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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80화 (280/473)

280화. 다행이네

해가 뜨기까진 많은 시간이 남은 시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던 바다로 눈 부신 빛이 번져나갔다.

푸화아아아아악!

엄청난 열기를 가진 불꽃의 빛.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되어 점점 덩치를 키워가던 불꽃은 어느새 바다 위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

고개를 든 현무가 멍한 얼굴로 하늘을 응시했다.

불꽃이 터진 건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구름 위였다.

그럼에도 불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선명히 느껴지는 열기.

직접 닿아본 적은 없으나 이 열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게 뭐가 됐든 불꽃이 사그라진 이후에 남는 건 잿가루뿐일 거란 사실을 말이다.

“영웅…이라.”

현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검은 연기의 날개와 함께 갑작스럽게 등장한 남자, 백운.

이순신이 나타날 거라 말했던 사람임은 틀림없었으나 단순히 영웅이란 단어 하나로 표현이 가능한 존재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 스아아아아…!

백운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는 와중에도 현무는 분명히 느꼈었다.

검은 연기에서 선명하게 뿜어지는 엄청난 불길함을 말이다.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현무임에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이질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동류의 느낌이 나기도 하는 묘한 기운.

백운은 이런 기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쌍룡궁으로 연사라니.’

이해되지 않는 건 날개의 기운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을 한참 초월한 이순신조차 발사에 제한이 컸던 쌍룡궁이었다.

그만큼 위력이 엄청났고 인간이 다루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무기였다.

하지만 백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쌍룡궁으로 수십 발의 화살을 쏘아냈었다.

마치 쌍룡궁의 원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게 아니더라도 쌍룡궁보다 훨씬 상위의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꽃에 현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불이 발생할만한 매개체가 전혀 없었음에도 백운의 몸에서 터져 나왔던 불꽃.

앞의 두 개와 마찬가지로 저 불꽃 역시 인간의 범주를 한참 뛰어넘어 있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현무는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불꽃을 목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불꽃을 보며 이것보다 강한 불은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했었는데.

지금 눈앞의 불꽃을 보고 있자니 오랫동안 의심치 않았던 확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아아.

현무가 몸을 채워오는 압도감을 느끼며.

‘영웅이여. 그대는 대체.’

불꽃 한가운데에 있을 백운을 응시했다.

‘누구인가.’

* * *

불꽃을 뿜어내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부터 손에선 레비아탄의 감각이 완벽하게 지워져 있었다.

불꽃이 뿜어진 순간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하얀 잿가루가 되어 날아간 것이었다.

스윽.

여전히 뿜어지고 불꽃과 함께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레비아탄의 갑주가 박살 난 덕분인지 불꽃 사이사이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원수 지렁이도 컽 했고, 킹북님도 살았고.

고통스러운 부상을 안고 있던 이순신을 떠올렸다.

이젠 내 세계에서만이라도 마음 편히 지내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고개를 내려 불에 휘감아져 있는 몸을 바라봤다.

솔직히 문양을 새기는 순간까지도 살짝 쫄았었다.

라의 문양을 얻은 뒤 단 한 번도 유탈라스가 없이는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혹시나 불꽃을 뿜는 순간 너무 아파서 쇼크사하는 건 아닐지 걱정됐었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네.

물론 괜한 기우라는 걸 금방 깨달았었다.

불꽃이 터지는 순간 몸을 감싼 건 작열 통 같은 끔찍한 고통이 아니었다.

따듯하고 포근해 엄청난 안정감이 느껴지는 감각.

불꽃과 내 몸이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었다.

사르르….

뿜어낼 수 있는 불꽃을 다 소진해서일까.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며 몸에 새겨졌던 문양이 흐릿해졌다.

문양이 쿨타임으로 들어가나 보….

후우웅!

응?

갑자기 추락하는 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의 문양과 함께 깔끔하게 사라져버린 칼데아 윙.

듀얼로 쿨타임 있는 무기를 섞어 쓰는 게 오랜만이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쿨타임이 없는 무기라도 다른 쪽을 따라 쏙 들어가 버린다는 것을.

“기아아아아악!!”

빠르게 추락하며 가까워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현무에게 피해를 줄까 상당히 높이까지 올라온 상황.

열심히 떨어지다 보니 없던 고소공포증까지 생겨날 것 같았다.

돌산에서 갈고 닦은 프리다이빙!

곧장 두 손을 모아 입수 자세를 취했지만.

강에 시도 때도 없이 퐁당퐁당 뛰어들던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갸우뚱거리고.

파앙!!

그대로 몸이 가로로 누워진 상태에서 수면에 도달해버렸다.

처음 닿은 옆구리부터 엄청난 찌릿함이 느껴졌다.

[괜찮은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엄살을 멈추고 호다닥 고개를 들었다.

현무는 어느새 바로 앞까지 헤엄쳐 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네 하하! 이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수리검을 꺼내 던졌으면 되었을 텐데.

스스로의 쓰레기 같은 순간판단력을 욕하며 현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였다.

아 맞다.

하도 나약한 존재라 깜빡하고 있던 놈들을 돌아봤다.

덤벼들진 않고 어느 정도 거리만 유지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데몬 녀석들.

아까 한바탕 쓸어버렸는데도 다시 쌓인 숫자를 보니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먹었구나.]

조용히 말하는 현무를 쳐다봤다.

[두려워하고 있다네. 자신들의 절대적인 지배자였던 레비아탄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 자네를 말이야.]

“감은 좋네요.”

물론 감이 좋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꼭꼭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면 모를까.

눈에 띈 이상 살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자 그럼.

미소를 지으며 리볼버를 떠올렸다.

원거리에서 한 번에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5월의 난초가 허공으로 흩어져 적을 찢을 터이니.”

“응?”

리볼버를 꺼내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5땡이란 읊조림과 함께 데몬 군대가 있던 위치로 파란색 꽃잎이 펼쳐졌다.

대충 봐도 수천 장이 넘어 보이는 꽃잎.

꽃잎은 순식간에 데몬 군대를 덮치며 흩뿌려지는 중이었다.

콰드드드득!

오, 오우.

예쁜 꽃잎이네 라고 생각했는데.

데몬을 연한 고기마냥 뚫어버리는 걸 보니 강철로 만든 꽃잎 갚았다.

아니면 눈싸움할 때 눈에 돌멩이를 넣듯이 꽃잎 속에 강철이 섞여 있던가 말이다.

콰득! 콰지지직!

이후 몇 번의 기술이 더 펼쳐지자 눈앞에 있던 데몬들이 순식간에 분쇄되어버렸다.

리볼버를 꺼낼 필요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바다.

사방에 데몬 조각과 피가 번져 있어 깔끔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촤아아아!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흩어진 데몬 시체를 가르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은색 갈치 정장.

보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지는 복장이었지만 이젠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듯했다.

뭐 타고 있는 거지.

비광은 스노우보드 같은 걸 타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동력을 가진 건지 별다른 동작을 안 취했음에도 보드는 알아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비광은 그 위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껄렁껄렁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사탕을 물고 있었다.

왜 간지나지.

은갈치 정장은 분명한 마이너스 요소였으나.

묘하게 양아치스러운 멋있음을 가진 비광이었다.

중학교 2학년 질풍노도의 시기에 우상으로 삼곤 하는 스타일 그 자체.

“야 백운. 너 여기서 뭐…. 허억!!”

비광의 입이 벌려지며 물고 있던 사탕이 떨어져 내렸다.

비광이 살짝 흔들리는 손으로 현무를 가리켰다.

어두운 탓에 못 보다가 이제야 발견한 모양이었다.

“삿대질 멈춰!!”

호다닥 헤엄쳐 가 비광의 손을 끌어내린 후.

“무려 수호신 중 한 명인 현무 님이시라고요.”

비광의 귀에 대고 킹북이의 정체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혀, 현무? 그 주작 백호 청룡 현무?”

“앞에는 세 개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현무예요.”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리는 비광을 확인하고.

다시 헤엄쳐 현무 옆으로 다가간 후.

“옥체는 괜찮으십니까! 현무 님!”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사방신 현무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 * *

‘현무라고…?’

비광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말도 안 되게 큰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런 신기한 생김새의 거북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벌어지고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존재였다.

사삭! 사삭! 기웃기웃!

비광이 시선을 내려 현무에게 찝쩍대고 있는 백운을 쳐다봤다.

할 말을 더 잃게 만드는 인간, 백운.

대체 무슨 일을 겪으며 살아왔기에 현무 같은 존재한테도 저리 알랑바귀를 뀌며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건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윽.

비광이 주변에 떠올라 있는 엄청난 양의 데몬 시체를 둘러봤다.

조금 전 자기가 조각낸 놈들은 원래 떠 있던 숫자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아까 그 태풍으로 한 건가.’

원래 다른 곳에 있던 비광이 여기로 향한 이유였다.

- 바다 한가운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태풍이 감지됐습니다! 순간 생겨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신나게 데몬을 때려잡고 있을 때 다급한 보고가 들려왔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강력한 태풍이 쉴 새 없이 감지되고 있단 것이었다.

‘데몬 짓인 줄 알았더만.’

보고를 받고 오면서 비광은 하늘에서 쏘아지는 엄청난 물의 소용돌이를 목격했었다.

아마도 기상청에서 감지한 이상 기후의 정체일 거라 생각했었고 말이다.

촤륵.

비광이 오는 길에 준비했던 화투패를 품으로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투를 준비했었다.

하늘에서 쏘아지는 태풍의 포격을 보니 최소 S급일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돌산에서 내려갈 때랑은 비교가 안 되네.’

비광이 하늘로 치솟았던 거대 데몬을 떠올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로 붉은색 갑주를 둘렀던 데몬.

최소 몇 톤은 가볍게 넘길 듯한 녀석을 백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로 끌고 올라갔었다.

이후엔 엄청난 불꽃으로 태워버렸고 말이다.

“흐음.”

비광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현무에게 기웃거리고 있는 백운을 바라봤다.

“여기 좀 주무를까요!? 아니면 목을 주무… 아 목이 없으신가! 그럼 머리라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감이 오지 않았다.

태풍부터 불꽃까지.

입이 벌어지는 막강한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백운.

그런 백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아찔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 같은 편이라.’

비광의 입가로 난처한 미소가 그려졌다.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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