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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83화 (283/473)

283화. 폭발쇼

더럽게 깊네.

액션캠을 켜고 모랑이 알려준 지점으로 잠수하길 한참.

꽤 내려온 것 같은데도 좀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시, 심해공포증 도지겠네.

이젠 빛도 닿지 않는 깊이까지 내려온 모양이었다.

눈에 뵈는 거 하나 없이 아주 깜깜한 바닷속.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거대 상어라도 튀어나오면 바로 심장마비 확정이었다.

그냥 올라갈 수도 없고.

혼자 내려가고 있지만 난 지금 혼자라 볼 수 없었다.

액션캠을 켜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라이브 시청자 수가 미친 듯이 불어났었다.

아침에 터진 송유빈의 기사 덕에 해신이나 이수천이란 단어만 달려도 일단 들어오고 보는 느낌이었다.

@ 무기왕 짭인가요? 마스크 유행하니까 아무나 다 끼네.

@ 그래도 어그로는 제대로 끄네요. 사건 터진 날에 매국노 상대로 하회탈이라니.

@ 잠수하는 노력이 가상해서 일단 봐주겠음.

잠수하는 중에 흘끔흘끔 채팅창을 살폈다.

시청자 수가 천 명이 넘어간 후부터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한 채팅 스크롤.

대충 봤을 때 사람들은 날 오늘 이슈를 이용한 어그로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런데 언제까지 내려가기만 함? 캄캄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보이네. 이러다 잠들듯.

@ 그러게요. 슬슬 졸리려고 하네요. 5분 기다려보고 나갑니다.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답군.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속도를 올렸다.

이제 얼추 모랑이 이야기한 지점에 도달했을 터였다.

탁.

드디어 도달한 바닥에 들고 있던 야광봉을 꺾어 주변을 비추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거대한 암초들뿐이었지만.

- 암초 뒤로 돌아가면 작은 입구가 있슴다!

듀린이 모랑의 말을 따라 천천히 암초를 끼고 걸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작은 암벽 터널.

딱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이었다.

아주 그냥 야물딱지게 숨겨놨구만.

인간이길 포기한 것과 나라 팔아먹기, 양심 소멸 등등등등등을 제외하면 연기부터 은폐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이수천이었다.

@ 어? 뭐야 저게.

@ ??? 바닷속에 웬 원형 건물?

@ 주작하려고 건물까지 지었다고?

터널을 따라 들어가자 모랑이 말했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채팅창에서도 진짜 건물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 이거 진짜 이수천 비밀 금고 아니야? 해신이랑 이수천도 그렇게 잡아떼더니 결국 매국노였잖아.

@ 하회탈 뭐냐? 어그로꾼이 아니라 찐이었나?

액션캠을 켠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라이브 방송 타이틀에 대문짝하게걸어놓은 상태였다.

# 해신 회장 이수천의 비밀 금고 폭발쇼.

지금까지 팔아먹은 유물로 모은 거란 짤막한 설명도 붙여놓은 상태.

덕분에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 방송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붙여볼까.

카메라를 금고가 잘 보이도록 암초 사이에 고정한 뒤.

꾸러미에서 폭탄을 꺼내 금고 이곳저곳에 붙여나갔다.

신나는구만.

상대가 이수천이어서겠지만.

폭탄 붙이는 게 이렇게 신날 줄은 몰랐었다.

바닷속만 아니었으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착.

오케이!

마지막 폭탄까지 예쁘게 장착하고 카메라 앞으로 헤엄쳐갔다.

이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천이가 모아온 모든 게 사라질 예정이었다.

“….”

카메라로 기폭 버튼을 내밀었다.

@ 뭐야 저거? 폭탄인가?

@ 에이 무슨 폭탄이 애들 장난감인가. 폭탄 그렇게 쉽게 못 구함.

채팅창이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채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고 있니. 수천이 요 다람쥐 같은 새끼.

방송을 시작하고 시간이 꽤 흐른 시점이었다.

이미 해신의 귀로 흘러가고도 남았을 시간이니 이수천도 분명 이 방송을 보고 있을 터였다.

채팅에 올라온 것처럼 단순한 어그로꾼이길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다음에 태어나거든 꼭 분산투자하려무나.

볼따구 하나에 다 우겨 쳐넣지 말고.

천천히 위로 떠올라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며.

꾸욱.

들고 있던 기폭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 * *

# 퍼어어어어어엉!!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라이브가 끊어지고.

CBC 방송국 안으로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어… 지, 진짜 터뜨린 거야?”

말을 잃은 채 입을 틀어막고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 팀장 조영천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지, 진짠 거 같은데요.”

합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리얼했다.

애초에 그런 걸 할 시간조차 없었고 말이다.

“그럼 하회탈은… 죽은 건가요?”

누군가의 말에 조영천이 마른침을 삼켰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건지 하회탈이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폭발이 일어났었다.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꼼짝없이 폭발에 휘말렸을 터.

도망칠 곳 없는 심해에서 터진 만큼 하회탈이 살아남았을 확률은 몹시 희박했다.

“팀장님! 인천 쪽에서 연락 왔습니다! 하회탈이 방송 시작한 지점 수면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잔뜩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씨 진짜잖아! 일단 빨리 헬기 띄워! 국장님께는 내가 보고 드릴 테니까!”

“예!”

조영천의 지시에 따라 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멍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서 있는 송유빈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회탈?’

여러 능력자들에 관해 빠삭한 송유빈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야말로 뜬금없는 타이밍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것이었다.

‘설마.’

조금 전 방송이 단순한 뻥카가 아닌 진짜였다는 걸 깨닫자.

송유빈의 머리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제 자료를 건네주고 떠난 백운이었다.

대산의 VVIP인 걸 감안하더라도 손에 넣는 게 불가능한 자료를 한 보따리 싸들고 왔던 백운.

저런 말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금고를 찾아낼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은 백운 뿐이었다.

꿀꺽.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송유빈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아직 하회탈과 백운이 동일인물이란 건 확실치 않았지만, 만약 동일인물이라면.

‘주, 죽었다고…?’

폭발에 휘말려든 건 백운이란 이야기였다.

근처에 있었다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폭발.

비틀.

송유빈이 이마를 짚으며 의자로 몸을 앉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만난 건 단 두 번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던 백운.

그래서인지 두 눈으로 폭발을 봤음에도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송! 빨리 준비 안 하고 뭐해!”

조영천의 외침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송유빈이 몸을 일으켰다.

힘이 풀려 다리가 떨렸으나 지금은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백운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건네주고 간 자료.

지금은 일단 자료가 헛되지 않도록 매듭을 지어야 했다.

‘부디.’

송유빈이 입술을 깨물며 간절히 바랐다.

‘같은 사람이 아니길…!’

* * *

“휴우.”

물기를 닦으며 저 멀리 바다로 떠오르는 반짝이들을 바라봤다.

어지간히도 많이 모아놓은 모양이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잔해의 양을 보면 말이다.

“원래라면 보석엔 죄가 없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육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번엔 주인이 워낙 더러워서 유죄야.”

앞으로 손을 뻗으며 수리검을 해제했다.

잠수하기 전에 혹시나 숨이 부족할까 적당한 곳에 수리검을 꺼내놨었다.

그리고 꺼내놓은 수리검을 이용해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비전으로 탈출까지.

내가 생각해도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똑똑해져서 큰일이네. 그야말로 그레이트 이스케이프구먼!”

스스로의 완벽함에 취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도착한 육지.

“진짜 미친놈인가.”

에?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보석도 아니면서 강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은갈치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비광 님.”

“기껏 구해준 폭탄으로 이수천 회장 금고를 날려?”

주륵.

등 뒤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보드로 도착했던 곳 말고 다른 육지로 갈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것도 생방송을 해?”

차분한 듯하면서도 약간 목소리가 상기된 걸 보니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주머니가 불룩한 걸 보니 근처 카지노에서 카드를 치다가 호다닥 달려온 듯했고 말이다.

저벅.

더 이상 안 다가가고 물에 동동 떠 있자.

비광이 물로 들어와 내게 다가왔다.

“선글라스 어디 갔나 했더니.”

앗.

깜빡했던 이마 위의 선글라스를 호다닥 치운 사이.

가까워진 비광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제 한바탕 쌍욕이 쏟아질 터였다.

“그거 줄 테니까 내가 폭탄 구해준 거 기태랑이랑 영감한테는 비밀로 해라.”

“에?”

쌍욕을 퍼부으려는 건가 했는데.

비광은 내 어깨를 툭툭치며 헌터청엔 꼭 비밀로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신신당부했다.

욕하려고 호다닥 온 게 아니라 입막음하려고 온 것이었다.

“욕하실 줄 알았는데…?”

“내가? 너를?”

내가 왜? 라는 표정을 지으며 비광이 어깨를 으쓱였다.

“백 번 날아가도 부족한 새끼 꺼 날린 건데 내가 왜 욕을 해? 칭찬은 못 해줄망정. 잘했어.”

잠시 잊고 있었다.

1급 헌터에 유명인이면서도 취미라는 핑계로 매일 도박을 다니는 비광.

헌터가 아니었다면 필시 양아치 혹은 건달이 되었을 비광은 규율이나 법에서 몹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란 것을 말이다.

“알면 난리 칠 거거든. 1급 헌터 선배인 놈이 말리긴커녕 폭탄이나 구해준다고.”

한숨을 푹 내쉬는가 싶더니.

“그나저나.”

비광의 입가로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수천 회장은 지금 어떤 얼굴일지 궁금하네.”

“아마도.”

그런 비광을 보며 덩달아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엄청 좋아하면서 방방 뛰고 있지 않을까요?”

* * *

“이런 개자식이!!”

와장창! 쾅! 쾅! 쨍!

뒷좌석에 있던 테이블을 뒤엎은 이수천이 술병으로 창문을 두들겼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렸는지 놓여 있던 노트북까지 다 때려 부수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수천.

“후우욱…! 후욱!!”

이수천이 분노 가득한 호흡을 뱉어냈다.

진정하려고 심호흡한 건 아니었다.

지금은 아무리 많은 심호흡을 하고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진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이렇게 억지로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질식사할 것 같았다.

- 퍼어어어엉!!

바다로 흩어졌을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며 이수천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게 하회탈이란 한 놈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되어버리다니.

분명 하회탈은 폭발에 휘말려 죽었겠지만 이것만으론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야! 저번에 의뢰하라던 거 어떻게 됐어?!”

분노한 이수천에 고개를 숙인 진강현이 입을 열었다.

“내, 내일 아침이면 연락이 올 겁니다! 오늘 안으로 실행될 테고요.”

대답을 들은 이수천이 씩씩거리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많은 걸 잃은 만큼 이대로 한국을 떠날 순 없었다.

하회탈은 죽었을 테니 남은 건 한 명.

예전부터 거슬렸던 눈엣가시를 깔끔히 제거하고 건너가야 그나마 분을 삯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연락해서 전해.”

까드득!

눈가의 핏줄을 잔뜩 세우며.

분노에 집어 삼켜진 이수천이 입을 열었다.

“최대한 끔찍하게 죽여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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