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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88화 (288/473)

288화. 진짜는

서울에 급조된 거대 연구소.

“이쪽으로 가져와! 관련 요원들은 아직이야?”

“지금 오고 있답니다! 일단은 있는 장비로 최대한 연도 측정을 해보는 중입니다!”

연구소에선 일본에게 받은 유물을 늘어놓고 감정 및 확인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유물이 상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보존 작업을 하는 건 물론이었다.

“지금까지는 별 이상 없습니다. 전부 진품입니다.”

직원들의 말에 연구소장인 오연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신 자식들 진짜 쓰레기 중에 쓰레기였구나. 이수천 이 새끼는 아주 가증스럽기 짝이 없어.”

유물 사랑이 남다른 오연우였기에.

유물을 위해 많은 사업을 벌이며 돈까지 아끼지 않는 이수천을 진심으로 존경했었다.

그만큼 실망과 분노도 남달랐고 말이다.

“소장님. 헌터청에서 수련 님 오셨어요.”

한참 이수천을 씹고 있던 오연우가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헌터청 소속이지만 연구소에서 필요로 할 때마다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유수련.

오연우는 오늘 헌터청으로 유수련의 파견을 공식 요청했었다.

“안녕하세요. 수련 님.”

“안녕하세요. 연우 님. 오랜만에 뵙네요.”

사이코메트리 계열 능력으로 대상의 기억을 아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자.

짧은 장면이지만 다른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완 달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대상의 기억도 볼 수 있어 오연우는 항상 유수련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오늘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유수련이 긴장된 얼굴로 눈앞에 놓인 관을 바라봤다.

“이순신 장군님의 관이라니.”

사이조가 가지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유해.

손상이 쉬운 만큼 함부로 작업할 수 없는 건 물론, 작업한다고 해서 유해가 진짜 이순신 장군이 맞는지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기에 유수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후우…! 그럼 한 번 해볼게요.”

몇 번의 심호흡을 마친 유수련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동시에 오연우가 손을 들어 모두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소란스러웠던 연구소로 순식간에 찾아온 적막.

모두가 하던 작업을 멈추고 숨을 죽인 채 눈 감고 있는 유수련을 쳐다봤다.

우우웅.

유수련의 손에서 은은한 초록빛이 뿜어지고.

감고 있는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굉음에 유수련이 미간을 찌푸렸다.

굉음과 함께 가장 먼저 보인 건 날아드는 포탄이었다.

시야가 이리저리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전쟁 당시의 배 위 같았다.

‘…?’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을 보며 유수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건 아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이순신 장군의 시야라고 하기엔 서 있는 위치나 주변 병사들이 건네오는 반응과 말이 어딘가 맞지 않았다.

마치 일반 병사가 같은 계급의 사람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해가지 않는 시야를 공유하길 잠시.

[전군, 배를 돌려 적을 유인한다.]

유수련의 귓가로 묵직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고개를 돌린 건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시야.

‘!!’

유수련의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보여지고.

뚝.

짤막한 장면 공유가 끝이 났다.

“수, 수련 님…?”

유수련이 눈을 뜨자 오연우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평소완 달리 심상치 않은 유수련의 표정에 오연우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이건.”

여전히 미간을 찡그린 채 관을 바라보는 유수련.

유수련이 약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순신 장군님의 유해가 아니에요.”

* * *

어푸! 어푸!

힘차게 손을 내뻗으며 물살을 갈랐다.

본격적으로 다음 무기를 찾기 전 굴업리에 들리기 위해서였다.

수영 속도도 아주 빨라졌구만!

빠르게 나아가는 몸에 흡족함이 느껴졌다.

조금 빨라진 수준이 아니라 거의 물개 그 자체가 된 듯한 기분.

세 번째 달이 뜨며 육체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보니 모든 생활에서 그 변화가 제대로 와 닿고 있었다.

현무 님은 좀 나아졌으려나.

견뎌온 시간이 긴 만큼 약간의 움직임도 힘들어했었던 현무.

듀공의 집중 치료를 받은 만큼 킹북이가 하루라도 빨리 힘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벌써 굴업리네.

아래로 잠수한 후 입구를 찾아 나아갔다.

언제 방문해도 항상 신비롭게 느껴지는 입구였다.

음!?

입구와 함께 오동통한 다리와 궁댕이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듀린이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한량처럼 물장구나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쑤우우우우욱!

빠르게 속도를 올리며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푸하아아아아!”

“기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앙!”

오늘도 마찬가지로 비명과 함께 발라당 넘어가는 듀린이들.

그중 제일 큰 비명을 지르며 멀리 날아간 모랑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 순간 심장이 멈춘 것 같았슴다!”

엄살 부리는 모랑에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전 사람이 아닌….”

툭.

“!?”

무심하게 초콜렛 꾸러미를 건네주자.

“형님을 모셔라!!!”

흩어져 있던 듀린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킹북님께 가자.”

“형님을 현무 님께로 모셔라아아!!”

오와 열을 맞춰 날 둘러싼 듀린이들이 한쪽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현무 님은 어떠셔?”

“많이 회복하셨슴다! 집중 치료를 받고 계시고 이곳엔 현무 님이 잘 드셨던 음식도 많슴다!”

“좋구만!”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본 경험이 있는 만큼 듀공들이 현무를 잘 돌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임돠!”

걸음을 멈춘 모랑이 구석에 있는 작은 입구를 가리켰다.

“고마워.”

듀린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입구로 들어서자.

오씨.

숨겨져 있던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굴업리로 들어오는 또 다른 입구와 이어진 곳인지 중앙이 바닷물로 가득 차올라 있는 공간이었다.

스륵.

천장 어딘가가 섬 위까지 뚫려 있는 건지 몇 줄기의 햇살이 들어왔고.

그 빛이 비치는 공간이 왠지 모를 신비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 일은 다 끝났나 보군.”

조금 더 다가가자 미리 와있던 말랑이 손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오랜 친구인 현무가 머물러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쌩쌩해 보이는 말랑이었다.

꿀렁.

몇 발자국 더 다가가자 가득 차있던 바닷물이 출렁이는가 싶더니.

초거대 킹북이 현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운.]

머리로 울려오는 목소리에 입을 틀어막았다.

사방신 킹북이 현무가 내 이름을 불러주다니.

가문의 영광이란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무근본이라 가문이라 할 만한 건 없지만 어쨌든.

[지난번엔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 했군. 정말 고맙구나.]

“그 무슨 섭한 말씀이십니까! 이순신 장군님의 친우이자 전우셨던 현무 님을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

이순신이란 이름이 들려서일까.

잠시 말을 멈춘 현무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순신 장군님을 만났었습니다.”

[그는… 어땠는가.]

천천히 공명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상태였으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약간의 과장이나 숨김도 없이 말이다.

좀 고민되긴 했지만.

굴업리로 출발하면서도 확실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홀로 봉인을 지키고 있을 현무에 대한 미안함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

이걸 그대로 이야기하면 현무 또한 마음이 좋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그럴 자격은 없으니까.

물론 굴업리에 다다라서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고 결정 내렸었다.

잠시의 힘듦이 있을지라도 둘 사이에 선의든 아니든 거짓이 끼어드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 그렇구나.]

이야기를 끝내자 현무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고집이다.]

약간 가라앉는 듯하다가 밝아지는 현무의 목소리.

눈을 뜬 현무가 정면으로 날 응시했다.

[앞으로는 그대와 함께인 건가?]

“네. 앞으로는 제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착각일수도 있지만 현무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지어진 것 같았다.

[앞으로 내 소중한 친우를 잘 부탁하네.]

이순신 장군을 향한 진심과 소중함, 아련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몸을 꼿꼿이 세우며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당연하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덩달아 나도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기를 잠시.

옆에 있던 말랑이 내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넵?”

“사실 자네한테 말해줘야 할 게 있다네.”

갑작스러운 고백에 꿀멍한 표정을 짓자.

말랑이 따라오라는 듯 손을 휘적였다.

현무가 떠올라 있는 중앙 바닷물 구덩이를 끼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말랑.

뭐지?

왠지 모르게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보니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궁금증 최대친데 걸어가다 또 잠드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정말 킹 받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어딘가를 바라보며 멈춘 말랑에 나도 걸음을 멈추며 옆으로 나란히 섰다.

“내가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수습했었다는 말, 기억하는가?”

“네. 기억하죠.”

조선에서 보낸 배가 수습할 수 있도록 배로로 족이 깊은 바다에 있던 장군의 시신을 수면까지 모셨다고 말랑은 말했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다 보니 몇 가지를 빼고 말했었다네.”

“넵?”

“당시 배로로 족 어른들은 의아해했었어. 어째서 같은 나라라는 자들이 필요할 땐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전투가 다 끝나고 나서야 나타나는가 하고 말이야. 우린 이곳에 살며 이미 몇 번이고 비슷한 장면을 봐왔었거든.”

조용히 듣고 있자 말랑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자들의 손에 장군의 시신을 넘긴다는 게 몹시 찝찝했었다네. 당시 어른들도 똑같이 생각했었고.”

“…!”

예상이 가는 결론에 입이 벌어졌다.

“결론만 말하자면. 우린 그들에게 장군의 시신을 넘기지 않았어. 다른 이의 시신을 넘겼었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넘기지 않았다니.

그럼 원균이 수습해서 사이조에게 팔아먹었던 건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아니란 이야기였다.

물론 넘겨진 이 역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영웅이란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말이다.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넘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순신 장군님은…?”

잠시 내 눈을 쳐다보던 말랑이 고개를 돌려 공간 한편을 응시했다.

시선을 따라가자 공간의 중앙 끝 지점으로 바위가 모여 높은 지형을 형성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스르르….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자 천장의 어딘가에서 여러 줄기의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원래 공간의 초입을 비추던 것보다 더 잘게 갈라져 치솟은 지형을 비추는 햇빛.

햇빛이 천천히 지형을 밝혀나가기 시작하고.

“하…!”

몸을 휘감는 경이로움에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햇빛이 비치는 곳엔 배로로 족이 만든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으면서도 바스라짐 없이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조각상.

“조각상 안에 모셔두었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말이야.”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조각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로 이순신 장군의 관을 발아래에 두고 미소 짓던 사이조의 카진과.

생전의 질투와 시기심으로 복수랍시고 이순신 장군의 모든 걸 팔아먹었던 이수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벅.

그들의 미소와 바람과는 정반대로.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맞이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매국노와 나라를 침략한 적의 발아래에 위치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위에 계셨구나.”

걸음을 멈추며 햇살이 비추고 있는 이순신 장군을 올려다봤다.

“….”

그렇게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한참을 바라본 후.

오랜 세월 한반도를 지켜낸 영웅을 향해.

스윽.

두 손을 모아 천천히 몸을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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