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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78화 (278/473)

278화. 용의 포효

“예, 지금 도착했습니다.”

# 상황은 어때?

상황을 묻는 히라이 쇼고에 쿄스케가 금고 입구를 바라봤다.

조금 전 백운에게 온 연락을 받고 도착한 쿄스케.

입구에 도달한지는 꽤 됐으나 쿄스케는 쉽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은… 음.”

쿄스케가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이조의 핵심 전력으로 보이는 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숨이 끊긴 건 물론 신원 확인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진 채로 말이다.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느낌인데…. 지옥 같네요.”

전화 너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지옥인가.

어떤 현장이 펼쳐져 있을지 예상 간다는 목소리였다.

“인원을 데리고 오긴 했는데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지난밤 백운은 쿄스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만약 자신이 사이조의 금고를 찾아내 털게 된다면 나머지 일을 정리해 줄 수 있는지였다.

- 물론이죠.

이에 쿄스케는 백운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었다.

꼭 히메지 성과의 이햬관계가 아니더라도 백운의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도와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

금고 안쪽으로 들어간 쿄스케가 엉망이 된 채 죽어있는 사이조의 회장 카진을 발견했다.

엄청난 재력과 연줄로 정재계를 마음껏 주물렀던 카진.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 절대 잡을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겨졌던 카진이었다.

“사이조의 회장 카진, 사망 확인했습니다.”

# …!

전화기 너머에서도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상 히라이 쇼고가 가장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기도 했다.

# 알겠어. 난 다음 스탭으로 넘어갈 테니까 그쪽은 쿄스케가 잘 정리해줘. 필요한 시간은 내가 알아서 벌어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쿄스케가 전화를 끊자 주변을 정리하던 부하가 테블릿을 가져왔다.

“쿄, 쿄스케 님. 이거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까지 더듬으며 부하가 가져온 테블릿엔 동영상이 재생되어 있었다.

백운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수거한 CCTV 영상이었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었다.

히메지 성 습격 사건 당시에도 들었던 백운의 검격 소리.

하지만 영상에 보이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재생 속도 좀 늦출 수 있나요?”

“예, 예.”

최대한 늦추고 나서야 비로소 눈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사방으로 이동하는 백운의 움직임을 말이다.

아마 현장에 있던 적들은 자기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비명횡사했을 터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쿄스케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검은 폭풍이 순식간에 휩쓸고 간 금고의 입구.

사이조의 전력이 결코 약한 게 아니었다.

그들 입장에선 최악이라 여겨질 정도로 상대가 안 좋았을 뿐이었다.

“음.”

적절한 단어를 찾던 쿄스케가 입을 열었다.

“재앙이겠네요.”

“예…?”

되묻는 부하에게 한 번 웃어 준 후.

쿄스케가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백운은 급한 일이 있는지 날개를 펼친 채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쿄스케가 백운이 도착할 어딘가와.

그곳에서 백운을 상대해야 하는 적을 떠올렸다.

‘머지않아 재앙을 맞이할 적에게.’

쿄스케의 입가로 아찔하다는 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애도를 표합니다.’

* * *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기태랑이 핸드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애는 또 어떻게 안 거지.’

인천에서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온 비광이 상황을 알리던 중.

바다에 인접한 각 지역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엄청난 수의 데몬이 계속 등장해 감당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서울에서 대기 중이던 1급과 2급 헌터들도 해안가로 이동 중이었고 말이다.

‘봉인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들어봐야겠지만.

바다에서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데몬과 연관이 깊어 보였다.

‘일단은 부산부터 간 후에…!?’

번쩍이는 빛에 기태랑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심해!!”

콰아아앙!

해운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갑자기 날아든 무언가가 비행기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번쩍! 번쩍!

한 발이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바다 쪽에서 다시 한번 쏘아지는 수십 발의 포격.

당장 눈엔 안 보이지만 포격은 바닷속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조종사들 잘 챙겨!”

“예!”

남은 헌터들에게 비행기를 맡긴 기태랑이 해운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쾅! 쾅! 쾅!

날아드는 포격을 최대한 박살 낸 후.

쐐에에에에엑--!

포격이 쏘아지던 바다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쩌어어엉!

한차례 굉음이 들린 후.

커다란 데몬의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디서 이딴 게.’

시체 위에 선 기태랑이 미간을 찌푸렸다.

크기도 크기지만 공중 공격까지 가능한 위험한 데몬.

대충 봐도 A급은 될듯한 녀석이었다.

꾸루루룩.

“…?”

바다를 둘러보고 있기를 잠시.

근처에서 파도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데몬 시체 주변으로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허.”

물을 헤치며 등장한 건 엄청난 수의 데몬이었다.

조금 전 박살 낸 놈과 비슷한 등급이거나 그 이상으로 보이는 녀석들.

하나같이 평소에 발견됐다면 그 지역에 비상이 걸렸을 놈들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거 같긴 하군.”

봉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인천 앞바다를 지목했던 백운.

부산을 빠르게 확인한 후 인천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득실거리는 놈들을 보니 빠르게 가긴 그른 것 같았다.

“뭐 그쪽은 알아서 잘할 테니.”

뚜둑.

기태랑이 몸을 풀며 모습을 드러낸 데몬 군대를 노려봤다.

“청소부터 해볼까.”

* * *

콰앙! 콰앙!

등으로 쏟아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현무가 바닥으로 무게를 실었다.

“독하구나.”

그런 현무를 보며 레비아탄이 조소를 지었다.

봉인이 어느 정도 헐렁해지기 무섭게 레비아탄은 곧장 포효를 내질렀었다.

자신을 찾고 있을 부하들에게 위치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콰앙!

얼마 지나지 않아 포효를 들은 부하들이 찾아왔고.

레비아탄을 풀어주기 위해 현무에게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 덕에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되는 속도로 술식이 깨져 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네놈도 알 텐데 과거 전투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걸. 그땐 날 봉인하며 네가 승리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윽.

아무 말도 없이 견뎌내는 현무에 레비아탄이 몸을 내밀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때 봉인을 도왔던 네 친구는 이제 존재하지 않으니까. 싸늘한 시체가 된 놈이 갑자기 나타나 널 도울 리는 없지 않은가?”

“난 한 번도 승리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힘겨운 현무의 대답에 레비아탄이 미소를 그렸다.

“양심은 있군. 시간이 늦춰졌을 뿐 결국에 승리하는 건 나일 테니까. 헌데 그걸 아는 놈이 이렇게 버티는 건가? 어째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에 고집을 부리는 거냐. 버틴다고 상황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는 거냐?”

현무가 힘없는 눈으로 레비아탄을 응시했다.

뭐라고 딱히 대답하진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필사적으로 버텨내고 있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현무 역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게 퇴색돼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무가 버티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게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 미안하군.

도우러 왔던 모든 이가 죽고.

모든 힘을 담아 쏜 화살을 마지막으로 이순신의 몸 또한 무너져 내렸었다.

술식을 완성해 레비아탄을 묶고 있는 현무의 곁에서 숨이 잦아들었던 이순신.

이순신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현무에게 홀로 책임을 지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었다.

마지막에 쏘아낸 화살로 레비아탄을 봉인 가능하게 만들었으면서도 말이다.

- 분명…. 나타날 거라네.

이순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현무는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었다.

영웅이 나타날 그 언젠가까지 봉인을 어떻게든 지켜내겠노라고.

이것은 현무 스스로에 대한 각오이자 목숨을 바쳐 싸웠던 벗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것이었다.

카아앙!

‘…!’

현무에게 얼마나 많은 공격이 쏟아진 걸까.

억누르고 있던 사슬이 사라지며 레비아탄의 몸에 자유가 찾아왔다.

“드디어!!”

쑤우우우욱!

캄캄한 심해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레비아탄이 바다 위로 솟구쳤다.

‘안돼.’

어떻게든 레비아탄을 잡아보려 했으나 무리였다.

현무에겐 사슬을 유지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건 물론, 한 발자국 내디딜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끌어 올려라!”

신이 난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드드드득!

심해에 가라앉아 있던 현무의 몸이 수면으로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바다 아래가 아닌 위에서 마무리 지을 생각인 것 같았다.

쿠아아…!

레비아탄과 데몬들에게 얼마나 끌려갔을까.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수백 년 만에 맞이한 공기가 현무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

죽음을 목전에 둔 현무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레비아탄과 데몬들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푸른 바다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려는 것이었다.

‘미안하구나. 벗이여.’

현무의 눈으로 슬픈 빛이 어렸다.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고 싶었지만, 이젠 한계였다.

“곱게 죽진 못할 거다.”

승리를 확신하는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조금씩 현무 주변으로 모여드는 데몬들.

“죽인 후에도 네놈을 잘게 쪼개어 마지막 살점 하나까지 씹어 먹을 것이다. 지옥에 있을 네놈의 친구가 못 알아볼 정도로 말이야.”

레비아탄이 뭐라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영웅이여. 어딘가에 있다면.’

현무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이곳을 구원해 주소서.’

“죽어….”

레비아탄의 외침이 울리려는 찰나.

“성난 바다의 분노는 나의 화살 끝에 모여들지어니.”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에 레비아탄과 데몬들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스아아아….!

잔잔하던 바다가 하늘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구름을 지나 더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이건…!’

바닷물을 보며 레비아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분명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분노는 모든 걸 분쇄하는 태풍이 되어.”

“설마…!”

“적을 쓸어버리리라.”

솟구치던 바닷물이 멈추나 싶더니.

“용의 포효.”

마지막 읊조림과 함께.

하늘에서 엄청난 크기의 태풍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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