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어디까지 가능해?
연구소의 바깥.
통로를 빠져나온 이연화가 뒤를 돌아봤다.
쿠우웅…! 쿠우웅…!!
어느 순간부터 연구 시설 전체가 쉴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힘이 부딪히며 시설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쩌적.
그 여파로 시설을 포함한 주변 바위로 금이 가기 시작한 상태.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소와 함께 지형 자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싸움에 이연화가 김대혁과 에밀리를 던지며 먼저 나가라고 말한 백운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혼자 두고 떠날 수 없다며 끝까지 남아 함께 싸웠겠지만.
말을 건넨 게 무기왕이자 백운이었기에 이연화는 토를 달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렸었다.
가까이서 백운의 힘을 본 적이 있는 만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은 백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꽈악.
이연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번 싸움 때 자신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데몬에 맞섰던 백운.
생명의 은인이 우카론이란 막강한 존재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에도 도울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분했다.
“연화야.”
힘겹게 들리는 김대혁의 목소리에 이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
더 말하진 않았으나 김대혁 역시 이연화와 같은 마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연화도 이런데 움직이지 못한 채로 누워있는 김대혁은 더 분한 마음일 터였다.
“….”
이연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몇 번인가 숨을 고른 김대혁이 다음 말을 꺼냈다.
“내가 침투했을 때 연구소에 들렀던 사람이 있어. 검은 생머리에 정장 차림이었고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로 봤을 때 책임자 혹은 투자자의 느낌이었어. 아마도 이 연구소의 배후 정도 되겠지. 연수정 이사라 불렸었고.”
김대혁이 당시 상황과 연수정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갔다.
상황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고 뭘 노리는 건지 알려면 연수정을 잡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 우린 저 싸움을 도울 수 없다.”
약간 슬픈 표정을 한 김대혁이 고개를 저었다.
우카론과 맞섰던 만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헌터들은 우카론에 대적할 수 없으며.
저 싸움을 도우러 간다 한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란 걸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신 김대혁이 몸을 일으켰다.
“우린 가용한 인원을 총동원해서 그 여자를 찾는다.”
말을 마친 김대혁이 연구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진 못했으나 분명 말도 안 되는 전투를 벌이고 있을 백운.
그런 백운을 떠올리며, 미안함 가득한 마음으로 김대혁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백운 님… 뿐입니다.’
* * *
쩌어엉!!
수리검으로 꽂힌 주먹에 몸이 쭉 밀려났다.
“쯧.”
얼얼함이 느껴지는 팔을 내려다봤다.
어떻게 돼먹은 몸뚱이야.
아까보다 훨씬 거대해진 우카론을 바라봤다.
대미지를 흡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힘을 키워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깐 분명 약간의 밀려남도 없이 막아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막아도 대미지가 몸으로 전해지는 건 물론 이 정도나 밀려나고 있었다.
“이제야 좀 느껴지나? 서로가 가진 힘의 차이가, 타고난 육체의 차이가.”
저 주둥이 저거 어떡하지.
항상 느끼지만 말을 하는 데몬은 질색이었다.
하나 같이 말이 많았고 건네오는 내용도 항상 날 킹 받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카론은 몸의 커짐과 비례해 거만함과 건방짐도 상승했고 말이다.
“넌 내게 어떠한 상처도 입힐 수 없다. 이제 인정할 때가 됐을 텐데.”
“입 좀 다물어. 거 듣기 좋은 목소리도 아니구만.”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 뒤.
띠링.
“기다려봐. 이거만 보고 뒤지게 패 줄 테니까.”
핸드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설을 무사히 빠져나와 차를 타고 이동 중이란 이연화의 메시지였다.
오케이.
사람들이 안전거리까지 물러났음을 확인하고.
쐐에에에에엑!
기다리란 말을 무시하고 날아드는 우카론을 바라봤다.
[잭 더 리퍼 - 해제]
수리검은 적당한 곳에 놓은 채 면도칼을 집어넣고.
[유탈라스 - 동기화]
[전신 의태 - 갑주]
푸른 비늘로 순식간에 몸을 둘러쌌다.
드드득.
수리검과 비늘을 동시에 꺼내자 온몸으로 차오르는 힘의 증폭이 느껴졌다.
면도칼을 꺼냈을 때보단 기동력이 떨어지겠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콰앙!!
달려든 우카론의 공격을 그대로 맞으며 주먹으로 녀석의 면상을 후려쳤다.
“커럭!”
그대로 날아가 반대편 벽으로 처박히는 우카론.
예상하지 못한 힘인지 우카론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
물론 일으킨 몸은 조금 전보다 더 거대해져 있었다.
얻어맞은 대미지가 큰 만큼 그에 비례해 키워진 덩치.
우카론은 이제 나보다 몇 배는 더 커진 상태였다.
“킬킬킬… 놀라운 힘이다. 그리고.”
우카론이 뱀 같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맛있는 힘이다.”
실제로 맛이 좋았는지 곧장 달려오는 우카론에.
“그럼 더….”
나도 물러서지 않고 달려나가며 비늘이 둘러진 주먹을 뒤로 젖혔다.
“처먹어!!”
쾅! 쾅! 쾅! 쾅! 쾅!
서로 피하지 않는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서로가 사방으로 처박혀도 더 이상 말을 건네는 일 없이 곧장 일어나 달려든 건 물론이었다.
쿠르르릉…!
충격을 견디지 못한 건지 굉음과 함께 시설의 잔해가 쏟아져 내렸지만.
피할 필요도, 피할 겨를 따위도 없었다.
그저 앞에서 쏟아지는 주먹을 견뎌내며 한 방이라도 더 꽂아 넣을 뿐이었다.
콰아아앙!!
내가 휘두르는 공격에 비례하여 이젠 웬만한 건물만큼이나 커진 우카론을 바라봤다.
당장 녀석의 약점을 파악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딱히 있을 거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단지.
저놈이 정말 신이라도 되는 게 아니라면,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한계란 게 존재할 터였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냐.
한계점에 도달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흡수에 흡수를 거듭하다 배가 터져 죽도록 말이다.
비늘 다음엔 제대로 구워주마.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비늘의 사용 시간은 무한이 아니었기에.
차례대로 먹여 줄 무기를 생각해놓았다.
콰앙! 콰앙! 콰앙!
그렇게 수십 수백 번의 주먹을 주고받은 시점.
커질대로 커진 우카론이 발을 뻗어 내 몸을 밀어냈다.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친 우카론.
어딜 도망을.
그런 우카론을 따라 곧장 땅을 박차려는 순간.
“지겨워졌다.”
우카론의 따분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우우우웅…!
우카론의 몸에서 눈부신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우카론의 몸을 감싸며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빛.
빛이 시야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커지나 싶더니.
쐐에에에엑!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쏘아져 내려온 우카론이.
“이게 내 진정한 힘이다.”
주먹을 뻗어왔다.
“끝이다.”
툭.
몸에 주먹이 닿았다는 걸 인지한 순간.
마찰 지점에서 폭탄이 터지듯 말도 안 되는 힘이 작용되어 왔다.
무, 무식한 새….!
막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몸이 그대로 지면을 뚫으며 내려꽂히기 시작하고.
우카론의 몸에 둘러졌던 무수한 초록빛이 그대로 날 덮쳐왔다.
* * *
너무 강력한 빛에 잠시 감았던 두 눈.
스르륵.
응?
몸을 감싸는 청량함과 시원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시원하지.
분명 급발진한 우카론에 맞아서 땅 아래로 처박혔었는데 흙이나 바위의 답답함이 아닌 청량함이라니.
의아해하며 눈을 뜨자 내 몸을 감싼 푸른 물이 보였다.
에?
지반에 구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몸은 한눈에 봐도 깨끗하고 맑은 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순간 지반을 넘어 지하수가 가득한 곳으로 들어온 건가 싶은 찰나.
“몸이 성한 날이 없구나.”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투두둑.
“….”
우카론이 저 지면 아래까지 뚫린 구멍을 응시했다.
하도 깊이 파여 어디까지 꽂힌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황홀한 힘이구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우카론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어루만졌다.
관에서 수많은 이의 사념을 먹으며 자아를 형성했던 우카론.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었다.
좁은 관을 빠져나와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을 말이다.
‘인간의 짓인가.’
우카론이 완전히 사고를 되찾기 전 죽여버렸던 이근철을 떠올렸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뭘 관으로 넣었는지는 몰라도 자신과 합쳐지며 이런 완벽한 육체가 만들어지다니.
처음엔 신이 내려주었다 여겼는데 이젠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신 또한 이런 육체는 가지지 못했겠지.’
이젠 그 누구도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확신에 우카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킬킬킬킬킬!”
몸까지 젖히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던 우카론이.
찌릿!!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대미지를 흡수한 것에 대한 리바운드.
덕분에 몸집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우카론은 전투 중에 본능적으로 느꼈었다.
이 속도는 몸이 받아들일 수 없음을,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간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위험을 느끼자마자 단숨에 끝내려고 현재 가능한 온 힘을 끌어올려 백운에게 쏟아부은 것이었다.
“….”
잠시 웃음기를 지운 채 푹 패인 구덩이를 바라보는 우카론.
무언가를 곱씹으며 생각하던 우카론이 빙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저기에 처박힌 게 뭐였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끝이었다.
자신이 쏟아부은 전력을 맞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가서 학살을 시작해볼까.’
무너지는 연구소의 잔해를 올려다보며.
우카론의 입가로 광기 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오랜 시간 참아온 만큼 이제부터 피의 향연을 펼칠 예정이었다.
툭.
“…?”
위로 솟구치려는 순간.
우카론의 어깨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비늘…?’
어깨에 얹힌 건 한 조각의 비늘이었고.
시설이 전부 무너져 빛 한줄기조차 들지 않음에도 비늘은 영롱한 푸른색을 띠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아아아…!
“!!!”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우카론이 고개를 돌렸다.
무너져 내리는 잔해더미로 인해 그게 무엇인지 보이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신의 육체라 자부하는 우카론마저 소름 돋게 하는 무언가가 말이다.
‘뭐냐… 이건.’
우카론이 처음 느껴보는 서늘함에 압도당한 사이.
잔해 사이로 푸른 빛이 뿜어지고.
“유탈라스 최종 진화.”
죽었어야 하는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폴리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