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매드 사이언스의 역작
“내가 뭔가 말하길 기대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 떠들어 재끼는 모한을 쳐다봤다.
한 대 쥐어박았다고 한쪽 얼굴이 커다랗게 부어오른 모한.
그 와중에도 자존심은 살아있는지 끝까지 굽히지 않고 침을 튀겨대고 있었다.
좀 더 팰 걸 그랬나.
내심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대사관으로 잡혀 와 보는 눈이 많아지기 전에 더 패서 예의를 주입시킬 걸 하는 아쉬움이었다.
“고문이라도 해볼 테면 얼마든지 해봐라! 날 굴하지 않는다!”
얻어터진 게 분한 건지, 아니면 도발하는 건지 헷갈리는 모한에.
옆에 서 있는 이연화를 스윽 바라봤다.
“아, 안돼요.”
이연화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휙휙 돌렸다.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데요.”
“고문해도 되냐고 물어보려는 거잖아요.”
“….”
정확히 맞추는 이연화에 다음 하려던 말을 삼켰다.
한 시간 전 아무 생각없이 고문하자고 말했더니 기겁을 했던 이연화.
이번만큼은 이연화도 고개를 휙휙 저으며 안된다고 대답했었다.
대산 독사를 불러와야 하나.
머릿속으로 일본에서 날 도왔던 최리아를 떠올렸다.
상대에게 강한 암시를 거는 능력 덕분에 쿄스케를 죽였던 할배를 손쉽게 찾아냈었다.
“저, 전 정말 아는 게 없다니까요!”
절박한 목소리가 들리는 다른 방을 쳐다봤다.
모한과 달리 오진우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자기는 기업에 소속된 변호사로서 모한과 도야지들을 변호했을 뿐 아는 게 없다는 호소와 함께였다.
쟤는 진짠 거 같긴 한데.
나도 모르게 세게 때린 건지 오진우의 한쪽 뺨도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한 대 더 때리려고 하자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었던 오진우.
아주 그냥 겁이 많고 지조도 없는 걸로 보아 거짓말을 할 위인은 아니었다.
“청아 님은 어때요?”
스피커 폰으로 연결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이청아는 심문실 밖에서 오진우와 도야지들의 물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 아직까진 별 게 없어요. 가끔 보이는 기억도 다 쓸데없는 것들뿐이고요.
쯧.
속으로 혀를 찼다.
일단 문신 돼지들을 잡아들이는 것까진 성공했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진전이 없었다.
# 문신 돼…. 아니, 저 범인들이 집착했거나 중요하게 여겼던 물건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외관에 드러나 있어서 정면을 향하는 그런 거요.
이청아의 말을 들으며 턱을 슥슥 문질렀다.
일단 도야지들에게 뺏을만한 건 몽땅 수거한 상태였다.
저놈들이 집착할 물건은 이제 딱히 남아있지 않을 것…?
음?
더 뺏을 거 없나 고민하던 중.
만두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한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가진 물건들만 터느라 딱히 눈길을 주지 않았었는데.
곱게 접힌 귀 사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돼지년이…?
호다닥!
“배, 백운 님?”
당황하는 이연화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심문실로 달려 들어갔다.
벌컥 문을 열어젖히자 호들짝 놀란 모한이 날 바라봤다.
“뭐, 뭐!? 고문이라도 하려고? 어디 한번 해… 응? 뭐, 뭐야.”
모한이 뭐라고 하든가 말든가.
일단 다가가 귀때기를 붙잡아 펼쳤다.
“이거 놔! 뭐하는 거야 이 새끼가!? 여기 국가 기관 아니야!?”
그제야 투명하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이 도야지 새끼 계속 귀 만지더라.
주먹으로 조터진 부위가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오랫동안 든 습관인 모양이었다.
“귀걸이 내놔. 돼지 새끼야.”
간략하게 원하는 바를 말하자 모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이건 안돼.”
기겁하며 몸을 뒤로 빼는 걸 보니 엄청나게 애지중지하는 귀걸이인 듯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밖에 있는 이연화를 바라봤다.
“….”
내 허락의 눈빛을 알아챈 건지 잠시 고민하던 이연화가 한쪽으로 손짓했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 30초뿐이에요.
3초면 충분하지.
마침내 카메라와 녹음기가 꺼진 심문실에.
히죽 웃으며 모한의 귀로 손을 뻗었다.
“으… 뭐, 뭐야!”
“하나.”
겁에 질린 모한을 아랑곳하지 않고 귀걸이를 붙잡았다.
“둘.”
푸확!
“끄아아아아악!”
* * *
“자꾸 숭한 걸 갖다 드려 죄송합니다. 청아 님.”
뚝뚝 떨어지던 피만 대충 닦아 건넨 귀걸이.
이청아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귀걸이로 손을 얹었다.
우웅.
이청아가 눈을 감자 귀걸이와 맞닿은 손에서 영롱한 빛이 생겨났다.
제발!
마른침을 삼킴과 동시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두 손을 맞잡았다.
여기서도 못 본다면 더 뺏을 만한 물건이 없었다.
신체 부위엔 이청아의 능력이 통하지 않다 보니 다른 걸 더 뽑아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뭔가 보여요.”
“홀리…!”
드디어란 생각에 이청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펜이랑 종이 좀 주실래요?”
“네, 넵!”
호다닥 펜을 이청아의 손에 쥐여주고 그 아래로 종이를 대령했다.
그러자 천천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청아.
실시간으로 보며 그려지는 그림은 어딘가로 향하는 지도였다.
슥슥슥… 탁.
한참을 그리던 이청아가 펜을 내려놓으며 눈을 떴다.
“모한이란 남자의 1인칭 시점으로 그린 거라 정확하진 않을 수 있어요. 뒷골목에서 에밀리란 분을 납치한 후 향한 경로예요.”
“오오…!”
“아무것도 없는 듯한 바위 지역 안쪽으로 커다란 연구 시설이 있었어요. 문이 열리는 시스템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고요.”
“그런 건 괜찮아요. 제가 문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여니까요.”
빙긋 웃으며 그려진 지도를 집어 들었다.
시내에서 시작된 지도는 생각보다 상세하여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가다가 모르겠으면 영상 통화 걸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청아 님.”
“별말씀을요.”
미소를 그리는 이청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 빙글 몸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에밀리 님.
저벅.
제가 갑니다!
* * *
그리스 바위 지대의 연구소.
의자에 앉은 에밀리가 두 눈을 감았다.
‘이런 물건이 있었다니.’
움켜쥔 에밀리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물건을 감정해 오며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 감정했던 관은 지금까지 봤던 어떤 것과 비교해도 그 끔찍함과 아찔함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감정하는 게 옳았던 걸까.’
골목에 있던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있었기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관을 감정해줬었다.
곧장 사용할 것처럼 보였기에 거짓말할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와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그 한 번이 세상에 끼칠 여파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스윽.
고개를 돌린 에밀리가 연구실 건너편을 바라봤다.
그곳에선 박사 이근철과 연구원들이 관으로 쉴새 없이 무언가를 때려 넣고 있었다.
‘정말 미쳤구나.’
넣고 있는 건 수많은 사람의 시체와 데몬의 신체 일부분이었다.
‘설마 했었는데.’
연구소로 끌려오며 에밀리는 각종 실험관에 담겨 있는 데몬의 시체를 목격했었다.
엄청났던 숫자를 봐선 그중에서 최적의 실험체를 뽑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얼 만들려는 거냐.’
원래라면 성공했을 턱이 없는 실험이었겠으나.
우카론의 관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융합에 사용되는 재료 역시 저 미친 과학자가 선별한 것만 넣어대고 있으니 분명 말도 안 되는 생명체가 탄생할 터였다.
꿀꺽.
에밀리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근철이 저걸 만들어서 어디다 쓰려는 건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이제 곧 탄생할 상식 밖의 생명체에 아득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 다룰 수 없을 겁니다.
감정을 마치며 에밀리는 이근철에게 경고했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절대 관에서 태어난 무언가를 다룰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 킥!
이근철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었다.
- 통제되지 않는 최강의 괴물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킬킬킬!
그야말로 최악의 물건이 최악의 미치광이에게 쥐어진 것이었다.
쿠르르릉…!
“…!”
엄청난 소리에 에밀리가 고개를 들었다.
모든 재료가 들어간 건지 동작하기 시작한 우카론의 관.
굳게 닫힌 관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쿠아아아아아---!
위험해 보이는 초록빛이 사방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 * *
“전원 다시 한번 장비랑 상태 확인하자.”
“예!”
이연화의 말에 헌터들이 각자의 장비를 확인했다.
그리스 한국 대사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이 현재 나와 함께 연구소로 향하고 있었다.
연화 님 멋있네.
뿌듯한 얼굴로 지시 내리는 이연화를 바라봤다.
내가 키우진 않았으나 친구가 이 많은 병력의 지휘관이라니.
흡족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대혁 님은 아직도 연락이 안 닿는 건가요?”
이것저것 확인하던 이연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능한 방법은 다 취해봤는데… 아직요.”
김대혁은 사라지는 데몬 시체를 쫓는다 말하고 자취를 감췄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었고 말이다.
“상부의 눈을 피해 조사하느라 혼자 가셨거든요. 워낙 강한 분이라 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예 연락이 안 닿다 보니 참… 하하.”
“별일 없을 거예요. 대혁 님 강한 건 한국에서도 유명하거든요.”
괜한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2급 헌터 김대혁은 1급에 가장 가깝다고 불릴 정도로 강하다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맞아요. 전 제가 해야 하는 일이나 잘해야겠어요.”
크게 숨을 들이마신 이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했습니다!”
그 사이 대사관의 차량이 지도의 끝에 도달했다.
이청아가 말했던 대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바위 지대였다.
끼익.
차에서 내려 거대한 바위를 살폈다.
이청아 또한 연구소로 들어가는 시스템은 모른다고 했었다.
안에 들어가선 길이 워낙 복잡하고 어두워 잘 보지 못했었고 말이다.
“청아 님. 이쯤 맞나요?”
연결된 통화로 벽의 위치를 보여줬다.
# 네! 맞아요! 그쯤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 있다 봬요!”
# 네. 백운 님도 조심하세요!
전화가 끊기고 이청아가 알려 준 바위를 올려다봤다.
“잠시만요. 저희가 열 방법을 한 번 찾아볼게요.”
헌터들과 함께 바위 여기저기를 살피는 이연화에.
“아니에요.”
간단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네…?”
뭐가 아니냐는 얼굴로 날 쳐다보는 이연화.
이연화의 얼굴로 묘한 불안의 빛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제가 열게요.”
알아내고 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터.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더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 알겠어요.”
마른침을 삼키며 날 바라보던 이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한 방법이 딱히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주변 헌터들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한 이연화가 본인도 바위에서 멀찍이 물러났다.
자 그럼.
열려라….
[도윤 - 비전 수리검]
온몸으로 흐르는 힘을 느끼며.
치켜든 수리검을 바위 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