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유물 반환
짹짹짹짹!
귓가로 들려오는 새의 지저귐에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은 우리 집 천장.
집시 뺨 후릴 정도로 떠돌아다니며 자다 보니 발생한 현상이었다.
“잘 잤구먼.”
입맛을 다시며 눈을 비볐다.
일본에서 쿄스케와 만두 한 사바리를 한 후 집으로 복귀했었다.
복귀하고 샤워하자마자 곯아떨어진 건 물론이었고 말이다.
“별거 안 했는데 이상하게 졸렸네. 그래도 별로 안 잤나 보…?”
암막 커튼을 거두자 노을 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며, 몇 시간을 잔 거야!!
새가 지저귀길래 당연히 이른 아침이려니 했었는데.
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찌릿!
저 멀리 지저귀고 있는 새를 노려봤다.
괜히 소리 내서 아침부… 아니지, 늦은 오후부터 사람을 헷갈리게 하다니.
저벅.
침대 옆으로 가 노트북을 켰다.
사실 일찍 일어나나 늦게 일어나나 별 상관이 없긴 했다.
딱히 내게 연락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응?
오늘은 왠지 모를 마가 제대로 낀 탓일까.
모든 게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톡에 시뻘겋게 찍혀 있는 300+란 숫자.
어디 단체방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니 딱히 이렇게 많은 톡이 올 이유가 없을 텐데.
몹시 불안하군.
조심스럽게 클릭하자 내게 톡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주루룩 나타났다.
최근에 봤던 기태랑과 비광, 전수희를 시작으로 오랜만에 보는 이름인 유연경과 배이슬까지.
내가 무기왕인 걸 아는 이들 중 톡을 보낼만한 사람들이 죄다 보낸 것이었다.
뭐, 뭐야.
이마 옆으로 살짝 땀이 흘렀다.
혹시 어제 원균을 슥삭해버린 걸 들킨 걸까 하고 말이다.
꾸욱.
제일 먼저 유연경과 배이슬의 톡을 열어봤다.
# 백운 님 대박…! 뉴스 봤어요!
# 진짜 대단하세요. 지금까지 아무도 못했던 일을 해내신 거예요!
다행히 원균과는 관련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잘한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먼지로 만든 일에 이런 반응을 보일 두 사람이 아니었다.
뉴스라니.
뉴스란 말에 호다닥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딱히 무기왕이란 이름으로 한 게 없다 보니 감이 안 잡히는 중이었다.
에?
감이 안 잡혀 긴가민가한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인터넷을 켜자마자 크게 보이는 탑픽 기사.
기사의 헤드라인엔 무기왕이란 단어가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었다.
#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대한민국 헌터, 무기왕이 해내다!
한 개가 아니었다.
창 전체로 무기왕이란 단어가 가득 도배되어있었다.
# 무기왕, 그는 대체 누구길래 이런 일을 쉬지 않고 해내는 걸까!?
# 1급 헌터가 되자마자 이런 업적이라니! 그의 행보는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스읍.”
손으로 입을 한 번 훑은 뒤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유물을 돌려줬구나.
온갖 미사여구가 적혀 있었으나 핵심 내용은 일본의 유물 반환이었다.
투구가 있었던 보관소는 물론 이번에 사이조가 가지고 있던 이순신 장군에 관한 유물까지 모조리 돌려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화, 화끈한데.
심지어 돌려주겠다고 말만 한 게 아니었다.
의사를 밝히기 무섭게 오늘 새벽 부산항으로 유물을 실은 일본의 배들이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 갑작스러운 반환에 이유를 묻자 일본 정부에선 아래와 같이 공식적인 답변을 해왔다.
# “일본을 구해 준 무기왕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함.”이라고 말이다.
머선 일이고!
뒤로 젖혀 의자에 몸을 묻었다.
유물 반환을 검토해보겠다고 료코에게 듣긴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런 이유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돌려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이래서 난리가 난 거였구만.”
사이조의 유물까지 포함된 걸 보면 료코와 쿄스케 사이에 무언가 이야기가 오갔을 터.
료코도 하회탈이 나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잘 숨겨 준 것이었다.
“….”
잠시 실감나지 않는 상황에 턱을 슥슥 비비며.
아직 눌러보지 못한 기태랑과 비광의 톡을 바라봤다.
가장 많은 개수가 쌓여 있어서인지, 아니면 보낸 이의 무게감 때문인지 묘하게 손이 가지 않는 톡에.
탁.
노트북을 덮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나중에 보자.
* * *
“일부러 안 보는 거겠지?”
폰을 내려놓는 기태랑에 비광이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한 거 아니야? 이렇게 우수수 보냈는데 안 보면 뻔한 거지.”
비광도 폰을 툭 던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혜를 모르는 놈이구만 이거. 폭탄 구해다 줬더니.”
“뭘 구해다 줘?”
동시에 되물어오는 기태랑과 강태황에 비광이 아차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니 인천 앞바다에 멍하니 떠 있는 거 구해다 줬다고. 헤엄쳐 오게 놔뒀어야 하는데 말이야.”
눈을 피하는 비광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강태황이.
쉬지 않고 울려대는 핸드폰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에서도 아주 난리군.”
강태황이 연락을 안 받는 백운을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었다.
오늘 새벽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각 부처와 청와대의 연락을 강태황 역시 고스란히 무시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거 그렇게 무시하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대통령 연락인데.”
“대통령 연락 아니야. 대통령 부하 연락이지. 대통령 연락이었으면 받았지.”
“그게 그거죠. 대통령 부하가 심심해서 전화했을까.”
비광의 다음 말을 무시하며 강태황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찌 됐든 지금은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끌려가서 심문 받는 거 아니에요?”
농담 섞인 말에 강태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어차피 헌터청은 정부와 완전히 독립된 기관이니까. 서로의 권한을 절대로 침범할 수 없지.”
“이렇게 막 나갈 줄 알았으면 청와대에서 동의 안 해줬을 텐데 말이죠.”
“와하하하하하하! 이제 와서 어쩔 거야! 쳐들어와서 뒤집을 거야 뭐야. 안 그래?”
“완전 깡패구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비광을 뒤로 하고.
“그나저나.”
등을 기댄 강태황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진짜 혀가 내둘러지는구만.”
강태황이 뉴스가 흘러나오는 TV로 눈을 돌렸다.
모든 뉴스에선 일본의 유물 반환에 관련된 내용을 끝도 없이 내보내는 중이었다.
“이렇게 일방적인 외교 성과라니. 태어나서 처음이군.”
강태황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은 단순히 유물만 받아낸 게 아니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유물을 내줬다는 건 지금까지 엮여 있던 복잡한 역사 관련 문제에서도 고개를 숙이겠다는 걸 의미했다.
실물인 유물이 손을 떠난 만큼 앞으로 더 불리해지는 상황까지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오랜 시간 그토록 싸워오면서도 조금의 성과조차 거두지 못했던 걸 무기왕 혼자 한 방에 뒤엎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연락을 못 받겠단 말이지.”
강태황이 열심히 울려대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이번엔 단순히 어물쩍거리며 물러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부에선 이 엄청난 성과에 기뻐하면서도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번엔 정치적인 문제까지 엮였으니 어떻게든 무기왕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할 터였다.
“알려주실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못 받는 거지. 헌터청 보안이야 내가 책임진다지만, 청와대는 완전 다른 기관이니까. 언제 어디서 정보가 샐지 알 수 없어.”
“뭐 정보가 샌다 해도 그놈을 어떻게 알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안전에 문제는 없겠으나.”
“본인이 원하지 않잖아. 나중에 무기왕이란 가면을 쓰고 유물을 훔치게 되면 백운이란 이름은 안전해야 한다고.”
“….”
장관실로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언젠가 찾아올 그 날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우우우우웅.
발신인을 확인한 강태황이 미소와 함께 손을 뻗었다.
“대통령이네. 이건 받아야겠다.”
전화를 받으며 일어서는 강태황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인 기태랑과 비광이 노트북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선 TV완 또 다른 구경거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 * *
# 오오오오오오오이이이이! 뭐냐구 이거!!
# 다 보셨나요? 이게 무기왕 클라스입니다!
# 무기왕이 무슨 재주로 유물을 돌려 받냐고 까던 놈들 다 어디 감?
몇 줄의 댓글이 올라온 후.
지난번 무기왕이 유물을 못 돌려받을 거라고 말했던 네임드 유저가 등장했다.
# 그때 당시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사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했잖아요?
# 입 닥쳐 이 매국노야!
# 우린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
# 우리까지 매국노로 몰아갈 셈인가!? 이 이완용 같은 자식!
# 아니 매국노라니 지금…
# 입 다물어! 누가 매국노 아니랄까봐 뱀 같은 혓바닥 놀리는 거 보소 저거!
# 앞에 있었으면 바로 뒤통수 갈겨버렸을 텐데 아쉽다 증말!
흐뭇.
올라오는 댓글을 보며 송유빈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송송이란 닉네임으로 무언가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오늘 올라온 뉴스 덕에 무기왕을 욕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매국노가 되는 아주 흡족스러운 프로세스가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보기 좋구만.”
지금 매몰차게 까이며 탈주한 네임드 유저는 몇 번인가 송송과도 싸운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현실적이란 이유로 무기왕에 관해선 매사에 비관적이던 사람.
그런 사람이 호다닥 도망가는 걸 보니 미소가 지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딜 감히 어!? 깔 사람이 없어서 무기왕을 어! 짜식이 말이야.”
콧방귀를 뿜어낸 송유빈이 의자로 몸을 기댔다.
“그건 그렇고.”
충분한 흡족함을 느낀 송유빈이 손에 든 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이순신 장군님의 유물이라.”
오늘 부산항에 도착한 유물의 양은 엄청났지만.
일본에선 지금까지 유물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관해 정확히 밝히지 않았었다.
단지 정부에서 회수가 가능하게 되어 반환하다고만 알려온 것이었다.
“이수천이 팔아먹었던 것도 꽤 있단 말이지.”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으나 몇몇 정보통을 통해 들었었다.
1억짜리 전시회에 있었던 유물들도 반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럼 이수천이 팔아먹었던 조직인 사이조 것도 회수했다는 건데.”
송유빈이 콧등과 입술 사이에 펜을 끼우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기왕이 남 모르게 또 사이조를 박살 낸 걸 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렇게 생각하기엔 이수천의 금고를 제대로 날려버린 하회탈이란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사이조와 해신 사이의 문서를 건네줬던 백운도 마찬가지였다.
“하회탈과 무기왕, 그리고 백운이라.”
송유빈이 머리를 이리저리 열심히 굴렸다.
“하회탈은 분명 폭발에 휘말려서 죽었고, 백운 님은 대산의 기둥이고. 백운 님이 무기왕이라고 하기엔 무기도 안 꺼내고 말도 안 되는 힘을 내는 걸 내가 직접 봤었고.”
세 이름 사이에 열심히 줄을 그어 봤지만 추측만 가능할 뿐 확실히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 에라이!”
잠시 머리를 싸매다가 펜을 내팽개친 송유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다 됐어. 아무렴 어때. 어쨌든.”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송유빈이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사아아.
날씨도 오늘을 축하하려는 건지 아주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무기왕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