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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01화 (301/473)

301화. 썩은 나라

아테네 공항으로 가는 길.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이연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이연화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김대혁.

“연구소를 관측하던 인원이에요. 우카론은 공중분해 당했고 연구소와 주변 지형 외에 피해는 없다고 해요.”

“하하…!”

가슴을 움켜쥔 김대혁이 안도와 함께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백운이 당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맞상대했던 우카론이 너무도 강력했기에.

차에 탄 이후로도 내심 불안했던 김대혁은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백운의 무운을 바라고 있었다.

“백운 님의 부상은?”

“그게….”

이번 질문엔 이연화가 대답에 뜸을 들였다.

뭔가를 숨기려 한다기보단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부딪힌 건지 옷이 찢어지긴 했는데….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대요. 눈에 띄는 생채기도 딱히 없고요.”

할 말을 잃은 김대혁이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백운이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는 건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

오는 내내 김대혁이 그토록 바란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전투에서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라.’

커다랗던 연구소와 방벽이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치열했던 전투였다.

직접 싸우지 않고 주변에 있었더라도 생존하는 게 쉽지 않았을 정도로 말이다.

‘기태랑 님 말고도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었구나.’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방어, 기태랑.

김대혁은 과거 기태랑과 함께 싸웠을 때의 경외감을 다시 한번 느끼는 중이었다.

휙휙.

살며시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 김대혁이 고개를 들었다.

감탄하는 건 모든 게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았다.

“아직 비행기 연료 공급 중이라고 했지?”

연구소를 빠져나와 응급치료를 받으면서도 김대혁은 연수정을 찾기 위해 그리스 내의 모든 인맥을 동원했었다.

우카론을 막아내는 건 실패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승인되지 않은 전세기가 아테네 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이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네 이륙까진 시간이 좀 남았고 연수정으로 보이는 인물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긴 한데요.”

이연화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거 같아요.”

“심상치 않다니?”

“일단 상부에 요청했던 비행 금지 요청은 거절당했어요.”

여기선 김대혁도 인상을 찌푸렸다.

연수정이 정부와 여러 커넥션이 있는 건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이쯤이면 정신을 차렸을 거라 생각했다.

연구소와 데몬까지 다 까발려진 마당에 더한 위험을 감수하기보단 발을 뺄 거라 여긴 것이었다.

“카풀라 대통령 핫라인은?”

“카풀라 님은 아프리카에서 정상 회의 참석 중이시라 당장 연결이 불가능하대요.”

혀를 찬 김대혁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상황이 어렵게 흘러갈 것 같았다.

“일단 최대한 빨리 가자.”

연수정을 당장 잡아넣진 못하더라도 그녀에 관해 조금 더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카풀라 대통령이 돌아온 이후를 기약할 수 있을 테니까.

“이거까지 아무 수확 없이 놓치면.”

김대혁의 입가로 난처한 미소가 그려졌다.

“백운 님을 볼 면목이 정말 없으니까.”

* * *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된 최신 핸드폰의 사망 소식.

몹시 침통해 하며 대사관 쪽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뭐 하는 새낀가 하겠다 증말로.

연구소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으니 조만간 한국에도 소식이 들어갈 터였다.

당연히 소식을 가장 먼저 넘겨받는 건 강태황과 기태랑, 비광이 있는 중앙 헌터청일 테고 말이다.

이제 뭐 안 사주겠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 좀 받으라고 사줬는데 일주일도 안 돼서 안읽씹을 해대는 꼴이니.

내가 기태랑 혹은 비광이었으면 앞으로 뭐 안 사주는 걸 넘어 무전기로 조패버렸을 듯했다.

끼이익.

대사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긴급 상황인 만큼 핸드폰 사는 곳 좀 물어볼 생각이었다.

응?

싸늘한 대사관에 주변을 둘러봤다.

오는 길에 만났던 헌터는 다들 대사관으로 복귀했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백운 님!”

그때 대사관에서 대기 중이던 이청아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오 청아 님!”

반가운 마음에 손을 번쩍 들자.

이청아가 약간 허탈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운 님. 괜찮으신 거죠?”

“보시는 바와 같이 완전 괜찮죠.”

팔과 목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려 보였다.

“대사관에서 기다리는데 워낙 끔찍한 얘기가 많이 들렸었어요. 백운 님이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건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하….”

기다리며 연구소 전투에 관해 이것저것 들은 모양이었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이청아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제게 혹시는 없습니다! 와하하!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안 오셨나 봐요?”

“네! 조금 전에 들었는데 아테네 공항으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공항요?”

“저도 자세히 들은 건 아닌데…. 연수정? 그 사람 신원을 확보하러 간다고 했어요. 이번 연구소 사태와 분명 연관이 있을 거라고요.”

“!?”

대산 습격 당시 이천호가 폭발하기 전에 내뱉은 이름이었다.

뒤처리를 위해 이천호를 없앤 건 물론 대산 습격에 많은 지분을 가진 인물일 터였다.

대산의 조사가 시작되자 완전히 꽁꽁 잠적해버렸었고 말이다.

- 여… 연수정 이 썅년이…!!

천호가 옳은 말을 하고 떠나긴 했어.

아주 적절한 명칭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

“청아 님. 그럼 저도 좀 다녀올게요.”

이청아에게 손을 휘휘 흔들며 왔던 길로 빙글 몸을 돌렸다.

* * *

아테네 공항 활주로.

도착한 김대혁과 이연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면 카풀라 대통령이 귀국하는 줄 알겠어요.”

“그러게.”

대사관 측 헌터들이 멈춰있는 전세기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에 맞춰 미리 와 대기 중이던 경찰과 군 병력이 전세기를 빙글 둘러쌌다.

“이륙 못 하게 막으려는 거 같진 않죠?”

“오히려 반대 같은데.”

저들도 김대혁과 같은 목적으로 온 거라면 다행이겠지만.

전세기의 이륙 준비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대혁 팀장님.”

군인들 사이에서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어깨에 세 개의 별을 단 군 장성 롭호스였다.

“안녕하세요. 롭호스 장군님.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국무 수행을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저랑 같으시네요.”

김대혁이 웃으며 지나가려 하자 롭호스가 길을 막아섰다.

“몸도 성치 않으신 거 같은데 돌아가시죠. 여긴 저희한테 맡기시고요.”

“….”

대사관과 군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입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롭호스를 바라보는 김대혁.

“롭호스 장군님. 혹시 어디서 지원 요청을 받으셨습니까?”

“제가 그걸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겠죠. 군 장성인 제가 단순 외국 협조 기관인 대사관 팀장한테는 더더욱 더 말이죠.”

“지원 요청을 받으신 건 맞습니까? 개인적인 연락으로 나오신 건 아니고요?”

이미 다 알고 온 듯한 김대혁에 롭호스가 미소를 머금었다.

“카풀라 대통령께선 당연히 모르실 거 같군요.”

“각하는 지금 그리스에 안 계시니까요. 돌아오시면 제가 알아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뻔뻔스러운 롭호스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순간.

저 멀리서 검은 세단 한 대가 활주로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방을 막고 있던 롭호스의 병력이 비켜주는 걸로 보아 연수정인 것 같았다.

끼익.

세단이 전세기 앞에 멈춰 서고.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연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수정 이사님.”

롭호스 너머로 내리는 연수정에 김대혁이 입을 열었다.

못 들은 척하며 전세기로 걸어가는 연수정.

“이미 얼굴과 이름, 목소리가 전부 알려졌습니다. 타고 가시는 전세기도 계속 추적할 거고요. 여기서 빠져나가도 결국 잡힐 겁니다. 연구소 일에도 지분이 클 거 같은데 얘기 좀 하시죠.”

“… 하아!”

빠르게 걸어가던 연수정이 걸음을 멈춘 채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하다하다 별 날벌레까지 진짜…!”

수행 기사의 말림에도 연수정이 구두 소리를 내며 롭호스와 김대혁에게 걸어왔다.

이미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던 건지 눈가와 이마에 핏대가 서 있는 연수정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거 다 맞아 이 새끼야. 연구소 내가 만들었고 내가 진행 시켰어.”

예상 밖의 이실직고에 김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연수정은 얼마나 큰 힘을 등에 업고 있길래 이럴 수 있는 걸까란 생각과 함께였다.

“추적? 잡힌다고? 백날 해봐! 내가 장담하는데 이 순간 이후로 네놈들 따위가 내 얼굴을 보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테니까! 그게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법칙이야. 알겠어!? 운 좋게 이렇게 대면했다고 기고만장하지 말란 말이야!!!”

뭐가 그렇게 화났는지 크게 악을 내지른 연수정이.

몇 차롄가 심호흡하더니 빙글 몸을 돌려 전세기로 걸음을 옮겼다.

“대사관 헌터 전원….”

철컥!

김대혁과 대사관 헌터들이 전세기로 향하려는 순간.

롭호스의 지시를 받은 군 병력이 무기를 겨누었다.

이에 충돌을 마다할 생각이 없다는 듯 김대혁도 팔을 들어 올렸다.

“거기까지 하시죠. 김대혁 팀장님.”

“…?”

일촉즉발의 상황에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관의 상부이자 그리스의 외교부 장관인 타니스였다.

타니스의 등장에 희비가 교차하는 김대혁과 롭호스.

웃고 있는 롭호스와 달리 김대혁의 얼굴로 슬픈 빛이 어렸다.

‘이 나라는 대체 어디까지 썩어 있는 거냐.’

김대혁에게 다가온 타니스가 위협적인 미소를 지었다.

“김대혁 팀장님. 선을 한참 넘으셨어요. 대통령이 아낀다고 아무렇게나 날뛰면 되겠어요?”

타니스가 품에서 꺼낸 종이를 김대혁에게 건넸다.

“장관 권한으로 현 시간부터 내일까지 한국 대사관의 그리스 작전 권한을 박탈합니다. 이제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그리스에 대한 대한민국의 테러 행위예요.”

으득.

김대혁과 이연화를 포함한 대사관 인원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자 국가 분쟁으로 범위를 넓혀 협박하는 것이었다.

우우우웅…!

그 사이에 엔진을 점화한 전세기가 활주로로 미끄러지고.

비행기 창문 너머에선 조소를 머금은 연수정이 와인과 함께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아직 최소한의 이성은 남아있으신가 보네요.”

전세기가 활주로를 떠나 하늘로 이륙하자 마지막 말을 남긴 타니스가 롭호스를 대동하고 김대혁을 지나쳐 걸어갔다.

“….”

딱히 대꾸는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김대혁.

타니스와 롭호스가 멀어지자 김대혁이 이연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됐어?”

“붙였어요. 연수정이랑 전세기한테요.”

주머니에 있던 이연화의 손에선 마도공학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현대 기술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장비를 다른 차원에서 소환해내는 마도공학.

큰 부피와 광범위한 장비만 꺼내던 과거완 달리, 능력 개발을 통해 이런 상황에 사용할만한 것들도 만들 수 있게 된 이연화였다.

“잘했어.”

연수정이 흥분해 다가온 순간 그녀에게 붙여진 마도공학 장치.

할 수 있는 조처를 한 김대혁이 몸을 돌리자.

“대혁 님! 연화 님!”

마침 도착한 백운이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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