현무와 인간이….”

콰앙!!

레비아탄이 발을 휘두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 세례가 레비아탄의 팔을 두들겼다.

“!!”

포탄에 가장 놀란 건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레비아탄이 아니었다.

이순신이 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알고 온 건지 김태수를 포함한 모든 장수가 배를 이끌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

그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던 이순신이 활시위로 손을 가져갔다.

“처음 말했던 대로 난 이곳에서 살아나갈 생각이 없다. 허나.”

쌍룡궁으로 바닷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편하게 죽어 줄 생각 또한 없다.”

“감히 인간 따위가…!!”

이순신이 다시 한 번 쌍룡궁으로 레비아탄을 겨누었다.

“그러니 끝까지 싸워보자꾸나. 흉수여.“

* * *

사락.

아까 들었던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며 주변 배경이 변해갔다.

방이 아니네.

난중일기의 기억에서 돌아온 곳은 방 안이 아니었다.

몸은 이순신이 마지막 전투를 나가기 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절벽으로 옮겨져 있었다.

레비아탄이라.

조금 전 봤던 데몬을 떠올렸다.

이무기와 용 사이를 줄타기 하는 듯하지만 어쨌든 압도적인 위용이 느껴졌던 모습.

헤엄치다가 저딴 걸 만난다면 싸우고 나발이고 심장마비가 먼저 올 것 같았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절벽 끝에 서 있는 이순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싸움의 끝을 보진 못했기에 결말이 궁금했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날 도우러 왔던 이들은 모두 죽었고, 나 역시 힘이 다해 쓰러졌지.”

“그럼 현무도…?”

이순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슬아슬하게 현무의 술식이 완성되며 부상당한 레비아탄과 흉수들을 봉인할 수 있었지.”

이순신이 뒤에서 다소곳이 무릎 꿇고 있는 날 바라봤다.

“현무는 아직도 봉인을 지키고 있을 게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아래서…. 홀로.”

그래서였나.

조용히 이순신의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를 응시했다.

현무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순신의 얼굴은 진한 죄책감으로 물들었었다.

아마도 바다 밑에서 홀로 봉인을 지키고 있는 현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놈들이 풀려나지 않았다는 건 현무도 살아있다는 거겠지.

레비아탄과 그 군대가 이전에 풀려났을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이순신이나 척준경 같은 괴물이 여럿 있지 않은 이상 지금의 한반도는 없었을 테니까.

거기다… 그 면상.

인상을 찌푸리며 난중일기에서 봤던 원균의 얼굴을 떠올렸다.

수염이나 입은 옷이 다르긴 하지만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쌍룡궁을 가지러 왔다고 했었지.”

“네, 넵!”

하고 있던 생각은 일단 집어넣으며 호다닥 고개를 조아렸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순신의 손엔 쌍룡궁이 들려있었다.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그만큼 반작용이 심한 활이라네.”

알고 있다는 의미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 역시 인간을 초월한 몸을 가졌음에도 사용할 때마다 많은 과부하가 걸렸었다.

나 역시 만년삼을 먹으며 강해지긴 했으나 무기를 꺼내지 않았을 땐 여전히 일반인의 몸이라고 봐야 했기에.

이순신보다 과부하가 걸리면 더 걸렸지 덜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나?”

“당연하죠!”

경청의 자세를 보이기 위해 무릎 꿇은 채로 귀를 바싹 가져다 댔다.

“자넨 쌍룡궁으로 무얼 할 생각인가?”

뜻밖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쌍룡궁을 얻는 것 자체가 제 목적이었다 보니 딱히 뭘 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건 없어요. 하지만 당장 하기로 마음먹은 건.”

손을 들어 검지를 세웠다.

“첫째, 거북이 구출하기.”

“….!”

“둘째, 붉은 지렁이 죽이기.”

눈이 커지는 이순신을 바라보며 세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셋째, 호로 새끼 화형시키기.”

앗!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상스러운 말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에 호다닥 고개를 조아렸다.

감히 이순신 장군님 앞에서 상스러운 욕을 하다니 불경죄였다.

“고개를 들게나.”

빼꼼 고개를 들자 내게 걸어오고 있는 이순신이 보였다.

바로 앞까지 왔나 싶더니.

에?

천천히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이순신이 내게 몸을 숙여 보였다.

“자, 장군님?”

당황스러운 상황에 몸이 바싹 굳은 찰나.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나의 왕을 위하여 용맹이 싸울 것임을 맹세하오니.”

이순신이 두 손을 들어 쌍룡궁을 내게 건네왔다.

“나의 왕께 바라옵건대 부디…. 제 벗을 구해주소서.”

나란히 무릎 꿇은 채로 멍하니 내밀어진 쌍룡궁과 이순신을 번갈아 봤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방방 뛰며 오두방정을 떨었겠지만, 지금은 뭐랄까.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스윽.

“거북이 구출.”

조용히 이순신을 바라보다 쌍룡궁으로 손을 뻗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화아아아악!

* * *

다시 돌아온 사이조의 금고.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쉬며 무기고에 깃든 쌍룡궁의 기운을 느꼈다.

아직도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 이순신 장군님이라니!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음에도 쉽게 와 닿지 않는 순간이었다.

무기왕이라서 다행이야!

여운을 느끼며 뽕에 만취해 있는 사이.

끈적.

앗 시발!

발 아래에 닿는 끈적함에 호들짝 놀라며 옆으로 비켜섰다.

공명 직전에 벽에 처박아놓았던 카진을 잠시 깜빡하고 있었다.

툭!

카진을 저 멀리 차낸 후 바깥으로 몸을 돌리며 잠깐 들어갔다 나온 무기고의 하늘을 떠올렸다.

기존에 있던 노란색 달과 푸른색 달.

그리고 쌍룡궁이 추가되며 초록빛을 가진 달이 하나 더 모습을 드러냈었다.

드디어.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변화의 차이는 이제부터 거북이 구출을 하며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

나 혼자 웃으며 나타나서일까.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있던 사이조의 따까리들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전화 줘봐.”

“예… 예!”

전화기를 넘겨받으며 외워뒀던 번호를 눌렀다.

“여기는 하회탈. 작전 완료! 고럼 뒤는 부탁할게!”

간단하게 용건만 전달한 후.

빠악! 빠악!

놈들의 다리에 보다 세심하게 힘 조절한 로우킥을 날렸다.

“끄아아아악!”

당장 죽이진 않아도 도망가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도망가면 찾아내서 죽일 거니까.”

주저앉은 놈들을 뒤로하고 금고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순신은 현무의 힘이 한계에 다다랐을 거라 말했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바다 어딘가에서도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터.

당장 현무와 레비아탄을 제외하고라도 한국 근처 바다에서 데몬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다.

삑삑삑.

연락이 하도 와 강제로 외워졌던 기태랑의 번호.

번호를 입력하고 메시지 한 통을 보내놓았다.

현 상황에 대한 간략한 정리와 바닷가를 주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정도면 됐고.

금고 밖으로 나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순신이 알려주었던 위치를 머릿속으로 새겨 넣었다.

현무가 술식과 함께 가라앉아 있을 바다 아래.

듀공들이 있던 섬과 멀지 않은 장소였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꺼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쌍룡궁을 얻은 이후 하기로 했던 첫 번째 일.

“조금만 버티고 있어, 킹북이.”

날개의 연기를 최대한 모은 후.

“금방 구해 줄 테니까!”

인천 앞바다를 향해 연기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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